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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정장진의 Tour & Culture)한 시인의 죽음 -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부쳐 입력 : 2009.03.10 16:27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국화빵 팔러 나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저녁 노을이 그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다. 한 고위 성직자가 죽음에 앞서 남긴 이 짧은 한 구절의 말 속에는 야릇한 애잔함과 진한 그리움이 들어있다. 빈한했던 지난 세월의 무게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거추장스러웠을 수도 있는 무거운 성직자의 옷을 내려놓게 한 죽음 앞에서 다시 어머니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한 어린 소년의 낮은 울부짖음도 들린다. 말들이 서로의 어울림을 통해 일상의 사나움을 벗어나 여러 사물들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울림이 나오며 이 울림을 우린 흔히 시라고 부른다. 한용운, 서정주의 시를 떠올려 보자. 불경도 그렇고 한시도 그러하며 성경의 빼어난 글들도 그렇다.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의 인파가 명동 성당을 찾았다.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인근 편의점에서는 휴지가 동이 났다고 한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 가족도 아닌데 울어버린 것이다. 아니 모두들 그렇게 울고 싶었던 것이다.
이 긴 행렬을 이룬 사람들과 추모 행렬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TV를 통해서나마 추모를 한 수많은 사람들이 추기경의 죽음을 보면서, 진정으로 슬퍼하며 마음 속 깊이 깨달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에 계신 천주님이었을까? 아니면 언제라도 위협받을 수 있는 민주화를 지켜주실 사회의 큰 어른이 사라지셔서? 아니다. 우리 모두는 추기경이 다시 한 소년이 되어 “국화빵 팔러 나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저녁 노을이 그립다”고 소리 죽여 읊은 이 한 편의 시를 찾고 있었고, 그 시를 다시 만난 것이다. 이 시는 어쩌면 나이 90 가까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침대 머리맡에 곰 인형을 놓을 수 있었던 추기경만이 쓸 수 있는 시였는지도 모른다. 죽은 시인의 사회 플라톤은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하자고 했다. 하나의 언어가 오직 하나의 사물만을 지칭하는 세계가 이상이라고 보았고 여러 의미를 지향하는 시는 혼란스러우니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로고스의 세계로 지칭되는 이 이상의 세계는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요가 시작되면 시인은 설 자리를 잃는다. 시인이 설 자리를 잃은 사회를 정치 용어를 빌리면 독재 체제라고 부른다. 정치적 독재, 경제적 독재, 사회적 독재 등 독재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더 쉬운 말로 하면 차별이다. 빈부 차별, 학벌 차별, 남녀 차별…… 추기경만이 아니라 인간은 모두 시인들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시인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김춘수의 시다. 언어는 이렇게 새로운 세상의 탄생을 도우며 말로써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를 배울수록 사물을 분류하고 범주를 만들며 급기야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전형적인 예가 법률 체계다. 법은 사라지고 시스템만 남는다. 정밀하기로는 종교도 법에 못지 않다. 급기야 하나님은 사라지고 기독교만 남거나 부처님은 온데간데 없고 불교만 남는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정치는 사라지고 정권이나 파당만 남거나 경제는 없어지고 재벌과 돈만 남기도 한다. 시인의 언어는 이 구분과 세세한 범주들이 도를 넘었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먼저, 본능적으로, 총알을 맞는 이들이 그들이다. 한두 마디의 말로 삶 전체를 아우르는 시인의 언어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처음 언어를 배우던 신비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꽃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죽음을 앞둔 추기경의 눈 앞에 떠오른 저녁 노을은 어머니의 색깔이다. 이것은 거의 동물적인 감각이 떠올리는 색이다. 그러므로 추기경은 자신의 어머니만 그리워한 것이 아니다. 모든 소년의 가슴 속에 드리워져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한 것이며, 이제 한 마리 어린 짐승으로 돌아가 늙은 육체의 숨길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를 찾은 것이다. 추기경은 시인이 되어 고해성사를 하신 것이다. 아직도 어머니가 그립다고. 이 그리움은 성모로 표현될 수도 있고, 언어 이전의 초월적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그리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가 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털어놓았다. 이 한 편의 시로 쓰여진 고해는 그가 남기고 간 각막처럼 빛이 되어 각박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운 겨울 명동을 찾았던 우리 모두는 시인의 시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카롭게 날 선 파편과 조각들을 모두 아우르는 저녁 노을 빛에 물든 언어인 시를. 따라서 추기경의 시는 시인이 죽은, 시 없는 사회에 대한 경고였다고 볼 수도 있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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