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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겐지의 보옴
태어난 곳은 삼양동,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경기도 구리, 이후 서울로 이사와 쭉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게 농사일은 멀고먼 꿈나라의 이야기다. 농사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곤, 아빠가 정선 자개골에 잠시 머물고 계실 때 놀러가 옥수수랑 감자 캐던 것뿐이다. 그 때 내 머리만한 잠자리를 봤고, 감자 캐는 게 의외로 재미있고 내가 직접 캔 감자를 바로 쪄서 먹는 게 맛있어 신기했다. 이때 나는 음식도 내가 직접 일해 거두면 서울에서 먹던 맛의 200%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겐지의 봄을 볼 때 현미 세 홉과 된장국과 조금의 야채만 먹는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꽂혔다. 채식주의는커녕 생 당근이 아니면 당근 취급도 하지 않고 무국을 먹을 때 무는 절대 먹지 않는 내가, 어떻게 그 간소한 식단을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 집은 방학동, 집 뒤에 바로 도봉산이 있어, 이름도 모르는 아이와 손에 흙 묻히며 놀러 다닐 때마다 뒷산으로 엉금엉금 올라가 약수터 옆에서 물장구치고, 송사리 잡으며 놀 수 있을 정도로 서울치고는 깨끗한 동네였다. 물론 어느 동네나 그 시기에는 깨끗했겠지만, 지금도 내가 사는 방학2동에는 아파트가 없다. 서울시에서 담장 헐어 공짜로 주차장 만들어준다고 해서 동네 사람 80%가 담장을 허물고 마당을 주차장으로 바꿨다. 그 정도로 개인주택이 많다. 잘못 보면 부자동네처럼 보이기도 한다(요즘에는 단독주택 산다고 하면 부자로 아는 사람이 몇 있더라). 하지만 갑자기 주택이 다 빌라가 되고, 방학3동으로 갈수록 아파트가 늘어나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몰라 마음만 졸이고 있을 뿐이다. 하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나 이렇게 넷이 살았다. 그래서 내 몸에는 할머니의 습관이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대놓고 욕하지 않고 걸레질 하면서 몸만 등 돌리고 할아버지는 집안일을 안 한다고 큰소리로 떵떵거리며 말씀하신다. 옛날부터 그게 정말 웃겼다. 할아버지는 ‘너는 말해라, 나는 모른다’라는 표정으로 TV를 시청하셨고, 할머니는 그 태도가 짜증나서 또 큰 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윽박을 질렀다. 물론 등만 돌리고. 그게 마치 콩트 같았다. 그래서 난 아직도 내 맘대로 콩트 하는 습관이 있다. 잘 때는 온돌매트를 깔고 자서 등이 너무 뜨거워 겨울이건 여름이건 늘 이불을 배에만 덮고 잤다. 나는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서 자주 배가 아프고 손발이 늘 찼다. 그래서 할머니의 까칠까칠하고 따뜻한 손바닥이 내 배를 쓸어주지 않으면 배변을 못했다. 요즘에야 그냥 내가 약을 먹거나 아픈 게 습관 같아서 아픈 줄도 모르고 사는데, 요즘에도 가끔씩 할머니한테 배를 좀 쓰다듬어달라고 엉겨 붙곤 한다. 아침에는 늘 할머니가 끓이신 완전 맛있는 국과 밑반찬 두어 개, 시골에서 보낸 쌀로 배를 채웠다. 때때로 사골 한 번 먹게 되면 좌절한다. 예전에 사골 맛있어서 사골만 먹고 싶다고 했다가 지금까지도 사골 한 번 등장하면 두 달은 사골로만 배를 채웠다. 그래서 그 때는 할머니가 끓여준 사골 국이 제일 싫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자취를 해보니까, 아침에 먹는 인스턴트 빵에 우유가 내 몸에 맞지 않아서 너무 싫었다. 고시원이나 자취하던 집에서 밥을 해먹으려고 하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국은커녕 그냥 MSG국을 끓이고 냉동식품을 조리해서 먹었다. 그것도 귀찮으면 햄버거를 먹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인스턴트만 찾는 식성 나쁜 아이가 되지 않게 도와준 할머니에게 너무너무 정말정말 감사하다. 내가 이렇게 자서전처럼 일화를 줄줄 늘어놓은 이유는, 영상을 보고 내가 느낀 점을 적고 싶었기 때문이다. 겐지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느낀 것은 두 가지였다. 위에 쓴 일화들, 그리고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런데 추석날 열심히 호박전 부치고, 정월대보름에 할머니가 장사하실 호박전이랑 가지를 얇게 썰어서 말리는 노동을 하고 나니까 일화만 적고 싶어졌다. 요즘에는 3층에 할머니 할아버지, 2층에 우리 가족이 살아서, 같은 집이지만 따로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되도록 집에 아무도 없는 날에는 윗 층에 올라가 할머니의 따끈따끈한 옥돌매트위에서 할머니랑 같이 자려고 한다.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지고, 급했던 내 성미도 조금은 유연해지는 기분이다. 아직도 싫어하는 야채가 있고 땡볕에서 중노동하는 걸 싫어하고 걸어서 바다까지 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지만, 가끔씩 이런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게 좋다. 나중에는 엄마가 계신 고산산촌유학센터에 놀러가 거기서 감자도 쪄먹고 땡볕에서 밀짚모자 쓰고 시골길 걸으며 여유를 좀 느껴야겠다. ![]() ㅎㅎ
2009.10.06 05:26:05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지고, 급했던 내 성미도 조금은 유연해지는 기분이다"
<겐지의 봄> 보길 잘 했네. :)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드는 것, 과연 뭘지 우리 스스로 대답을 찾아봐야지. 산촌유학이나 올레길, 순례길 가지 않고 이 도시안에서 그런 여유 부리자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요즘엔 너무 단기승부를 봐야만 해서 오랫동안 공들여 해야 하는 일이란 사람들에게 의미없게 느껴지기 십상인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돌보고 가꾸는 일이란 참 쉽지 않다. 교육도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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