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 Village’ 사북 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

 

 

우리는 ‘柴‘ 를 마음에 담고 고한, 사북에 갔고, 그 곳에서 ‘柴인‘ 으로서 본 것과 느낀 것이 분명히 있다. 그 느낀 것을 말하고 싶고, 이제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꼭 말을 하지 않아도 잘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하나 더,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이번 학기 들어서 말하고 싶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부분에서 볼 때 정선에 다녀온 것은 그 동안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조금이나마 말로 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정선에 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제들을 고한, 사북에 가서 풀겠다는 생각보다는 그곳을 잘 보고 오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진 아뜰리에 같이 작가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보다는 개인 탐사 시간에 좀 더 집중해서 둘러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잊혀져가는 시간들을 봤다.

그것들을 봤다, 그래서, 본 것에서만 그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을 것인가.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보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우리가 STUDIO 프로젝트 때 항상 하던, 매일매일 뭔가를 진행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시도하고 싶었다.

  늘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고 그 때마다 걸음이 멈춰진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도 정선에 가서 생활을 하면서 더욱 크게 느꼈는데 아마도 하자 밖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건 처음이라 신경을 더 써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저 문제를 내 손에 닿지 않게 옆으로 치워버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려 하고 문제를 문제에서만 끝내고 싶지는 않다, 는 것 또한 정선에 있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번 학기를 준비하면서 지난 학기들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것’ 들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기 초, 성보씨와 했던 STUDIO 프로젝트에서 시나리오 쓰는 연습을 하면서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선에 가서도 이 주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정선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주제와 마주쳤다. ‘사라짐’ 이었다.

그곳에서는 동원탄좌와 경석산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나는 동원탄좌의 시간이 멈춘 것 같다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오히려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흐른다고 생각했다.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동원탄좌와 그들에 대한 기억, 공간, 움직임. 나는 그것에 굉장한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무수히 많은 표현방식 중에서 내가 왜, 하필 카메라를 잡고 움직이는 것을 찍겠다고 하는 걸까, 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나에게 영상을 찍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표현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일 뿐, 아직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엔 이도저도 아닌 방식으로 기록을 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늘 하고 어떤 감수성을 가져야 하나, 얘기하곤 했다. 감수성이 있어도 그것이 작업물에서 표현되지 않으면 결국엔 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작업으로 할 때, 결과물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쏟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했는지 그대로 드러나고 단순히 펜을 들고, 카메라를 잡는다고 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는 감수성을 얘기하는 동시에 어떤 눈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고 호기심을 갖느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다. 길찾기 때부터 시대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을 기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건만 정선에서 머무르면서, 그리고 다녀와서 다른 일들을 하면서 ‘읽는 눈’ 에 대한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지금 나에게 그 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어쩌면 당연하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림이나 사진, 영화 같은 것들은 내 생각을 표현해내기 위한 선택할 수 있는 ‘도구‘ 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때로는 내 ’몸‘ 이 어떤 것들을 표현하는 ’도구‘ 로서 사용되기도 한다는 걸 윤주경 작가의 ’검은 산‘을 보면서 느꼈다. 윤주경 작가는 검은 빛이 대부분인 그 산을 오를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오르고 나니 뭐가 보였을까, 정말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새까말까 궁금했다. 그래서 나도 디지털카메라를 동영상 기능에 맞춰놓고 살짝 뛰어봤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아래에서는 그렇게 커보였던 동원탄좌가 경석산에 비하면 정말 터무니없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동안 쉼 없이 굴을 파고 석탄을 채취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어느 새 동원탄좌보다 더 커져서 가만히 동원탄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탄을 캐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경석산은 보기에도 이상했지만 직접 올라갔을 때는 더 이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딱딱해 보이기만 하던 산은 생각보다 까맣지도, 딱딱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무들까지 자라고 있었다. 4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맞은 편 산만큼이나 커다랬던 경석산을 보면서 놀랐고, 40년 동안 쉼 없이 어두컴컴한 탄광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온 몸에 검댕을 묻히며 말 그대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했음에 감사했을 광부들이 생각났다.

  고한, 사북에 머무르면서 꼬박 이틀을 살펴봤던 동원탄좌에는 당시 광부들이 썼던 물건과 그들이 지내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쓰던 물건들은 물론 바닥이나 벽, 샤워실 까지도 석탄 가루로 새카맣게 뒤덮여 있었다. 그 안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들인 과거와 지금 우리가 내뿜는 현재의 공기가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간에게서 등 돌려진 채로 동그마니 남겨진 동원탄좌와 경석산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탄광에는 더 이상 광부들이 보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석산도 쌓여가기를 멈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탄광을 내려다보는 높이에 세워진 뾰족한 카지노와 호텔, 콘도들과 전에는 보기 드물었을 마을에 줄줄이 들어선 전당포들이었다. 광부들이 매일 아침 걸어서 탄광으로 향했을 그 길에는 마을과 카지노, 호텔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다니고 이제는 그 길을 걷는 사람보다 쌩 하고 지나치는 차가 더 많다. 그곳 사람들에게 경석산과 동원탄좌는 지우고 싶은 과거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광부들의 피땀이 만들어낸 곳이고 하루하루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그 곳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을 머무르다 왔다. 그래서 감히 그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함부로 들어설 수 없었고, 어려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머무른 시간으로만 가늠할 수 없는 질문들도 안고 왔다.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지금 당장 대답 할 수 있는 질문들은 결코 아니다.


 고한, 사북에 있으면서 ‘앞산전’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더랬다. 다큐에 나온 이진경 작가는 전시에 필요할 카탈로그를 만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던 곳도 불에 홀라당 타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불에 타고 남은 잔재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했다. 그걸 보면서 그 작가가 멋있고, 꿋꿋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처절하다고 느낀 것이 더 컸다. 다큐가 끝나고 정현 씨가 하신 말씀도 지금 이 작가는 굉장히 처절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이 작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도 처절하고 힘들다고, 작가로 사는 게 결코 멋지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순간 겁이 났다. 그리고 작업자가 되면 스스로 결정과 판단,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히옥스의 말씀과 함께 내가 작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부터 그렇다면 과연 내가 생각했던 작업자는 무엇일까, 내가 작업자로써 할 수 있는 말을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될지, 까지 모두 해야 되는 생각이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하게 될 생각이었지만 막상 다가오니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진경 작가는 ‘일‘과 ’작업‘을 확실하게 구분지어 놓았다. ’일‘을 하는 동안은 힘들고 지쳤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은 굉장히 활기차고 즐거워보였고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마을’작업(자)‘ 의 관계에 대해서 나름의 정의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 어떻다, 라고 대답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이 되는가, 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일이고 ‘마을’ 작업(자)‘ 에 대한 것도 앞으로 쭉 해나가야 할 고민이고 질문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에 대한 것만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고한, 사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과 보는 시선 또한 굉장히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풀숲 같은 ‘柴인‘ 으로서 볼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었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기록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市, 詩, 時, 施 ,視, 翅, 여섯 명의 시인들을 만났고, 지금 우리는 ‘柴인‘ 이라는 걸 달고 있지만 앞으로 수많은 시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 또한 어떤 시인이 될지 모른다. 나는 우리가 정말 시인이 되기를 바라고 어떤 시인이 돼서 어떤 ’詩‘ 를 만들어 낼지 설레고, 궁금하다. 우리가 서로에게 궁금함과 그 것들을 차근차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