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가을 시민문화워크숍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

일시 : 2009. 10. 15. 목. 17:00~
장소 : 하자작업장학교 마루
서 : 페스테자 환영 공연
초대특강 하승창 <시민, 시민사회, 시민됨>
질의응답 및 이야기

시리즈1.
세상을 구하는 市인, 하승창
시민, 시민사회, 시민됨

잘 노는 것

하자작업장학교가 지난 강진 전국시민운동가대회 때 온 거 맞죠? 하자작업장학교 공연팀과 10대 여러분들이 더불어 한데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모두 즐거웠다는 후일담을 들었는데 다른 일정이 있어 급하게 나가느라 못 봐서 정말 아쉬웠어요. 오늘 여기 오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심을 좀 했어요. 막상 도착해서 미리 여러분들이 남긴 질문들을 받아 봤는데 솔직히 너무 어려워요. 동녘과 땀, 엽이 남긴 질문들, 산, 구나, 등등 너무 어려워서 이야기를 잘 못할 것 같은데 어떡하죠?

우선 고백을 하나 할게요. 사실 저는 몸치라 금방 전 페스테자 팀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부러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흥을 어떻게 표현할 지 잘 몰라요. 그런데 저희 가족 중 딸은 누굴 닮았는지 춤을 잘 춘 게 신기하죠.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니 다들 춤을 잘 추는 것 같고. 뭐 핑계를 대자면 세대가 달라서 그런가? 하는 너스레도 떨어보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다닐 때에는 노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시대에서 살아서 그런가. 지난 해 인가 고고70이란 영화가 나왔던데 그 영화 속 젊은 친구들은 저와 사뭇 다르게 잘 노는 것을 봤어요. 시대가 어렵다고 못 놀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잘 노는 거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만큼 잘 놀지 못 한 거지요.

시민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오늘은 그 자유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해요. 우선 준비해 온 ppt 자료를 먼저 볼까요?

자동차의 안전띠는 언제 생겼을까? 자동차를 만들 때부터? 누군가 사고가 나고 나서부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나라는? 바로 미국, 맞았어요.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포드라는 사람이었어요. GM이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는데 지금은 망했지만 정부에서 구제해서 새롭게 뉴GM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 차를 가리켜 한 사람이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했어요. 그 사람은 바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제목으로 책까지 쓴 변호사였지요. 빠르던 느리던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그 변호사를 상대로 GM회사가 소송을 걸었고 이후 변호사는 스스로 변호하면서 그 소송에서 이기게 되었죠. 근데 그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변호사는 그 승소한 재판에서 받은 위자료를 소비자 단체를 최초로 만들게 되었지요. 반면 그 소송에서 진 GM에서는 그 이후에 안전띠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안전띠를 만들게 됨으로써 위험부담을 줄이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한 사람의 어떤 한 마디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세상을 변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할게요. 이건 제가 변하게 된 계기예요. 오태양이라는 사람 혹시 알고 있나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이죠. 제가 의도하지 않게 감옥에서 밥을 먹고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었어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독 아무 일도 시키지 않죠. 다른 수감자들은 교화의 목적이나 수감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목공이나 다른 일들을 배우거나 하게 하는데 그것보다 하루 종일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쉽게 보내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일거리를 마련해서 주는데 사상범들에게는 그 일조차 제외된 거죠. 독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 무기력하게 지내게 하는 것이 바로 제일 큰 벌이죠. 그렇게 아무도 만나지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징역살이를 살지만 그래도 예외적으로 식사 시간 때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의 사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병역을 기피해서 들어 온 사람이었다. 솔직히 그 때 그 사람의 이유가 좀 의아스러웠다. 그냥 2년 남짓 군대 다녀오면 되는데 이 힘든 곳에 왜 왔나 가볍게 생각했었죠. 후에 알고 봤더니 종교적인 이유로 양심적 병역을 했던 거지요. 그 사람은 여호와 증인이었는데 총을 들면 안 된다는 교리를 어길 수 없어서 징역살이를 선택했던 것이죠. 그 이후 오태양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점차 개인의 양심적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 도발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한 사람의 양심적 거부라는 것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저는 이 계기를 통해서 제 인식을 바꾸게 되었고 다시 삶을 바라보고 사회를 해석해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 거죠. 한 개인의 어떤 인식이나 신념이 기존 체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거죠.

그런 사람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지율 스님이란 분이 있어요. 그 분은 청계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단식을 통해 저항을 표현해 왔죠. 자신의 의지를 통해 청계산에 살고 있는 도룡뇽, 다람쥐, 나무 등 그리고 우리들, 그 수많은 생명들을 지켜내기 위한 거였지요. 그리고 덧붙여 수경스님을 비롯하여 용산 재개발과 관련하여 다른 종교인들 3분이 오체투지를 했죠. 요즘 같은 세상에 촛불 시위로 사람들 잡혀가고 용산 참사 등 여러 가지를 보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서 과연 그 한 사람의 잘못인가, 스스로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우선 먼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에서부터 오체투지를 시작했다고 해요. 이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시민됨, 자기를 내면만을 되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와 모든 생명들을 인식하고 되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어떤 실천들이었어요.

앞에서 얘기했던 안전띠와 양심적 병역 거부 등 한 개인의 어떤 자유로부터 시작한 하나의 행동으로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 종종 묻지요. 여기에 답해 줄 수 있는 걸 찾아왔어요. 광화문 횡단보도 사진을 보면 세종로 4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는 원래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한 그 횡단보도는 처음엔 존재하지 않았어요. 근처에 지하보도가 있어 그쪽으로 다녔죠. 우리야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었겠느냐 상상해 봐요. 그래서 한 단체가 보행권을 보장해달라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자동차가 중심인 그 4거리 보행권에 대해 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자 횡단보도가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처음 보행권 조례를 만들고 나서 4군데 횡단보도가 다 생긴 게 아니라 한쪽만 생겼다.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는데 고맙다고, 서울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 그 횡단보도는 필요하다고 움직이기 시작해서 4개의 횡단보도가 생겼는데 이후 그 조례를 만들던 시민단체는 그 이슈에서는 빠지긴 했죠. 횡단보도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하나 더 이야기할게요. 혹시 가회동이나 삼청동 아나요? 삼청동이나 가회동에도 전시장과 아기자기한 카페나 작은 옷 가게와 음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 생기기 시작했을까요? 바로 횡단보도가 생기고 나서 부터이죠. 인사동에서 건너오는 횡단보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죠. 원래는 육교가 있었는데 저만치 돌아서 가는 수고로움을 견디는 사람들만이 그곳을 드나들 수 있었어요. 그 동네가 청와대가 있어 조용하고 전통 가옥들이 많아 데이트하기도 좋고 그런 공간이었는데 이전에는 그곳을 별로 찾지 않았지요. 인사동에서 건너오는 횡단보도가 생기면서부터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지요. 보행권이라고 생각하는 그 작은 변화가 도시를 바꾸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그 과정은 쉬운 게 아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서명도 받고 관계된 곳을 찾아가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계속 필요성에 대해 어필도 하고 청원도 넣고 그래서 만들게 된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주식회사를 예로 들면 수많은 소액 주주들이 기업의 지배 구조에 의해 바뀌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 소액 주주들이 기업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투명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감시도 하고 조언도 나누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지요. 솔직히 그런 움직임이 있어 희망적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지 의문이 한편으로 들기도 해요. 혹시 시사IN이라는 잡지 알고 있어요? 그 이전에는 시사저널이라는 시사 잡지였지요. 그 잡지에서 매 해마다 꼭 하는 기획 꼭지가 있는데 올 한 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여러분은 누구를 예상하고 있는가? 매 해 마다 변하지 않은 1위는 그 해 대통령이죠. 그나마 그 1위 또한 5년에 한 번씩 바뀌기는 하지요. 하지만 2위는 지난 몇 년 동안 바뀌지 않았는데 바로 이건희예요. 대통령 5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2위는 지난 몇 십 년동안 거의 변동 없었어요. 물론 3위도 변화가 없었는데 이제는 바뀔 수 밖에 없긴 하지만요.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었거든요.

시민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는 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창창하게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들이죠. 이럴 때 멀어 보이는 먼 인생과 삶을 생각할 때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할 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자기가 품은 생각의 크기가 바로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즉 시민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과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에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삶의 태도를 바꾸거나 좌우하지요.

 

시민이란 말에는 역사가 있다.

다시 되돌아가서 오늘은 요즘 시대 시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해요. 시민이란 말에는 역사가 있어요. 여기 와서 이 말을 한 것을 많이 후회했어요. 와서 보니 질문들이 참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대답하기란 참 어렵거든요. 여러분들이 미리 올려주신 질문에서도 반복되어 나온 말이지만 거주민, 시민이라는 말이 있어요. 전에는 이런 생각들이 없었지만 지금은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민은”이라고 쓰여 있지요. 모든 시작이 바로 “국민은”으로 비롯되는데 유럽은 헌법의 내용에 따라 주체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요. 모든 시민은, 모든 국민은, 모든 주체는... 등등으로 그 내용과 수위에 따라 다르게 주체가 표현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시민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거주민으로 살고 있지요. 특히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대체로 ‘국민’이라는 말 속에서 소외되지요. 한 공동체 안에서도 시민이라는 범주가 변화해 온 것이지요.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시민이 아니었지요. 이 사실을 두고 생각했을 때 느낌이 올 것이에요. 그때의 시민과 지금의 시민은 정의가 다른 것이지요.

그렇다면 시민의 개념들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부르조아’라고 하지요. 중세 때에 전제군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 혁명적이었던 사람들이에요. 나중에 이것은 자본가로 변화하지요. 그 시대에 부르조아는 시민권을 획득한 하지만 반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민중, 인민으로 불리어졌어요. 한국사회에서 시민이라는 개념은 국가와의 대립에서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되찾는 것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87년 6월 항쟁 이후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지요. 그 이전에도 물론 시민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거주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의 시민이라고 인식된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어요. 가까운 나라인 필리핀에서도 시민권을 위한 항쟁이 있었지요. 7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등장하게 되는데 시민으로서의 자기 권리 회복과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를 외쳤지요.

 

국가, 시장, 시민사회

그렇다면 시민이란 개념에 반하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헤겔은 절대자로서의 국가, 가정을 시민사회 영역으로 한정하며 구별했던 대표 주자이고, 이후에 시민사회 영역에 시장이라는 개념을 끌어와 마르크스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지요. 시장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을 중심으로 설명했지요. 그리고 이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 영역을 구분하기 시작한 사람이 토크빌과 하버마스가 등장하기 시작하지요. 이 세 영역은 권력의 크기에 따라 영역의 크기도 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경우 전두환 시대에는 시민사회의 영역이 줄어들었던 반면 김대중 정권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이 확대되었지요. 시민사회 영역은 이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권력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지요.

공동체 안에서의 지향 가치와 국가의 권력과 대결 구도가 이루어지겠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시민의 권리로 회복되는 것이지요. 그 사회의 금기나 룰에 도전하는 사람들, 즉 앞에서 말했던 양심적 병역거부나 보행권을 주장했던 사람들을 통해 한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자유나 권리로 이행하게 된 것이지요. 한 사람만을 위한 어떤 자유나 권리가 아니라 마땅히 사람이라면 모두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이를 위해 일부러 이슈화하기 위해 어기는 경우도 있어요. 캐나다에서의 한 시민운동은 난민의 권리를 위해 위법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이슈를 만든 적이 있어요. 난민의 지위가 한 시민사회 안에서 다른 시민들과 같은 합법적인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어기면서 문제 제기를 했지요. 이러한 많은 움직임들을 통해 시민, 시민권의 영역과 정의를 보다 풍성하게 하면서 변화로 이끌었지요. 즉 시민됨, 시민권이라는 내용이 풍요로워지고 축적되어 가는 것이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세계화, 정보화가 가져다 준 변화

요즘 시대를 가리켜 세계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지요. 이러한 세계화, 정보화가 가져다 준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든스라는 사람은 작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이 바로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했지요. 이러한 조직들의 존재는 국가에서 함부로 부정할 수 없고 단일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가가 시민사회를 통제했던 시대도 존재했었죠. 우리나라 80년대 반상회 혹시 기억하세요? 그 반상회가 바로 국가나 정부의 어떤 방침이 한 마을, 한 가정, 한 개인까지 속속들이 일률적으로 통제되고 전달되었던 한 사례이지요. 전 국민을 군대처럼 인식했던 것이지요. 또 쓰레기 분리수거는 어떤가요? 하루 아침에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정책이 반상회를 통해 일률적으로 전달되었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진행되었죠. 하지만 시민들은 곧바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실행했지만 국가는 쓰레기 분리수거 처리 시스템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지요. 하지만 현재는 시민들의 자율적 동의가 기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이처럼 시민의 인식과 의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의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갈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이들과 잘 소통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권력은 유지되기도 지속가으하지도 못하지요. 앞서 말했던 기든스가 말한 작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조직과 결합되지 않으면 한 사회는 지탱하기 힘들지요. 이러한 조직들과 협력하지 않고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통치는 오래 유지하기 힘들겠지요. 명박산성이나 국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일 같은 것은 결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게 되며 이는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변화시켜야 시대의 사회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요.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

혹시 성미산 마을 극장 아시나요? 맞아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적 자의식을 가지고 만든 마을 극장이지요. 서울 시내에 이 마을처럼 지내는 곳은 드물죠. 극장 하나 뚝딱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마을을 복원하면서 회복해가면서 오랜 시간에 거쳐 공동체 의식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 마을의 아이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공동체란 것을 경험하게 되고 마을의 의미를 몸소 생활을 통해 체득하게 되지요. 때문에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삶을 산 사람과 됨됨이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시민은 그냥 시민이 아니라 “어떤” 시민이냐가 중요하지요. 하자작업장의 7가지 약속을 예쁘게 봤어요.. 이것을 통해 하자작업장학교 친구들이 어떠한 시민이 되고자 하는지가 보여 졌어요. 제각각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나 사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때문에 어떤 시민인가는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원하는가에 따라 어떤 시민이 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 바로 사회를 만들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바로 역사 의식으로 이어지고 이는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질문을 계속 해가면서 살아가야 겠죠?

 

Q&A

Q 정부가 해야 될 일이란 무엇일까요?

A: 정부가 시민사회와 협력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예를 들어 그 시기에 사람들의 사회적 동의에 대한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이지만 꼭 필요한 것일 경우 자그마한 변화에 의해 그 다음의 변화가 오게 된다. (예: 광화문 횡단보도) 예전의 시위/운동의 경우는 무겁고 진지했다면, 촛불시위는 즐겁고 가벼운 것을 보면서 시대의 교체가 느껴졌고 시대의 인식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 국가에 대한 인식은 무섭고 두려우며 폭력적이었다면, 지금은 국가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될 때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헌법에 기재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시민권/시민사회의 범주와 영역은 변화하는 것이다.

 Q: 얼마 전 강진에서 개최된 '시민운동가 대회' 를 다녀온 후, '연대'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사 인터뷰를 읽어보니, 대동단결론이 아닌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MB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애매하다는 것과 같이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 가치관, 방식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일반민주주의를 되찾고보자'는 식의 획일적인 틀은 맞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각적으로 다가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각자 조금씩은 다른 방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여러 시민운동가들이 '연대'한다는 것은 어느 선까지라고 생각하시고 있으신 바가 있으신지? 또한 그 연대가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현 정부를 맞서 싸워야 할 상대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획일적인 시선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얻어낸 최소한의 민주주의의 틀 위에서 나뉘는 갈래들에서 또 다른 비전이나 대안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A: 대동단결이라고 하는 것이 왜 아니라고 생각하냐면 70년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현재는 다양하고 다른 생각들이 존재하기에 일률적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대항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같이 이야기했기에 함께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힘들다. 대동단결은 일률적인 생각으로 함께 움직임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진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되고 유지될 때에 연대는 가능해진다.

 Q: 시민운동가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움직이나요? - 자신을 시민이라고 하면 그 시민은 어디까지에 속해있는 시민인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 대한민국의 국민, 전세계에 속한 시민, 지구..? 시민운동가에게 자신이 속한 사회는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특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국가는 어떤 의미인지.

 A: 정부나 국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정부의 성격이 변하면서 의심되지 않았던 것이 의심되어지는 것, 이것이 변화이고 고정적이지 않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보기보다 긴밀하지 않다. 보행권에 있어서 서울시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로 갔었을 수도 있다. 먹는 것이 정치적인 문제인가? 라고 했을 때 이 문제가 전국을 들끓게 했을 때 이것은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정치는 왜 꼭 정당만이 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정당이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삼권분립/ 대통령제는 긴 역사 안에서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을 전형적으로 잘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방식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온한 것일까? 없던 제도를 만들어서 세상을 운영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이러한 생각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과 시도들이 쌓였을 때 제도도 바뀌고 변화도 하게 되는 것이다.

 Q: 지금까지는 내가 수많은 시민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나도 시민이면서) 나하고는 왠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낯설고 새삼스러운 단어가 되어있었어요. 주변에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사람들은 왜 '시민단체' 에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민단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궁금하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다른 점이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A: 시민운동가들은 개인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빠, 시민운동가, 세계시민 등... 시민운동가는 세상을 바꿔보는 일을 자기 직업으로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실현의 방식을 다르게 하는 사람.(돈을 잘 버는 것 이외에.)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확대를 가져오는 것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인생에 있어서 버려야할 것이 많았다. 때문에 운동가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차이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것을 해볼까 라는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엇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시민운동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운동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우리의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울 것이라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러한 확신이 있을 때에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뒤에 오는 것이다. 

Q: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의 모습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국가와 사회의 구조와 흐름은 굉장히 복잡하고 세밀한데 (이것이 세밀한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구조도 변화해왔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계속해서 발전해가고 있는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던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우리는 계속 발전되어지는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추구하며 고민하고, 움직이고, 노력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선생님 개인은 어떤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계신가요?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국가라고 하는 말은 중세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이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내 복에 웬 난리냐” 국가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 전쟁이나 난리가 나야 국가가 해주는 무언가가 생긴다는 의미. 투표권이라는 자기권리가 생겨나면서 내가 만든 국가라는 의식이 생겨났다. 우연에 의해서 생겨난 국가는 개개인들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진다.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의 모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동양의 경우 공자가 말했던 “한 제자가 물었다. 국가의 근본이 무엇인가요? 좋은 족병과 좋은 식과 좋은 민심이다.” 국민을 지켜줄 힘과 먹을 양식, 그리고 민심.(논어)

Q: 지금 현재가 이 시대의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가?

A: 시민운동가들이 어떤 것에 참여할 때 얼마나 자기 검열과 얼마만큼의 객관적인 이해를 가지고 활동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용산참사의 철거민들은 얼마나 정당한 요구와 자기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자기검열은 자기 확신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자기검열은 자기 확신과 신뢰가 필요하며 이것에는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