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 BAUSCH 피나 바우쉬  - Jochen Schmidt 요헨 슈미트

 

나는 어떻게 인간이 움직이는가 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

p.21

 

자신의 신체로 익혔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무대 위에서 보았던 다른 사람의 안무처럼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를 자기도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십중팔구(또는 그 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키치적인 아류들로 끝이 난다. 다른 대가들이 그에게 요구했던 동작들에 거스르고자 하는 사람만이

무용예술을 진척시키는 것이다. P.38

 

그녀는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의 해방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인류의 절반인 남성을 해방하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인류의 다른 절반의 심지어 더 많은

해방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나 바우쉬는 계속해서 무대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작품에서 여성과 그들의 운명을 무대장면 줄거리의 중심에 놓는다. –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개선할 수 있는지도 역시 제시해본다. P. 61

 

자기 여자를 예쁘게 옷입히는 남자들이 지니는 자부심에 가득차서, 푸른수염은 종국에는 폭력까지 동원해가며

자신의 파트너 여성에게 연달아 여섯 벌의 옷을 겹쳐 입혀서 여자를 옷다발에 불과하게 만들어 놓는다. P. 64

 

‘ ‘ ‘ 교육과 관습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사랑, 부드러움, 쾌활하고 유쾌한 섹슈얼리티가 철저하게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 ‘ ‘ 이미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연극의 관습을 따르지 않던 피나 바우쉬는

이제 삶의 관습에 대해서도 또한 신나게 혀를 내밀며, 사람들이 통상 행실, 품위, 좋은 취향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 쭉 내민 혀는 모욕적인 표시라기 보다는 에로틱한 신호로서, 이 세 시간짜리

작품의 표지가 된다. P. 87

 

스텝은 언제나 다른 데에서 유래 되지요. 절대로 발에서 온 적이 없어요. 동작들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언제나

중간중간에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한 작은 연속동작들을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보곤 하지요.

예전에는 겁이 나거나 패닉상태에 빠져서, 어떤 한 동작에서 출발하는 방법을 여전히 선호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질문하기를 꺼려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질문들로 시작해요.” P. 102

 

피나 바우쉬가 보려는 것은 반드시 인기 관광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박물관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작품을 위해 필요한 자극을 이방의 예술에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녀는 극장에는 곧잘 간다. 당연히 그녀는 봄베이에서 힌두 영화, 많은 춤과 노래가 있는 영화들 중

하나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자체보다는 극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이 스크린 위에서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보는 것을 얼마나 곧이 듣는지에 대해 말이다. P. 119

 

그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 피나 바우쉬의 자화상 이 조세핀 앤 엔디콧의 것이다. 푸른색 수영복을 입어

대체로 야회복을 입은 동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여자 무용수는 자신에게, 그녀의 파트너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분노하며 외친다.

나는 아무 도움도 필요없단 말이에요 (I don’t need any help)”

그러나 결국 얼음으로 된 탱크가 녹고 그 여자 무용수는 쓰러진다. 그리고 동료들은 사람들을 갈구하며 울부짖는 그녀를 위로 해야 한다. 이렇게 <왈츠>에는 아이의 탄생에 대한 피나 바우쉬의 기쁨 뿐 아니라

그녀의 가장 절실한 성격적 특징 가운데 하나도 장면화 된다.

, 고립에의 소망과 사랑 받고픈 뜨거운 열망 사이의 망설임 말이다. P. 137

 

처음 만나자마자 곧 대단한 것을 보여주려 하거나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기묘한 장면들을 생각해내는 외향적 타입들에 대해 피나 바우쉬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면 저는 거의 항상 불합격이라고 말하지요그녀는 낯선 상황에서 완전히 자신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무용수들, 새로운 테마와 동작에 천천히 접근하는 무용수들을 좋아한다. P. 161

 

미국 대학의 무용과에서는 어느 특정한, 매우 유명한 모던댄스 개척자의 형식규범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마사 그레이엄이나 호세 리몬, 혹은 도리스 험프리의 방식 말이다. 폴크방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요스 레더 기법을 습득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근본적으로 부차적인 일이다.

쿠르트 요스의 후계자인 폴크방 학교의 교사들에게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항상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찾고 춤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전개 시키는 것이다. P. 197

 

 

+리뷰

영화 “PINA”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이 떠오른다. 봄의 제전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과 무용수들의 동작들도.

어디서 그런 ..섬세하게 느껴지면서도 직설적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은 그런 연출이 나올 수 있던 걸까.

 

책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피나 바우쉬가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해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무대 위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개념아래 같은 피해를 받고 있는 남성의 이야기 또한 꺼내려 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춤을 언어로서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던 사람이고, 마치 이사도라 덩컨처럼 일반적인 사회의 틀을 깬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다양한 감정과 갈등을 정말 잘 표현해 내는 사람이고,

그녀의 시선이 늘 사람, 의식하지 못했던 관습 혹은 잊어버린 순수성,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본질적인 문제 등에 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데에서 오는 피로감과 고독하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무대를 통해 언뜻 내비치기도 했다는 피나 바우쉬 개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했고, (그런 이야기까지 관객들에게 할 수 있고, 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연출로 활용할 수 있다니!) 자신의 무대에 관해서는 직설적이고 대범한 모션을 취하지만,

평소에는 무대 디자이너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 무용수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감독 그리고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 이었다는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춤이 내성적인 그녀의 일상적인 표현을

대신해 마음껏 표현 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까? 왜 그녀는 사람이나 감정.. 같은 예민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걸까?  

 

마치 혁명가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읽어내려 갔지만,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과 그녀가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알려주려 했던 것들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잔잔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유명 안무가의 형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찾고 춤에 대한 고유한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이 말에 대해 나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 . .

나에게 춤은 무엇일까.

요즘의 나는 몸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도 그렇고 어느 순간부터 깜깜하게 막혀서

오랜 시간 동안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저 말이 질문처럼 나를 계속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녀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차분히 그 동안의 생각과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아주 단순한 것에서라도 계속 생각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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