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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season1을 마무리 짓는 학기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같이 들어와서 길찾기부터 주니어까지 꼬박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났고, 나는 혼자 절절 매며 조급함 속에 남아있었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대부분 뒤를 돌아볼 여유를 금방 갖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못내 서운했다. 그 마음을 나 혼자 갖고 있다는 것이 싫어 외롭다고 보낸 문자에 “걔네 다 나가면 이제 네가 대빵인게지. 의젓한 선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로울 틈 없이 바빠야지.” 라는 답장이 왔다. 최고 학기에 올라선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른 주니어들에게 보일까, 하는 걱정보다 더 중요했던 건 다시 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덧, 수료를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자에서 보냈던 지난 3년여의 시간을 떠올리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뭘 하면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도 있었고,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보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그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만큼은 하기 싫었다. 그건 마치 지금 내 모습도 부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자 건물과 마주보며 스스로에게 힘을 실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그 때의 힘과 설렘이 다른 무게로 다시 찾아오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경운기를 끌었다

길찾기를 마치고 디자인팀에 주니어로 들어왔다. 그 때는 내가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이 ‘매체’라는 생각은 더더욱 내 머릿속에 없었다.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었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디자인팀으로 같이 들어온 내 친구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그림을, 정말 쉽게 잘 그렸다. 그걸 보면서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처음으로 내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느려. 여기엔 나보다 잘 하고 속도도 빠른 애들이 많으니까 난 없어도 되겠다, 하는 마음이 나를 뒤덮었고 결국 사람도, 상황도 싫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느린 속도를 탓하며 도망 갈 곳을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그 것이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책했고 나의 하루 중 절반은 늘 도망 중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그림책을 하나 만들었고, 얹혀가는 것이긴 했지만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은 그저 우리끼리의 마음이 맞아서 그림책을 하나 만들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떨떠름한 마음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전시준비를 하는 내내 들었다. 길찾기를 같이 하면서도 서로 알아보지 못 했던 것들이 보였고, 점차 서로에게 맞춰가고 가까이에 있으면서 같이 하는 것도 혼자 하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하는 나 스스로에게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주니어 첫 학기는 나에게 속도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 당혹스러움을 아무런 해결방법 없이 툭 던져놓은 채로 지나갔다.

 

그리고 주니어 2학기, 당시 영상팀이었던 Catchscope는 작업장학교 Promotion Video를 제작하기로 했고, 내가 있던 디자인팀 TOT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며 지금 작업장학교에 다니는 십대들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십대라는, 청소년이라는 자각도 없었고 단순히 하자를, 작업장학교를 알리는데 필요한 영상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뼈대를 만들고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붙여가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고, 회의는 늘 모두가 지친 상태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역시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넌 손이 느리니까 미술감독 하면 좋겠다.” 는 말을 들었다. 날 생각해서 그 말을 한 것 같았지만 굉장히 뾰족했다. 미술감독을 해야 된다는 부담감보다 그 말이 더 커서 또 눌려버렸고 다시 도망을 쳤다. 그렇지만 어쨌든 P.V는 완성됐고, 상영회도 가졌다. 상영되고 있는 P.V와 그것을 열심히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도 같이 했다고 말하기 민망해서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만들어진 영상이 틀어지는 것도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내 마음속에는 잘 해야겠다는 욕심과 매우 큰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영화를 처음 만드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나 역시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손만 대면 멋지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영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던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그 안에서 나눠지는 역할에 몰두하는 것도 낯설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지, 그 이야기가 진심인지 아닌지, 하는 질문과 의심에 묻힌 것이었다. 그리고 내 몫으로 남겨진 것은 그것과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맞닥뜨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뿐더러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를 휴학했다. 휴학계를 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쉬는 동안 이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잘 알 수 없고 그 것이 내가 복학했을 때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큰 부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하자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내가 나를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에 억눌려 전보다 더 나아진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하자에 있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있는 곳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었고, 나에게 휴학을 하는 것은 서로 동의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 결국에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을 넘어

다시 하자로 왔을 때 ‘진심’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학습계약서에 썼다. 사람들이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이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음에 진심을 담아서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 당시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움직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때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그 물체, 혹은 풍경,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자극도 피해도 주지 않고 변화하는 것을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움직임이었고 그 순간에는 그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전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낸 것도 사람들의 마음에 따른 움직임,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는 변화나 어떤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 이라는 것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전보다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내가 그 만남에 집중하려고 했던 것은 결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사고와 감정이 세계의 한 조각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에 대해 치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 조원규


세계의 한 조각
이라는 말이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을까.

내가 움직이는 것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으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여태껏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나에게는 감정적으로 다가왔는데, 그것이 조원규 시인을 만나고 난 뒤에 내가 말했던 ‘매일매일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이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움직였던 내 마음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지만 그 때와는 조금 다르다. 그 때는 단순히 감정의 변화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운동’과 ‘변화’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고, 나는 그것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3학기 중반, ‘움직임을 따라서(6개의 주제에 따른 애니메이션과 다른 예술분야 탐구) 라는 주제로 했던 애니메이션 워크숍에서는 내가 줄곧 생각하고 있던 움직임과는 다른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움직임의 형태를 이야기 하는 것에서부터 움직이는 주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움직일까, 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이 사람에게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고 확실한 자극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움직임’이라고 말 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움직임을 표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워크숍을 했던 것이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에 좀 더 분명한 단서를 제시하고, 크게 적용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움직임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것도,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의도치 않게 포착하게 되는 것도 모두 시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운동’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움직임에 대한 생각에 더해진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에게 생길 변화와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3학기에 들어서 개인 연구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디자인프로젝트를 하면서 정지 된 화면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좋았다.

“움직임 속에서 시간이 발생하고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는 움직임들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화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나아가서 움직임과 함께 ‘발생하는 시간’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다”

연구주제 발표 준비를 하면서 쓴 글이다. 마음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마음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 전후를 비교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마음을, 덧붙여진 운동을 생각하고 말 할 수 있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함께하다

나에게 ‘운동’ 이 이렇게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한 것은 지난 1월부터였지만 운동이라는 말 자체에는 익숙했고, 그 말이 품고 있는 뜻 또한 크게 낯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봐왔고, 익숙하지만 멀리 하고 싶은 ‘운동’은 온 몸을 써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을 하는 방식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의 운동을 하는 사람도 가까이에 있었지만 나는 꼭 그렇게까지 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의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왜 생겨났을까,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이켜봤을 때 내가 운동을 깊숙이 새기게 된 계기는 ‘시민문화워크숍’이었다. 시민문화워크숍 때 만났던 여섯 명의 시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현실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시민문화워크숍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현실과 우리 사이에는 모순도 많고, 이해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각자의 위치는 어디일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하고 있었던 시점이었고, 나의 위치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방식을 찾고 그것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 서로 다른 입장과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끼리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부분 정치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운동’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기 전에는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싸움들이 ‘운동’ 같았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폭력을 가하고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앙금이 쌓이고 결국에는 서로 피해자는 우리다, 라고 외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불편해하면서 ‘운동’은 내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가끔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정체성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것들을 옳고 그름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학기부터 시민문화워크숍을 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들을 보면서 ‘운동’이 꼭 온 몸을 써서 격렬하게 상대방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누구에게서 이뤄지고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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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우리는 보름 정도의 일정을 가지고 현장학습을 떠났다. 홍콩에서는 MaD (Make a Difference) 컨퍼런스에 참가했고, 이후 태국 국경에 위치한 Maesot과 Maela camp에 가서 열흘 정도 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와 비슷한 또래들이 다니는 학교인 CDC와 LMTC, 그리고 열 세 곳의 NGO들을 방문했다. 나한테 ‘운동’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지금, 메솟에 머무르면서 방문한 NGO에서는 그들의 현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그들이 하고 있는, 하려고 하는 운동의 방식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버마의 민주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자기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난 나중에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CDC나 LMTC에 다니는 우리 또래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청소년이고 교육 역시 받고 있긴 하지만 서로 살고 있는 곳이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 또한 다르기에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받아들이는 정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그들이 공부를 하며 앞으로 자신의 국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지도자가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또한 운동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시간동안 머물렀기에 우리의 상황과 그들의 상황을 성급하게 비교 할 수도,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나라’라는 국경을 넘어 우리는 ‘운동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하는 ‘운동을 필요로 하는 시대’ 는 결국 주변을 잘 살펴보는 눈,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필요한 반응을 하는 감각, 신중하지만 과감한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아주 작다고 느낄 수도 있고, 운동이라고 자각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운동을 하고 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을까. 물론 ‘운동’이라는 것이 혼자 힘으로 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작은 것이라도 불편함과 문제점을 느끼고 바꾸려고 하고, 그것이 처음에는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 몰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사실들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곁에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그 다음 순서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상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고, 중요한 가치도 점점 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운동에 대한 가치도 점점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은 모든 세계를, 그리고 그 곳에 속한 것들을 위한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 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의 방식이, 가치가, 대상이 아무리 바뀐다고 한들 운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하겠다고 한 것을 잊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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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현장학습을 다녀와서 ‘문화작업자’와 ‘운동’, ‘꿈과 직업’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굉장히 크고,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주제들이긴 했지만 모든 이야기를 마칠 무렵, 이 세 가지의 주제는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중 ‘문화작업자’이야기를 하면서 ‘매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매체를 든 사람이 문화작업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작업자에게 있어서 매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자에 오기 전 나는 매체라는 것에 한 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하자에 와서 비로소 매체를,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다루게 되었고, 매체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니어 3학기 동안 디자인팀에 있었던 내가 영상팀으로 왔고, 매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다른 것들도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엉뚱한 곳에다 한 눈 팔지 말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나 집중하자며 다른 매체들이 가진 흥미와 장점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했다. 지금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카메라에만 집중해야 된다는 알 수 없는 강박에 시달려 있었던 날들이었다. 언제 또 다시 매체가 바뀔지 모르는 노릇이었고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에 지금보다 더 많은 진지함을 담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고 내가 바라고 필요로 하는 것이 내 손에 잡히지 않을까봐 늘 불안했다.

 그리고 LMTC에서 GROUP ACTIVITY를 하던 날, 히옥스는 ‘매체에 너무 몰두해서 사람을 보지 못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봤더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와 그것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서 늘 의심하고 있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매체’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무언가를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 와 내가 그 ‘매체’를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겁을 먹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왜 중요한지, 기록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어느 새 무감각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 무감각함에서 조금 벗어났을 무렵, ‘사람’이 ‘매체’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고 어떤 것을 얼마만큼 끌어낼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매체’를 소중히 하고 스스로 의심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보는 것이, 모르고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현장학습 내내 속으로 끙끙 앓았던 것도 매우 큰 것이,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눈앞에 계속해서 펼쳐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많은 곳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주기를 바랐고, 그래서 보기 싫다고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을 새도 없이 어딘가로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현장학습을 마치고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고, 사전 계획을 할 때부터 영상을 완성해서 어딘가에서 상영 할 때 그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말했다. 그 상황과 타협을 하고 서로 토닥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가 여기에서 그들을 위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막막하기만 했다. 아마도 이 문제는 계속해서 따라다닐 것 같다. 지금은 버마의 상황과 맞물려 있지만 앞으로도 생겨날 문제들이 있고 그 때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주 할 수 있는

 지난 학기 정선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와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만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라는 말을 에세이에 썼었다. 그리고 이번 현장학습을 다녀와서 모임을 할 때도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매우 크고 전부 다 담을 수도 없고, 그래서 기억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만 그 동안 우리가 했던 프로젝트, 현장학습들을 떠올려 봤을 때, 우리는 결국 다른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손바닥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은 오랜 시간을 사회 안에서 싸우고 부딪히며 얻은 것이 아닌 ‘하자’, 이 거대한 사회와 비교하자면 터무니없이 작게 보일 수 있는 공간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를 읽는 눈을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하고, 자신 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벽을 볼 수 있게 했다. 수료를 생각하는 지금, 그 벽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부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앞에 벽이 있다는 것과 그 벽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벽을 뛰어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벽은 나 스스로를 이야기 하는 것이었고, 내가 나를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곧 생각해왔던 벽은 다른 사람, 다른 환경이었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를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레 겁먹고 피하고 자신 없다고 뒷걸음질 치는 것이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는 벽을 만든 것이었다는 것을.

 

 운동을 보는 사람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그 동안 나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도 넘어가고, 이해하기 싫은 것도 넘기고, 결국에는 ‘이해’ 한다는 것조차 넘겨버리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희미하게 했던 것 같다. 생각의 흐름이 매끄럽지도 않고, 가끔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이야기하고, 결국엔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나조차 알아들을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지금,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의 말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나의 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세계가 만나는 일들이 많아졌고, 나 또한 다른 세계들과 진지하게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운동’ 이라는 것이 나에게 왔다. 그 때부터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시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시점에서 시작하고 그 전과는 다른 눈으로 운동의 여러 부분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확실함보다 확고함이 더 힘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막 운동을 생각하는 발걸음을 뗐고, 앞으로 어디로 생각이 뻗어나갈지, 무엇으로 운동을 말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계속해서 얘기해왔던 ‘운동’ 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또 무감각하게 그냥 내뱉고 있는 말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의미를 잊지 않고, 그것에 앞으로 겪을 경험과 만남들이 합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결코 운동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생각이나 고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운동’이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운동’ 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