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리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거친 숨소리, 시끄러운 차소리, 따라오는 오토바이소리... 점점 머리는 아파왔고 속은 쓰려왔다. 나중에는 현기증까지 났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소리에 짓눌린게 아니었다.

사실 볼 때에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영화는 아니었다. 나는 트레일러에서 '생활'해본 적도,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물어보고 다닌 적도, 와플과 물을 함께 마신 적도 - 로제타가 항상 와플과 자신의 물병에 들어있는 물을 같이 마시는 것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이 와플을 사갈 때는 아이스티, 콜라, 심지어 맥주를 같이 사가곤 했는데. 와플+물은 그렇게 맛있어보이진 않는다 - 없으니까. 나의 의도와 카메라워크와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맞물려서 나는 로제타를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로제타가 바란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을 것 같다. 리케의 제안을 뿌리치고 리케를 밀어내기로 결심한 것도, 계속 짐만 되는 어머니를 결국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는 평범한 삶'을 원해서였을 것 같다. 하지만 평범해지기 위해 한 노력들 - 어머니를 재활센터로 보내려 한 것도, 리케를 밀어내고 결국 바라던대로 직장을 얻은 것도 결국에는 모두 고꾸라지고 만다. 마치 조그만 어린아이가 계속 넘어지면서 장난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달까? 로제타를 보면서 어린아이가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가지려고 했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순간 그것이 망가지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어린아이는 울며 떼쓰면 부모님이 새 장난감을 사 주실 수도 있겠지만, 로제타가 울고 떼쓰면 누가 그 투정을 받아 줄까?

결국 로제타는 울었고, 리케는 그 뒤로 다가갔지만 그것이 어떤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로제타는 -트레일러 안에서 엄마와 함께 죽지 않는다면 - 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맬테고, 아마 또 고꾸라질테고, 로제타의 어머니는 또 술을 마시며 몸을 팔 테고, 리케는 어쩌면 계속 로제타를 따라다니며 괴롭힐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로제타가 장화를 벗어던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것은 꽤 먼 얘기일 것 같다.

난 내 미래를 걱정해 본 적이 별로 없다. 88만원세대도, 청년실업 100만시대도 나와는 먼 얘기인 것만 같았고 어떻게든 나 하나 먹고 사는것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영화를 본 다음날인 토요일, 지하철 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로제타처럼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알바자리를 찾아다니며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내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 놀랐었다. 로제타를 본 탓에 무거워진 마음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정말 몸으로 느꼈다. 로제타는 먼 곳의 얘기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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