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고 조금 뒤로 젖힌 뒤 다시 바라보면, 이번에 오신 시인들은
사회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계신 한분의 시민들이십니다.
저희는 그런 시민분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시인'이라 부르고 초대를 했었습니다.
의외로 자신에게 부여된 칭호에 머쓱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저는 국민으로써의 목표는 '먹고 살 만큼 열심히 살기'였습니다. 다짐했을 시기의 마음은 느긋했었지만
오늘날에는 먹고 살려면 웬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굉장히 지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저 어릴때는 일손부족이 일반적인 추세였을 때였죠. 저는 그래서 어떤 기업에라도 들어가서
[지금 세상이 필요해 하는 부분을 내가 참여해서 그 부분을 채워야겠다]라는 야심찬 장래가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일을 해야할 손들이 소외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부족한 일손에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러고보니 어렸을 적부터 시민으로써의 자세를 갖추는 경험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필요해 하는 사람이 되자!] 이러한 당찬 기세는 요즘 시대가 더욱 반기는 자세가 아닐까요?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설정된 틀에서 '그냥' 살아간다면 저는 감각이 사라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됩니다
국민은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민은 사회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지요.
그러면 저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수천만명 중 한 사람의 시민이 되는 것이 저에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민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번 학기에 여섯 분의 시인들을 뵈면서
조금은 시인의 상相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이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것을 쥐고 다르게 사회에 참여합니다.
 강의로, 언어로, 검색으로, 예술로, 의료로, 운동으로 말이죠.
이렇게 매체는 확연히 다르지만, 주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혹은 크고 작은 사회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 해야 할 행동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 같은 시민+바라기에 위로를 건넵니다.

" 아직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셨죠? 그러시니 불안한겁니다. 한번 해 보세요! 그것이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요. 
세상에 성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랬다면 오늘날의 시대가 도래했을까요? "

이 말은 翅人민욱이 해주셨습니다. 민욱은 예술가이면서 시민입니다.
예술 속에 자신의 시민정체성을 부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예술 혹은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저는 뮤지션을 지향하는 시민입니다. 저의 시민바라기 위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서 공연하고 누구를 위해서 공연하고/연주하며 그들에게 음악으로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할지
그것은 저의 몫입니다. 더 나아가서 제가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그때의 무대는 더 넓어질테지요.

하지만 단지 음악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들여다보고 읽어가면서 살아야겠습니다. 視人 김승범, 정혜진 제너럴닥터는
그들은 의사일 뿐만이 아니라 한 밴드의 파트를 맡으면서 카페의 주인장이면서 동네의 의사들이지요.
저들은 다양한 자리, 위치, 매체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럼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쥘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가 쥐고 있는 것들이 상대방과의 연결고리가 된다면 좋겠지요.
저는 요 근 3개월동안 너무 많은것을 알아버린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환경들에 가려져있던 많은 일들이
시야가 갑작스럽게 넓어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한 현실속에 살아가고 있는것을 알았어요. 
주변에선 어떤일이 일어나는지를 눈치를 챈 지금 시점으로부터는 감각을 보다 더 열어야겠습니다.

저는 지금 하자작업장학교에 있는 음악/공연팀의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 팀의 이름은 Festeza라고 합니다. Festeza는 포르투갈어로 Festijo(축제) + Tristeza(슬픔) 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그 뜻의 의미는 슬픔으로 가득찬 축제가 아니라 [그 슬픔을 넘어서 위로를 건네며 축제를 여는 시민들]을 지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슬픔을 같이 알고 그것을 공감하며 Festeza만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시민적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나눔의 칭호로 오신 
施人 권혁일 이사님에게 감사해야 하는 부분은 그분이 하자작업장학교에 [나눔의 선구자]로 오신 부분입니다. 
개개인마다 나눔을 받은 것이  다르겠지만 제가 느낀 나눔은 [나눔]이라는 단어를 나눠주셨습니다.
무엇을 나눠야 할지, 어떻게 나눠야할지 다시한번 상기시켜주신것도 저에겐 나눔입니다.

그 슬픔은 지금 개인이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요.
時人 홍성태 선생님은 이런 기후변화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희에게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지
두시간에는 다 꺼내지 못할 얘기들을 해주셨습니다. 저에겐 그것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강한 펀치였지요
사회학 교수님으로써 + 시민으로써 이제는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움직이여야할지 자극하셨습니다.
시인분들께서는 공통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알려주시는게 아니라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는 개인(시민)의 역할이 아닐까요?

저는 Band  music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한가지 문장을 인용하자면 The beatles가 말하길
" 밴드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 "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밴드가 아니여도 어떤 공동체나 팀이 될 수도 있죠.
저도 누군가를 같이 행동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市人하승창께서는 시민운동대회도 열고
시민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저도 제 주변을 시민으로 되게끔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승창 선생님이 바라는 '시민마을'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 했던 만남과 경험으로 저도 시민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저로 인해서 다른 한 사람에 변화를 이룰 것 이라고  생각됩니다.

詩人 조원규 선생님께서는 서로를 비추는 등대가 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밝힌다는 말씀을 해주셨지요.
더 말할 것 없이 소중한 말입니다. 서로를 알아가고 나누는 것 말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柴人을 맡을 은 누가 맡을까요?
[柴] : (덩굴지거나 줄기가 가냘픈 식물을 버티느라고 곁들여 꽂아 두는 꼬챙이) 의 역할을 맡는 다는 것은
협소한 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줄기와 가냘플 식물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누가 이 단어를 쓰는 저희에게 누가 무어라 할까요?
柴人은 한명을 지칭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도 가능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사람들을 柴人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민이 맞지만 어떤 시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바라기 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 나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 라고 고민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고민은 이번 학기에 시작하여 어느 덧 3개월이 흐르고 여섯 분의 시민을 만나뵈었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 나는 커서 ~한 사람이 될꺼야! " 라고들 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민을 보았고, 어떻게 되었을 것 인지 조금씩 감이 올 때가 아닐까요?
다음에 우리는 시민에 이야기를 꺼낼 때는 시민에 대한 그림은 조금씩 형상이 드러나있어야겠지요.

내일은 시민을 향해서 한 걸음씩 떼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서 한결같이 바라봅니다. 하지만 양분을 주지 않으면 고개를 숙이지요.
저도 시민을 바라면서 지속적인 생각과 행동을 가져야겠습니다. 저를 확실하게 '시민'이라고 말할 때 까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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