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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나는,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사회 문제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말하는 사회문제들은 '권력', '부', '성' 등의 불균형에 의해서 상대적 약자가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들뿐만 아니라, 친환경 적이지 못한 문제들까지도 포함한다. 고로,) 나는 거의 모든 사회의 문제들을 '나와 관련 있는 문제'로 여기며,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시민 됨'이란 거의 '정치인' 혹은 '운동가'와도 같은 위치였다. 시인들'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이런 내가 6명의 시인들을 만나면서 과연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시민'이라는 정체성과 각자의 전문성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기대를 함께 했었다. 허나, 예정되었던 시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내 우려를 하나씩 지워나가고, 내가 갖고 있던 '굳건한 시민'으로서의 현재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6번의 연찬을 통해, 그들(시인)과 나의 다른 점들을 보게 되었고, '자기 언어'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자기 언어'란 내가 하고 싶은 말, 보이는 문제 상황들을 '어떻게'변화시킬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과도 같다. 8주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나에겐, 크게 2가지의 과제가 남는다. 나는 '시인'이고 싶다. '시인'이란 자기언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6차례의 연찬 동안 각기 다른 '시'와 함께 찾아와주신 '시인'들은 정말 말 그대로 그들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의 흐름을 구해(퍼뜨려)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그들은 나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흐름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기 언어'와 섬세한 '문제 인식'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문제 상황들을 자신들의 전문성으로 끌어와 사회에게 말을 걸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전문성으로 '그냥' 해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자의 언어인 '시인'들은 우리 사회에선 흔히 '선구자', '혁명가', '운동가', '대안 실천자', '문화 방해꾼'등으로 부를 수 있겠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어찌 보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움직임들로 흐름을 만들어 간다. 내가 그들을 보며 느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눈과 손을 훈련해가는 개인들의 흐름이라는 것. 6차례에 걸친 시인들과의 만남은 이 개인들이 어떻게 세계를 구해가고 있는지를 내 눈 앞에서 확인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사실 '시민 됨'을 고민하며, 계속해서 문제의 대안에 대한 중요성을, 변화의 중요성에만 집중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문제 보기'만을 반복해왔다. '나는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하니, 움직일 수가 없어'라며, 움직임에 소극적이었다. 고로 나는 움직임과 행동에 대해서는 섬세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그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내가 흐름을 구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에는 매 선거마다 낙선을 경험하시는 나의 아버지와, 2008년 '촛불집회'의 영향이 컸다. 내 생전 처음의 대규모 시위이자, 외침을 경험했던 '2008 촛불집회'가 무색하게도 2009년의 정부가 삽질을 계속하는 현 판국은 '새로운 흐름'을 그저 막연하고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2009년의 집회의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2008년의 시민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난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은 무관심하게도 문제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하지 않는지가 항상 의문이고, 불만이었다. 난 이 개떡 같은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시민으로 살고자 했다. 난 내 위치에서 계속해서 움직였다. '무책임 한 시민'으로만 남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가방에 나만의 창을 만들었다. 그리고 명확히 설명 할 수 없지만 '용산 참사'의 현장인 공간의 이미지들을 채집해,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고, 내 가방엔 '용산 참사 해결'이라는 외침이 붙어있다. 난 그것을 나의 두 번째 '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선에서 柴으로서 시간을 들먹거렸던 것 또한 그러했다. 이런 작은 움직임들과 스스로를 '책임감 있는 깨어있는 시민'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자부했던 나였다. 허나, 확실하게 '시민'이상의 '시인'들 앞에선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답답해지곤 했다. 그들은 무언가에게 "너 바꿔!"가 아닌, '너의 현실에 나는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라며, 스며들기 위한 물음을 던지며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하기 방식은, 나 혼자서 만 외치고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게 했다. 6명의 시인들은 차례차례 금요일 새벽. '시민'에서 '시인'사이에 어중간하게 있는 나에게 찾아와 말했다. "정말 필요한 것은 혼자서 시민으로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다. 그 이상으로, 너의 언어로 너의 삶으로 흐름을 만들고, 가꾸어(구해)가는 거야."라고. 매일 밤 인정하고 동의했다. 그렇지만 나 또한 아주 작지만, 무언가를 꿈틀거리며 하고 있었음으로 서운해 하곤 했다. 그렇게 6차례의 시인들과의 밤과 새벽의 만남을 통해, 나는 그들이 갖은 '나의 언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란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인증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몸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정리하고 싶다. 일단에, 내가 흐름을 구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인, 보이는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뱉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뱉어내기 이전에 인식된 문제의 원인, 근원을 섬세하게 분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 사실 현재의 문제들은 너무나 복합적인 고리들이 엉켜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속도에 비해 나는 많은 시선을 갖지도 발맞춰 공부를 하지도 못했었다. 때문에 문제 상황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주를 이루는 나였다. 그래서 문뜩, 더 이상 너무 섣부른 판단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졌고, 입을 열기가 싫어지곤 했다. 막연하지만, 나에겐 더 섬세한 관찰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입을 다물며 생각해보니. 더 진득하니 문제를 들여다보고, 주변과 이야기를 해보며 내가 보지 못한 고리들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柴으로서 진행했던, 정선이동학습 때 또한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섣부르지 않기 위해선, 진득함과 '열심히' 관찰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필요하고, 적절한 새로운 흐름의 기초를 다지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자기 언어'를 혹은 '사회에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라는 훈련을 통해 기존의 흐름에게 말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 이 2가지의 단계는 사실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허나, 이 2가지를 함께하기엔 아직 나에겐 훈련되지 않은 눈이 있기에, 매번 움직임이 굼떴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항상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관심 있는 일인 사회의 문제 있는 흐름을 바꾸는 일은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보며 같은 크기의 '움직임'에 대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이상으로 그들이 '시인'으로 소개되었던 것도 계속해서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이 시인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시민과 시인 사이에서 '굼뜬 작업자'로 어중간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확실한 '시인'인 그들과의 '차이'이고. 그렇기에, 나 또한 다시 확실한 '시인'이 되길 원하게 된다. 난 정말로 '시인'이 되고 싶다. '언어'를 갖은, 머리와 입, 그리고 손이 따로 놀지 않는 것이 '시인'이지 싶다. 더 이상 내 주변에 있는 이들과 과제들을 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 유예시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 대상은 누구인지 등등 한바탕 정리를 끝내야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굼뜬 움직임들 또한 소중했고, 앞으론 더 열심히 키워가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나는 지금 '나의 언어'라는 과제와 함께 또 하나의 과제를 갖고 있다. 사북고환의 '마을의 예술가'와 홍대라는 요상한 '마을의 의사'를 자처하는 '제닥'. 그리고 마지막 연찬에서 '날개 시'의 매력적인 '예술'이라는 언어를 갖고 세계를 마을로 삼는 민욱을 만난 후, '어떻게' 말을 거는 '시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어느 판에서'라는 '나의 마을'이라는 커다란 질문 또한 갖게 되었다. 유독, 이번 학기동안 '마을'이라는 단어가 자주 귀에 들어왔다. 나에게 '마을'이라는 개념은 귀에는 익숙하지만, 몸과 머리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 눈이 특정한 대상에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뭉뚝한 바깥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실하게 '나의 마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정말 자신들의 전문성이 빛을 낼 수 있는 '마을(판)'에서 시작하고 살고 있는 시인들은, 다시금 '마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처음에 '나의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실은 하자가 아닌 하자 밖의 어떤 전문성들이 모여 있는 거리의 판을 상상했었다. 그치만, 그 질문을 쪼개어 현재의 나와 정말 가까운 관심과 우정의 공동체인 '마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았을 땐, 조심스럽지만 내 일상의 공간인 '하자작업장학교'로 눈을 돌리게 된다. 나만의 '시민 됨'과 '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이 섞인 '우리'라는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의 학교이자, 일상인 이곳의 눈과 입들 중 하나가 되고 싶다. 이것이 市하승창 시인이 말씀하신 '시민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지 싶다. 이번 '시인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물리적으로 나와 가까웠던 하자 죽돌들 또한 자신들의 흐름과 하자 밖의 거대한 흐름(제도) 대한 말 걸기와 질문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작 커다란 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나는, 내 주위에는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정말 조급하게도 '자기언어'의 필요성을 깨우치며, 큰 흐름(제도)에게만 말을 거는 것만을 상상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내 옆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후변화'나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의미를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동시에 '작업자'로서 나누는 이야기가 담긴 작업물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큰 흐름을 보는 것과 동시에 내가 서있고 몸이 있는 내 주변에서 시작하고, 성의를 쏟아야 한다는 것도 알아간다. 난 지금 나의 언어와 그 각기 다른 언어들의 '마을'을 상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향한 흐름을 만들기 위한 작은 흐름들이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 차차 '우리'의 흐름을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선 난 내 몸을 온전히 담아, 흐름을 트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서로 힘을 낼 수 있는 '상호적 고랑트기'의 마을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하는 삽질의 흙이 거대한 MB가 하고 있는 삽질의 구멍을 덮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원규 시인이 선물한 '톱니바퀴'라는 언어로 정리를 하자면, 나의 톱니바퀴 중 '시민'이라는 톱니는 계속해서 기름칠해야 할 테지만, 이제는 '기본 톱니'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기본 톱니 포함해 '나의 언어'라는 톱니와 그것을 '어느 판에서 굴릴 것인가'라는 '판'에 대한 과제를 계속해서 풀어 갈 것이다. 일단에 이미지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작업 중인 나는, 서툴지만 '이미지'라는 언어로 시작하여 계속해서 훈련해 나갈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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