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이 착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거센 여론에 부딪혀서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진행된다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리고나서 올 해 안에 꼭 낙동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런 필연으로 걷기 운동에 참여해서 낙동강으로 갔다 왔다.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분들과 합류해서 걷기를 시작했는데 낙동강 걷기라더니 구부정한 산길을 힘들게 올라갔다. 사실 난 산길을 그리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 차이는 바로, 그것이 콘크리트 위였다는 것과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콘크리트로 잘 닦여진 길은 4대강 사업의 일환인 레저시설을 이루고 있는 자전거도로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거나 허벅지 근육이 머리 굵기만 한 사람 혹은 최고급 테크놀러지로 만든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40도에 이르는 시멘트 언덕길을 좋다고 올라가겠어? 이건 필시 최고급 테크놀러지로 만든 (+ 그래서 엄청 비싼)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 사업 자체가 강과 자연을 소모해서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심산이다. 10조 단위로 넘어가는 예산은 누구한테서 나오는 돈인가? 록펠러 쯤 되는 사람들 100명이 모아서 후원해주나? 오히려 개미라고 불리는 국민들의 혈세라고 불리는 돈이다. 강 주변의 땅은 모조리 투기꾼들에게 쥐어져 있고, 대통령께서 현○건설 출신이시라 그런지 토목건축회사들의 배를 불룩하게 채워주는 것을 '살리기'라는 그대로 속이 보이는 거짓부렁을 빌미로 강을 태우며 빼돌리는 것이다. (알면서 당한다는 게 그저 허탈할 뿐....)
분명 이 대통령은 취임 전 후보 시절부터 대운하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747, 3천을 미끼로 무조건 경제발전, 개발 논리에 휩싸인 지지자들을 낚아 생태를 불태우고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작업의 방패로 삼고 있다.
황량한 토지를 헤집는 중장비들 속에서 고용창출효과로 나와서 일을 하고 있을 사람들은 전혀 모습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고, 나는 그저 약간 높은 언덕 위에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빠르게 가야 하고, 앞으로 가야 하나? 쓰지 선생님은 슬로우 라이프를 이야기 하시며 신자유주의가 부추기는, 이제는 미덕이 되어버린 욕망이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며 우리는 그것에 휘둘려 불행해진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언제가 다른 국가에 GDP가 뒤쳐졌다며 어서 발전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나무를 뿌리 뽑고, 바다를 메워 회색지대를 늘려가며 언제나 돈을 더 가져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는가? 우리는 오히려 나무에 의존하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무를 끌어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사가 빤히 진행되고 허울좋은 조감도가 번들번들 마른 햇빛에 빛나고 있을 동안, 나는 바라볼 뿐인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가 계속해서 The World want a Real Deal 을 외치고 TckTckTck의 영상과 350의 사진을 찍어 세계인들과 공유하고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응원을 한다고 하지만, 막상 앞에서 일어나는 공사판은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날 어떤 분께서 눈 돌렸다가 다시 보면 계속해서 변해갈 낙동강을 우리 세대가 기록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찌나 가슴아프게 들리던지 모른다.
나는 이번 낙동강 걷기를 다녀오고 생각한 것들을 노래로 지었다. 그것은 추모의 의미이고, 잘되면 개선되기를, 멈추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보았던 것인데, 느꼈던 감정이 슬펐던 탓인지, 그다지 밝지는 못하게 쓰여졌다. 오히려 담담하다랄까.

그래도 역시 바로 눈 앞에서 지키고 싶은 것을 잃어가면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멈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슬픈 일임과 동시에 웃으면서 즐겁게 너머의 상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슬픈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네거티브에만 빠져 있지 않고 웃음을 띌 수 있게 만드는 판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시니컬하지 않은, 다만 뼈있는 농담을 던져야 한다.
그저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웃음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딛기 위한 힘을 싣는 웃음을- 이것은 원동력을 붇돋을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