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리터러시 끝나는 무렵 광고했던
글로벌학교 판돌이었던 기호의
소년들을 위한 성연구에 대해서 안내합니다.
아직 연구중인 내용이므로, 글을 옮기는 것(펌 등)은 삼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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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기획안은 참가자들에게 프린트해서 나눠 드릴 수 있으나, 그 중 연구의 배경+목적 부분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죽돌 중 관심있는 사람들은 아래 댓글로 참가 신청을 해주어요.
그런데 내 기억으론 주니어들은 대부분 하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어째서 '멍-한 표정'으로?
아무튼 신청자들이 많으면 인원규모 문제를 상의해야 할 지 모르니,
재빨리 댓글 달아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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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앎의 의지, 아들의 생활세계

엄기호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남자아이들을 둔 어머니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남자아이를 자식으로 둔 어머니들은 언론에서 성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기가 시한폭탄을 두고 사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아이들이 야동을 보고, 교실에서 성폭력과 장난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듣다보니 어머니들의 걱정이 날로 더 커져가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초등학생을 자녀로 두다보면 ‘무성적으로만 자랄 것 같은’ 내 아들 녀석이 성적인 존재로 커나간다는 것이 그리 끔찍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로 갈라지는 것이 너무 끔찍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아버지들은 아들의 성에 대해 무감각하기만 한 것 같다. 어머니들이 아버지들에게 아들의 성과 관련된 행동 - 자위행위, 야동, 또래집단과의 장난 등 - 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면 아버지들은 ‘우리 때도 다 저러고 컸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을 한다. 저러다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을 질 것이냐고 닦달을 해보지만 오히려 ‘당신처럼 너무 염려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것’이라고 핀잔듣기가 일쑤이다. 아들은 커나가는데 아버지는 무심하고. 어머니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누가 우리사회에서 십대남자아이들의 성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하는가? 아버지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들 자신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교사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오로지 엄마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간과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십대 남자 청소년들의 성과 관련된 담론은 어머니들의 호기심과 걱정, 그리고 궁금함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다. 십대들의 성에 대한 담론은 엄마들의 앎의 의지를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어 있다.

엄마들이 아들의 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첫 번째로 엄마들은 자기 아들이 성폭력범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들이 너무 지나치게 야동을 많이 보는 것 같고, 야동을 보고 따라하지 않을까 걱정되고, 그러다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사리분별을 하지 못해 사고라도 치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가장 걱정된다. 아들을 시한폭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90년대부터 한국사회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성폭력 담론이 미친 효과이다.

두 번째로 엄마들은 아들이 지나치게 과잉성애화oversexualize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야동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닌지, 자위행위를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게 자주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늘 걱정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과잉성애화되었다가 공부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들을 놓치고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엄마들의 이 걱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아버지나 아들들의 무관심과 연결된다. 아버지나 아들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엄마들이 걱정하는 과도한 자위나 야동, 그리고 친구들과의 장난이 눈에 띄는 성폭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엄마들이 보기에는 또래집단 내에서의 위험천만한 짓들이 사실상 남자들의 세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나름대로 ‘질서’도 있고, ‘지켜야할 선’도 있고, 서로서로에 대한 통제도 있다. 그것이 밖에서 보면 전혀 질서가 없고 말 그대로 ‘정글’로만 보이지만 정글에도 규칙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다보니 엄마들이 보기에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들의 ‘과도한 관심’과 아버지/아이들의 ‘과도한 무관심’이 교차하는 곳이 남자아이들의 성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마들의 성에 대한 앎의 의지는 남자아이들의 생활세계의 맥락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sexuality은 성적욕망sexual desire이 또래집단 내에서 맥락화되고 위치지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바라보는 아들의 성sexuality은 성애sex와 성적욕망sexual desire을 중심에 두고 형성되어 있다. 바로 이처럼 현재의 성교육 담론이 아들의 성에 대한 엄마의 앎의 의지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의 생활세계적 맥락과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남자아이들의 몸과 성이 해석되고 의미화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하는 바가 바로 이 지점이다. 엄마의 앎의 의지와 아들의 생활세계적 맥락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보면서 이런 어긋남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재의 성교육담론이 간과하는 맹점들이 무엇인지를 점검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맹점들을 점검해보면서 남자아이들이 책임질 줄 아는 성적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서 성교육담론에서 반드시 심각하게 다루어야하는 것과 그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제안하는 것이 이 연구의 최종적인 목적이다.


2. 연구의 문제와 가설

엄마의 앎의 의지와 아들의 생활세계적 맥락이 어긋나는 첫 번째는 몸에 대한 인식 그 자체이다. 남자아이들의 몸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남자아이들에게 자기 몸은 아주 좋은 놀이터이다. 여자아이들에게 자기 몸이 지켜야하고 보존해야하는 것이라면 남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몸을 도구화하고 즐기고 드러내며 몸과 함께 노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물론 그렇게 몸과 함께 놀면서 몸이 다치기도 하는 등의 위험이 뒤따르지만 그런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남자아이들은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남자는 다르게 성장한다.

두 번째로 여기에서 반드시 짚어 보아야하는 것이 아이들의 몸과 성이 그들 또래집단의 생활세계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치이다. 남자아이들에게 성은 동성간 또래집단의 위계를 만드는데 있어서 순위가 가장 높은 꺼리이다. 몸이 허약한 아이를 놀리거나 험악하게 다루는데도 성적인 요소는 반드시 동원된다. 또한 이성간의 성적 접촉이 금지되어 있는 터라 성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방하는 것도 동성간에 일어난다. 이것은 동성-성애적Homosexual인 것과는 아주 다른 맥락이다. 이 두 가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생활세계를 바라보면 이 세계는 성폭력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공간으로 보인다. 이것을 성폭력으로만 호명하게 되면 그것이 가진 전혀 다른 여러 가지 의미맥락을 놓치게 된다.

세 번째로 이런 과정에서 남자아이들은 자기 몸을 남에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면서 프라이버시(자기 몸의 사생활)에 대한 감각을 가지지 못한다. 현재의 성교육 담론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이 이것이다. 아들들의 성을 걱정하는 엄마들조차도 사실은 자기 아들의 몸이 누군가를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을 하지 그 몸이 침범당할 수도 있다는 것, 나아가 그 몸이 침범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무감각하다. 그래서 여자의 몸은 공개적으로 전시되는 것이 이미 침해이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언제나 공공연하게 전시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아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엄마의 머릿속에서도 쾌락이건 폭력이건 간에 아들은 이미 성의 주체로 자리 잡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엄마들부터도 아들들의 성적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일쑤이며, 이런 과정이 악순환을 낳아 아들들에게서 자기 몸에 대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각이 만들어질 겨를조차 없어지게 한다.

네 번째로 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디지털 문명이 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위험과 위기의 문제이다. 사실 지금 어머니들이 이야기하는 성폭력이나 과잉성애화보다 더 시급하게 다루어져야하는 것이 바로 육체적 접촉 없이 육체가 생방송되는 이 디지털/양방향 사이버섹스의 출현이다. 사이버섹스 그 자체가 좋고 나쁘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사이버섹스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범죄나 성의 상품화로 연결되고 있으며, 그 결과 아이들의 사생활이 여과없이 전세계로 중계방송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성인채팅방에 아이들은 주민등록위조를 통해 언제든 접근할 수 있고, 그 아이들을 노리고 접근하는 상업포르노업체나 어른들이 있으며, 아이들과의 사이버섹스는 그 영상이 녹음가능하고, 그 녹음된 것은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여기에 몇몇의 경우에는 아이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학교까지 다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 새로운 위험에 대해 현재의 성교육은 무감각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관점에서 지금 남자아이들의 성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자기 몸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 담론이다.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여자아이들처럼 ‘성적 자기결정권’으로는 책임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없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자기 몸이 침범당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몸과 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언어가 발달해 올 수 있었다. 타인의 힘에 맞서는 자만이, 타인이 아니라 자기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타인에게 맞서야하는 주체가 아닌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적 자기 결정권’과 같은 언어는 발달해 올 수 없다. 그는 늘 자기가 결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에서 남자아이들의 자기 몸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는 언어로 ‘몸의 주권’이라는 언어를 제안한다. 물론 이 주권이라는 언어는 남성적인 언어이다.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남성이 독점한 역할이었고, 그 독점한 역할로부터 가부장제의 정당성과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온갖 논리들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 ‘주권’이라는 말이 가진 남성적인 언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우선 이것이 남자들에게 자신의 무엇인가가 침범당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보다 가시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침범당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 침범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지금의 단계에서는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이다.

(이하 생략)

3. 본연구의 인식론적 기초 및 기존 연구 검토

4. 연구 방법 및 연구 내용

5. 연구일정

6. 연구의 학문적 기여/활용방안

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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