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된 많은 야생동물들을 죽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고독인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생포된 비버들은 동료가 있느냐 없느냐가 생존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어느 생물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비버 새끼들은 "주변에 동료가 없으면 앉은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p. 153)

어느 오랑우탄 관찰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실망한 어린 것들은 흐느끼거나 소리내어 우는데,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인간이 왜 우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아기들이 갓 태어나서 울지만 생후 몇 달이 지나야 눈물이 나온다. (p. 162)... 침팬지인 님 침스키는 슬퍼보이는 사람을 보면 위로해주려 노력했는데, 특히 눈물을 보면 다정한 태도로 닦아 주었다.... 눈물에 관해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어떤 동물이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눈물을 슬픔의 증거로 받아들이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인 것 같다. (p. 163)

사냥에 대한 혐오감을 서양 작가로서는 가장 처음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는 몽테뉴는 1580년 "잔인함에 관하여"라는 수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무 방어수단도 없고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죄없는 동물들을 추적하여 살해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참담한 기분을 금할 수 없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달아나던 수사슴이 기력이 쇠진해지고 달리 위기를 모면할 방도도 없게 되자 몸을 돌려 자신을 추적하는 인간들에게 항복하면서 눈물로 자비를 구하는 것은 나로서는 언제 보아도 역겨운 광경이다." (p. 168)

다윈이 언급한 흐느낀 코끼리의 경우, 기계적인 원인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도(코끼리는 눈이 너무 커서 항상 수분이 필요하다) 불행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새끼들이 살해되는 것을 보는 물개는 눈이 말라있든 젖어있든 간에 틀림 없이 비애를 느낄 것이다. 사람이 "정상적인 슬픔에서 병적인 애통"의 단계로 언제 넘어가는지는 심리학자도 모르듯이, 어떤 동물의 감정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슬픔의 세계를 인간은 알 수 없다. (p. 169)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동물의 고통을 측정하여 인간의 고통과 비교할 수 있을까? 만약 동물의 고통이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같다면 실험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가? 루소는 1755년 <불평등기원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나와 비슷한 존재를 다치지 않게 할 의무가 부여된다면, 그가 지성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감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의무를 지키게 될 것이다." (p. 324)

돌고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학자들 중 한명인 존 릴리는 "고도로 발달된 동물을 강제수용소에 넣기싫어서" 돌고래 연구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최근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은 인간과 같이 멸종위기에 처한 혹성에 사는 존재들이며, 그들과 우리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식민지화하여 착취하는 일을 중단할 때에 ...고대부터 인간이 희망했던 종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는 보다깊은 감정의 유대가 맺어지고,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감정의 영역에 참여하여 가까워지는 것이 실현될 것(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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