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 가기 전, 나는‘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물음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에 있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었고, 보는 시야는 내가 경험한 것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사실 정선에서는 ‘본 다’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곳의 풍경, 탄광의 흔적들은 지금까지 내 눈에 익지 않았던 낯선 풍경이었으며,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찾느라 바빴고, 그것을 카메라로 찍기에 바빴다. 그리고 내가 본 것들의 이유를 ‘이끌림’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끌림’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조금 조심스럽다. 단순히 ‘이끌려서 보았다’라는 설명은 나에게 턱없이 부족한 설명이다. 정선에는 나를 이끌리게 하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끌림이 어디서 오는지, 그것에 왜 내가 이끌리게 되었는지를 추적해야했다. ‘이끌려서’라는 이유는 나에게 그 자체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뭉뚱그려진 생각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정선에서 내가 보고 사진으로 찍은 것 역시 사진을 찍은 대상에 대한 의도와 대상과 나의 관계, 의도하고 싶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함보다 단순히 찍고 싶은 것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왜’찍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해보지 않은 채로. 내 표현은 단순히 감상적으로 머물 때가 많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정리를 하지 않고는 다음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거꾸로 추적하고, 고민하고, 다시 인식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보는 것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만 멈추지 않고 ‘내가 보는 것’에서의 의미를 찾아야한다.
  이제 나는 무엇을 봐야할 지, 어떻게 바라봐야할 지 고민이 된다. ‘어떻게 봐야하는가’의 문제는 내가 나의 생각에 확신이 들게끔 보고, 듣는 연습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나는 시대 속에서 나의 생각을 진전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따지고 보면 ‘무엇을 볼 지’보다 ‘어떻게 봐야하는가’가 더 중요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보고, 또 무엇에 중점을 두면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낯선 곳에 발을 들일 때, 나의 입장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정선에서 나의 입장은 이방인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원탄좌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멈춘 듯한 시간과, 동시에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나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다양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이 함부로 말하는 듯 해 어렵기도 했다. 내가 정선에 머물었던 시간은 고작 6-7일 이었으며, 그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었다. 사실 내가 정선에서 더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본 것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질문으로 던져보면서 다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이 고민의 지점들을 지속적으로 다른 고민과 맞물려 이어나가고, 내가 보는 것에, 듣는 것에 질문을 해가며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추적해야한다. 
  정선프로젝트를 하기 전 고민했던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지금까지 나의 모습에 빗대어 ‘본 다’는 것의 구체적인 원인, 의미, 또 ‘내가’ 무언가를 ‘본 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조금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나의 시각’을 갖기 위해 내가 경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 생각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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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는 모두가 함께 6-7일을 보냈다. 학교에서의 일상과 다르게 느껴진 것은 ‘6박7일’ 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3개월의 중간 지점에서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단순히 정선프로젝트를 하고, 하루하루 본 것만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중간 지점을 정선에서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되돌아보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정선에서 나의 생각은 일상과 동 떨어진 생각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안고 있던 고민들을 정선에 역시 안고 갔다. 그 고민 중 하나는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 나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대개 말을 안 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나의 말은 평소보다 더 적어진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나의 그 모습을 ‘성격’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하는 말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함께 있을 때 의사표현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상태, 생각을 인지하기 위한 방법이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의사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의사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생각은 생각대로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행동으로는 전혀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내가 이런 상태다’하는 표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말을 하지 않는 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니 나에게는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를 알리고, 설명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나’를 알릴 필요를 느끼고 있고, 내 상황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 연습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리고 구지 '말'이 아니어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알리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통해서, 나는 ‘관계’에 대해 더 말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 속에 내가 있지 않으면 그 관계를 나의 관계로 가져올 수 없다. 
함께 무언가를 할 때는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생각에만 머물러 있는 것 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덧붙이고 생각을 정리해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날 수 있다. 코멘트나 질문 역시 서로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의 질문을 만들어갈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있나 생각해보고, 고민을 혼자의 고민, 머릿속에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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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행을 마친 뒤 정선에서 찍어온 사진과 생각한 것, 메모한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모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라지는 것'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은 이번 학기 동안 연구하고자 했던 주제였고, 정선에서도 그 주제를 기반으로 정선 곳곳을 둘러보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광범위할 수도 있는 주제다. 현재만을 담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라진 것’과 ‘사라질 것’ ‘사라지는 것’ 같이 말을 조금만 바꿔도 비슷하지만 다른 관점이 될 수 있다. 정선은 이 세 가지 관점과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곳에 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정선에 대한 사전 공부는 역사와 현재의 배경, 상황에 대한 공부였고 실제로 가서 보게 된 것은 과거,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정선에서의 과거는 내가 직접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니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하여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흔적’은 나와 그곳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현재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일 때는 조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고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이 그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선에 남아있는 탄광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들 틈에 끼어 어느 정도 기억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곳에 발을 들일 때 조금 조심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내가 보는 것에 단순히 ‘감상’만을 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것이었다.
보는 것은 시대와 연결되어있고, 그 시대를 파악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 하나의 과제(?)처럼 다가온다. 시대를 읽고,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고, 아무리 이 세상에서 나를 빼놓고 싶다고 해도 나는 세상에, 시대 속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이 문장은 개인 주제연구를 하면서 찾은 문장이다.
나의 기억은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기억이다. 나의 과거는 기억으로써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한다. 나에게 과거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을 분리시키고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 내가 주제연구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시대는 매일같이 변하고,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속에서는 사라지는 것들이 많으며, 사라지는 것은 ‘사라짐’으로 인해 기억되지 않는다. 또 '사라져가는 과정'이 아닌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억’이라는 것을 중요한 키워드로 잡게 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해도 과거가 없는 시대는 있을 수 없다. 시대를 바라볼 때는 그 시대의 배경에 대해 알고 있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정선에서 느낀 시간, 내가 주제연구로 가져간 시간과 기억에 대해서 맞물린 점을 찾아 어떻게 이어나갈 지,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봐야한다. 정리 작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매번 어려움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 덧붙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해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시민문화워크숍과 정선에서 몇 분의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신에게 있는 무언가를 꺼내놓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공간을 재구성했다. 또 자신이 꺼내놓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으며 일종의 매개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사회의 흐름에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예술이라는 것을 자신의 도구로 삼으며 무언가 계속해서 끄집어내려는 욕구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만나 뵈었던 예술가분들과 '예술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분들은 철저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거리들이 생겼다. 단순히 작업을 하는 사람을 작업자라 할 수 있을까? 작업으로써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가 작업자가 된다는 것은 뭔가? 작업자는 무엇인가? ...작업자에 대해서 나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한다. 하지만 작업과 더불어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이며, 해야 하며, 어떤 시선을 던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역시 구체적으로 내 생각을 발굴해내보고, 또 다시 질문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질문과 고민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 내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정선프로젝트라는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생각을 갖게된 것처럼 경험을 통해 내 시각을 만들어가고, 내 시각에 대해 고민해보고, 그 시선을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던질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시간과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