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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한 페이지를 줄였습니다. 앞으로 한 페이지 더 줄일 때까지! 정선+학기 중간 정리 에세이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 (가제) - 나를 감당하고 지탱하는가? 나는 돈 없이는 쌀 한 톨도 먹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하자 안에서는 이야기전달자로서 외치며 살겠노라 얘기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외치고자 하는 것도 있고, 공부를 시작하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턱턱 막혀있었다. 막연히 성인이 되는 것과 ‘대안학교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듣고 봐온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회는 경쟁과 이기심, 감수성 없는 사람들, 정 하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무자비한 곳이었다. 나는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안학교도 결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었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 또한 사회의 문제였기 때문에 나를 제 3자로 치부하는 건 큰 오류였다. 타자화를 경계하라는 말을 그토록 수없이 듣고 또 들었으나 여전히 타자화를 하고 있었다. 타자화를 경계하기 위한 첫 걸음은 공감이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정보 안에서 나와 공감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적인 수긍과 와 닿음이 있어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움직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와 닿지 않으면 내 얘기가 아닌데, 내 얘기가 아닌데 하며 손톱을 뜯었다. 그런 상태로 정선에 갔다. 서울도 아니고, 하물며 마을 어귀를 찾아봐도 10대 소녀라곤 고작 5~10명 남짓 보이는 그 공간에서 나는 어떤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찾아야 했다. 처음 정선에 가기 전 잡은 것은 ‘마을과 완벽히 동떨어진 사람의 정체성’이었다. 공감이 없다면, 3자의 시선으로 보자는 생각이었다. 며칠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사람을 스쳐지나가는 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는 사람이 있는 지도 모르겠는, 영화에나 나오는 귀신 마을 같았다. 뜨문뜨문 보이는 사람은 관광객이나 레저 직원이었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사물에 눈을 돌렸고, 내가 의식하게 된 건 거울이었다. 고작 손바닥도 다 비춰볼 수 없는 작은 거울에 눈길이 갔다. 나는 나를 마주할 수 있으며, 나는 올곧게 인정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받은 피해에만 집중하는 나의 소인배스러움이, 와 닿아야 고민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다 보니, 점점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모든 걸 놓고 싶었고, 모든 것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거울과 과거의 거울이 만들어낸 그 흔적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동원탄좌를 돌 때 본 건 대부분 손 떼 묻은 개인물품이었다. 퇴직에 대한 고민이 담긴 메모, 먹다 버린 껌, 어느 방에나 있는 거울. 거울은 어딜 가도 있었다. 다시 1층 탈의실로 돌아가 거울을 찾았다. 3.3항쟁이 떠올랐다. 광부도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감정을 3.3항쟁에 고스란히 가져가 정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냈다. 나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적에게 반감을 갖고 대항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싶어왔다. 그래서 꾸준히 나도 모르는 적을 만들어 담을 쌓았고, 약간의 피해의식 속에서 고민을 해왔다. 그렇다면 광부에게 정부는 적이었을까? 광부에게 적은 누구였을까? 애초에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기는 했을까? 석탄마을 당시의 다큐에서 나온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정말 ‘마을’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마을 사람을 위해 학교를 만들고, 요청을 통해 마을회관(현 뿌리관)도 설립하였다. 드문드문 카메라 때문에 긴장한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결국 다시 활짝 웃으며 동료 광부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가내용 필요) 애초에 나는 내가 나를 감당 못한다는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어째서 나를 감당 못하는 건지, 나는 타인을 타자화하기 이전에 나를 타자화한 게 아닐지. 나는 나이고 내가 주체인데, 내 안에서 나의 파편들을 만들어 자꾸 나를 밀어내고 껴안고 혼내고 때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마을 사람으로서, ‘나’로서 살고 있었고, 때문에 3.3항쟁과 내 안의 전쟁이 다른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자신을 파편으로 만들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실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정선 후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다. 웹진 하자로를 할 때 느꼈던, 주체이자 제 3자의 입장에서 내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도전하고 싶다. -공공예술, 어떤 영향을 주었나? 그러므로 한 평생 10대로서의 감수성을 놓지 않고, 작업자로서 살고 싶은 지금의 나는 공공성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다. 예술과 돈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19년 인생동안 예술이 가깝거나 친근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작품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대체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것들이 그림이나 사진, 조각 같은, ‘첨단’ 작업이 아니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예술은 어떤 형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정선에서 가진 질문은 ‘어렵고 난해한 예술에 어떻게 공공이 붙는다는 거야?’였다. 내 생각에, Art in Village는 ‘자신만의 감정’에 푹 빠져 자위하고 있는 작품이 아닌 마을 자체가 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히 검은산 프로젝트의 윤주경 작가는 자신의 호흡 그대로 경석산을 뛰어 모든 사람과 호흡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작가의 주체가 그대로 호흡에 살린 상태로 눈과 귀로 온몸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작업은 자위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 타인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한 점도 없이 오로지 본인의 생각만을 전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공감의 여지가 없으며, 무엇보다 무슨 생각인지,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공공예술이라는 말 자체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정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술을 보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정선에서 본 공공예술들은 사실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많았다. 작품 해석을 봐도 그렇게 깊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하나의 작품으로 어떻게 그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예술은 어려운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Art in Village 홈페이지에서도 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함께 찍었다는 것에 가치를 느꼈다. 아직 공공예술에서도 ‘공공’을 찾는 건 힘들었지만, 이런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step up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대중매체가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4개월 정리 *스튜디오 워크숍 나는 늘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는, 습작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애길 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워크숍을 통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성보씨 워크숍에선 시나리오를 썼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거였는데, 지금까지의 습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쓰는 거라 매번 해왔던 거기도 하고, 나에겐 가장 쉬웠다. 시나리오는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겪은 웃음은 나오는데 웃지는 못할 사연을 썼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한 씬을 촬영할 기회까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습작이라고 해도 나는 좀 불안했다. 정말 제대로 된 영화를 찍고 싶었고 그 때까지 써오던 시나리오도 있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꼈다. 나는 매순간 심각한 사람이고 싶었나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찍었는데, 찍는 순간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산이 내 시나리오를 보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 어때?’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민규는 돈 많고 못생긴 남자였고, 가영은 돈 많은 사람에게는 끌리는 평범한 여자였다. 솔직히 돈 많은 사람에게 안 끌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얘기하니 막막했다. 왠지 정말 자본주의와 관련된 전개로 가야할 것만 같았다. 시나리오의 마지막에는 남녀 따로 떨어져 서로를 욕하는 걸로 끝나는데, 나는 연애나 돈에 대해 얘기하기 보다는 사람의 양면성, 모순됨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의식중에 내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나? 이후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인간의 양면성보다는 가영과 민규의 관계에 집중하여 작업을 했다. 사실 그 때 게으르게 학교를 다녀서 작업도 게으른 게 티 날 정도로 만족스럽지 않게 나왔다. 그 때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할 찬스였는데 말이다.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운 걸로 끝나긴 싫다. 내년 1월에 페미니즘 연구 다음 계획으로 말했던 10대 소녀 영화를 찍어 나를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쓴 시나리오를 토대로 완전히 의도한 씬과 컷을 배치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연구주제+페미니즘 죽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가 있다. 일전에 작당 MT에 갔을 때 리사가 발표를 했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함께 해야 하는 거라고. 머리고 공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말했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했고, 나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머리를 쓰지는 않고 있었다. 공부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물 또한 설명할 수 없는, ‘턱턱’ 막히는 지점이 많았다.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공부 없는 작업 또한 자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교과서로 이번학기 정희진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내가 이토록 정치에 갈망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정치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나와 정치는 굉장히 동떨어진, 386세대와 남자들만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가장 뿌리 깊게 박힌 성차별이었다.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을 주제로 써진 책은,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읽는 내내 내가 해왔던 말이 반복되긴 하였으나, 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콕콕 집어주는 저자의 문장력에 감탄하기도 했고, 참고 도서목록을 보고 ‘내가 저기 있는 책을 다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한 페이지 남짓 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 이게 바로 공부구나, 내가 해왔던 건 공부가 아니라 그냥 사색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페미니즘 접한 뒤 가장 어려웠던 건 성차별을 한 사람에게 ‘이건 이렇기 때문에 당신이 나에게 성차별을 하였어요’라고 설명하는 거였다. 설득력이 없었다. 내 말의 시작은 ‘잘 모르겠으나’였고, 상대방은 그 말로 하여금 내가 잘 모른다는 걸 간파하고 핵심을 콕콕 찔러 나를 후벼팠다. 나도, 상대방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부터 꺼내고 불평만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상대의 폭력은 의도되지 않은 폭력이었고, 나도 의도되지 않은 채 피해를 입어왔다. 때로는 그게 폭력이 아니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내가 가장 싫었던 건 가사노동이었다. 하루 6~7시간 자는 것도 힘든데 빨래, 설거지, 밥, 청소를 다 해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괜히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가 있는데, 하며 비교를 했다(엄마를 찾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그래서 아침을 굶으면 혼났고, 그렇다고 먹으면 학교에 늦으니 이도저도 안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6시 30분에 일어나기엔 내가 알람이 들리지 않는 보수적인 귀를 갖고 있었다. 대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지를 고민하던 찰나 책에선 아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 부분에 큰 공감을 갖고, 바로 현실에 대입하고 싶었다. 그것은 첫 번째 괴리의 시작이었다. 공부한 것을 현실에 옮기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지 몰랐다. 나는 설득력을 가지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현실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가지 원인에서 파생되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벽을 넘은 것도 힘들었는데, 가사노동의 벽은 ‘넘사벽’이었다. 그래서 시선을 하자로 돌렸다. 적어도 하자 죽돌들은 페미니즘이 시작되는 아주 기본적인 ‘가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고, 하자에서 꾸준히 고민해온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야기는 나름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으나, 문제는 또다시 현실이었다. 나는 아직 현실의 넘사벽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잡은 주제는 현재의 소녀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로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영화를 보는 일이다. 오래된 영화보다는 최근에 나온 영화들을 토대로 분석하여 영화가 한국의 소녀들에게 끼친 영향을 조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자료를 기초하여 ‘완전히 의도된’ 10대 여성 영화를 찍고 싶다. ![]() ㅎㅎ
2009.12.17 00:44:18
"공부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물 또한 설명할 수 없는, ‘턱턱’ 막히는 지점이 많았다.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공부 없는 작업 또한 자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 에 정말 공감이 간다.
이번 밤비 연구주제를 보며 밤비의 관점에서 시작해 좀더 풍성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좋더라, 밤비가 이야기했던 누군가를 '통해' 읽고,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런걸까 생각했어. 글 안에서 ‘완전히 의도된’ 이 2번이나 나오는데 의도한 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거야? 아니라면 한개는 빼도 좋을듯- 정선글은 딱 밤비가 있고, 거기서 이야기가 나온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부분은 내가 되게 원하고 잘 못하는 것이기도 해서 읽으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했는데, 지금 글은 후에 너무 정리된 듯한 기분도 든다. 정선을 다녀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첫번째로 밤비가 썼던 '거울'에 관한 글과, 정선에서 밤비가 어떤 경로로 다녔는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페차쿠차때 발표했던 글들의 내용이 좀더 포함되어도 좋을 것 같아. 나는 그때 들었을 때 밤비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연상되어 되게 좋았었는데 지금은 약간 그 맛이 빠진 것 같기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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