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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영상글 수 646
2011/5/4/수 [시각영상팀공부모임 2]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2장 "미술과 근대적 주체" _발제 : 홍조 3장 "예술이라는 용어" _발제 : 선호 4장 "미학, 예술의 이론" _발제 : 플씨 5장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_발제 : 별 6장 "아카데미" _발제 : 공룡 [토론] 홍조 : 시작해봅시다. 어땠나요? 나는 이번 챕터들은 페이지수는 줄었는데 읽는 데 더 어려웠던 것 같다. 1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데 10번을 넘게 읽었다.발제를 할 때는, 책에 있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걸 어떻게 더 쉽게 쓸까?' 찾아봤다. 근대적 주체라는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발제문에는 더 어려운 말들만 쓴 것 같다. 찾아보니 "주체"라는 것이 중세시대 때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계급이 정해지면서) 자신에게 있는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서면서 "근대적 주체"라는 것이 발명됐다. 그러면서 편성된 것이 '백인남성주의'다. 가부장적인 사고나 그때 편성된 흐름이 그때까지 이어져왔다. 근대에 들어서면서는 그런 '백인남성주의'나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이것이 균등해질 수 없는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로 2장에서는 시대적 이야기를 하다가 '이름을 쓴다는 것의 의미'. 즉, 어떤 소유를 주장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체성이나 이름을 쓴다는 행위의 다른 문화, 주류의 문화가 아닌 소수의 문화 "그래피티" (공공적인 장소에 자신의 정체성을 서명한다)에 대해 언급되면서 2장은 마무리가 된다.
원근법에 대한 이야기도 되게 흥미로웠다. 찾아보니 '원근법의 발명'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르네상스에서 인간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예전 벽화들을 보면 원근법 무시, 실제로 우리들이 보는 거랑 굉장히 다른 이미지들이면서 '신이 있다' '신이 있다면 이런 형상일꺼야'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근법이 발명되면서는 '본다는 것,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게스 : 홍조는 원근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 같은데, 발제문을 쓰면서는 어떻게 이해가 되었나? 홍조 : 내가 어떻게 이해를 했을까? 이전의 그림을 보고, 지금의 그림을 보고, 이전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에 지침이 되거나. 원근법이 발명되기 전에 있던 사람들은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잣대를 가질 수 있었다. 신이 절대적인 존재였을 때는 보이지는 않지만 믿고, 믿게되는 것이었다. 근대에서는 '내가 보고 있는 것' 내가 본다는 것은 '전체'를 보는 것보다 제한적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었나. 온 : 난 원근법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책에서는 세계에서의 '소유'에 대해 말을 하는데, 만약 신화의 영역에서 '원근법'이 없는 것, 르네상스에서 근대로 전환하면서 원근법이 생겼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주의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홍조 : 이 책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런 자본주의의 바탕이 되는 것도 '원근법'이라고 말한다. 온 : 그게 자본주의랑 어떻게 연결이 된다는 건가? 플씨 : 책을 설명대로 한다면, 기존 원근법 전에는 사람들이 그림을 볼 때 그림이 관찰자보다 더 위에 있듯이 느꼈던 것 같은데 원근법이 생겨난 후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이 더 절대자가 된다는 건가? 온 : 나는 원근법이 '내가 주인이 되어 세상을 본다'라는 것을 알겠는데 자본주의와 왜 관련이 된건지는 모르겠다. 미난 : 쉽게 생각해보면, 르네상스의 그림은 원근법이 없는 그림이었다. 원근법이 발명되면서는 앞에 것은 크게, 뒤에 것은 작게 그리면서 착시현상을 나타낸다. 이탈리아인이 르네상스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과학적으로 체계화 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림이 과학적으로 가려는 시점에서 자본주의가 나왔다는 거 아닌가? 원근법이 옛날에 종교그림 그릴 때처럼 웅장했던 것에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홍조 : 그런 게 아닐까? 옛날에는, 아래서 사람을 보면 당연시 얼굴이 작아보인다. 그런데 교회의 그림을 보면 밑에서 보는지 위에서 보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이 '우리가 보는 것은 그렇지 않은데'하고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시선이 더 합리적인 것이고 맞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지구가 돈다' '하늘이 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계산을 하기 전에는 지구가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뭔가 변화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망구 : 자본주의하고 원근법이 '개인주의'로 바뀌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개인의 소유권이 생기는 것처럼. 히옥스 : 원근법은 일방적인 관계이다. '세계의 가장자리에 내가 있고, 내가 보기 때문에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형식의 그림이 있다. 사람의 눈이 세계를 조망하면서 비현실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원근법은 세계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눈에는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 그러니까 사람의 눈이 보이는대로 라는 것은, 사람의 눈이 그정도의 권한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사람의 시선을 믿지 않았다. 시각은 불완전한 것이니까. 그런데 근대에서는 사람의 눈과 세계의 사이보다, 눈과 눈의 사이 "주체들간에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주체들의 관계에서 동일하게 합의할 수 있는 것을 objectivity라고 한다. object는 목적, 대상, 사물을 뜻한다. 그럼 시선들이 objectivity를 결성하는 것은 '객관성 objectivity'이다. 주체들이 합의하는 내용이 objectivity다. 객관성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만들어진다. 다만, 혼자 믿어서는 안 된다. 혼자 믿으면 '상대적'이 된다. 근대적주체라는 것은 이러한 시선이 왜 믿을만한가라는 것이 설명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미난 : 그럼 많은 주체들의 객관성이 원근법이라는 건가? 히옥스 : 합의한 것이라면 그렇다. '너도 이렇게 보지? 나도 그렇게 봐'와 같이. 원근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발견'했다고 하지 않고 '발명'했다고 한다. 원근법을 통해 보는 세계는 '진짜세계'가 아니라 '객관적세계'라고 말한다. 진짜세계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옛날 그림에는 일부러 신을 사람과 다르게 그렸다. 진짜 사람의 모습처럼 그려진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린 건지 알아챌 수 있었던 그림은 못그린 그림이었다. 왜냐하면 '그린다는 것'은 본 것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니 '내가 드러나면' 안 됐다. 근대에 들어서고 시간이 경과하면서는 '저건 샤갈의 그림이군'하는 개성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근데 여러분이 토론을 할 때에는 챕터의 제목을 보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책의 흐름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왜 이 이야기 다음에는 이 얘기가 나오는지.) 미난 : 근대적주체가 뭘까? 선호 : 근대적주체란 자기 자신인 것 같다. 옛날에는 신만 바라봤는데 원근법이 발명되면서는 자기의 시선이 생긴다. 히옥스 : 보통 프랑스사람들이 콧대가 높은 이유가 있다. 근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란 사람이 근대적주체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했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실 데카르트는 '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나'라는 것인데 그것이 '나'인지 '우리'인지 '그'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한다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데카르트가 지은 [성찰]이라는 철학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세상에 있는 것이 모두 의심스러워 못살겠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데카르트는 그 당시 사람임에도 이집트 등의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 그리고 수학의 천재였고(적분을 만들었음)굉장히 몸이 약한 사람이었다. 결국 40세가 못되어 죽었다. 스웨덴에서 여왕의 일정을 따르며 부지런히 수학을 알려주다 폐렴으로 죽은 것이다. 죽기 전 그 사람이 이집트에 가서 놀랐던 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다신교를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집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떤 특성이 있고, 그것은 이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이집트의 종교다'라고 생각하게되었다. 프랑스라는 지성의 땅에서 자라나 '신'이 있다고 믿으며 자라온 데카르트에게는 이집트의 문화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의심'하게 하는 눈을 만들게 했다. '감각경험'이외의 경험을 믿을 수 있나? 1+1 = 2 라는 것을 경험해서 아나? 만약 신이 있다고 하자,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이 사악하면서 전지전능하다면, 그 능력을 모든 사람이 잠을 자거나 무의식 중에 생각하거나.. 등 모든 순간에 경험을 주입할 수도 있다. 즉, 1+1 = 2라는 것은 논리정연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데카르트는 모든게 의심스러워 믿을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다가..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존재하잖아!'라는 것을 믿게되었다. '이것은 꿈일까?' 생각하더라도 꿈꾸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심스럽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다시 생각해보면 진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논리가 나왔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의 발제는 다음 시간에 이어 이야기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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