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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마을에 대한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일단 내가 경험한, 혹은 주위에 있는 ‘마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써본 뒤에 생각을 좀 더 하고 싶어서 일단 써보겠다. 강화도, 상주, 공동체, 성미산, 하자. -강화도, 아지트 가장 먼저 경험했던 것은 강화도에서였는데, 뭐라고 부를지 참 난감하지만, 그냥 집단이라고 부르자. 어느 날 심심했던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빈둥대다가 ‘아지트를 만들자!’라며 허름한 천막을 세우고 그 때의 친한 친구들끼리 일종의 멤버십을 형성했는데, 이걸 그냥 ‘아지트’라고 불렀고, 지금도 이 놀이는 계속 되고 있다. (아직도 만나고 논다는 의미다.) 그렇게 우리들끼리 친하게 지내니까 부모님들 사이에서도 친하게 지내게 되고, 그러다보니 우리가 어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놀아도 어른들은 부모님처럼 보살펴주시고 챙겨주시기도 하고, 여행 등을 떠나거나 전시회, 공연 등을 가도 누구 부모님 따라 다 같이 가기도 했다. 동네에는 서당같이 한문이나 예법을 배우고 전통놀이 등을 하는 공부방이 있었다. 아지트 멤버들을 모두 거기 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그곳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무언가를 기획하고, 모두의 아이들을 ‘서로 돌보는’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아지트 멤버는 기본적으로는 그 비밀기지를 세울 때의 멤버들이지만, 몇 년 동안 이어오면서는, 다른 친구의 친구들도 한두명씩은 들이게 되었고, 물론 지금은 다들 친하게 지내지만 그 때만해도 나는 우리 이외의 ‘외부인’들이 아지트에 오는 것도, 심지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싫어했다. 하물며 우리 멤버로 끼워달라고 하면 사실 처음에는 대부분 반대 반대 반대였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애들 놀이였긴 하지만,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이라든지 규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 건물을 공들여 다 같이 세운 동료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이미 우리 사이에 생각이나, 언어들이 합의되어 있었던 것. 둘째는 하자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1~3살 터울이었긴 했지만 나이 차별 안하고 모두 평등하게 대하자고 서로 별명 부르면서 형, 동생 소리 빼고 대등한 언어로 대화하기-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었다. 좋은 추억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가 약간 바깥에 배타적으로 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별로 놀려고 하지도 않았고, 우리끼리만 이 안에서 잘 지내는 것이 놀이로서는 그냥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서,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관계를 맺는 방식은 공동체와 흡사한 점이 있었다. -상주 도시로 상경하기 전까지 약 4년 동안 나는 상주 변두리 시골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새로 이사를 해서 집을 구할 때, 절대로 마을 한가운데나 집이 몰려있는 곳에는 살지 않는 것이 일종의 수칙처럼 굳어져 있어서, 변두리나 마을 어귀 즈음에 항상 터를 잡는다. 우리 엄마는 사람들이랑 어쩔 수 없이 섞이게 되는 게 싫다고 말한다. 그치만 항상 마을 사람들하고 싸운 것도 아니었고, 아예 무시만 하면서 지낸 것도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일단 행정 구역 상의 마을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마을의 주민들은 우리 집도 자기네 그룹에 끌어넣으려고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요구했는데, 그 방식이 잘못이었다. 동의할 수 없는 일에 동참하게 하려고 했거나 하는 식인데, 엄마의 생각이 달라서 몇 번 거절했더니 이미 마을에서는 ‘싸가지가 없다’며 온갖 담화가 오가고 결국 우리는 윗집 양계장을 제외하면 정말 위치 그대로 왕따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 집 개를 당장 매어놓지 않으면 쥐약을 풀어놓겠다는 둥, 때려죽이겠다는 식의 위협을 했고, 실제로 몇 번은 우리 집 개가 맞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토이가 남의 집 닭이나 병아리를 물어죽인다거나, 밭을 파헤쳐서 못쓰게 만든 적은 없었다. 아마 당신들보다 똑똑할거다. 대신 엄마랑 마음이 맞아서 같이 일하면서 놀기도 하는 작목반 식구들은 있다. 서로의 밭에 품앗이도 해주면서 일종의 ‘두레’로 살아가고 있고, 귀농자들의 모임이라고 해야 하나, 때문에 다른 귀농자가 이주해오면 한번 친하게 지내보려는 시도들이 있다. -공동체 이건 사실 나도 상상하며 쓰게 될 것 같다. 어렵겠지만. 공동체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쇼가 지내던 공동체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탓인가. 카톨릭 공동체였고, 다 같이 농사도 지으면서 정말로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라 들었다. 공동체는 어떤 공통된 목적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다. 쇼의 공동체가 ‘종교’ 혹은 ‘농업’에 뜻을 두고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쇼의 말에 의하면 입촌식을 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의식을 치루고 그곳 사람이 된다는 건가? 그 점에서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마을 사람’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있는데, 어떤 계기나 일을 통해서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 같지만 (입촌식같은 형식이나 의식의 형태로 나타나는게 보통인지는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같은 경우는 안과 밖의 구분이 매우 뚜렷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관계 맺는 방식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 없기를. 나는 공동체나 웹툰 ‘이끼’에 나오는 30년간 외부의 유입이 없었던 마을이 가질 수 있는 '폐쇄성', 아니 ‘단절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적절한 단어를 못 찾겠는데, 그 안으로부터의 삶을 영위하는 것에 충실하고 내외의 경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은, 하자마을의 관계맺기나 마을을 형성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인 것 같다. 요즘 강의 들었던 교수들이 생각하는, 일종의 트렌드인 ‘마을’과는 어떻게 다른건지 생각 중이다. 사실 쇼 이야기로 추론하는게 대부분이라 민망하기 짝이 없는....:-P -성미산 마을 다시 민망한 상상의 시작이로군. 일단 이런 걸 읽기는 했다. http://navercast.naver.com/geographic/smalltown/2533 (네이버 캐스트 : 성미산 마을) ....시작도 못함. -하자 마을로 돌아와서. 이제 ‘하자 마을’이란 말과 함께 슬슬 정의를 해보려고 한다. 정의가 될는지, 일단 난잡하게나마 서술해보자면. 일단, 하자 ‘마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센터 안의 어떤 기관에서 상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필통의 사람들도, 또문의 (할머니들), 사람들도 하자 마을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메솟, 트라마, 홍콩, 일본, 어깨동무 등등 까지. 하자 마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럼 대체 뭘까, 이, ‘마을’이란 것은? 관계 맺기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위에 잠시 이야기했듯, 공동체처럼 일종의 신념이나 필요에 의해 합의된 생각들이나 움직임들이 있는 것 같지만, 입촌식을 치르거나 하는 식의 ‘(잠시라도) 마을에 일부가 되기 위한’ 조건이나 규칙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듯하다. (여기서 하자 십계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경계와 구성원들이 명확하게 구분/고정되어있지는 않다. 그래서 홍콩이든, 저 멀리 있는 메솟이나 과테말라의 트라마든 connecting 되어있고, 필통, 또문 또 그 이외의 다른 커뮤니티와의 연결도 시도해보며 점차 가지를 뻗어가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도 있는 형태로 커나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번에 치르게 되었던 ‘성년의 날’ 잔치도 ‘마을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그러면 (하자)마을이 무엇에 의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존재할건지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첫째로, 내가 생각하기에 마을에는 ‘서로 돌봄’이 존재해야하는 것이 맞다. 이미 하자라는 공간은 대안 (그리고 Creativity)을 시도해보고 실험하는 장인데, 최근의 경제/문화 인류학 강의에서도 들었던 ‘트렌드’라는 마을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영성마저 잃어서 모두가 기계재가 되어버린 틈 속에서도 일상을 회복하고 서로 짓누르는 게 아니라, 잘 살아보고 남들도 잘 살 수 있는 하나의 방책으로 이야기된다. 마을이 힘을 합쳐서 너무나도 고무적으로 변질된 하나의 의식이었던 날을 다시 되살리고 의식적으로 보내려는 노력이 지난 성년식이었고, 달맞이 축제일 수도 있고, 별자리 파티일 수도 있다. 고로, 마을은 서로의 영성(이 단어에 꽂혔나보다.)을 회복하려는 여러 시도/실험들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서로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내말은, 적어도 하자 마을은 그래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는 거다. 그것이 몇몇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보려는 것을 넘어서서, 안과 바깥으로부터의 새로운 연결들과 시도들이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일상의 의식을 회복해나가면서 어른도 있고, 아이들도 ‘성장할 수 있는’ 공간. 일단 여기까지.... 아직 쓰는 중, 하아 골치 아프다 아하하. 확실히 재미있는 이야기이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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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네가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나는 내가 있던 공동체에 대한 틀이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너 처럼 넓게 보기 힘든 부분도 있긴해..공동체라고 했을 때 부터 경계지어지는 것이 있는데 사실 이런 공동체 안에서 네가 말한 경계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 공동체 입촌자 개인들 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삶 이라는 크게본다면 이렇게 나눠지는 것 때문에 그런 경계가 생기는 것 같아. 여기서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했을 때는 현재 많은 문제가 되고있는 소비문화 사회 (내가 있던 공동체를 예를 들어 봤을 때)에 대한 단절과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한 어떤 의미없이 오로지 개인이 중요시 된 사회에 대한 단절? 좀 더 많이 있겠지만 크게는 이렇게 생각해. 그랬을 때 각자의 위치라는 것이 있는 거겠지? 만약 이런 경계가 없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동체에서 안과 밖의 단절이라고 했을 때는 이런 것 같아. (말이 너무 꼬이는데 정 모르겠으면 나중에 물어봐줘, 꼭:)
그리고 네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되는것은 "그것이 몇몇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보려는 것을 넘어서서, 안과 바깥으로부터의 새로운 연결들과 시도들이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절인데 나도 이런 부분이 필요한 것 같아. 공동체의 의미같은 것을 벗어나서 같이 사는 삶이라고 했을 때는 네가 말한 것 처럼 안과 밖으로 부터 새로운 연결들과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어떻게 본다면 정말 변할 수 없다는 것에 사로잡혀서 그런 세상에 도망처 버렸다 라고 볼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아직 공동체에 대한 지식이나 생활이 많이 부족해서 어떻게 보면 계속 왔다 갔다 해서 헷갈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우리가 하자 마을이라고 했을 때 너가 떠올리는 것과 내가 떠올리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걸 네 글을 읽고 알게 되었네. 우리가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이야기 해야 한다면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P/S : 한 번 더 말하자면 글이 뒤죽박죽이라서 이해하지 못했다면 말해줘. 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