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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시민문화 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제목: 시민의식을 심다 蒔 시민문화 워크숍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로 부터 얘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각각 다른 시민이자 시인이라고 불렀다. 시민은 무엇인가? 시민에 대한 정의는 여섯 번의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시장 시(市)라는 타이틀로 오셨던 하승창 선생님은 '시민운동가'로서의 시민을 이야기 하셨다.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문제제기와 해결의 제안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사람. 詩인인 조원규 선생님은 '말을 거는 시인'인 시민. 시인이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는 외로운 존재가 아닌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며 그러기 위해선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자신의 내면을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때 시(時)의 홍성태 선생님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적인 목표를 넘어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되는 생태를 들여다보는 것의 중요성, 한가지 현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것이 위치한 순환 고리를 보는 생태적 관점을 가지는 것. 또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머나먼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현실을 직면하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주장을 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때 시(時)의 시민이었다. 네 번째로 오신 시인은 베풀 시(施)의 권혁일 선생님. 네이버에서 해피빈이라는 기부 시스템을 만드신 施인은 기부문화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 실행에 옮긴 process designer였다. 시민이란 한 명의 개인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 보다 함께 사는 수많은 시민들과 동참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모호한 개념인 '세상'을 향한다는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볼 시(視)의 제너럴 닥터들께서는 시민들이 마을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진 '시민'들은 어떻게 서로 공유하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상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날개 시(翅)의 임민욱 작가님, 하자에서는 민욱이라고 부르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민욱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술가는 어딘가 삐뚤어져있고, 잘 섞이지 못하는 부류라는 말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예술가야말로 '문제제기'를 가장 열심히 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공적인 것과도 연결시키는 사람이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현실의 문제들'을 깨닫고 조명하는 사람이고, '공공성'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와 자신들의 관계 안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시민으로서의 발언을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나는 어떤 시민이 되고자 했는가. 시민문화워크숍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민이란 무엇인가'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닌 현장에서 지금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민은 생각만하는 사람이 아닌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여섯 차례의 강의를 들은 우리가 직접, 스스로 해석해야하는 것이다. 같은 강의를 들은 작업장학교 죽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똑같은 정리를 하진 않았을 것이고 다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어떤'시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떤' 시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시민이라는 것은 내 생각에, 가치관 보다는 무엇을 하는 사람? 이라는 질문과 더 비슷한 것 같다. 요즘 들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가치관 보다는 내가 하는 일, 공부,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사람인지, 나의 가치관과 관점은 바로 그 작업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영상작업을 계속 할 텐데, 시민으로서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작업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사람들에게 자주 보여주는 것, 궁극적인 목표를 '나눔'에서 끝내지 않고 '영향'과 '움직임'을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영상을 만들어왔던 방식과는 다른 점인 것 같다. 단지 내 학습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것, 자기 정리를 위한 작업이 아닌 보여주는 의미가 확실히 있는 것이다. 같이 일을 해보자고 도모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고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주목해야 하는 것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내 영상이 나의 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치기도 하며, 얘기되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한 동안 나의 정체성이란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정체성, 나만의 정체성,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사실 내가 어디에, 누구와 살아가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태껏 나는 어딘가에 속하고, 속하지 않고를 굉장히 따졌던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속한다는 것은 수동적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를 보고, 관계 맺는가 이다. '내가 속한 사회'라고 말하는 것을 '내가 보고, 관계하는 사회'라고 다시 말하고 싶다. 몇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공동체' 와 '마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째서 '사회'라는 더 큰 틀과 시민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데 공동체와 마을은 범접하기가 어려울까. 더 깊은 관계, 서로를 봐주는 눈이 되는 것, 대화하는 것, 이런 것이 어려워서? 혹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나 개인의 삶이 공동의 삶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줄 곳 이런 것 때문에 머뭇거렸던 것 같다. 어딘가에 깊게 관여하고, 소속된다는 것은 아직까진 나에게 어떤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어딘가 막중한 책임감과 개인의 희생이 꼭 요구될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엄마와 성미산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엄마가 매일 밤늦게 까지 밀랍초를 만들고, 미니샵 공방에 낼 물건들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저렇게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을 품었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미산 공동체가 정말 소중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 밖에도 엄마는 자신은 이 공동체에 대한 당위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초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마을 카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책임감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일이라는 책임감이라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을 막는 것 같다. 공동체와 마을이 내겐 그렇다. 내가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서 생각해보고자 했던 공동체와 마을에 대한 것은, 그 개념만에 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고, 지금껏 내가 부정해왔던 공동체의 이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여섯 분의 시인들을 만났지만 한 분도 빠짐없이 'community' '함께 한다는 것/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비록 아직 공동체와 마을에 대해 100프로 확신을 갖거나,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지만, 처음으로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접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주변,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사적인 관계들과 공적인 관계들이 있고 관계 안에서 자신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작업자에게는 사적인 영역이 공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 경계 또한 허무는 것이 예술의 언어라고도 생각했다. 이제, 내 영상이 어떤 영향이 있고, 얘기꺼리가 있는지, '지금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등의 고민을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관계들을 맺고 있는지, 작업장학교라는 학습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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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공연을 준비한다든지, 노래를 쓰면서 '같이 할 수 있는 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
이번 낙동강에서 바투카다를 하면서 정말로 관객과 공연자가 구분되는 '공연'을 하게 되는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기에, 정말로 우리가 '공연팀'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FESTEZA의 지향에 가까운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됐어.
이번에 18일 오도리도 하자 생일파티인데, 모두가 공연과 쇼를 준비하니 관객들은 그저 관람하기만 하는 관객으로 뿐이 남지 않길래 작업장 학교에서 다같이 춤을 추기로 한 건데, 우리의 공연도 판을 열고 불을 지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지만 바라는 것은 모두가 같이 노는 거고, 그 편이 연주하면서도 즐겁지.
작업의 최종이 결과물을 내고 나누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후의 영향과 움직임에 동참하고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에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