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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Art in Village’ 사북 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 우리는 ‘柴‘ 를 마음에 담고 고한, 사북에 갔고, 그 곳에서 ‘柴인‘ 으로서 본 것과 느낀 것이 분명히 있다. 그 느낀 것을 말하고 싶고, 이제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꼭 말을 하지 않아도 잘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하나 더,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이번 학기 들어서 말하고 싶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드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학기들을 보내면서 아예 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인데 그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질문을 하고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제일 큰 이유는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생각을 나도 같이 하고 싶고 즐겁게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던 행동들을 조금씩 바뀌게 해주었다. 그런 부분에서 볼 때 정선에 다녀온 것,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나눴던 것들은 그 동안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조금이나마 말로 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번 학기를 준비하면서 지난 학기들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것’ 들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기 초, 성보씨와 했던 STUDIO 프로젝트에서 시나리오 쓰는 연습을 하면서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선에 가서도 이 주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석탄을 캐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경석산은 보기에도 이상했지만 직접 올라갔을 때는 더 이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딱딱해 보이기만 하던 산은 생각보다 까맣지도, 딱딱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무들까지 자라고 있었다. 4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맞은 편 산만큼이나 커다랬던 경석산을 보면서 놀랐고, 40년 동안 쉼 없이 어두컴컴한 탄광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온 몸에 검댕을 묻히며 말 그대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했음에 감사했을 광부들이 생각났다. 고한, 사북에 머무르면서 꼬박 이틀을 살펴봤던 동원탄좌에는 당시 광부들이 썼던 물건과 그들이 지내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쓰던 물건들은 물론 바닥이나 벽, 샤워실 까지도 석탄 가루로 새카맣게 뒤덮여 있었다. 그 안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들인 과거와 지금 우리가 내뿜는 현재의 공기가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간에게서 등 돌려진 채로 동그마니 남겨진 동원탄좌와 경석산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탄광에는 더 이상 광부들이 보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석산도 쌓여가기를 멈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탄광을 내려다보는 높이에 세워진 뾰족한 카지노와 호텔, 콘도들과 전에는 보기 드물었을 마을에 줄줄이 들어선 전당포들이었다. 광부들이 매일 아침 걸어서 탄광으로 향했을 그 길에는 마을과 카지노, 호텔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다니고 이제는 그 길을 걷는 사람보다 쌩 하고 지나치는 차가 더 많다. 그곳 사람들에게 경석산과 동원탄좌는 지우고 싶은 과거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광부들의 피땀이 만들어낸 곳이고 하루하루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그 곳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을 머무르다 왔다. 그래서 감히 그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함부로 들어설 수 없었고, 어려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머무른 시간으로만 가늠할 수 없는 질문들도 안고 왔다.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지금 당장 대답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질문들도 결코 아니고 그 곳에서 느꼈던 것들이 전부 생각나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들과 뭘 하든지 마주칠 법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고한, 사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과 보는 시선 또한 굉장히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풀숲 같은 ‘柴인‘ 으로서 볼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었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기록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한, 사북에 있으면서 ‘앞산전’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더랬다. 다큐에 나온 이진경 작가는 전시에 필요할 카탈로그를 만들 돈도 한 푼 없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던 곳도 불에 홀라당 타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불에 타고 남은 잔재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했다. 그걸 보면서 그 작가가 멋있고, 꿋꿋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처절하다고 느낀 것이 더 컸다. 다큐가 끝나고 정현 씨가 하신 말씀도 지금 이 작가는 굉장히 처절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이 작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도 처절하고 힘들다고, 작가로 사는 게 결코 멋지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순간 겁이 났다. 그리고 작업자가 되면 스스로 결정과 판단,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히옥스의 말씀과 함께 내가 작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부터 그렇다면 과연 내가 생각했던 작업자는 무엇일까, 내가 작업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을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될지, 까지 모두 해야 되는 생각이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하게 될 생각이었지만 막상 다가오니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하자에 3년 정도 있으면서 스스로 작업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리고 작업을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작품들을 파는 것 같다. 가끔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가, 생각이 드는 것들을 보기도 한다. 어디 전시를 보러 가도 작품들 옆에는 가격표가 붙여져 있고 간혹 가다가는 팔렸다는 표시로 스티커가 붙어있기도 하다. 그럼 결국 작업 할 때와의 가졌던 마음과 불어넣었던 가치와는 다르게 미술관에 가만히 전시 된 채로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가들이 생각하는 그 작품의 가치는 결국 돈으로 환산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여전히 알 수 없다. 작품을 판다는 것,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작업자가 된다는 것. 내가 생각했던 작업자의 이미지는 늘 배고픈 삶을 살고 있지만 배고픔과 맞바꿔도 괜찮은 종류의 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런 이미지는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고, 배고픈 삶을 선택하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를 충분히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을 찾고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작업이라는 것과 생계는 곧 직결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정말 유명해지지 않은 다음에야 작업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고, 그러다보니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배를 곯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는 말과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묻게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나의 꿈 사이에는 어떤 균열이 생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뭔가 하나를 포기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배고픈 삶을 살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너무 큰 욕심인가).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이 되는가, 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일이고 ‘작업’ 과 작업자‘ 의 관계에 대한 것도 앞으로 쭉 해나가야 할 고민이고 질문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과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에 순서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작업자로 살아가겠다, 살고 싶다고 했을 때는 이미 털어낼 수 없는 것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에 대한 것만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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