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내는 웹진에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실히 자기 진로를 찾는 청년"이 썼으면 좋겠다는 단서가 있어서

    덕분에 조한을 비롯한 여러 필진 후보에도 불구하고 청년과정 세 명이 글을 쓰는 것으로 결정되었었어요.
    어떻게 자기 진로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쓰기로.
    그런데 글을 다쓰고 그쪽으로 넘기고 나서 돌아온 답신에는 '실은 큰 제목이 <내가 살고 싶은 나라>였다고 해서 당황했답니다. 
    판돌 여럿이 원고요청 메일을 읽었는데도 그런 제목이 있었는 줄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으니 이것참.

    1-3까지는 각자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실히" 각자 어떻게 진로에 대한 생각을 해왔는지를 썼었지요.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얘기는 어젯밤에 서로 문자를 주고 받아서 보태 쓰기로 하고...

    (오늘까지 수정해서 보냈어야 했는데, 어버이날로 분주한 청년들과 대책수립이 어려워서요... 

     문자로 보내온 글을 4.와 5.에 덧붙였습니다...)


-----------------------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2013. 5. 7.

좋은 삶을 위한 세상공부 

(하자작업장학교 청년과정 재학중이며 공연음악팀 ‘페스테자’를 꾸려나가고 있는 세 청년의 길찾기 이야기)



1. 나는 농부가 되고 싶다 (장덕균, 만 21세)


나는 농부가 되고 싶다. 유복자였던 나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시골에 있는 가톨릭 생태공동체에 형과 어머니와 함께 입촌했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시골에서 보냈다. 공동체 안에 있는 동안 홈스쿨링 과정을 밟았고,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분위기에서 5년 동안 생활했다. 어른들을 도와 유기농법의 농사를 지어보았고, 농촌 마을의 공동체적인 문화를 접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생활이란, 그 당시의 나에겐 일상일 뿐이었기 때문에 공동체가 품고 있었던 철학이나 모토에 대한 고민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17살이 되면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음악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공동체를 떠나 도시로 상경하게 되었고, 하자작업장학교(이하 작업장학교)로 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비로소 생태나 평화, 그리고 함께 살기와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공부는 물론 과거 내게 일상이었던 시간들과 공동체적, 농촌의 가치들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세계가 어디가 되든 그때의 가치들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작년 3월 작업장학교를 졸업했고, 지난 해 계속했던 활동들을 토대로 지금은 작업장학교 내에서 새로 생긴 청년과정에 몸담고 있다. 작업장학교가 지닌 세 개의 키워드인 생태, 평화, 함께 살기는 내 공부의 기준점이 되었고 그로부터 시작한 공부는 지속가능하고 대안적인 삶의 방법이 되는 도시농업, 적정기술 등의 실험들로 이어졌다. 지금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있다. 


사실 졸업 무렵 어머니는 내게 대학 이야기를 꺼내셨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냐고. 사실 대학 진학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학에서의 공부가 내꿈을 더 현실화시켜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로 대학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와 일들을 꾸준하게 찾아, 그것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함께 나누면서 정말 ‘좋은 삶’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가 만들어낸 승자독식의 가치관에 따라 미래의 편안한 삶을 보장받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함께 살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이자, 배움의 터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농부의 꿈을 꾸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몸을 움직이고 두 손을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다. 도시로 오고서야 내가 많이 움직인다는 것, 여러 가지를 만지는 습관이 배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은 컴퓨터나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이 더 많지만. 모종을 만지고, 흙을 만질 때마다 과거에 느꼈던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신기하기도 즐겁기도 하다. 나처럼 도시에서 흙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몇 년의 시간을 도시에서 지내오면서 결국 몸은 석유찌꺼기로 만들어진 아스팔트 도로나 콘크리트 건물보다는 흙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부터 작업장학교에서는 ‘현미 네 홉’이라는 제목의 도시 농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고 나는 이 프로젝트의 진행자 역할을 맡고 있다. 하자센터 옥상과 마당 텃밭, 그리고 조그만 화분들을 모아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채소들을 심고, 직접 음식물 쓰레기 퇴비를 만들고, 소변거름을 주어가면서 작물을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식물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그 효과나 작용에 대해 배우면서 이를 일상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점점 더워지는 건물에 에어컨을 사용하는 대신, 옥상과 건물 주변에 식물을 심어 그늘을 만들거나, 지렁이를 키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화학비료 대신 지렁이를 길러 토양의 질을 더 좋게 만드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나면서 그것을 적용시켜보고, 실험해 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농촌에서의 농업과는 규모와 방식부터 많은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조그만 텃밭을 꾸며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경험을 하는 것은 도시 농업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내가 ‘현미 네 홉’ 수업을 준비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실험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농사를 짓고 채소를 생산하는 것도 변화의 과정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수업을 통해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도시 중심의 삶의 방식’이다. 무엇이든 돈으로 사고 소비할 수 있는 소비 무한궤도 시스템 안에서 얼마만큼 소비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끝없는 소비의 욕구와 불만족, 어쩌면 너무 풍족해져버린 우리의 생활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후쿠시마 사고를 목격하면서 에너지와 식량, 자급의 기술 등 많은 문제가 우리의 삶에 얽혀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시 농업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먹거리의 일부라도 스스로 재배하는 일은 삶의 필수조건을 조금씩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에 대한 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우린 여름을 시원하게만, 겨울을 따뜻하게만 지내려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도 전기세와 도시가스 요금을 확인해 보면서 알게 되었다. 하자센터의 요금고지서도 살펴보았고, 우리들 집의 요금도 살펴보았다. (작년부터 페스테자 멤버인 우리 세 사람은 자취방을 나와 함께 사는 공동 주거 실험도 하고 있다.) 원래 여름은 더운 계절이고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여름엔 조금 덥게, 겨울엔 조금 춥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조금 덜 소비하고 생활을 개선할 의지만 있다면 모두가 조금 나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현미 네 홉’을 진행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농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생각도 물론 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시농업이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나는 계속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감각을 열어두고 함께 할 수 있는 실험들을 찾고  있고, 삶의 보편적인 형식이 다른 차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기여하는 그런 농부가 되고 싶다. 


때가 되면 나는 농촌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 앞으로 배울 것들을 삶에 적용시키면서 마을을 꾸리고 싶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손으로 모종을 내고, 흙을 일구고, 집을 짓고,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내 개인적인 꿈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내 꿈에 동참해 줄 것이다. 비전력 발명가인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님은 ‘시간, 체력, 친구, 이 세 가지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또 함께 할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일들이 결국 내가 살아갈 세계를 더 좋게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2. 나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이재우, 만 21세)


나는 불교형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중등과정)를 졸업하고 하자작업장학교(이하 작업장학교) 고등과정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지냈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는 생태적, 공동체적 삶을 통해 자신과 주변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부를 했고, 작업장학교에 와서는 문화작업을 통한 공익활동 같은 것에 매진했다. 사실 졸업했을 때 대학진학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학에 가더라도 그간 배웠던 학습들을 밑거름으로 삼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결정의 기로에서는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학교에 간다는 것은 나에게 설레는 일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나의 형은 그런 면에서 대학을 고려하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형은 요리나 한의학을 배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또한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반면에 나는 중학선배들을 따라 다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갈라진 우리 형제의 학교생활은 정말 많이 달랐다. 형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시 예습을 했다. 성적이 낮으면 맞고, 지각해도 맞고, 딴청을 부려도 맞았다. 그러면서 게임으로 통하는 친구들만 늘어날 뿐,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눌 친구들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3년을 버틴 형에겐 생기발랄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형제가 대안중학교에서 지내며 ‘저렇게는 되지 말자’고 했던 그런 모습 그대로였다. 형이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해왔던 경험이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학교에 진학한 중학시절의 친구들이나 선배들 또한 더 이상 생태와 공동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 시간은 소중했지만 이제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나도 대학진학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무엇이 필요할지 하나하나 짚자니 끝이 없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것 같았다. 교과 공부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왔던 음악도 더 정교하게 배워야 한다. 대학생활을 떠올리니, 나는 술도 못마시는데 심지어 주량도 늘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위계질서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스펙을 쌓는 일에도 집중해야 할 것 같고…. 어쩌면 음악을 전공하자면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음악가로서는 대학을 졸업하면 곧 생계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대학교에 가는 일이 나에게 맞는 선택일까?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것이 정말 무엇일까?


잘 생각해보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접 보고 듣고 해보고 느끼는 일로 보냈다. 지리산 자락에서 농사와 생태수업을 한 일, 4대강 사업으로 무너져가는 낙동강을 따라 걸으며 캠페인을 한 일, 매년 지구의 날이나 ‘지구를 위한 한 시간(the earth hour)’을 기념한 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추모제에서 세종로길을 따라 퍼레이드를 주도한 일, 이런 일들 안에서 나는 음악 연주도 할 수 있었고, 동시에 활동가로서의 역량도 키워왔다. 나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삶을 배워왔던 것이다. 예술가, 디자이너, 음악인, 활동가들 등 관심 있는 직업인들도 많이 만났고, 프랑스인 광대들, 미국의 배우들, 일본의 장애인극단과 평화순례자, 자연농부, 비전력 발명가 등 외국사람들 또 종로의 쪽방촌 어르신들, 원전과 송전탑 문제로 투쟁하고 있는 밀양의 어르신들 등 일반 학교를 가고 대학 진학에 집중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어쩌면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그런 분들과도 만났다. 이런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협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간의 시간들을 통해 몸에 밴 생태적 감수성, 타인과 어울러 살아가는 법, 슬픔과 행복,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그런 것들이 인정되고, 나눠질 수 있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곳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더 이상 나에게 대학은 지금 당장 선택해야할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환경 캠페인이나 공익활동을 하는 동안, 저절로 마음이 쓰이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특정한 직업보다는 좀 더 넓은 꿈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가졌던 막연한 불안함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니 실은 아주 단순했다. 먹고 살기 힘들면 어떡하지? 잠은 잘 자고 다닐까? 다치지는 않을까? 불행하지 않을까? 혼자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고, 초라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피하고 싶은 모델은 많지만 되고 싶은 모델은 적어서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마음을 쓰고 있는 문제들이 역시 자신들에게도 마음이 쓰이는 문제라 말해주면서 같이 해결하고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지금은 작업장학교에서 구체적인 상상을 하고 있다. 16살에 들어와 만 21살이 되기까지, 고등 과정부터 청년과정을 보내고 있다. 일본의 발명가이신 후지무라 선생님이 제안한 ‘월 3만엔 비즈니스’나 다른 어른들이 설명하는 ‘행복’과 ‘슬로라이프’에 대한 비전을 들여다보면서 대안적인 삶에 대한 의욕도 키우고,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보는 중이다. 무엇보다 서로 돕고 자급하는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정기술을 익히고 대안에너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험하며 농사를 배우고 있다. 그렇게 배운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보통은 그 일을 할 때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물론 나도 그렇다. 10대가 끝나갈 즈음 나는 “사회가 혼란에 빠져 나의 삶을 흔들어놓을 때 무력해지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일들을 하며 살고 싶다. 마음이 쓰이는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씩씩하게 해내고 싶다. 지금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가 잘 회복되기를 바란다. 핵문제와 송전탑문제가 주민들의 삶을 흔들어 놓지 않기를 바라고, 모든 존재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기술을 나누고, 땅을 살리는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웃과 나를 살리고, 자연을 살리며 자급률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눈에 띄는 스펙도 없고, 경쟁력 있는 사람이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지키고 싶은 공간들,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울려 살고 싶다.



3. 불안 너머 자신과 세상을 돕는 공부 (박동녘, 만 20세)


지속가능성이 더욱 중요해진 요즘 시대, 특히 청년들을 관통하는 단어는 ‘불안'인 것 같다. 여러 기사나 사설은 물론, 그냥 인터넷서핑하다가도 불안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낀다. 내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면서 등록금 걱정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기 전공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몇몇은 거의 떠밀리다시피 과를 정했거나 아직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 찾았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대학도 안 갔고, 대안학교 졸업하고 난 뒤에도 뭐하는 지 잘 모를 짓(?)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어쩌면 더 불안해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중요한 것은 불안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불안 이상의 다른 더 중요한 무언가에 집중할 것인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물론 나는 후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나 나름대로 내 삶에 대해서 방향을 찾으며 노력하고 있고 하자작업장학교(이하 작업장학교) 청년과정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실험하며 모색 중이다. 


나는 귀농한 어머니를 따라 상주의 농촌에서 살았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아주 멋지게 기타를 치는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곧 ‘오, 난 음악을 해야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큼 즐거웠고 꼭 이걸 해야겠다는 뭔가를 느꼈다. 내 머릿속은 학교는 답답하고, 음악은 꼭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차있어서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으면서도 중학교까지는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는 가지 않으려 했고 그러면 나는 실용음악학원에 간다든가 해서 음악에 전념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대안학교’로 왔다. 음악을 통해서 뭔가 해보려는데 나는 세상이나 내 삶이 어떻게 되면 좋을지 알지 못하니, 막연하게나마 ‘삶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2009년에 입학해서 2012년에 졸업하게 됐다. 졸업할 때까지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한데, 나는 그것들이 그저 체험적으로 경험과 기회를 소모하는 식으로 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연속적인 경험과 생각들로 내 안에 축적되도록 나름대로 애썼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생태, 평화, 통합 등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었고, 청소년으로서, 시민으로서 또 문화작업자로서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한 헌신과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가지면 좋을 삶의 관점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의 시대와 주류의 가치관 그리고 생활 방식 등을 조금씩 들여다보니 지속가능하고 행복하기는커녕 불안해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우리 세 사람이 모인 페스테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명해보자’는 큰 이야기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삶을 유예하면서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찾고, 세상(또는 세상의 문제와 어려운 상황들)과의 연결을 찾고, 그래서 세상에 필요한 일들을 하면서 좀 더 희망적인 삶의 단위를 만들어가고자 공부를 하고 있다. 이걸 좀 더 간단하고 명료하게 자조(스스로 돕고, 自助), 공조(서로 돕고, 共助), 공조(공공을 돕는, 公助), 즉 ‘자공공’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모토를 가지고 글로비시라 불리는 영어공부와, 한평 집짓기, 도시농업, 대안에너지, 적정기술, 용접기술, 우리가 하는 일을 나누고 알리기 위한 디지털 커먼즈 그리고 음악공연 활동까지 꽤 다양한 것을 배우고, 해보고 있다. 예전엔 잠깐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나는 여기서 이대로 괜찮은가,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건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하는 공부는 누구도 해보지 않은 공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운 길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잘하진 못하지만 조금씩이라도 해나가고 있다. 


몇 년 전 작업장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솔직히 불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도 현재 하고 있는 많은 일들 가운데 음악이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기 때문인지 다른 일들에 마음을 더 내주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음악에 대한 마음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마음만큼 다른 일들에도 마음을 내려고 애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 팀은 ‘무명이면서 유명한 팀’이 되자는 얘기를 하곤 한다. 내가 지금 속해 있는 페스테자라는 팀은 우리가 어디에서 공연하며, 누구와 함께 하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시민들,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자신의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등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문제들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런 활동들을 해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디선가 우리를 불러준다. 그렇게 대단하진 않지만 누군가가 찾아주기 시작하고, 우리의 음악과 공연이 사람들 사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감사함과 좀 더 분발해서 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페스테자로서 음악을 지속한다는 것은 공연과 음악이 필요한 곳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과 더불어 살고 음악가로서도 계속 살아갈 예정이지만 돈을 벌어 먹고 사는 일까지 고민하지는 않기로 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에 최소한, 또는 필요한 돈은 벌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많은 부분을 돈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결해내는 ‘자급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예전에 상상했던 음악의 길과는 아주 많이 달라져 있다. 도시농업이니 적정기술이니 하는 일들이 큰 돈이나 안정된 직업을 가져다주는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지금 내가 하는 일, 하려고 하는 일들이 나에게 필요한 좋은 삶을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만 해도 나는 스펙이나 직업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삶의 형식을 바꿔보면서 꽤 좋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십대 후반의 공부와 경험을 통해 이 위기의 시대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세상이 변화하는 데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이런 바람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동안은 삶은 불안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불안하지 않은 삶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고 그 불안함보다 먼저 떠오르는 ‘설명 가능한 작은 이유’ 정도가 자신 안에 있으면 훨씬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4. 내가 살고 싶은 나라

장덕균
간디는 지구의 자원이란 우리 인간 모두의 요구를 충족할 만큼 충분하지만, 욕망을 채울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야속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선 타자의 희생, 고통과 불안 없이 행복을 말할 수 없게 되었고, 욕망의 크기는 엄청나게 커져만 가는 것 같다. “행복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저자인 쓰지 신이치는 성장과 풍요에 집착하는 기존의 경제학에 대해 비판한다. 기존 경제학은 얼핏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욕망의 크기만 부풀릴 뿐 채워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이 아주 다른 경제학, 말하자면 행복의 경제학으로 바뀌어야만 우리는 우리가 잊어버린 ‘원초적 행복’의 상태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한다. 쓰지 신이치에게 인간다운 삶이란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인정하며 나누고 도우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중한 관계와 삶을 위해서 우리는 시간을 듬뿍 쏟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넉넉히 쉬는 시간, 즐거운 시간, 유쾌한 시간, 포근한 시간, 마음 편한 시간, 로맨틱한 시간, 창조적인 시간, 몰입하는 시간, 마음 놓고 자는 시간, 무위의 시간, 가슴 설레는 시간, 황홀한 시간... 생산성이라든가 경제성장이라든가, GNP와 같은 말과는 무관한, 이러한 ‘시간의 소비’를 우리들 삶 속에서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만 두지 않고, 조금이라도 다른 길, 다른 방식, 공공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타자의 희생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아니라, 공유와 공감, 환대와 돌봄이 자연스러운 그런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이재우
예전에 아일랜드를 동경했던 시절이 있다. 내 상상속의 아일랜드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각자 악기를 가지고 모여 술을 기울이고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문화의 나라였다.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적 감수성을 가지고 호탕하고 유쾌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많다는 아일랜드. 문화도 환경도 멋진 곳이라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다. 나는 가까운 곳에 자연이 있고, 이웃이 있고, 별일없이 일상이 흘러가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 정도라면 나에게 적당한 환경일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내가 바라는 삶의 환경은 단순, 소박하다. 

개인적인 바람을 얘기하는 차원은 단순하지만, 현재의 삶이 그 차원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르게 말해보겠다. 나는 지구를 지키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현재의 우리의 삶의 방식은 지구를 망치고 해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농촌이든 도시든 곳곳에 녹색이 깃들어있으면 좋겠다. 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편견과 차별로 인해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 폭력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쪽방촌 따위는 사라진 나라면 좋겠다. 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떤 나라에는 세 살짜리 꼬마도 마을에서 할 일이 있다고 한다. 기술과 기계에 인간이 할 일을 모두 맡겨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직접 일구어낼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혼자 할 수도 있고, 같이 해서 더 좋은 일들 말이다. 아마도 얘기를 하자면 수도 없이 바라는 것이 많고, 그렇게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도 많다.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노래도 두 곡이나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나라는 두 곡이 모두 섞여있는 나라일 것이다. 하나는 한 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이고, 다른 하나는 존 레넌의 “이매진”이다. 살기 좋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행복의 나라로”에 가깝고, 그러기 위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모습은 “이매진”에 가깝다. 

너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고, 못 견디게 힘들 때 외로워 하지 않아도 되고, 일상을 무탈하게 보내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하루 하루 정성들여 시간을 보내는 것. 이 정도로 시작한다면 어떨까? 이 정도면 많은 문제들도 덩달아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박동녘
이 시대는 산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아닐까?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지만, 책임지는 방법은 오로지 돈을 버는 것뿐인 시대. 자신의 장례비용까지 걱정하면서 돈 없이는 죽지도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니까... 그런데 요즘의 경기침체상황이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나쁜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거의 0%에 가깝고, 일자리는 더욱더 축소되고 영세민들은 경쟁에서 밀리고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위태위태하며 청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니 청년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회문제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중요한 건 우리가 먹고살면서 삶을 즐기고, 놀고,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선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텐데, 그러자면 지금처럼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공유와 돌봄의 관계를 통해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자급할 수 있는 사회로 되면 좋겠다. 작은 마을들이 많이 생겨나고 끈끈해져서 관계를 통한 즐거운 일이 일어나거나 도시에서도 농사를 짓고 먹고 쓰는 것, 그런 식으로 순환체계에 대한 실험들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어느 정도이든 자급력을 키울 수 있는 공부를 하게 되면 좋겠다. 삶을 몽땅 돈으로 바꾸지 않고도, 스스로 자급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이 도시와 나라를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노동(일)과 자신의 삶 사이에 돈이 끼어들지 않아도 그 사이의 공간을 사람과 도시, 자연과의 연결로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나라에 나는 살고 싶다. 그러면 사람들은 오로지 혼자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삶이란 것이 누군가 혼자의 힘으로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5. 맺으며,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십대 후반을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금융위기라든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이라든가 하는 얘기들이 많이 들렸다. 사실 그런 얘기들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입학당시를 떠올리면 신종플루 때문에 일반학교들이 휴업사태를 빚었던 것, 또 그 겨울이 되자 구제역 때문에 가축들이 몰살 당했던 그런 기억들이 난다. 아픈 친구를 돌보고 문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환자를 격리하고 혼자 둘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야자’(야간자율학습)는 꿋꿋이 계속되어야 하며, 공장처럼 가축을 대량사육하다가 문제가 생기자 ‘살처분’ 외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대량학살을 무감각하게 묵인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시대였다. 그때 우리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생명’에 대해서 얘기하며 외로움과 희망없음을 느꼈고, 교실 문앞에 며칠 동안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며 꽃을 올려두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졌다. 

브라질 퍼커션 그룹인 우리 공연팀의 이름, ‘페스테자’는 브라질 말로 페스테조(festejo, 축제)와 트리스테자(tristeza, 슬픔)를 합쳐 만든 말이다. 우리가 처음 배웠고 지금까지도 가장 즐겨 부르는 브라질 노래가 ‘트리스테자’라는 제목인 것도 인연이 되긴 했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 시대는 끊임 없는 슬픔과 재난의 시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페스테자라는 이름을 만들면서 우리는 우리의 음악이 슬픔을 위로하는 힘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어느샌가 신종플루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살처분된 동물들은 외면당했고, 후쿠시마 사고가 있었던 것을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연속된 재난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무섭고 괜찮치가 않다. 그리고 세상의 망각과 무감각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무섭고 괜찮치가 않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선 그런 때 무슨 느낌인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느낌 속에서 아프고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외로와서 손잡고, 슬프고 무서워서 보듬어주고, 아플 땐 서로 돌봐주는 관계를 열망해야 한다. 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