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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나의 목소리를 지키며 현실에서 살기 0. 그래도 밥 벌어 먹는 아웃사이더가 되어야한다. 9살 이전의 나는 흔히 말하는 조기교육과, 영재양성을 다 체험했다. 같은 공간에 있던 아이들끼리 서로의 아이큐로 누가 최고인지를 겨루고, 누가 문제를 더 빨리, 더 완벽하게 푸느냐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간식조차 달랐던 구조 안에서 나는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문제를 풀었다. 결국 견디지 못했던 나와 이런 구조에서는 '탈'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부모님의 판단아래에 과감히, 학교도 다 그만두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냥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학교는 그때까지와 가치의 구조가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고 나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었다. 나는 문제를 더 잘 풀고 똑똑해져야 내가 좀 쓸모 있는 사람인 것 같았고, 그래야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볍씨학교에서는 나에게 풀라고 쥐어주는 문제도 없었고, 나의 존재에 대해서 어떠한 장치들로 등급을 매길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굳이 소개하려 하지 않아도 나를 소개해 왔던 장치들이 모두 없는 공간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애초에 나는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나의 가치에 대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증명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되는 친구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워서 학교에서 많이 울었다.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 이라는 철학을 가진 학교는 생활 속에서 자기 앞가림을 스스로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밥을 남기지 않는 것, 문제를 느낄 때는 그때그때 둘러 앉아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자 하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 몸으로 하는 폭력, 말로 하는 폭력 모두 하지 않겠다. /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 와 같은 우리가 이 공간 안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약속들을 만들었고 점차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이 안의 약속들에 익숙해지며 나는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라며, 좀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되면서 학교에서 집에 오기만 해도 현실에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우리 아빠는 사업이 망한 이후로 집 밖에서도 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인지. 왜 우리엄마는 일을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지. 왜 집은 밖에서 이리저리 치인 가족들이 돌아와 잠시 쉬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인지. 엄마 아빠는 현실이 정말 만만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계속해서 강조했다. 현실에서 통용되는 흐름이 있고, 이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 흐름들에 따라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이다. 나는 세상이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지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나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대중매체로 접하는 뉴스들이 다 듣기 싫었다. 왜 자꾸 이런 문제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왜 누구는 배부르고, 누구는 이렇게 거리에 내몰리는 것인지, 왜 똑같은 인간인데 수식되는 피부색, 나이, 성별,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인지. 거리를 걷다보면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존재했다.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는 게 아무리 봐도 그냥 맞는 일인 것 같은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당연하지 않으니깐 처음에는 화가 났다. 화가 자꾸 나니깐 보기가 싫었다. 나는 이런 일들에 익숙해져 의연하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나'는 이러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살겠다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면서 살겠다고. 그렇게 살았을 때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냥 그럼 차라리 아웃사이더가 되겠다는 말을 툭툭 내뱉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가 10대가 아니고,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세상에서의 도피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현실에 익숙해져 의연하게 사는 건 죽기보다 싫었고, 찌질 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게 찌질 한 것일까?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실은 나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웠다. 제도에서 '탈' 했으나 그래도 네가 살 현실은 이곳이라고,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통용되는 '스펙'을 쌓길 권유하는 엄마 아빠에게 나는 제도에서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냥 내가 좋아 하는 거 하면서 살다 죽겠다고 그랬다. 철없는 소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속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를 슬슬 먹자 "어떻게 살거니?" 라는 소리를 계속해서 들었다. 마치 믿는 구석이 있는 것 마냥 항상 꼬박 꼬박 대답했다. 나는 사진이랑 그림이 좋았다. 내 안에 들어오는 장면들을 내 눈 안에 들어왔던 각도 그대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단순히 풍경을 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점점 사진기를 쓸 줄 알게 되면서 내가 좀 더 담고 싶은 빛이라던가, 색깔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게 즐거웠다. 순간을 담는 것은 사진기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 이라는 게 좋았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내가 그리는 순간에 내 손을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보는 것들, 그리고 보고 싶은 것들을 그렸다. 재밌으니깐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어떻게 살거니?" 라는 질문에 확신을 가장해 맞대응하기 아주 좋은 거리가 되어주었다. 집에서는 스물이 되면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과연 "어떻게?" 나는 적어도 내 생활은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내가 나를 밥 벌어먹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했던 궁리는 제도에 편승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였다. 볍씨 학교를 졸업하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공동체를 딛고 나오겠다고 결정을 했다. 그리고 하자에 원서를 냈다. 하자의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 라는 문장을 보고 나서였다. 그때의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생각한 건 "나는 그림 그리는 거랑 사진 찍는 게 좋으니깐 그거 계속 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도 내가 만들어낸 것들을 좋아해줘서 그걸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먹고 살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 는 것이었다. 1. 표현해내어 이야기하기. 실제로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작업물이라고 했을 때는 다른 의미의 진지함이 필요했다. 길 찾기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했을 때 '네가 이것저것 시도하는 건 좋은데,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는 왜 이 재료들을 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었는지 네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라는 디피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띵했다. 내가 지금까지 재밌고, 즐거워서 해오고 있었던 것들은 혼자만의 놀이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그것이 혼자만의 것을 벗어나 '작업물'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면, 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라는 고려와, 섬세함이 필요했다.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자서전 프로젝트' 와 '드로잉 프로젝트' 는 내 이야기와 경험을 매체를 통해서 표현해본다는 의미와 함께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을 때는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나는 내 안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들이나, 표현 방식들이 굉장히 강했는데 나누고자 했을 때는 그 표현방식을 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다.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 했던 나의 작업물이 오히려 소통을 배제하고 표현만 남는 상황을 초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 마주보기 - 시선을 전달하기 영등포 프로젝트에서 나는 '장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의도를 돌아다녔다. 규격화된 길이나, 건물, 재개발된 도시의 딱딱한 이미지는 나에게 여전히 불편한 것이었고, 그래서 장난을 쳤다. 소란스럽고 힘겨운 이 세상에서 곧 국회의사당 밑에 잠들어 있는 난세를 극복할 영웅, 태권브이가 나타날 것이라는 인터넷상의 루머에서 출발해서 나는 태권브이를 들고 여의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몇 일전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여의도 공원 한복판에다 관리인이 내쫓기 전까지 태권브이를 커다랗게 그렸다.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 내가 취하는 방식은 대부분 그러한 삐딱한 시선에서 출발해 흠집을 내는 것들이었다. 유머는 중요했다. 장난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만큼의 개입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 찾기 과정을 마무리하고 나는 주니어 과정에 올라가게 되었고, 영상 팀에 지원했다. 정지되어 있는 것을 움직여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할 때였다. 그러나 하자에서 힘 있게 가져갔던 프로젝트는 각자의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세계를 구하는 것" 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과 함께하는 연찬이자 수업을 가졌다. 세계를 구한다는 묵직한 문장을 가지고 시인들을 만나며 했던 생각은 그러나 세계를 구하고 있는 각각의 시인에 대한 '영웅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개개인이 어떠한 시민인가, 그리고 시민으로써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였다. 나는 시민인가? 라는 물음에 나는 당황스러워지고 말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시민이라는 것은 그리 당연한 게 아니었다. 거주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시민이라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써의 능동적인 책임감을 갖는 것을 뜻했다. 현실에서 통용되는 법칙들을 거부하며, 그리 살지는 않겠다고 등을 돌렸던 나에게 시인들은 시민 한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라고 이야기하시며, 또 스스로가 현실에서 그 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셨다. 나는 현 시대의 흐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권력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분노하며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시민 문화' 에 대해 나누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나를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은 현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이 현실 안에서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인식하게 된 시민의식이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현실이 단순히 세상일이 아니라 '내가 포함된 세상일'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가 사회와 떨어진 것이 아니며, 나 역시도 사회에 포함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도에서 '탈' 한 것이 시민 사회에서도 '탈' 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에서의 아웃사이더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나의 주변, 그리고 세계를 구하는 것으로 발현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뻔하게 생각되어지는 "우리 함께 잘 살자" 라는 말이 뻔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방법이 중요했다. 우리가 만난 시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운동, 시, 예술, 의료, 음악과 같은 각자의 도구를 통해 "함께 잘 살기" 를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셨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쥐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선으로 현장학습을 가서 본 예술가들의 모습은 역할에 대한 내 고민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였다. [예술마을 고한-사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그들의 작업 방식은 폐광과 카지노가 공존하는 마을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힘을 쏟는 것이었는데 나에겐 그 과정이 어떤 의미에서 치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예술과 예술가가 그곳에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예술의 역할은 시선이 필요한 곳에 시선을 주고, 그것을 각각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사람들로 하여금 재조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선에서 나는 마을 안에 남겨져 있는 탄광의 흔적들을 통해 마을의 이야기들을 상상해보고, 추적해볼 수 있었다. 흔적은 무언가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흔적을 남긴 이야기의 단서가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담은 이미지들이 내가 보는 순간들에서의 시각적인 이끌림 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서 내가 느낀 이야기들이 담기길 바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집에서 조각조각 분리하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들이 담길지 고민했고, 후에 그 이미지들을 가져와 하자에서 나누며 나의 이야기를 '작업물' 을 통해 전달하는 것을 해보았다. 정선에 다녀온 후 시작한 "이끌림을 넘어 이야기하기" 라는 제목을 가진 연구주제는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작업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상해본 경험이었다. 연구주제 후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과거의 포착된 '순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있어 이야기와 기억을 전달하게 하는 연속성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에게 매체란 '하고 싶은 일' 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할 수 있고, 그것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줬으면 했던 것이었는데, 매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은 내가 시선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러한 작업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민으로써의 나의 역할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3. 만남 -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맞닿아 우리의 세계가 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리" 라는 단어를 서서히 내놓기 시작했다. 현실 안에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식하고 이야기하는 "우리" 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우리"는 시민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 메솟으로의 이동학습을 가게 되었다. 메솟은 SPDC(버마 군사정권)가 자리 잡고 있는 버마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버마와 태국의 국경지역이다. 나는 그곳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NGO단체와 버마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분명히 내 앞에 존재하고 있는 파치가, 미누가, 클라우가, 툰툰이, 구구가,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만으로는 존재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경험을 나누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금 이해가 안 되는 권력과 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나는 가슴이 울컥거려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답답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그저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사람들 역시 그들이었다. 잡지를 만들고, 교육을 하고, 주변의 의식을 바꾸는 운동들을 꾸준히 하고 있는 그들은 거주민으로써는 인정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자신이 속한 세계를 구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었다. 각자의 현실에서 통용되는 입장과 위치, 문화와 규칙을 나눈 후에 우리는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를 존재적 시민으로 존중하고, 마주하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곳에서 현실에서의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마주한 '너'와 '내'가 가장 많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어떻게"였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을 마주보려면 '어떻게'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를 상상하는 그 과정에서는 답답함도 적지 않게 있었다. 거대한 현실에서 "어떻게"를 상상하기 버거울 때 우리는 가끔씩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너와 나는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았다. 너의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4. 나의 목소리를 지키며 현실에서 살아가기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메솟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내가 닿았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내가 그들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시선을 주어야 하는, 내가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나의 현실인 것이라고 깨닫게 된 순간을 기억한다. 하자에 들어와 처음에는 자율 공간 앞에 왜 '일시적'이라는 말이 붙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자율이 통용되는 공간만 인정하며 살아가고 싶었는데 하자는 자꾸 나에게 너는 어디만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대안을 이야기하게 된 사회의 흐름과 맥락에 대해서 알아야한다고 그랬다. 그러나 내가 나의 세계 밖 너의 세계와 만났을 때, 그리고 진정으로 세계를 읽어내려 하고 마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일시적'이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일시적" 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율이 통용되는 공간이 그저 일시적인 공간이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절망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율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을 뜻했다. 비록 현실 어디에서나 자율이 통용되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의 나로썬 나의 세계를 넘어 타율이 통용되는 대부분의 현실과 마주했을 때 계속해서 절망하거나 도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정지되어있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지키고 싶은 것을 가지고 현실과 마주했을 때 자칫 잘못하면 현실의 권력과 룰이 대항해야 하는, 거대하고 뭉뚱그려진, 괴물과 같은 '악' 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실은 굉장한 분노가 차오른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 생기는 권력(사회적 힘)의 괴물화는 오히려 그 정체를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진짜로' 마주보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과 버마의 NGO들을 보면서 나는 나도 그냥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HREIB선생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시선을 주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나의 시선이 불빛이라던 조원규 시인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내가 앞으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 시선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나는 이제 나의 매체를 통해 내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나의 현실에서 보는 것들을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하나의 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시선을 주었던 것에 다른 이들의 시선 역시 갈 수 있도록 하는, 서로의 시선을 도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현실 안에서의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지 않다. 현실과의 만남에서 내가 취해야할 입장은 더 이상 질서를 뒤흔드는 악동의 입장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인식이 현실에서의 도피가 되지 않으려면, 쫄지 말아야 한다. 깊숙이 그 안에 뛰어들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정도의 배짱과 의지는 생긴 것 같다. 너는 그럼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냐고 멜라 캠프에서 툰툰이 내게 물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약속들이 있다고 했다. 그걸 지키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현실 안에서 내가 아홉 살 때 만들었던 약속과, 하자의 일곱 가지 약속을 지키며 살고 싶다. 현실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가 내는 목소리를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용기를 전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는 법을 하자 안에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의 언어를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써 어떻게 잘 먹고 살 수 있을지를 모색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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