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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창의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까? 하자작업장학교 김희옥 국내 스마트폰의 가입자가 2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100만 명 돌파라는 소식을 접한 지 3개월만의 일이다. 매일 2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있다고 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는 이미 인터넷 자체’라는 말도 들린다. 이런 현상들은 청소년 문화와 학습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창의성의 학습 혹은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적절한 내용을 가질 수 있을까? 얼른 웹2.0에 알맞는 학습콘텐츠나 e-러닝의 교구들을 만들려고 서두르고 있지는 않은지? 98년 인터넷의 국내 도입 시기에 우리는 얼마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던가? 그때 나는 영국과 스위스에서 온 몇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관록 있는 영국 교사는 나에게 저소득층 교육소외 상태의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미디어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다며, 이미 진행 중인 휴대폰 벨소리와 음악을 이용한 창업실험을 해낸 학생들 이야기를 해줬다. 그 교사의 얼굴은 정말 희망적이었다. 스위스에 정착한 한국인 저널리스트는 나에게 그 청소년들은 결국 창의적인 상류계급의 하청일이나 하게 될지 모른다며 겁을 줬다. 그 청소년들이 기계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그 시간에, 창의계급이 될 상류계급의 아이들은 컴퓨터를 멀리하고, 고전을 읽으며 자연 속에서 순수예술을 향유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될 때 즈음엔,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기기들이 시행착오를 다 겪은 후일 것이며, 연필이나 종이처럼, 전혀 과장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도구들로 정착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일•놀이•자율의 청소년 문화작업장”. 이것은 지난 십 년간,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문구였다. 문화의 세기, 밀레니엄을 앞둔 그해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올해 2010년 10월 청소년직업체험센터는 청소년창의센터로 공식명칭이 바뀌게 된다. 어느 쪽이든 별칭은 계속해서 <하자센터>(‘하자’는 설립당시 청소년들과 문화작업자들이 의논해서 만든 별칭이다. 영어로는 “let's do it”으로, 한글로는 ‘하고 싶은 일 하자’, ‘준비된 사람 하자’,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 ‘하하하 웃으면서 하자’ 등을 의미한다고 설명된다.)로 불릴 모양이다. 그리고 지난 십 년간, “문화”의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면서 그 의미를 천착해왔던 하자센터는 벌써 삼 년째 “창의성”에 대한 다층적 실험으로 씨름 중이다. 하자센터는 언제나 시대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해왔고, 읽은 것을 더 적극적으로 실험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의 건강과 활력,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했다. 그 사회와 사회구성원의 핵심에는 청소년, 청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발제를 통해 지난 십 년 동안 하자에서 마주쳤던 청소년들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을 나누고자 한다. 다시 역사를 재구성해보자면, IMF경제위기(1997년)와 더불어 인터넷(1998년)이 한국에 상륙했다. 경제위기를 넘어설 대안으로,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재편되었고, 공교롭게도 그때 즈음 PC방과 찜질방,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사실 90년대에 들어서 올림픽(1988년) 이후의 경제적 호황과 ‘문민정부’로 불렸던,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개방된 김영삼 정권은, 한국 사회를 이전사회와 현격하게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확산되었고, 문화산업의 영향력이 강조되기 시작한 때다. 그러나 IMF가 주도한 구조조정은 국내산업의 자생력을 급습했고 국내경제는 말할 수 없이 위축되어버렸다. 세계에 유래 없는 “금모으기 운동”이 대단한 기세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금융자본주의가 안착되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고,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는 이미 우리 의식 안에 자리 잡힌 뒤였다. 여러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한 가지 사실은 개인, 개성, 취향의 차원이 사회의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1999년 하자센터가 설립되었을 때 당시의 청소년들은 기존의 권위와 권력으로부터 단절과 전복에 익숙한 386세대를 이모, 삼촌, 언니, 형으로 두었고, “이제 그만 됐어”(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래한 <교실이데아> 中. 1994년 3집 “발해를 꿈꾸며”에 수록된 곡. )를 부르짖는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같은 사람들도 이미 등장해 있었다. 국내경기가 그렇게 침체되지만 않았으면 이 청소년들은 선배들의 노력을 잘 넘겨받아 새로운 세대(당시에는 X세대라고 불리기도 했다.)로서의 잠재력을 실현해내는 주체가 되었을까? IMF위기가 조금만 늦게 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해보기도 한다. 솔직히 (많은 사람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하자센터에 와있던 청소년들은 그다지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 배경을 가지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은 그때 즈음 ‘조기유학’을 시작했고, 하자센터와 같은 공공시설을 다니지는 않는다. 어쩌면 하자센터의 청소년들은 내가 2000년에 만났던 영국인 교사의 학생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스위스 저널리스트의 경고를 다시 떠올려보면, 그 말대로 이미 많은 시행착오가 지나갔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기계는 더 복잡해졌지만, 사용자들에게는 엄청나게 단순한 도구로 변모해있다. 소위 ‘뒷단’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래밍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해도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사용자들에게 드디어 연필이나 종이와 같은 도구가 된 것일까 아니면 사용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꼭두각시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일까. 그런 식으로 질문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까? 하자센터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처음부터 기능적(functional) 측면과 내용적(substantial) 측면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제했다. 물론 당시(2000년)로서는 이메일 하나 쓰는 것도 어려웠고, 게시판에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배우고, 워드프로세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하나하나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역방향의 인문학적 훈련이라는 강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디지털 미디어들은 ‘가공’과 ‘유통’에 훨씬 더 장점을 가진 도구들이지만, 하자센터에서 디지털 미디어들은 ‘생산’의 도구로 추켜세워졌다. (훈고적 해석에 매달리는 인문학과 대조적이라는 의미로) 표현과 소통에 집중하는 인문학의 도구여야 했고, 청소년들은 ‘프로슈머’(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말. 생비자로 번역.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1980)에서 처음 사용하였다.)라는 단어를 배웠다. 세계적인 인터넷 이벤트였던 인터넷 피에스타(internet fiesta)나 하자센터가 직접 주최했던 디지털 스토리텔링 페스티벌(dStory festival)은 프로슈머로서 청소년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발휘하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당시에는 하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copy left를 써야하냐는 토론이 있었고, 지금은 cc(creative commons)와 공정이용(fair use)으로 더 세분화된 토론을 이어간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시장 이상의 장소로 활용하면서 그곳에서 놀고 배우려면 훨씬 더 많은 재료들이 필요했고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copy right를 붙여 현금가치를 매겨 팔아버리기에는 자원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창의적 인재가 나타날 저변을 넓히고, 창의적 활동을 위한 공유재를 축적하는 일은 확실히 ‘돈을 버는 일’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창의적인 일을 돈으로 전환하는 두 번째 일은 두 번째 사람이 하게 된다.(youtube에서는 작년 사스콰치 축제의 댄싱맨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이와 관련된 논쟁(두 번째 사람의 창의성)이 이뤄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하자센터에서 인문학이 거론될 때마다,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이 청소년들의 활동은 IMF구조조정으로 인한 불행한 결말을 고쳐 쓰려고 전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의 재산을 늘리는 데만 혈안이 된 채 승자독식형 무한경쟁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이제 이 발제의 제목으로 올려둔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창의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까? 사실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창의성을 발견해내고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지금 필요한 대답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개인의 남다른 재능으로만 설명될 수도 없고,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내는 시녀’(서울청소년창의 프리서밋(2008년)에서 서동진교수 발제 “창의성, 뭥미;;?” 中.)로서만 전락하게 두어서도 안 된다. 창의성이 의미 있게 발휘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불행한 결말을 바꿔내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사회적 환경의 연장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디지털 리터러시는 매체 학습뿐 아니라, 인문적 성찰의 훈련과 동반되어야 한다. 둘째로 창의성은 개인의 머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창의성은 개인의 번뜩이는 영감과 같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영감이나 재능에 근거에 이뤄낸 사회적, 개인적 자원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전 사회를 위해 사용된 적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창의성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공감의 마음과 소통의 능력과 함께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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