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고 있던, '동료작업자'


페미니즘 공부모임이 있기 전 화요일 점심시간, 허브가 나를 찾는다. 유메와 함께 3층 마루에 모여 세이랜이 던져주신 질문을 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늘 줄기차게 손잡고 '우리는 동료작업자야! 동료라는 마인드를 갖자!'라고 외치던 과거가 사르르 녹아 바닥에 질퍽질퍽 끈적이는 채로 고인다. 

너희는 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거야?"


그래. 나는 이 질문의 답보다, 내가 아직까지 이 질문을 받지 못한 이유가 더 궁금하다. 나는 처음부터 '페미니즘 공부"모임"'이라는 이 스터디그룹의 이름 자체에서 질문이 참 많았다.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대체 무엇이며, 이 공부모임에서 페미니즘은 대체 무엇이며, 왜 굳이 모여서 공부하는지, 이 공부를 통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질문들 하나하나는 지금의 나로서는, 우리 집에서 하자까지 한 방에 가는 버스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처음엔 '동료작업자'니까 함께 나누고 싶은 고민을 모아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남처럼 따로따로 '나는 젠더 공부할 거야', '나는 섹슈얼리티 공부 할 거야', '나는 섹스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다 다른 고민이니 우리 흩어지자!'로 되는 건, 나는 반대다. 물론 셋 다 '성'에 관련된 것이지만, 엄연히 하나하나 큰 키워드이기 때문에 혼자 공부할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전문적인 지식을 손에 넣고, 다른 아이보다 젠더에 대해 좀 더 똑똑하고, 더 할 말 많은 고지식한 죽돌에서 그치고 싶지 않다. 그건 아니다. 하지만 어디가 아닌 거지?

처음에 내가 이 모임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각자의 고민을 할머니가 고쟁이에서 된장 꺼내듯 팍팍 꺼내는 걸 이루고 싶었다. 길찾기와 주니어가 섞여, 심지어 학기의 구분도 없이 섞여 모두 같은 주제를 갖고 공부하고 싶다는 것만큼 '시너지 효과'가 크게 일어나는 분위기가 어디 있겠는가? 사실 나는 축복받은 거다. 모두 제 의지로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임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아직도 우리가 왜 함께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5시간 내리 담임판돌과 함께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애전별친,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는 둘 다 지성만빵 프로젝트다. 각자의 화두를 사회의 흐름에서 읽어볼 수 있는 중요하고 좋은 경험이다. 하지만 오늘 길찾기가 없어서, 라는 이유보단 그냥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전에는 "밤비 어딨어?"하면 "202에 있을껄?"하고 죽돌들이 서로 다른 방으로 찾아가야 했다. 팀원끼리만 뭉쳐 다니는 경우도 잦았고, 함께 작업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프리스쿨이나 무한도전이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층에서 길찾기와 주니어가 땀 냄새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마치 내가 오늘 리빙리터러시 시간에 기후변화시대 대신 넣을 말을 "무관심의 시대"라고 한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닌가.

지금 나는 '동료작업자'라는 마인드를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페미니즘 모임도 함께 하는 의미가 서로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혹은 대중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것일 뿐인데, 지식에 목말라 의무적으로 의자만 차지하고 있던 건 아닐까... 고민에 주절주절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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