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공부모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었을까. 왜 나는 방학부터 이 모임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다가도 누가 나랑 같이할까 라는 질문에 '이런.'이라는 소리를 내며 슬퍼했는지.

모두에게 말하지 못할 어떤 이야기를 각자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두'라는 것이다. 각자와 친한 개개인에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할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이 각자마자 있는 것 같다.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한지 어느덧 2년이다. 예전에 말하고 싶어도 남의 눈치보며 말하지 못하던 허브는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말할 수 있을 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던 것이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것 같다. 아니, 연결되는 것 같다가 아니라 연결된다. 때는 길찾기, 꽃씨파티를 준비하면서 외발수레로 흙을 옮겨야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 남자죽돌과 흙을 옮기려고 삽질을 하고 외발수레를 옮기려는 중이었다.
남자죽돌-내가 할께
헙-아냐, 내가 할께
남자죽돌-아니야, 내가 남자니깐 해야지. 게다가 예전 학교에서 이런 거 해봤어.
헙-괜찮아. 내가할께
어째저째 넘어갔지만, 뭔가 개운찮다. 너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수레를 결국에는 넘겼지만, 저기에 왜 '남자니깐 해야지' 라는 것일까.

나는 어쩐지 짧은 머리라던지 여자같지 않은 목소리나 행동이나 옷차림으로 '남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애인이 없다고 하면 친구들은 자연스래 '나는 어때? 우리 사귀자, ' 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한다. 그럴때마다 '내가 남자냐'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랬을 때 '응 니가 남자짘ㅋㅋㅋㅋㅋ'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했던 내 취향들을 한 때 포기했던 순간이 있다. 보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서, 둘이 다닐 때 '연인'으로 보이기 싫어서. 그러나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채 부서졌고, 나는 차라리 즐기려고 했다. 오히려 더더더더더더 남자같이 더더더더더더!!!!!!!!!

그 후 지쳤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던 것일까.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서 집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슬픈이야긴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다.
어찌되었든 하자에 와서 기대를 했다. 여긴 성차별이 없다든지, 나를 자연스럽게 여자라고 대해준다던지. 혹은 그냥 편한 친구로 대해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런 문장을 태연자약하게 던지는 죽돌을 만나곤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 주니어가 되고 유리를 만나선 처음 읽은 텍스트가 '양성적 어린이 X이야기'였다. 남자도 여자도 딱히 말하기 어려운, 중성스러운 X이야기. 어떻게 자라고 무엇을 만나고 어떻게 대답하고에 따라 사람들은 쉽게 판단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성'이라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살 순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양호실 의사는 말하지 않는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라고. 어떤 우연으로 2차성징으로 몸이 변화하는 것조차 '아리까리'하게 변화할 수도 있다. 아마 우연의 경우가 크겠지만.

핑크하자를 하면서 나는 내심 즐거웠다. 젠더에 대해 성에 대해 모두 이런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하는구나! 나중에 우리끼리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하자 7가지 약속을 머리속에 외우고 외우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좋아하고 관심있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하자 7가지의 약속 중 차별부분에서 성이라는 것이 gender를 의미하는 줄 서밋때 알게 되었다. 모두 알고있나요? 라는 말을 하기엔 우리가 서로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너무나 간단하게 여러가지 말을 한다. 물론 하자 죽돌이든 내가 만나는 친구들이든간에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아는 게이가 있었는데 그는 어떤 여자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사실 그 여자친구는 그 남자를 좋아했었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커밍아웃'을 듣게 되었다. 그리곤 그들의 관계는 끊어졌다. 나는 정확하게 그 여자가 말한 문장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왜 일어나야 되지? 라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비단 동성애자를 가르키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에게 아주 가벼운 농담으로 던지는 (혹은 진심일 수도 있지만) 문장들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생각하지 않아보이는 모습을 접하게 될 때, 나는 항상 말하고자 하지만 항상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있고 말해도 소용없는 상황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느끼게 된 순간과 경험들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는 모르고, 누구는 알더라도 싫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 중학교 친구들이나 내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와 그 학교에 나오면 졸업장은 나오는지 대학은 어떻게 하는지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학교에서 이런 것을 이런 시간동안 공부하고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고 나는 여기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두사람이 아닌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면 대충대충 대답하는 나를 보게 된다.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각자마다 궁금한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특히나 익숙하면서 거부감이 드는 '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떤 문장을 들을 때 '이건 아니야!'라고 외칠 수 있을까, 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없다. 내 몸은 하나였고 한가지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지만 다발적인 상황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차라리 관심있는 사람이라도 모여 '같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부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남이 보고 이야기해주는 서로에게 코멘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문제나 상황을 보게 되었을 때, 괜찮다거나 혹은 아니다 라고 느낄 때,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다면 그것이 가지게 될 힘은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각자가 가진 질문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말을 얻을 수 있지만, 풀어줄 순 없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한번 대답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질문으로 바뀌어 계속해서 다가올 것이다.
아까 예를 들었던 이야기에 질문을 생각해본다.
'왜 남자니깐 그래야되?' '남자는 힘이 쎄잖아.' '왜 쎈건데? 힘을 가지도록 키워진 것이잖아.'
'그래, 키워졌어. 근데 그게 뭐 어쩌라고' '불공평해, 왜 남자는 힘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힘이 없다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키워졌고, 대부분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이게 잘못된 것이야? 너가 이상한게 아니라?' '...'
그 질문이 약간의 대화체로 이뤄졌지만, 나는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대답하지 못한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러지? 라는 생각을 해본다.

페미니즘을 왜 공부하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얘기하고 싶었다고, 대답하고 싸우고 싶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무엇에 대해 싸우고자 하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대부분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 이라고 대답하려나

다수가 되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고 싶지 않았고, 공통의 주제를 가지면서 친해지고 이야기하면서 깔깔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이미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관 다른 것이고, 그 다른 것이 다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르다는 것으로 아웃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웃당한다는 것은 바닥으로 내쳐진다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끊어질 것이고 나는 다시 안락한 어느 곳을 찾아다닐테고 계속해서 18살의 허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리기 때문에 다른게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면, 다름을 통해 더욱 다양한 것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Fun-raise, raise hell. Do it now. 지금 당장 뭘해야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기사를 더 본다든지 책을 더 본다든지 영화를 더 본다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많을 것 같지만, 왜 그런 책과 기사와 영화가 나왔느냐를 생각해보면,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도 알지 못한 부분을 남이 알수도 있다. 그런 것에 이야기하면 움찔하고 찔린 느낌이지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나 싶다.
같이 공부하는 게 그래서 좋다. 같은 것을 공부한다고 모두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고, 더 재미있거나 더 진지하거나 더 심심하거나 지루한 이야기도 나온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매주마다 일어날 때마다 커리큘럼을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라는 생각에 책 한구절이나 영화 한편만 보고 가기도 한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야지, 내 질문을 풀어야지 하는 목표도 좋다. 그러나, 그 목표가 너무 크지 않나?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은 내일 볼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더 재밌게 볼만한 기사를 찾고 내일 영화표를 예매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왜 함께 공부하는지 내가 페미니즘 공부모임에 대한 목표를 구체화 시키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냥, 차라리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