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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작업장글 수 85
이사도라 덩컨의 무용에세이 – 이사도라 덩컨 미국을 표현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발레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 해도 저 자유의 여신이 발레를 추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도 어째서 미국은 발레를 받아 들여야 하는가? P. 15 “당신들의 혼으로 음악을 들어봐요. 자아,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당신들의 내부 깊은 데서 내적자아의 각성을 느끼지 않아요? – 이 자아의 힘으로 당신들의 머리가 쳐들어지고 팔이 높이 치켜 올려지고 빛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가는 거예요” 이 각성이야 말로 춤에의 첫걸음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P. 19 변형된 해골이 당신 앞에서 춤추고 있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의상과 바르지 못한 움직임에 의한 이 변형은 발레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훈련의 결과이다. 발레는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무리하게 변형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역사적인, 혹은 안무적인 이유도 이를 합리화 할 수 없다! P. 25 춤을 배운 적이 없는 어린아이의 동작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동작이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무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인체의 동작도 그 신체가 도달하는 성숙의 단계와 정도에 조화되고 있는 한 발달의 그 단계에는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P. 33 무용과 조각은 가장 밀접하게 이어진 두 개의 예술이다. 이 두 가지 예술의 근원은 자연이다. 조각가와 무용가는 모두가 자연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와 그 형태의 정신을 필연적으로 표현하는 동작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조각을 가르치는 것과 무용을 가르치는 것은 병행시키도록 해야 한다. P. 51 – 52 아이들을 그저 움직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혼이 성숙하면 그 혼이 이끄는대로 가르쳐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체는 신체에 어울리는 동작에 의해서 그 자신을 표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린아이가 왜 그런 동작을 하는지를 모를 때는 어떠한 동작도 시켜서는 안 된다. P. 58 오늘 날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문명의 지성의 빛 속에서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을 의식적으로 찾아내는 일이 꼭 필요하다. P. 62 체육인들에게는 몸의 동작과 개발 자체가 그 최종 목적이 되지만 무용에서는 그것은 수단일 뿐이다. 그때 가서는 몸 자체는 잊혀져야 한다. 몸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조화되고 잘 조절되어 있지만 체조의 동작은 표현이 아니라 단순한 육체의 동작인 것이다. 그러나 그 육체를 통해서 사람들은 갖가지 감정과 영혼의 사상을 표현하다. P. 81 무용의 부활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은 춤을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일이다. 그 진짜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예술로서 가장 오래 된 춤은 아시아와 이집트의 춤이다. 이들 춤은 그리스의 춤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초기의 무용들은 우리 민족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곳은 그리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무용법은 그리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P. 90 비록 온 세계가 발레를 춘다 해도 발레는 여전히 잘못 된 것이리라. 왜냐하면 발레에 있어서는 무용은 모든 것이 되는 것을, 그리고 시와 드라마의 지위를 차지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무용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증거는 무용이 팬터마임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팬터마임을 하고 있는 자는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시늉을 한다. 그들은 말을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나 예술이란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모방을 하지 않는다. 비슷한 다른 것을 찾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시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독자적인 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P. 95 오늘날 극장은 두 개로 나누어져서 서로 상대를 무시하며 멸시하고 있다. 그것은 음악의 극장과 말의 극장이다. 모든 것이 복원되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꿈은 관객과 배우 모두에게 이상적인 그리스의 극장이 다시 나타나는 일이다. 고대의 이상에다 다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일이다! 그것을 ‘그대로 옮기라’, 그것을 ‘모방하라’ 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영감에 의해서 생명을 주고, 개인의 자아 속에 그것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P. 96 – 97 나는 늘 관객이 돈을 내고 구경하러 오는 극장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현실을 탄식해 왔다. 마치 상자 같은 바보스런 무대를 갖고 있는 극장이 이탈리아에서 극장이 이탈리아에서 기뇰 (인형극의 일종)이 태어난 이래 계승되어 왔다. 관객들은 그저 묵묵히 앉아 바라볼 뿐 무대에 참여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일어서서 박수를 보낼 정도로 매우 열광했을 때에는 뛰어나가 무대와 일체가 될 만큼 흥분을 나타낸다. 그러나 나는 관객이 더 완벽한 무용적 표현을 보여 주기를 꿈꾸었다. 고대의 원형극장 같은 형식의 극장에서는 관중이 이따금 스스로 일어서서 무용의 여러 가지 제츠처를 가지고 나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슷한 일은 아폴론이나 디오니소스의 고대 제식에서도 볼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P. 117 15세 때 나는 무용가가 되고 싶은 나의 희망을 도와줄 교사가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의 무용 학교에서는 발레 밖에 가르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용가 이외의 다른 예술가들이 모두 하고 있는 자연의 연구에 혼자 착수하기로 하였다. 식물의 섬세하고 사랑스런 동작의 연구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 자연계에 있을 수 있을까? P. 122 미국이여, 도대체 어느 날이 되어야 내가 바라 마지 않는 답을 나에게 주겠다는 말이냐. ‘ ‘ ‘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바친 것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마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이념을 흉내낸 허다한 가짜와 풍자가 생겨나서 그것은 전염병처럼 온 나라에 퍼졌던 것이다. P. 133 – 134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나는 하나의 위대한 학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은 춤추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 그리고 세계의 ‘지혜’와 ‘미’를 위해서 사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로댕은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을 이해했을 때 진보가 시작되었다.” P. 141 +리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춤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그녀가 원했던, 추었던 춤은 지금의 현대무용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보다 자유로울 것 같다. 그 어떠한 형식도 가지지 않고, 잘 준비된 몸으로 자연과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몸으로 옮겨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만의 새로운 형식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앞서 읽은 “무용의 현대”에 나왔던 내용과 상당히 반대되는 부분도 있고, 같은 부분도 있고, 새로운 부분도 있어서 비교해보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체육에 대하여, 발레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들은 각자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사실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도라 덩컨이 말하는 발레에 대한 정의, 즉 “변형된 해골”이 춤춘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어디까지가 건강한 발달이고, 잘못된 변형인 것일까? … 무용의 기본기 말고, 다른 방식으로 몸을 준비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몸을 가졌을 때 추게되는 춤은 무엇일까? “춤은 하나의 표현이고, 이야기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춤은 이야기의 노예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해야만 한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사도라 덩컨은 자연을 춤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 특히 물과 관계없는 춤들은 그저 기계적인 운동에 지나지 않다는 비난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조각, 그리스의 춤과 무대, 바그너와 슈베르트 같은 사람들의 음악들이 참 궁금해진다. 특히, 그리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번 여름방학에 확실히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클래식음악도 들어보고 말이다! 그녀가 맨발로 춤을 추었을 때, 미국의 외면을 받아야 했을 때, 학교를 세웠을 때, 두 아이를 잃었을 때, 행복하지 못한 남편과 삶의 마지막을 보냈을 때. 그녀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삶을 살고, 추었을까? 첫걸음을 땐 사람으로서, 끝끝내 미국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의 춤이 이상하게 변형되는 것을 본 사람으로서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의 춤을 제대로 전승하지 못하고 떠났기에 현대무용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마사 그레이엄 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녀의 처음과 삶에 대한 철학이다. 그곳에 왠지 발레에 대한 진정한 다른 모습의 길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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