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환경 문제에 접하게 된 계기는 실상사 작은 학교 중등 과정 때였습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친환경 제품을 썼고,  우리의 오줌과 똥으로 퇴비를 만들어 밭과 논에 사용했습니다. 수확한 작물은 또 우리가 다시 먹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것을 몸에 익혔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중등시절을 보냈고 환경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환경 문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해 생각을 가지게 된 때는 하자 작업장 학교에 들어와서부터입니다. 이번 해 3월 9일 시청에서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청 광장에 모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 작업장 학교 선배들의 브라질 퍼커션 공연과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에 따라 퍼레이드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탈핵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왜 저 많은 사람들이 탈핵을 외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후쿠시마에 대해 또 에너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월 우리는 지속가능에너지아틀라스라는 주제로 영광에 갔습니다. 처음 들렸던 곳은 영광 원자력 발전소였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직원의 간단한 설명을 뒤로 홍보 영상을 봤습니다. 홍보 영상에는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정말 안전하다. 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비한 대책도 50가지나 있다고 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매우 큰 원자력 발전소를 보았고 소리도 엄청났습니다. 
그동안 탈핵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발전소 직원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도 안전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 반해 한국의 발전소는 일본의 발전소 구조와 다르고, 자연 재해에 대비한 대책도 있으므로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후에 영광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있는 영산성지고등학교의 선생님의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강조하셨던 말이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십분의 일의 사고만 나더라도 나는 이곳에서 살 수가 없다. 내가 당신들에게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에겐 이것이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난 후 처음 탈핵과 에너지 문제를 접하게 되었던 탈핵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영광을 찾았는데, 발전소 직원에게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매우 안전하다는 말을 들었고 발전소 주변에 있는 마을의 선생님은 우리에겐 이것이 생존의 문제라고 말하는 그 상황이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왔었는데, 발전소 직원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6월 처음 밀양에 내려갔습니다. 이계삼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밀양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년 동안의 이야기와 한전이 765kv 송전탑을 어디에 지으려고 하는지, 왜 765kv 송전탑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논, 밭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땅을 피해 송전탑이 마을을 지나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땅을 가진 사람은 한 순간에 재산권을 잃고 대출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이 765kv 송전탑 공사로 파헤쳐 지는 일을 보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든 일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는 묵살 되었습니다. 

하자 작업장 학교 안에서 에너지에 관련한 자료 조사를 통해, 밀양 대책 위원회 이계삼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김익중 선생님의 한국 탈핵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전력 자급률 3%의 서울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또 다른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765kv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고 있었고 밀양의 주민들은 그로 인해 다쳤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765kv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는 것은 고리 원전 1호기~4호기의 수명을 20년 연장하기 위함이라는 것 이였습니다. 고리 원전 1호기는 많은 문제가 있었고 이미 오래 된 원전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 4개의 원전은 모두 30년 이상 된 것들이였습니다. 고리 원전 1~4호기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특히 1호기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더 이상 안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밀양만의 문제가 아닌 결국은 우리 모두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밀양에 여수 마을에 농화를 갔을 때에 매일 아침 점심으로 4대의 버스로 의경들이 교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의경들은 매우 젊은 청년들이였고 매번 바쁘게 농성장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할머니께서 교대하러 마을회관 쪽으로 내려오는 의경에게 ‘욕 봤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저 의경은, 저 많은 의경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적은 수의 주민들을 막기 위해 3000명의 경찰들이 밀양에 투입되었습니다. 몇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주민들을 막고 서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까 참 많이 궁금했습니다. 
마을에서 감을 한창 수확하고 있을 때에 하루에 한 번 꼴로 자재를 나르는 헬기가 날아다녔습니다. 열심히 감을 따다가도 헬기 소리에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내가 밀양에 왔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시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여수 마을 회관에선 산 중턱에 큰 구멍이 나있는 765kv 송전탑 공사장, 농성장이 바로 보였습니다. 매우 가까웠으나 외부 세력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외부 세력이라는 말을 했을 때 밀양의 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한 순간 모두 외부 세력이 되었고 외부 세력 진입 금지인 곳에 들어가면 바로 연행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외부 세력이 되어 버렸을 때 저는 ‘우리가 밀양이다’ 이 말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자 작업장 학교에는 크리킨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라고 말하는 벌새입니다. 저는 공연 음악 팀으로 브라질 퍼커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밀양에 갈 때, 서울에서 밀양과 탈핵 행사가 있을 때에 우리는 공연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 했습니다. 공연을 하면 지친사람들과 분위기가 한 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공연 음악 팀의 이름은 슬픔을 넘어선 축제라는 뜻을 가진 ‘페스테자’입니다. 밀양에서 또 서울에서 공연을 직접 하고 나니 이 이름의 뜻이 이해가 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시작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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