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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1. 흔적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문. 정선에서 유독 무언가의 흔적과 자취들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그 자취들은 흔적을 남긴 대상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들이었고,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인위적이며 인공적이었다. 나는 그 자취들에서 자연의 흔적을 발견해내기 보다는 계속해서 그 곳의 광부들과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하였다. 작은 개개인, 미미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흔적은 시각적으로 너무나 크다. 검은 재가 묻어있는 벽들, 빈 집들, 그리고 거대한 그러나 흔적밖에 남지 않은 산. 그렇게 나는 사람의 흔적을 계속 담아내고 쫓고 있었다. 흔적에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판단 할 수 없지만, 분명 흔적을 남긴 행위에는 의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정의와 판단 후 우리는 움직이고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존재하는 것의 자취이며 그래서 흔적을 남긴 대상이 있었다는 것을 오감으로 증명해주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취를 추적하며 동시에 정선에서 보이는 문들의 사진을 계속해서 찍었다. 그곳에서의 문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의 경계선에 위치한 문은 뚫려있는 경계이자 드나들기 위한 경계이다. 그것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이 서로 혼동되어 뒤섞이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문을 자물쇠로 굳게 걸어 지킨다. 닫혀있던 문을 여는 것은 혼동을 무릅쓰고 넘어가는 것이다. 정선에서 문은 마치 나에게 흔적을 통해 과거와 현재, 마을과 나를 넘나드는 것에 대한 하나의 상징과 같이 다가왔다. 흔적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앞서 이 문을 넘었을 이들의 손자국을 감싸 돌려 그들이 넘었던 문턱을 넘었다. 노동의 터였던 그곳에서 걷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틈 사이의 흔적위에 나의 자취를 남기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곳이 화석화가 되지 않게 흔드는 움직임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쓸쓸하게 빈 것처럼 보이는 그 공간이 우리의 움직임으로 인해 약간 덜 외로워하는 느낌도 받았더랬다. 흔적에 대한 추적이 시발점이 되어 나는 그것을 매개로 그들을 불러낸다. 불러내어 재 주목 하고, 시간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나는 그곳에서 분명 의식적으로 기록을 하였다. 이 의식들을 계속 붙잡아 이어나간다면, 공간은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분명히 시간은 흐르고 있고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흐르고 있으니. 이것을 흔적은 계속해서 쌓여간다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2. 이끌림을 넘어 이야기하기. 정선은 여러 흔적들이 굉장히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 싶다'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눈에 비치는 것들을 붙잡고 싶다는 마음과 그 순간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발동되며 반사작용과도 같이 카메라를 집어 들고 셔터를 눌러 그 순간과 자국들을 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며칠 동안에는 그저 그 공간들의 시각적인 힘과 느낌들에 취해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린다는 것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끌림은 단순히 이끌림에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과 계기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안에서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구경'을 한 것이 아니라, 흔적에 대한 이끌림에서부터 시작된 추적으로 이야기를 읽어내어 느낀 것을 담아갔기 때문에 시각적인 외관만을 담는 것이 아닌, 읽어낸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답이 나오기에는 나의 깊이가 너무 얕았다. 깊이를 가지고 질문을 확장시키기 위한 '공부'가 필요했다. '이끌림을 넘어 이야기하기' 라는 제목을 가진 이번 연구주제는 정선에서 직면한 나의 한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에 대한 움직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연구주제를 통해 카메라라는 매체와,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정리하였으니 이제는 이야기를 할 대상과,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이어나가고 싶다. 그것은 계속해서 섬세하게 고민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안다. 또 다른 흔적인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고한- 사북 프로젝트라는 과거의 포착된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기억을 또 다시 추적하게 하는 연속성을 지닌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살아있는 맥락을 가지고, 계속해서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게 하려면 내가 쥔 매체에 대해 알아가고 탐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3.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동원탄좌의 닫혀있던 문틈을 벌려 살짝 들여다보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라는 문구가 강렬하게 공간 한 가운데에 걸려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라는 문구가 보여주듯 광부들은 탄좌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 들이었다. 근대의 분업화된 노동의 톱니바퀴 같은 존재. 톱니가 하나 빠지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톱니를 새로 끼우면 되었다. 대체연료들이 등장하며 연탄의 수요가 줄고 점점 필요 없게 된 탄광은 결국 폐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계수단이었던 탄광이 없어진 이 마을이 다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카지노가 들어섰다. 꼭 필요한 것들로 구성되어있던 동네에 지금 또 다른 필요에 의해, 별 필요 없는 것처럼 비치는 매체들을 쥔 예술가들이 들어왔다. 사북- 고한의 예술가들을 보는 것은 나에게 어떤 감동과 생각거리들을 계속해서 던져 주었다. 그들은 이곳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작업을 하며 마을과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이셨다. 이동인구가 많고 관광을 지금의 가장 큰 사업으로 가져가는 이곳에서 예술가들이 정착하고 작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치유처럼 비춰지기도 하였는데,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며 자연스레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힘을 쏟고 고민하는 행위자체가 대체해버린 톱니바퀴들에 대한 꼭 필요했던 재조명 같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필요한, 마을의 예술가들인 것이다. 4. 참여자이자 기여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의 구성원인 것일까. 어디에 필요한 사람인 것일까. 나는 9살 때부터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8년을 지내왔다. 그것을 인식하기 전부터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그 안에서 필요한 사람이었고, 구성원으로써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 당연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그 안에 반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로부터 시작되어 파생되는 움직임이 곧 공동체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관계 안에서의 지지와 격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무언가를 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중등과정을 졸업하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인식하기 전부터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공동체안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소속감과 힘에 내가 안주하게 될 것이 두렵기도 했으며,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공동체를 떠나 하자작업장 학교에 발을 디딘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나에겐 도전이기도 한 것이었다. 8년 동안 나의 세계였던 곳 밖으로, 더 넓은 곳을 인식하며 발을 딛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지금, 하자 안에서 길 찾기 과정을 수료하고 주니어 과정에 들어선 나는 구성원이라는 단어를 현재 다시 새롭게 가져가고 있다. 그것은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라는 것, <학습계약서부터 한학기 이야기 좀더 추가> 내가 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기며 이 곳에서의 나의 존재를 계속 상기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어떤 팀을 만들어가고 싶은가에 대해 영상 팀 안에서 마음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부분도 있었다. 자신이 커다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식한 다음부터 나의 필요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움직임이 곧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현재 작업장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죽돌이며, 또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으로서 나는 참여자이자 기여자가 되겠다. 5. 나는 이야기 듣기와, 후에 파생되는 시각적인 흔적들을 역 추적함으로써 지금의 흐름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읽은 이야기, 읽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나는 것이 이곳에서의 나의 포지션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신호를 읽어낸다는 뜻의 de - sign 은 어쩌면 눈 안에 들어오는 흔적들을 추적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적을 통한 읽어냄을 시작으로 나는 이제 내가 잡은 도구를 정말 도구답게 잘 사용하며, 나의 신호를 보내 대화를 나누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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