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듣는 사람 柴인"

정선에 가기 전 나는 시민문화워크숍을 들으면서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이 어떻게 실현 될 수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이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너무 큰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겐 곧 내가 지향하는 작업자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바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추상적인 감정들만 표출해 내는 예술가/작업자가 되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해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나만의 세계'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만의 세계를 넘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되는 지점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 입장에서 본 것들을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그것이 어떤 메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까지를 말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정선 탐사를 하면서 들었던 날것의 생각들, 날것의 기록들을 나만의 세계에서 끌어내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것에 집중한 나의 근거를 따져보는 것과, 내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판단하여 전달할 수 있는 메세지로 가공하는 것이다.

1. 기록

우리는 柴(섶, 땔감)으로서 고한, 사북을 방문했다. 그 마을의 주민도 아닌, 마을의 예술가도 아닌, 관광객도 아닌, 아예 보이지 않는 invisible과 확실한 존재가 있는 visible의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할 때는 柴의 장점이 있다. 말하는 입장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자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그렇게 柴으로서, 각자 다른 매체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

나에게 그 매체는 영상이었다. 영상은 사진과는 다르게 움직임, 살아 움직이는 시간을 담아낼 수 있다. 나는 내 매체의 이런 특성을 살려서 기록을 해보고자 했지만, 사북을 중심으로 탐사를 했던 나는 움직임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2004년에 폐광이 된 이래로 좀처럼 사람이 드나들지 않게 된 동원탄좌는 2004년에 머무른 달력처럼, 과거의 시간을 축적하고만 있지 더 이상 그곳에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다. 동원탄좌에서 20분만 올라가면 카지노가 있었고 그곳은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가동하는 그야말로 불철주야로 사람들이 북적되는 곳이었다. 또한 동원탄좌에서 20분 정도 내려가면 사북 시장이 있었는데 그곳 또한 관광지로서의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사북을 이루는 주요 장소들을 관찰해보니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동원탄좌와 경석산이 간직한 과거의 시간과는 다른, 새로운 카지노를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배경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곳에 현존하는 버려진 공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분명히 지금도 존재하지만 마을 안에서는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기억과 흔적들이 柴로 간 우리에겐 뚜렷하게 보였던 것 같다.
어떤 공간에 대해 말할 때, 그 안에서만 있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지우려고 하지만 외부에서 온 내겐 그 흔적들이 의미가 있었다.

2009년에,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를 생각하던 나에게 '광부의 삶'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삶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굉장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졌던 광부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론 고한과 사북의 현재 모습, '먹고 살기 위해 바쁘기 때문에 과거, 문화, 예술과 같은 것에 가치를 둘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카메라를 든, 영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자)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 마을의 예술가들

우리가 고한, 사북에 초대되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지금 그곳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感+動 예술마을 고한 사북'이라는 타이틀로 활동 중인 예술가들은 기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는 다른 모습의 공공미술을 제안하고 있었다. 간판을 새로 만든다거나, 벽화를 그린다거나 하는 예술가들이 지역에 와서 표현만하고 가는 것이 아닌, 이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고민을 나누고, 정말 이 지역에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함께 얘기하고 만들어가는 것. 작업 자체를 함께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일시적으로 예술가가 왔다만 가는 것이 아니라 10년을 잡고 '예술가와 예술이 있는 마을'을 기획한 것이다.

우리가 만난 고한 사북의 예술가들은 그곳에 '현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한쪽에 버려져있던 탄광의 흔적들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지역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었다. 예술가들이 집중하고 있는 현재란,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읽어낸 것이었다. 마을을 지속시키기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들여와야 하고, 그 새로운 것으로 인해 버려지는 것들이 또 생긴다. 고한 사북의 예술가들은, 이런 순환을 반복하지 않고 이 마을에 고유한 것으로 남을 수 있는, 지속적인 것의 하나로 예술마을을 제안하고 있었다.

3. 섶 柴

고한 사북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마을을 탐사하면서, 柴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柴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하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 같기 때문이다. 고한 사북의 예술가들이 작가 레지던시를 강조하는 것도, 예술가가 마을의 한 부분이 되어야 정말 그 마을에 필요한 것을 볼 수 있고, 마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 commit하지 않은 채 柴으로만 산다면 내 작업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柴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진 않을 거다. 무엇을 말하거나, 하기 이전에 '들고', '봐야'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나는 어느 때 보다 많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았던 것 같다. 정선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마을을 기록하고 관찰하면서,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6명의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만남들을 통해 나는 '현재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사는 현재는 너무나 복합적이어서 한 가지만을 보는 게 아니라 과거나 미래와 같은 연쇄적인 고리를 같이 읽어내야 한다고 알았다. 또한 그 현재는 내가 사는 공간의 현재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 범위가 내 '방'에서 조금씩 넓혀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반응'을 해줘야 되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가지게 된 큰 질문은 '지금 현재 우리가 함께 무엇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이다. 고한 사북에서 예술가들이 마을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싶다는 지점이기도 하며 나에겐 지금 내가 있는 곳, 작업장학교에서 적용 되는 질문이다. 다음 학기에는 작업장학교의 시즌 1을 정리하는 작업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번 학기의 주제곡 같이 된 것이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stone이 아니라 rolling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활동가는 녹슬지 않는다." 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반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