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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그 날 밀양에서 올라오셨던 이강물선생님이 낙동강314에 보내신 글. 부산에서 올라오셨던 희망촛불선생님들도 페스테자의 공연이 무척 인상적인 듯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으나, 하자공작소 페스티자/ 하자작업장/ 하자작업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 이름을 부르는... "하자작업장학교"라는 이름은 확실히 대중적이지 못한 것 같지요. 강은 흘러야 한다. -낙동강 도보순례, 상주보 건설현장을 보고 와서
12월 12일, 상주 경천교에서 상주보 건설현장을 거쳐 죽암리 강창교까지 도보순례단과 함께 걸었다. 끝없는 모랫벌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강을 따라 걸었다. 강물과 모랫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걸었다.
물은 흐른다. 흐른다는 건 생명의 이치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은 가만 있질 않고 변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흘러가면서 생명이 된다. 흐른다는 건 맑아지는 것이다. 바위 틈을 지나고 자갈밭을 지나고, 달뿌리풀을 지나고 왕모래를 지나는 동안 흐르는 물은 더러운 것들을 걸러내어 맑아진다. 흐른다는 건 만나는 것이다. 도랑과 도랑이 만나고, 개울과 개울이, 시내와 시내가 만나고, 큰 강과 작은 강이 만난다. 그래서 흐른다는 건 함께하는 것이다. 도랑과 개울과 시내와 작은 강과 큰 강이 함께한다. 거기에는 크고 작은 구분이 없고 도랑과 시내도 따로 없다. 그래서 흐른다는 건 같이 가는 것이고, 어울리는 것이다. 흐른다는 건 고집 부리지 않는 것이다. 순리대로 가면서 섞일 줄 아는 것이다. 자기만 옳다고 억지스레 거슬러 오르거나 멈추지 않는다. 흐른다는 건 자연스런 것이고 이치대로 가는 것이다.
온나라가 공사 중이다. 경천교를 사이에 두고 사벌면 쪽에는 자전거박물관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 건너 중동면 쪽은 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낸다고 산자락을 깎아내고 있다. 공사 중인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었다. 자전거 도로에도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생활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자전거를 타고 장 보러가고, 자전거를 타고 이웃에 간다. 환경오염도 막고, 에너지 낭비도 막고, 건강도 지키는 자전거 타기 말이다. 이런 걸 생활 자전거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전거 도로가 잘 마련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관광 자전거, 여행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고 관광지를 돌고,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고, 자전거를 타고 구경을 다닌다. 우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쓰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구경 오는 이들을 위해서 볼거리 많은 곳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강을 따라 만들고 있는 이 길은 여행을 위한 자전거 도로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강이 죽어간다고 마음 아파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강은 결딴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밀양만해도 그렇다. 시내 중심을 휘돌아나가는 밀양강 강바닥을 파내서 고르게 만들고 두 곳에 수중보를 세웠다. 물을 가두어 두고 휴일에는 오리배를 타고 보트를 타며 논다. 농민들이 농사짓던 강변 둔치 너른 땅에는 꽃밭이 만들어지고, 운동기구를 놓은 체육공원이 들어섰다. 보에다 물을 가득 채워 가두고는 멋지다고들 감탄을 한다. 강을 생명으로 보지 않아서이다. 강을 놀이기구 수준의 관광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산 사하구 하단에 가면 을숙도 생각이 난다.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을숙도. 하늘을 나는 철새들과 바람에 간들대는 갈대숲을 떠올리게 하던 을숙도는 지금은 없다. 낙동강하굿둑 공사로 강이 막힌 뒤로 철새 대신 하늘엔 공항으로 내려앉는 항공기, 흐르던 강물이 멈춰선 곳엔 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청룡사 고개 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주 낙동강은 절경이다. 도남서원 앞에서 휘어져 흐르는 낙동강은 하얗게 펼쳐진 모래 보자기를 적시는 감로수 같다. 이 전망대 아래서 휘어져 내려간 강은 고개 아래에서 멈춘다. 길이 막힌다. 벌써 강의 삼분의 이 넘게 막아 버렸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고개를 내려오니 기계 소리만 왕왕댄다. 상주보 건설 현장이다. 쉼 없이 모래를 끌어다 강을 막는 불도저, 모래를 퍼담는 포크레인, 먼지를 날리며 모래를 나르는 덤프트럭. 사람은 보이질 않고 기계들만의 세상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강변은 어디 가고 공사장 한가운데 굉음 속에 던져진다.
물이 막힌다. 막히는 건 죽는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아래쪽에서 속에서부터 썩어서 죽어갈 것이다. 막히는 것은 말 그대로 단절이다. 아래와 위가 통하지 않고 이쪽과 저쪽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막는 것은 아집이다. 누구와도 통하려 하지 않고 혼자 부리는 고집이다. 막히는 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건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그 위험을 향해, 죽음을 향해서 요란스레 달려가는 현장이 눈앞에 있다. 상주보 건설 현장.
둑 너머 논에는 ‘하천부지내 경작금지’ 펼침막과 붉은 깃발만 펄럭이고, 죽암리 강창교에 이르니 강창나루터 표지석 옆에 공사 현장사무소가 있다. ‘녹색뉴딜’, ‘4대강 살리기’에 눈이 가자 열이 오른다. 생명의 상징인 녹색과 뉴딜 정책의 결합부터 폭력이다. 뉴딜 정책에 대해 아주 상식적인 이해만 가지고 있어도 4대강 개발과 뉴딜의 연결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알 것이다. 게다가 강을 죽이는 일에 ‘살리기’를 붙여 놓은 데 이르면 언어 폭력의 극치이다.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면서 언어 폭력으로 죽음을 위장하는 이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강창교 아래 강변 자갈밭에서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의 즉석 공연이 열렸다. 각각 다른 여섯 개의 드럼이 내는 음이 심장을 쿵쿵 두드렸다. 피의 흐름이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젊음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이들이 공연이 없었더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내 우울했을 것이다. 강은 흘러야 한다. 쉬지 않고 흘러야 한다. 흐름이 막히는 순간, 강이 아니다. 아, 낙동강! / 이강물(20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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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자체로도 아주 아름답고 깨끗할 걸이라 상상이 간다.
상상만 하기는 싫고 보고 싶다. 하지만 볼 수 있을까요?
흐르는 것은 생명의 이치라고 하는데, 천상 낙화유수를 보면 얼마나 감동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