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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움직이는 시인의 꿈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지금 만들어진 학교가 충분치는 않지만 나름 다닐 만 하다고 생각한다. 시즌1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세상에 퍼트리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공식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만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은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역시 10 to 10을 하며 하려던 일에 전념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작업장학교에서 “피곤”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같이 떠오르는 사람을 보기가 미안하다. “피곤”의 문제는 오히려 하나의 숙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는 피곤하지 않을 방법들을 연구하며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다. 내가 느꼈던 심리적 피곤함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나 생각하던 중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작업장학교에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일치되는 점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찾아내고 싶고 만족스러운 교차점이 나왔으면 좋겠다. 혹시 피곤하다고 느낄 때는 너무 오래 지속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피곤이라는 것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지간에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스톱 죽돌로서 작업장학교 시즌2에 다니고 있는 나를 평가하다 나는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공연팀으로서 악기를 치거나 공연 요소를 생각하는 것들을 하는데 별로 비중을 두지 못한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항상 피곤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사리고 있어서일까 체력만큼은 떨어졌던 적이 없었다. 음악으로 먹고 살려는 생각을 더 진지하게 하려면 조금 더 음악에 빠져야 할 것 같다. ‘제대로’해보기를 원한다. soulmate를 기다리는 것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논스톱 죽돌(시즌1부터 지금도 있는 사람)로서는 9월 달에 들어온 죽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발판을 만들어준 것 같다. 논스톱멤버들은 일본의 장애인극단 타이헨과 극 하나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9월이 지나고 신입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생태’,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는 것도 논스톱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들여다보게 하려고 한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신입생들에게 쥐어줬다. 9월 달에 들어온 사람들은 왜 논스톱 멤버가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생각해봐줬으면 한다. 내가 누군지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신입생들에게 너희를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작업장학교에서는 분위기는 그러기 힘들지만 아무튼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자에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자기가 이 금지되어 있는 것에 대해 뒷받침되는 의견이나 생각이 있으면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못한 것이 있다. 이것은 항상 내 평가를 할 때면 점수를 깎아 먹을 것 같다. 또 기획이나 작사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반면에 원래 하던 역할을 웬만큼 하지 못했다. 악기 연습이나 가르쳐주는 역할에서 말이다.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대부분 단시간 만에 성취를 느끼기 힘든 종목의 공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에 공부한 것에 대한 평가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느낀 것 정도는 얘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쿠로코로서의 역할은 성취를 해도 3월에 있을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고 생태나 평화문제는 너무나 어렵고 광범위하다. 그렇다고 영원히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니 할 수 있는 만큼만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공부에는 성취감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하자고 했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해야겠다고 느꼈던 것이라 성취감이 없다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은 더 분발해야겠다. 움직이는,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일 揌인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자가 뭔지 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환경이 아닌 ‘생태’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설명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생태”는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난 학기 에세이에 썼다. 환경도 생태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태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Buy Nothing Day’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BND캠페인을 벌였다는 것 자체도 생태주의자 데뷔라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캠페인을 통해서 나의 이름의 ‘揌’자가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너무 급하게 해서 퀄리티도 낮았던 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그저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BND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행진을 하며 누구라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처음 BND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고 악기를 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소리를 치거나 선언문 읽기,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던 것이라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약간 늦은 질문이지만 무엇 때문에 나는 생태계를 수호하려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지구를 ‘그냥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사키 선생님은 인간은 지구의 자식이라고 하셨다. 인간은 공기, 바다가 원천인 물을 마시고 땅에서 자란 식물, 그 식물들을 먹은 생물들을 먹으며 이 영양분들이 결국은 뼈, 피와 살이 된다고 하셨다. 부정할 수 없는 논리다. 나도 생태계에 속해 있으며 항상 보호받고 돌보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태계를 지키는 이유는 이런 논리다 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 가이아이론. 지구는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이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지키듯 지구를 사수하려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으로서,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것에 착안해서 러브록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신성하고 지성적인 즉, 능동적이고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키는 존재로 가이아를 사용했다. 평화를 쫓다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너무나 추상적으로 평화에 접근했던 우리는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적인 것을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쟁의 산물인 어린이들의 총싸움놀이, 남녀노소 다 하는 컴퓨터 전쟁게임, 그리고 날이 갈수록 ‘ㅆ’의 발음은 강해지고 이 같은 욕은 심지어 인사 대신으로도 쓰인다.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내 주위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평화는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관계 지을 것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 있으면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으니 상대를 더 수월히 알 수 있고 일방적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거리낌을 없앨 수 있다. 같은 위치에 서보려는 것,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어깨동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자.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자는 것들은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위치에 서보면 자연스레 발견되는 문제점일 것 같다.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일단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버리니 평화를 위한, 깨뜨리고 갈등을 조장할 빌미가 되는 것들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라는 화두를 걸고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와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고 싶다. 쿠로코는 쿠로코다.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을 하는 타이헨이라는 극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와 추함의 패러다임을 신체장애인의 예술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타이헨 극단이 부딪히는 상식의 세계는 무엇일까. 어째서 저런 예술관이 나온 것일까. 신체 장애인들의 연기로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있는데 아직은 질문뿐이다. 우리는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보조해야 할 것이 방대한 장애인 보조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쿠로코는 쿠로코다. 달리 뭐라 칭할 말이 없다. 우리가 보조해야 할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집중을 하면서 실행하다 보니까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 등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 정도로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타이헨 대표)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정해진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어려운 게 또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학, 습을 했던 나, 학습을 하고 싶은 나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 할 것이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다. 나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다. 나는 컴퓨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고 키도 크고 타국의 언어도 잘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어서 부정을 하기보다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학습을 통해서. 맺으며 움직이는 것은 3년 동안 했다. 이제는 움직이게 하고 싶다. 물론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을 것이다. 기획을 하고 싶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더 분발해야 한다. 혹시나 내가 녹초가 돼 본다면 나는 기획해도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녹초가 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초가 돼 보면 나의 역량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업자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노력이야 여태 해왔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는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조금 더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관리를 잘 하는데도 녹초가 돼 보고 싶다. 그리고 쌓고 싶던 경험들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기획을 하고 싶다. 시도 쓰고 노래도 부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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