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1시에 쓰기 시작했는데 왜 지금 끝났지

로제타가 특별히 힘들게 사는 건 아니야

304호에 앉아있는 내내 나는 엉덩이와 허리와 목이 아파 계속 몸을 들썩들썩 움직였다. 영화 중반부에 갈수록, 나는 심장이 울리고 창자가 꼬이는데다 속이 쓰라리고 침을 계속 삼켜 입 안이 다 말라있었다. 목이 말랐다. 조금씩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집이 아니라 그냥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시작하는 말로, 영화를 끝까지 다 본 내게 박수를, 짝짝짝!

감독은 관객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고 카메라 뒤로 사라졌다. 부탁인즉슨, 감독은 뒤로 빠질 테니 관객들이 그녀를 죽 관찰하세요, 이었다. 관찰! 영화를 보는 내내 로제타는 거의 한 컷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게다가 영화에 흔히 있는 내레이션조차 없어, 나는 영화 끝까지 나 혼자 로제타를 보고 나 혼자 괴로워해야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환경적인 괴로움에 도피욕구가 강해졌지만, 반면에 로제타가 주는 희망적 메시지 덕분에 나는 도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로제타가 살고 있는 비참한 삶은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삶과 다를 게 없다. 금전에 치여 일하는 기계가 되고, 받은 만큼만 돌려주자는 비인간적 사고방식으로 가족을 부양한다. 또,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하는 친구조차 매몰차게 거절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로제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실낱같은 희망, 지푸라기를 잡을 수 있도록 길을 보여준다.

비관적인 사람의 특징은 반문이다. 자신에게 계속해서 반문한다. ‘나는 잘 할 수 있겠지?’라는 질문을 수십 번도 넘게 한다. 그러다가 결국 행동하지도 못하고 주눅이 들어 실패하고 만다. 되묻는 사이 이미 자신이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해버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 두꺼운 가면을 쓰고 진심을 숨긴다. 진심을 들키면 치욕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제타는 두려움이나 치욕스러움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녀 자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영화 중반부까지는 그녀가 비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서 어떻게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나는 불편한 마음에서 감동을 한 방울 얻을 수 있었다.

친구를 얻었다는 기쁨의 자기암시를 하고 잠들더니 그 친구를 죽이려고 한데다가 그의 직업까지 빼앗는다. 로제타는 아마 인간적인 정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만약 로제타를 찍을 감독이었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조차 신경 쓸 수 없는 환경의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을 놓지 않고 발버둥치는 모습. 주변 환경들의 비중이 적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로제타처럼 자신을 믿고 전진할 수 있을까? 비관적인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나 스스로 주도하고, 내 주관을 지킬 수 있을까?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리뷰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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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