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들은 참 어떤 자세로 내가 바라봐야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가 어렵다. 리뷰쓰기도 어렵다.
한번 돈과 사회문제에 관련된 생각들을 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실타래 엉키듯 복잡해진다.
그 복잡함을 풀어내기가 힘든것 같다. 복잡함들을 좀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이런 문제에 쉽게 동요되는 편이다. 신문에서 돈에 관련된 사회문제들, 먹을게 없어서 굶어죽고 있는 사람들, 재개발에 대한 기사들을 보고 가끔씩 울기도 한다. 뉴스를 듣고 눈물이 고여있는 나 자신한테 ' 그래서 뭐, 울어서 어쩌겠다고. 따뜻한 집안에 앉아서 따뜻한 밥 먹으면서 아 저사람들 참 안됐다 그러면서 울면 뭐 어쩌라는건지 그래서 무언가 바뀌기는 하니 ' 라는 짜증을 퍼붓는다. 같은 세상,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인데 나는 집있고 돈버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안락한 삶을 살고 슬럼가에 태어난 아이는 당장 닥쳐오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니,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특히 내가 스스로 돈을 벌고 있지 않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오로지 부모덕으로 이런 편안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는게 나를 더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 중 한 부분이다.
어렸을 때 읽고 헉 나 완전 부자인편에 속하잖아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1990년쯤 나온 통계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니 아마 지금은 빈부격차가 더 진행되었을 것이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부 가운데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인 입니다.
또 74명이 39%를 차지하고 겨우 2%만을 20명이 나눠가졌습니다.
이 마을 모든 에너지 중 20명이 80%를 사용하고 있고 80명이 20%의 에너지를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75명은 먹을 양식을 비축해 놓았고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지만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합니다.
17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조차 없습니다.
음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중 7명 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마을 사람들 중 1명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지 못합니다.
분명히 여러 자료들에서 나오는 통계들을 보면 부유한 사람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은 부유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걸까. 다수의 권리보다 소수의 권리가 훨씬 더 인정받는다.
재개발, 뉴타운, 새로운 도시 설계 같은것들은 그곳에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만약 그들이 재 건축하려는 장소가 슬럼가가 아닌 부유하고, 학력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였다면 그들이 그렇게 쉽게 집과 거리를 뒤엎을 수 있었을까. 아마 온갓 서류들과 함께 자신의 권리와 보상을 주장해 꽤나 계획을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배척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힘이 없기 때문에? 무지하니깐? 못 배워 무식하고 빽도 없으니 막대해도 무서울게 없어서 그런것일까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이번 다큐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나 자신이 자꾸 구경꾼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그 문제들 속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깐.
영상속에서 나온 슬럼가의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은 예전에 인도여행을 갔었을 때 다 눈으로 직접 보았던 광경이였다.
이번에 영상을 보며 그때의 내가 그 아이들을 그저 인도의 풍경과 인상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어 충격이었다.
그냥 저 아이들은 원래 저렇고, 슬럼가는 슬럼가니깐 저렇고, 인도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저렇고,
저게 자연스러운 풍경이고, 그런거고..
원래 그렇다, 안타깝지만 저럴 수 밖에 없는거다. 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무섭다.
나는 슬럼가나 빈곤의 문제에 직접 직면해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사람의 입장이긴 하지만
적어도 구경꾼은 아니였으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내안에 있었으면 한다. 의문점들을 내 안에서 만들어가며 고민한다면 그래도 구경꾼에서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고.
아직도 부에 대한 나의 기준에 혼란스러움이 있다.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에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미 식량은 전 인류가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이 생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었다. 그런데 왜 못먹는 사람이 나오는 것일까. 아마 배분과 균형의 문제일 것이다.
환경에 대한것들은 생각하고 나서 그러면 내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세워 지킬 수 있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것들은 어떤 식으로 실천해야할지, 움직이고 행동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행동을 취하며 이 문제들을 바라보면 될까..?
우리 요즘 점심시간에 축구 자주 하죠? 축구는 아시다시피 상대방 골대에 공을 많이 넣으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르나 목적이 있다는 부분에서는 같습니다. 골대만 계속 수비하다보면 골은 결국 터지지 않을 것입니다. 골도 무조건 골대 쪽으로 공을 찬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돌적으로 나갈 때 골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라운드를 둘러보면서 같은 편에게 패스를 하여 빈틈을 노려 골을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시스트 역시 골을 넣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이야기가 갑자기 길어졌는데 -_-;; 문제도 축구처럼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쨌든 축구나 어떤 문제나 시도를 하는 것과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시도가 성공할지,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