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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 (시집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문학동네, 2005년) '여름 학기/여성학 종강한 뒤,//화장실 바닥에/거울 놓고/양다리 활짝 열었다//선분홍/꽃잎 한 점 보았다.//이럴 수가!/오, 모르게 꽃이었다니//아랫배 깊숙이/구근 한 덩이/이렇게 숨겨져 있었구나//하얀 크리넥스/입입으로 피워낸 꽃잎처럼//철따라/點點이 피꽃 게우며,//울컥 불컥/목젖 헹구며,//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 -진수미 시 'Vaginal Flower' 전문 얼핏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그림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꽃을 그린 것뿐인데 발칙하고 도발적인 이 느낌은 무어란 말인가. 자꾸 보고 있으면 쓸쓸해지는 얄궂음이라니. 지난 90년대에 시단은 여성의 몸 담론이 한창이었지만 그것은 여성시인들의 문제였다. 이 유쾌하지 않은 '여성시'라는 이분법적 담론에서 몇몇 여성시인들은 엽기적이라는 찬사까지 받아가며 시를 썼다. "왜 남성들의 시에는 아픔이 없죠"라고 나는 천진하게 한 평론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건 그네들이 강자의 입장이라는 것, 금기와 억압에 시달린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은 정신의 지층마저 다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가 어떤 주의나 주장에 끌려가서 미학의 범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또한 시가 한 개인의 정신사에 각인된 상처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삼국사기에 실린 훌륭한 인물들의 말미에 기적적으로 따라붙은, '효녀 지은'이니 '열녀 누구'니 하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억압과 상처의 혈관이 우리에게 잇닿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여성시라는 범주가 시의 드넓은 세계성을 방해하는 것이리라. 겹겹의 금기와 겹겹의 자물쇠가 있어왔지만 겹겹의 은밀한 욕망은 여성을 약자이자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에 두어왔기 때문에 항상 억압 아닌 억압이 짓눌러놓은 '여성시'는 대체로 폭발적인 언어들로 이루어진다. 참다 참다 터트리는 울음이나 화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발칙하게 까발리고 들이대는 것에 너무하지 않느냐고 점잔을 떠는 분들이 있다면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는 폭탄을 매단 언어들에 눈살 찌푸리지는 마시길 바란다. 발칙함은 금기의 빗장을 부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자 약자가 더 이상 타의에 의한 약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괜찮다 괜찮다 덮어두고 위로하는 것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덧나게 한다는 것을 '약자'들은 눈치 채고 스스로 치유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치유는 우선 당당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기이며 자신이 치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들여다보는 행위는 관심과 애정을 쏟는 몰입이다. 이 시의 화자가 거울로 들여다보는 행위는 자신의 몸의 주인이 취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이자 가장 애정 어린 행위이다. 그것은 도덕교과서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요 사회가 지켜주는 것도 아닌 것이다. '너는 소중한 꽃이란다'라는 아버지의 애매모호한 보호보다 '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라는 인식은 강한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과 맞닥뜨린다. 그런 다음에 긍정하자고 이 시는 동의를 구한다. 이 붉고 뿌리 깊은 꽃은 누군가의 소중한 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소중한 꽃이자 내가 그 꽃을 키우는 주체라는 것을. 상처가 있었다면 억압이 있었다면 이 꽃을 피우는 거름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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