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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음악글 수 566
이마음간직하며
먹고살기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가정이 힘들다는 것을 가족들의 입으로 이야기를 듣고 보기도 해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족들에게 돈을 받는 것을 꺼렸다. 또 주위친구들을 비교하면서 내가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거나 돈벼락을 맞고 싶다는 생각들을 자주하며 커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먹고살기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항상 돈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남들보다 월등이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자에 처음 왔을 때 불안했었다. 왜냐하면 일반교과 공부는 전혀 안했고 글을 쓰는 거나 여럿이 모여서 한 키워드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반교과는 안 배우냐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으로는 “그렇게 불안해하며 공부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너는 하자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럼 나가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지 보아라.” 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이 말을 받아드리기로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 ‘여기서 나가라’ 라는 말을 들을 정도 인가? ‘다들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될 탠데’ 라고 생각했다. 또 지금당장 여기서 나가면 어느 곳에 소속되지 않을 것이 걱정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길 찾기가 끝나고 방학이 될 때 즈음에는 여전히 먹고 살기에 대해서 고민은 있었으나 막연할 뿐이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주니어 과정을 계속 해야 할지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주니어를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고 나는 상황에 맞춰서 내가 주니어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나갔다.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 판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 공연 팀을 하고 싶다.’라는 말 외에는 어...라는 뜸 들이는 말 밖에 못했고 길 찾기 때부터 함께 지내왔던 담임들은 ‘너가 왜 주니어를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생각해봐’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답을 한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해결하고 싶다.’ 라고 말하며 주니어에 들어왔다. 하지만 달맞이 공연 때 히옥스와 차에 타고 가는 동안 ‘왜 작업장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어떤 기대가 있는 지’ 다시 질문을 듣게 되었지만, 거기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길 찾기 때 판돌들이 해준 코멘트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아라.’ 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 라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그때 여전히 먹고 살기를 생각 하던 나는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라는 문장이 나에게는 마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그 문장을 가져와 버렸다. 그리고 이 문장을 나름의 해석이나 여과 없이 내뱉었던 것 같다. 그러자 바로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들어왔고 나는 그 질문에 생각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학교의 프로젝트들에서는 주위에 벌어지는 기후변화문제, MB가 하고 있는 일,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그것들에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강의도 함께 하게 되었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에서는 그때부터 일곱 명의 활동가, 작업자 들을 초대하여 그분들이 각각 자신의 현장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시민의 파장이 여러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떤 시민이 되려하는가?, 우리 세대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듣거나 우리가 이루어야 되는 민주화는 생태적민주화 라는 말을 들으며, 그리고 너의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라는 텍스트를 보면서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시민문화워크숍이 끝나고 홍성태 선생님의 권유로 낙동강에 갔을 때 낙동강의 모습을 보며 들으며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22조라는 큰돈을 가지고 생태를 말하며 강을 흙으로 매 꾸어서 그곳에 살던 생물들의 삶터를 없애고 있었고 세계에서 제일 큰 자전거 도로와 마을을 만들겠다며 멀쩡한 산을 깎아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있는 데 자전거가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그러면서 22조가 보다 예산이 더 들 것 같다. 라고 말하며 30조 정도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돈으로 생태를 파괴하면서 개발과 생태를 말한다는 게 뭔지 싶었다. 서울로 돌아와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알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데 정작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 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곧 8개월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정리나 결정을 못 내린 것들에 대해서 답하려고 하면서 급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시민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업으로는 선생님, 아니면 교수, 더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공부를 하자. 라고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점점 학기말에 가까워질수록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검정고시 수능공부를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을 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확신을 얻고자했으나 막연하다는 것은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하지만 지금 와 걸음을 멈춰 뒤돌아서 일 년간의 하자를 본다. 그러면서 내가 중간에세이에 마음먹었던 부분과 생각했던 부분, 내가 미흡했던 부분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와 다시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고민하며 나는 지난 중간에세이에 시민문화워크숍과 낙동강을 통해서 ‘이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먹고 살기를 할 것이냐?’에 대해서 물음을 가지며, 또는 내가 하자밖에 있는 친구들과 사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나 혼자 말 하고 나 혼자 심각해지는 상황을 겪으며 나는 그들이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어떤 시민이 되려하는가? 에 대해서 답했을 때 촉매 자 즉 ‘내 생각을 또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사실을 남에게 전달 시켜 그가 하려는 것을 촉진 시켜주는 사람’이 되려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생태적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청소년 교육, 문화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의도에서 촉매자를 말했다. 물론 이런 다짐을 한 후 촉매 자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 교육과 문화 문제, 신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생태적 민주주의이고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기여이다. 그리고 촉매자가 되려하며, 또 나아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기에 사회를 보고 현실을 보며 그에 따라 내가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 교육, 문화 문제 민주주의와 생태적 민주주의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것인지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해서 생각하며 이어가갈 것이다.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극을 받아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라고 생각해 있는 그대로 가져온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주제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그와 관련된 자료들에 대해서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과 그와 관련해서 내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요하다 생각해 가지고 온 문제를 깊게 생각지 못하고 조금 생각하다가 말고 다른 문제로 옮겨가곤 헸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키워드는 많으나 어느 하나 내 이야기를 잘 못하고 남의 의견만 물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위에서는 너의 생각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코멘트가 날라 왔고 나는 그때 왜 그런지 몰랐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랬는지 알게 되면서 지금 다짐한 사회적 기여, 촉매 자, 청소년 교육과 문화 문제, 신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생태적 민주주의에 대해서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이 기간 동안만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가게 할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
내가 시를 쓰게 되었던 계기는 poetry afternoon시간을 통해서 이다. poetry afternoon시간은 시도 읽어주고 책도 읽어주고 음악 감상도 하고 여러 문학과 관련된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중 시에 이끌렸고 이 시간에 시를 한번 써보자고 하며 쓰게 되었다.
내가 처음 시 쓴 것은 신이치 선생님의 강연 ‘다시행복을 묻는 다.’를 듣고 난 뒤 였다.
거북이와 토끼
거북아~거북아~너는 그 느린 걸음으로 어디를 가니? 거북이는 말한다. 나는 저~ 넓은 바다로가. 거북이는 묻는다. 토끼야~토끼야~너는 그 빠른 걸음으로 어디를 가니? 토끼가 말한다. 나도 바다에가 신이치 선생님 강연 “다시 행복은 묻는 다‘는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그에 맞춰 빠르게 살아가는 데 그 속에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신이치 선생님은 다시 행복은 묻고 slow life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최 시인 별명을 얻다. 탄광
집 나서기 전 자식 얼굴 한 번, 아내 얼굴 한 번 다시 자식 얼굴 한 번, 아내 얼굴 한번을 본다. 그래도 아빠라고 앞에서는 무뚝뚝이 뒤돌아서는 씁쓸히 웃으며 빨갛게 변해가는 대문을 조심스레 밀며 나간다.
요즘 살이 찐 걸 까? 아니면 요즘 중력이 세진 것일까? 바닥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발을 잘 달래어 온 곳 그렇게 온 곳 기침소리, 한 숨 가득 검은 빛 가득하다.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막장에 있는 나는 체념을 한 후 검은 빛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짧고 거친 전차위에 오른다.
빛이 사라지기 전 주머니 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작은 노란 눈을 켜 검을 빛을 밝힌다.
이 시는 내가 정선에서 동원탄좌를 둘러 본 후 쓴 시이다. 내가 둘러본 동원탄좌는 그곳에 있는 나쁜 것 딱 끊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등의 문구들 탓인 지도 모르지만 어둡지만 서로 힘을 내자! 라는 느낌이 있었다. 또 막장인생을 거론하며 말하며 앞으로 살아갈 길은 있겠지 하는 문구들, 석탄 광부가 2, 3절속에 있는 가사들을 보면서 광부들의 힘든 살을 조금이 남아 생각할 수 있었다. ‘탄광 광부가 2절: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광부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 난거 먹고프냐? 아서라 말어라 광부의 아들 너희로다. 3절: 네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진 규폐 재해 없는 안전한 막장일세. 돈 벌어 사람답게 살기위한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청춘 다 갔네’ 그러면서 내가 여태껏 광부의 삶을 보아왔던 tv에서의 뮤직비디오나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등의 이미지들과 이곳에서 나에게 보여 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그렇게 이 시를 썼다.
내가 tv를 통해서 보아왔던 이미지들은 아버지가 주되어 가정폭력이 많이 이루어지지만 뒤 돌아서 탄광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의 사진을 보는 것이었고 또 이런 모습의 아버지를 나중에 돼서야 아버지의 고백으로 마음이 시리는 상황이 되고 아버지는 병으로 죽거나 탄광을 캐던 중 탄광이 무너져 죽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에게 보인 것은 하루하루 힘겹지만 가족을 위안 삼는 모습이 보였고 막장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에 대해서 나는 아버지에 주목을 했고 나에게 아버지도 내가 생각하는 탄광촌의 아버지처럼 관심 없는 척 무뚝뚝한 척 내가 잘해도 기쁘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엄마와 비슷하게 관심 있고 마음이 가고 내가 잘하면 너무 뿌듯해하고 누구보다 나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에 그 사실을 아빠와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더 아버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탄광 속에서 아버지를 그렸을 때는 자식들과 아내에게 막장까지 오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여기서 돈을 많이 벌어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힘을 쓰고 탄광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 놓여서 불안과 함께 일하고 또 점차 고된 노동과 석탄가루로 인해 피로와 석탄가루는 몸에 쌓여 몸은 무겁지만 가족을 위해서 이일을 해야 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기반으로 이 시를 지었다.
폐광 된 후 카지노와 강원 랜드가 만들어졌고 강원 랜드와 카지노는 동내에서 주 수입원이었다. 많은 외부 사람들은 카지노 때문에 정선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카지노가 있는 곳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매우 화가 나거나 답답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광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폐광이 되었어도 광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남아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카지노는 광부 마을의 정체성을 뺏어간 것이다. 또 그곳의 청소년들은 서울로 대학을 가기보다 정선에 머물러 강원 랜드와 카지노에 취직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또 주민이면 강원 랜드와 카지노에 취직할 때 플러스되는 게 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로서는 부러운 부분도 있지만 부럽지 않기도 했다. 부러운 부분은 카지노일과 강원 랜드 일을 정말로 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애들이 부러운 것이고 부럽지 않은 것은 직업 선택 폭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있는 곳에서 강원 랜드의 후원으로 예술마을을 만들겠다고 하며 예술가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때 그곳 사람들은 강원 랜드가 후원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같이 지내면서 사람들은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조금 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잘되어 마을이 카지노 마을이 아니라 예술 마을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밝혀 주었다. 여기 까지 내가 서울로 가기까지의 정선의 모습이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면서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훗날 모두들 예술이라고 하면 정선을 떠 올릴 수 있게끔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꽃필 날 오겠지’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꽃필 날 오겠지’라는 문구는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문구이다. 그래서 ‘꽃필 날 오겠지’라는 문구를 시로 써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개인연구주제에 고민하고 있을 때 히옥스가 ‘너 시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을 한 후 사이다가 너가 전에 고민하고 있었던 인재지변이라든지 음악이라든지 생각해 봤을 때 파블로 네루다 라는 시인이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지금 시를 쓰고 있어 끌리는 것도 있었지만 인재지변이나 음악에 파블로 네루다가 무엇이 관련이 있는 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네루다를 연구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 나는 시인이라는 단어에 부담스러움이 있지만 그래도 시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고 나에게는 처음으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와 비슷하게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는 듣기 좋은 별명이었고 ‘나의 시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며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 할수록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시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고정희 시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고정희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어떤 일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시를 쓴다. 그 이외에도 어느 문제에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는 있는 상황이면 기꺼이 그것을 위해 시를 쓴다. 라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러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시를 쓸 수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또 잘 쓰려고 하다 보니 내 시를 어떻게 상대방에게 잘 전달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고민들도 생기면서 시라는 것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잘 쓰기 위해 시를 썼다 지우는 것을 반복했고 더 이상 시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꽃필 날 오겠지’라는 문장으로 시를 쓴다는 것도 못썼다. 또 네루다의 자서전은 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중간 방학을 하게 되었고 쉬는 도중에도 나는 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며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거기에서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중간 방학이 끝났고 학교에 나왔을 때 최 시인 어디 갔어?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면서 그렇게 최 시인이라는 별명은 한 ‘때’가 돼버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시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졌고 사이다에게 편하게 시를 써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메솟에 도착해서 그들의 삶을 보게 되었고 여기서 시를 또 한번시를 쓰게 되었다.
세계가 너에게
네가 행복하려든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져야 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라
너에게 이익이 안 된다면 쳐다보지 마라 그게 너의 친구든 형제든 말이다 그리고 너에게는 친구란 없다. 모두 적일 뿐.
또 우정과 사랑 등에 기대지도 믿지도 말라 네가 기댈 곳은 없고 믿을 것은 네 자신이란 것을 명심하라
이상 세계가 너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이시에서는 HREIB에서 아동군인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나서 쓴 시이다. 아동군인은 버마 군 총 14만 명중 7만 명에 다다른다. 아동군인은 빠르면 5살부터 이다. 버마 군은 무작위로 아이들을 대려가 강제로 집어넣는 다. 그러면서 빠르면 5살부터 쭉 군에서 커가면서 담배, 마약, 술, 온갖 폭력, 강간, 살인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 다. 그런 영향을 받아온 아이들은 자아가 불안정하고 자신 이외는 믿지 못하고 폭력적이다. 그런 아이들이 군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도망치는 것을 봤을 때 바로 총으로 쏘거나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몰라서 길을 해매다 굶어 죽는 다. 그래도 그중 무사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HREIB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데려와서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보살펴준다. 하지만 군에서 교육 받은 아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떻게 군에서 살까? 라는 것에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신 자유 시대처럼 강자만 살아남고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잘라 보리고 우정과 사랑은 돈 앞에서 쉽게 깨지고 기댈 곳이 없거나 한 정되어 있는 것 같이 버마 아동군인도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에 충실하고 우정과 사랑은 군안에서는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고 누군가에게 편히 기대거나 믿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다시 시를 쓰고 나서 나는 왜 내가 시를 썼는가? 에 대해서 물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동군인에 대해서 시를 썼을 때 나는 최 시인이어서 시를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또 시를 써야겠다고 해서 시를 쓰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돌아와서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시를 다시 한 편 써보면서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다시 시를 쓰는 나는
나는 너에게
너의 소리를 듣고 너의 눈을 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의 몸짓을 보고 너의 표정은 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에게 절대로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의 소리를 듣고 나는 가슴이 울렸고 너의 눈, 몸짓, 표정을 보며 나는 웃고, 울고, 걱정하며 너에게 마음이 쓰이는 데 그런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돈이 많이 있었더라면 내가 너의 옆에 있었더라면 나는 너에게 웃음소리, 아무 걱정 없는 눈 신나는 몸짓, 행복한 표정을 짓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래 나는 돈이 많지 않고 너의 옆에 있어줄 수 없는 ‘나’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 해줄 수 있고 너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너 소리, 눈, 몸짓, 표정을 상자 안에 고이 넣어서 마음 속 중심 옆에 넣어 둘 것이다. 언제든 꺼내 열어 볼 수 있게 말이다. 너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시는 나를 행운아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나에게 잊지 말라고 말한 이들에게 그러나 그들의 삶을 알고 얼마나 그들이 얼마나 힘들 환경이 처해 있는 지 현장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상황들을 보면서 알아버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 이 시를 쓰고 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그들을 위해 시를 썼고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아동군인에 대해서 시를 썼을 때는 내가 공책과 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시를 그들을 위해서 시를 쓸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고정희 시인 이야기에서 기꺼이 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지금 와서 나는 ‘시’ ‘시인’이라는 단어 대해서 압도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 시인이라는 별명을 응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 크게 받아드리고 남들에게 보여 진다는 것 때문에 멋진 ‘시’를 쓰려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부담으로 받아드리게 되고 시를 쓰는 게 힘들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조원규시인의 강의에서 조원규시인이 해주셨던 말씀 중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쓰면 불안감을 가지게 되면서 자기 이야기를 잘 못하게 된다.’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꺼내면서 이해할 그때의 그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쓴다는 것에 큰 부담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은 내가 시를 쓸 수 있기에 쓰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글이 아닌 시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나는 앞으로도 시를 쓸 것이다. 그게 누구에게 보여 지든 안 보이든 말이다. 그러면서 하자에 나가서도 어떤 상황이 꼭 주어지지 않아도 이어 시를 쓰고 싶다. ![]() 미적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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