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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글이 너무 깁니다. 그리고 아직 제목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쓰고 싶은 거 다 쓰느라 5페이지나 써버렸는데, 겹치는 거나 묶어도 좋을 것, 문장을 쓸데없이 반복해서 쓴 것 추려서 3페이지~3페이지 반까지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멋진 제목도 붙일 계획입니다.
정선+학기 중간 정리 에세이 질문: ~로서 ~하며 살고 싶다. - 제 3자가 되기 위해 정선에 가기 전부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어왔다. 하자에 다닌 2년의 시간 속에서 내 삶의 목표는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소신껏 잘 먹고 잘 사는 거였다.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목표가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의 사회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구걸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빵 한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다. 88만원세대라는 이름 아래 월세 방 전전하며 굶어죽지는 않을 정도로 삶을 살 수는 있으나, 꿈이 없는, 희망이 없는 청(소)년이라는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 때문에 내 주변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져가게 되었고, 페미니즘과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며 날카로운 시야와 관점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없거나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나를 발견하곤 큰 딜레마에 빠졌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건, 어떤 책을 읽건 나는 나를 중심으로 정보들을 재해석했다. 그래야 이해가 쉬웠고, 그래야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나는 늘 주체이길 원했고, 내가 주체가 아닌 경우는 내가 부족한 게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나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하는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정선은 서울도 아니고, 청소년만을 만나러가는 것도 아니고, 탄광에 대해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지금 당장 연결시킬 수 있던 건 save my city 프로젝트 때의 생각과,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내가 가져간 고민은 ‘누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크고 어려운 질문이었다. 고작 일주일 가서 답을 얻을 수 있을만한 고민이 아니었다. 때문에 범위를 축소해야 했고, 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적어도 비중을 좀 더 줄이는 노력을 해야 했다. 때맞춰 웹진이 생각났다. 하자와 하자 밖을 연결해주는 제 2의 문 역할을 했던 웹진 하자로는 내가 이야기전달자로서 주체이자 제 3자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훈련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마을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에, 어쩌면 마을 안에서 소통이 부족한 게 원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잦아지기 때문에, 마을 또한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제 3자인 TAZ들의 생각과 작업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주체인 마을이 직접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했으면 하는 아주 큰 포부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모아 쏘아주는 역할을 하고, 이야기들을 웹진 안에서 재배치하는 작업을 통해 나 개인의 생각도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정선에 가보니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했고, 죽돌들의 고민이 너무 컸고, 기사로 쓰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데일리’를 빼고 정선 후 작업으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개인 작업에 대한 구상을 다시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찾은 것은 손바닥만 한 거울이었다. - 무엇을 통하여 세계를 구할 것인가? 동원탄좌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탈의실에 있는 거울이었다. 큰 거울도 있었지만, 떼가 끼고 몹시 지저분해 얼굴이 조각나 보이는 작은 거울이 계속해서 나를 질문하게 했다. 나를 마주보라, 자신을 인정하라!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힘들다. 때로는 나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나 스스로를 무척 사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혐오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오는 이 괴리감에 나는 가끔 거울을 보는 게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1시간 30분이 지나면 확 달라져있는 내 얼굴이, 집에 있을 때와 사람을 만날 때 달라지는 내 행동이 나에게서 모순을 느끼게 한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 매우 민감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편이다. 그런데 종종 내가 혐오하는 모습을 내게서 발견하면 나를 무척 미워하게 된다.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공존한다. 하지만 광부의 작은 거울은 하루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탄좌에 와 광부 복으로 갈아입고 얼굴을 한 번 확인하고 일을 시작한다. 석탄을 캐고 폭파를 하며 생계를 위해 일한다. 값진 땀을 흘리고 샤워실로 돌아와 탈의하고 몸에 묻은 석탄 떼를 씻어낸다. 말끔해진 얼굴로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간다. 늦은 시간 혹은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활짝 웃어준다. 자신을 마주보는 일이 매우 간단하고, (긍정적인 뜻으로)쉽다. 나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내 얼굴을 확인하고, 학교에 가서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고, 얘기를 하고 양치할 때 얼굴을 보고, 중간 중간 얼굴을 본다. 하지만 집에 갈 때는 딱히 ‘누구를 위해’ 거울을 보진 않는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피곤함에 짓눌려 씻고 바로 잔다. 그게 하루 일과다. 나는 나와 광부의 일상을 계속해서 비교했다. 무엇을 위해 살며, 누구를 위해 살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고, 결혼은 꿈도 꾸지 않고(진짜 싫다), 아이도 없었으면 좋겠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 또한 내 고민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그에 맞는 해답을 제시하고 싶다. 그리고 그 해답을 향해 뛰고 싶다. 반면에 광부는 오직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자식과 아내를 위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질문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걸 정도로 헌신한 적이 있던가? 내가 나 자신을 버거워하기 때문에 거울을 보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도피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헌신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이 맞을까? 나와 광부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에서 나온 해답의 포인트가 다르다. 광부는 아내와 자식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한 것이 곧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시인의 말 중에, ‘나의 내면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무척 공감하지만, 내가 공감하는 건 ‘나를 구해야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는 참 이기적이다. 물론 광부들이 마냥 착하고 선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광부를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고, 거울 하나로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3.3항쟁에서 엿본 광부들의 투쟁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마을을 위한 용감한 행동이었다. 이 용감함에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다. 물론, 나와 광부가 살고 있는 시대가 다르고, 불만에 대한 투쟁 또한 그 방법이 달라야 한다. 하지만 3.3항쟁 속 그의 마음가짐은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나만 삶을 살 수 없고, 모두 함께 살아가며, 공존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내 주변에 대해 피해의식만 갖고선 살 수 없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처럼 샘물만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공예술, 어떤 영향을 주었나? 그러므로 한 평생 10대로서의 감수성을 놓지 않고, 작업자로서 살고 싶은 지금의 나는 공공성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다. 한 시대를 휩쓴 거장들의 그림은 귀족들의 사주로 만들어졌고, 지금 통용되는 예술 분야만 해도 배우는 것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돈과 예술은 어쩌면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소시민들에게 예술은 먼 나라의 고고하고 우아한 이야기로밖에 들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 미술에 공공이 붙었다. 공공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Art in Village 팀은 사북․고한에 직접 들어가 마을을 속에서 예술을 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질문은, 흔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전시는 대부분 작가 고유의 생각이나 느낌을 담은 것이었다. 여행을 가서 본 것을 그리거나, 주변에 있는 사람, 자화상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림 외에 행위예술 또한 본인의 철학을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자 했다. Art in Village는 내가 여태까지 봐온, ‘자신의 느낌’이 아닌 마을 자체가 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히 검은산 프로젝트의 윤주경 작가는 자신의 호흡 그대로 경석산을 뛰어 모든 사람과 호흡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주체는 그대로 호흡에 살린 상태로 공감을 얻었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작업은 자위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 타인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한 점도 없이 오로지 본인의 생각만을 전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공감의 여지가 없으며, 무엇보다 무슨 생각인지,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나의 견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은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공공예술이라는 말 자체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정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술을 보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정선에서 본 공공예술들은 사실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많았다. 작품 해석을 봐도 그렇게 깊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하나의 작품으로 어떻게 그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예술은 어려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찍고 싶고, 때로는 칼럼을 쓰고 싶고 다큐도 찍고 싶다. 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매체작업을 하고 싶다. 물론 위험부담이 크고, 장치하나 잘못 달아두면 그것이 큰 폭풍우가 되어 돌아오지만 그래도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갖고 있고, 꿈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정선에서 공공예술 작품들을 보며 마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 것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노력 자체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그 때 당시의 모습에선 그다지 크게 박수를 칠 수 없었다. 기획자 토크 때 마을 주민 분이 ‘실질적인 것’을 물었는데, 나도 그것을 묻고 싶었다. 지금 당장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 급한 건 나의 판단이었다. 카지노는 이미 들어섰고, 정부는 믿음직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책 자체에 대한 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건 낙동강에서도 이미 겪어본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예술은 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기획자의 생각이었을까? 하긴, 급변하는 사회에서 경제는 빠르게 발전했으나 실제로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천천히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반성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면 사북․고한은 카지노와 공존하는 예술마을로서 대한민국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인지 궁금해졌다. 혹 나도 도울만한 게 있을지도 궁금했다. 비록 타자화를 경계하다가 너무 지나치게 동일시되려고 하는 실수를 해서 광부에 대한 생각과 고민만 하였지만, 적어도 나는 작가들의 노력과 작업에서 천천히, 주체를 잃지 않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뿜어내는, 희망을 보았다. 아직 공공예술에서도 ‘공공’을 찾는 건 힘들었지만, 이런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step up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대중매체가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4개월 정리 *스튜디오 워크숍 나는 늘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는, 습작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애길 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워크숍을 통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성보씨 워크숍에선 시나리오를 썼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거였는데, 지금까지의 습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쓰는 거라 매번 해왔던 거기도 하고, 나에겐 가장 쉬웠다. 시나리오는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겪은 웃음은 나오는데 웃지는 못할 사연을 썼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한 씬을 촬영할 기회까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습작이라고 해도 나는 좀 불안했다. 정말 제대로 된 영화를 찍고 싶었고 그 때까지 써오던 시나리오도 있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꼈다. 나는 매순간 심각한 사람이고 싶었나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찍었는데, 찍는 순간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산이 내 시나리오를 보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 어때?’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민규는 돈 많고 못생긴 남자였고, 가영은 돈 많은 사람에게는 끌리는 평범한 여자였다. 솔직히 돈 많은 사람에게 안 끌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얘기하니 막막했다. 왠지 정말 자본주의와 관련된 전개로 가야할 것만 같았다. 시나리오의 마지막에는 남녀 따로 떨어져 서로를 욕하는 걸로 끝나는데, 나는 연애나 돈에 대해 얘기하기 보다는 사람의 양면성, 모순됨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의식중에 내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나? 이후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인간의 양면성보다는 가영과 민규의 관계에 집중하여 작업을 했다. 사실 그 때 게으르게 학교를 다녀서 작업도 게으른 게 티 날 정도로 만족스럽지 않게 나왔다. 그 때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할 찬스였는데 말이다.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운 걸로 끝나긴 싫다. 내년 1월에 페미니즘 연구 다음 계획으로 말했던 10대 소녀 영화를 찍어 나를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쓴 시나리오를 토대로 완전히 의도한 씬과 컷을 배치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연구주제+페미니즘 죽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가 있다. 일전에 작당 MT에 갔을 때 리사가 발표를 했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함께 해야 하는 거라고. 머리고 공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말했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했고, 나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머리를 쓰지는 않고 있었다. 공부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물 또한 설명할 수 없는, ‘턱턱’ 막히는 지점이 많았다.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공부 없는 작업 또한 자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교과서로 이번학기 정희진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내가 이토록 정치에 갈망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정치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나와 정치는 굉장히 동떨어진, 386세대와 남자들만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가장 뿌리 깊게 박힌 성차별이었다.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을 주제로 써진 책은,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읽는 내내 내가 해왔던 말이 반복되긴 하였으나, 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콕콕 집어주는 저자의 문장력에 감탄하기도 했고, 참고 도서목록을 보고 ‘내가 저기 있는 책을 다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한 페이지 남짓 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 이게 바로 공부구나, 내가 해왔던 건 공부가 아니라 그냥 사색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페미니즘 접한 뒤 가장 어려웠던 건 성차별을 한 사람에게 ‘이건 이렇기 때문에 당신이 나에게 성차별을 하였어요’라고 설명하는 거였다. 설득력이 없었다. 내 말의 시작은 ‘잘 모르겠으나’였고, 상대방은 그 말로 하여금 내가 잘 모른다는 걸 간파하고 핵심을 콕콕 찔러 나를 후벼팠다. 나도, 상대방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부터 꺼내고 불평만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상대의 폭력은 의도되지 않은 폭력이었고, 나도 의도되지 않은 채 피해를 입어왔다. 때로는 그게 폭력이 아니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내가 가장 싫었던 건 가사노동이었다. 하루 6~7시간 자는 것도 힘든데 빨래, 설거지, 밥, 청소를 다 해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괜히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가 있는데, 하며 비교를 했다(엄마를 찾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그래서 아침을 굶으면 혼났고, 그렇다고 먹으면 학교에 늦으니 이도저도 안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6시 30분에 일어나기엔 내가 알람이 들리지 않는 보수적인 귀를 갖고 있었다. 대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지를 고민하던 찰나 책에선 아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 부분에 큰 공감을 갖고, 바로 현실에 대입하고 싶었다. 그것은 첫 번째 괴리의 시작이었다. 공부한 것을 현실에 옮기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지 몰랐다. 나는 설득력을 가지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현실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가지 원인에서 파생되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벽을 넘은 것도 힘들었는데, 가사노동의 벽은 ‘넘사벽’이었다. 그래서 시선을 하자로 돌렸다. 적어도 하자 죽돌들은 페미니즘이 시작되는 아주 기본적인 ‘가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고, 하자에서 꾸준히 고민해온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야기는 나름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으나, 문제는 또다시 현실이었다. 나는 아직 현실의 넘사벽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잡은 주제는 현재의 소녀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로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영화를 보는 일이다. 오래된 영화보다는 최근에 나온 영화들을 토대로 분석하여 영화가 한국의 소녀들에게 끼친 영향을 조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자료를 기초하여 ‘완전히 의도된’ 10대 여성 영화를 찍고 싶다.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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