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2:30 - 전원 서촌 집합 2:30 - 3:30 - 회의 : 당일 조사 동선 짜기, 우리가 정했던 주제에 대한 사유 나누기, 결과물 대강의 아웃라인 만들기 3:30 - 5:30 - 개인별 답사 : 아이/주님 = 집, 문, 마당 동녘 : Grand people, 화초/대파와 같은 녹색식물 램프 : 공방을 돌아다니며 '젊은 작업자들이 이 마을에 모여드는 것에 대한 생각'을 모으러 다님 무브 : 쓰레기 금지/경비구역 간판 모으기, 결과물 인트로에 들어갈 사진 모으기, 공방 인터뷰 오늘은 사주대낮부터 모였는데 시간이 모자르더군요. 당일 조사하러 다니면서 대다수 작업자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러 온답니다. 저희를 비롯한 다른 대학생 그룹도 똑같은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자신들이 진물이 난다고 하네요. 때문에 든 생각은 어떤 사실정보를 담은 잡지가 아닌, 우리들의 사유나 상상이 더 중심인 잡지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로 자료수집은 모두 마쳤습니다. 끊임없이 자료가 모자르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다음 주 부터는 되도록이면 결과물 작업에 중점을 더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 탐사를 다녀왔기 때문에, 개인별로 댓글을 다는 식으로 올리겠습니다. -------------------------------------------------------------------
1. 쓰레기 무단투기, 이제 그만! (부제 : 미화원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부탁, 제발) 통인시장을 중심으로 서촌 좌측에 위치한 마을 꼭대기까지 갔었을 때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3대가 망한다)라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표지판을 보았다. 어쩐지 마을이 깨끗하다 싶었던 이유는 군데군데 설치된 이 표지판 때문이다. 이 운동에는 효자동장을 비롯해 종로구장도 열을 올리는 듯 싶다. 다만 의심스러운 점은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일 수록 이 표지판들이 보이는 간격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아랫쪽에 위치한 집들은 이런 표지판이 없었는데도 깨끗한 편이었는데. 뭘까. 크고 비싼 집일수록 이런 사소한 문제들에 더 예민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정말 큰 집일수록 좋은 집인걸까?
(월 최고 80만원까지 보상, 신고를 하면 돈까지 준단다. 서로 경계하게 만드는 경고문)
2. 경비구역
방범 신고 시스템이 자리잡은 집들은 박노수 고택을 비롯한, 달동네 부근에 위치한 커다란 집들이었다. 올라갈 수록 점점 많아지는 갯수들. 3. 문화작업자들
[1] Helena
[2]RIZSOAP Q. 수소문을 통해 ‘문화놀이터’에 대해 들었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지요? A. 저희는 마을공동체 ‘품애’에 소속되어 있어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 속에서 무언가를 하자는 것이예요. 현재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효자동 프로젝트가 있다. 아기엄마프로젝트라는 것 등에 다른 프로젝트들도 있어요.
말하자면 그런거죠. 우리 스스로 마을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뭘까?라고 고민을 했어요. 이 지역에는 작가들도 많이 살고, 공방들도 많고,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뭔가를 해보자는 거예요. 그런데 홍대 프리마켓과는 조금 달라요. 우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의 그룹은 아니예요. 그걸 지향하지도 않구요. 하지만 그게 매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예요. 그런 분들이 할 수 있는 핸드메이드 수작업들이 리사이클이고 제가 하는 것도 친환경에 가까운 것들이다 보니 가치관들이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공유했던 가치관들을 알리고, 사람들을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하고 이왕이면 우리끼리 놀지 말고 다 같이 놀자는 거예요. 우리는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주민들도 작업자로 생각을 해요.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들면 똑같이 작업의 일환이 되는 거고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동네의 작가를 발굴하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벼룩시장이었구요. 그것에 문화놀이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우리가 하려고 했었던 것이 ‘놀이터’이기 때문이에요. 대신에 다 같이 놀자, 우리끼리 재미있게. 외부에 가서 무언가를 얻어오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게 아니라 ‘있는 것을 끄집어내자’라는 거예요. 예쁜 동네를 만들자, 이런 취지는 절대 아니거든요? 그냥 있는 것을 내보이자. 그런 것을 내보였을 때 우리는 살아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거고, (지역에 대한 애착이야 다른 동네에 비해서 워낙 크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더 느낄 수 있을거고, 단순히 우리를 ‘아 저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인식에서는 좀 벗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어요.
초기에는 작가그룹으로 시작은 되었는데 지금 지향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확대된거죠.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그들이 원하는게 뭔지,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다보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도 일치점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영화같은 경우에도 다른 곳을 섭외한 적은 없어요. 이 마을에 ‘인디스토리’가 있거든요. 독립영화 배급사. 처음에는 그 곳으로 가서 문의를 했고, 인디스토리에서도 아주 호의적으로 여러 부분을 지원해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목표하는 대상이 어린 아이들과 가족이었기 때문에 인디영화로는 포괄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이왕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 동네 ‘명필름’이 있는거죠. 그래서 문을 두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지역에서 내가 이 정도 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 실제 상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수 있게 된거예요. 그래서 이틀동안 한 600명 정도 주민들이 영화를 보셨어요. 그것도 자치회관이나 여기 평일에는 제공되지 않는 교회, 이런 곳들을 빌려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거죠. 영화제는 기획을 또 할꺼예요. 앞으로는 인디영화 쪽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겠죠?
문화라는 것이 되게 포괄적인 것 같으면서도 추상적인 것 같더라구요. 즐길 수 있고, 뭔가 생활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문화라고 친다면 내가 그냥 방안에 썩혀놓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물물교환을 하는 것 자체도 문화예술, 그런 것이고 뭔가 이름있는 작가의 그림 전시를 본다던가 산다던가 하는 것도 문화예술일 수 있는데 동네에 맞는 문화를 공유하자는거예요. 그 정도죠. Q. 주민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인 것 같네요. A. 네, 아직까지는 좋으신 것 같구요. 쟤들이 맨날 보던 사진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네? 누구 엄마네?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누군가 들어와서 여기를 뭔가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것에는 호의적인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뭔가 전문가 집단이라는 던가 그런 것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고 작업을 하더라도 같이 하려고 하구요. 그래서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열심히 한 것을 선보이듯이 와서 보세요 구경하세요 라는 의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아요. Q. 이쪽 지역에는 어떤 경로로 들어오시게 된 것인가요? A. 저희 남편이 이쪽지역 토박이예요. 원래부터 이 지역은 알고있었고, 이쪽에 집이 나지 않아서 2년을 기다렸어요. 그런다음에 겨우 입주하게 된거죠. Q. 이 마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주민들의 관심은 많지만 간섭이 심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지만 항상 주시한다는 점이 가장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업하기에도 좋구요. 때문에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거죠. 이곳이 상업공간인 것은 맞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이익을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공방들이 들어오는 것이 (상업적인 면에서 보면 똑같은 수도 있겠지만)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는 것 보다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저희들은 해요. 그게 얼마나 성공적으로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거예요. Q. 사실은 저희가 대단한 것을 하는게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것'을 이해하고 도시 속 마을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을 하는 것이거든요.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을 보면서 이 마을을 탐색하고 있어요. 저도 서촌이 대단하게 격이 다른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안의 주민들과 작업자들이 맺는 관계, 예를 들어서 사랑방에 오가면서 소식을 주고받고 물건을 나누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을'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아요. 저희 팀 잡지 가제가 '여기는 아직 하늘이 보이는 동네다'인데요. 서촌이 한옥개발지역, 고층빌딩건설제한지역이라는 공간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내세운 것도 있지만 그런 장소에서 사는 주민들의 관계가 빡빡하지 않고, 야박하지 않고 서로 둥글게 잘 지내며 살아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제목을 짓기도 했어요. 이 공간을 조사할수록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그 안에 사시는 분들은 어떨까?라는 질문이 계속 드는거죠. 외부인이니까 별달리 알 도리가 없지요. A. 현재 이 마을이 '세종마을'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아요. 서촌이 갑자기 세종마을로 바뀌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드는거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촌'이라고 불리우고 있어요. 서촌에 오는거지, 세종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렇게 서촌으로 불려지는데 작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문화작업을 벌이고, 서촌이 계속 서촌으로 불려지게 될 명분을 계속 제공하는 역할, 그런거죠.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동네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설령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아서 하기 때문에 계속 이 프로젝트를 잇고 있는거죠. 대대로 프로젝트를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요. 그리고 우리 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성 없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희는 주민과의 소소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서촌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으신가요? A. 지금 이대로 가면 좋겠어요. ![]()
2011.11.10 02:53:51
램프:서촌을 돌아다니면서 공방을 조사하고 젋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이유같은것을 조사
서촌에 공방에서 일하시는 작업자분들을 만나보고 인터뷰나 여기에 오는 젋은분들의 생각을 물어봤는데 대분분 상당히 바쁘셔서 많은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젋으신분들의 생각은 아무래도 이곳이 개발이 잘 않되는 곳이라 변화가 많이 없을 것 같아서 오셧다는분들과 그냥 좋아서 옛날에 살던곳과 비슷해서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노년층분들은 아무래도 별상관이 없다라고 하시는분이 많으셧다.개발이되면 좋겠냐 아니면 지금이대로 보존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면 좋겠냐고 물어 보았는데 상관없다는분들이 대부분이 였다.그리고 서촌에 주거하시는 청년층분들은 의외로 보존하는것을 선호하시고 서촌에 주거하는 이유도 많이 변하지 않을것같다거나 옛날모습이 잘보전되어 있어서라는분들이 많이 있었다.그리고 이곳이 옛날에는 치안이 엄청좋았고 엄격했다고한다.지금은 많이 약화된거지만 이마을에서 치안이나 양심을 요구하는 포스터같은것이 많이 붙어져있는걸로 보아서 이곳에서는 치안유지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탐사를 마친후 생각했던것보다 정보도 많이 얻지못하고 작업자분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시지 않아서 많은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몇가지 느낀것은 파면팔수록 끝없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11.10 23:09:51
![]()
2011.11.10 22:04:18
11/7의 탐사 '집집의 식물들', 'Grand person'을 찾아다녔습니다. 집집의 식물들 서촌의 경우는 빌딩의 높이 제한과 개발 제한이 청와대와 옛 가옥의 보존지구 등의 이유로 존재하고 아파트가 아닌 지상주택이나 작은 빌라들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작은 동네이고 골목길 사이로 오밀조밀 나있는 동네이기 때문에 더욱 문 앞이라든가, 대문 위, 마당, 짚 앞 등의 공간을 적극 활용해서 화초나, 나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고추, 배추, 부추, 대파, 상추 등의 농작물까지 다양하게 길러지고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물어보거나 관찰해보니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키우기도 하는데 그것이 경제적인 이익이기도 한 사람도 있었고, 자기 집을 좀 더 화사하게 꾸밀 수 있는 방법으로 꽃과 덩쿨 식물을 화단에 심은 사람도 있었고 기르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죠. 물론 어떤 사람들은 거의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굉장히 시크하게 집 앞에 배추 하나만 덜렁 자라있는 화분을 놓아두기도 합니다(지푸라기로 묶어주는 건 그러면서 잊지 않으셨다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기본적으로 빌라 단지에도 화단은 기본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작은 개인의 가게나, 집 구석구석에 보이는 꽃들과 나무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용적으로 먹을 수 있는 작물을 많은 화분에 키우고 있는 경우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하게 쌈채소 등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저도 얼마전에 배운건데, 대파를 보통 우리는 마트에서 사다가 먹잖아요? 그런데 화분에 대파를 키워서 필요할 때마다 잘라쓰고 뿌리만 남기면 다시 자라나서 리필할 수 있다는 거에요. 요즘 도시농업이 떠오르면서 여러가지 노하우를 포스팅하는 블로거들도 있던데, 여기는 딱히 요즘에 붐이 일어서 하고 있다기보다는 예전부터 그냥 틈새에다가 해왔기 때문에 그냥 쭈욱 하고 있다는, 어떤 무심함과 정겨움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풍경이 재미있어 보입니다. 아파트에서 베란다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의 공간이 쭈욱 수직으로 쌓여져있는 거지만 여기서의 풍경은 그리 삭막한 느낌도 아니면서 횡적으로 같은 시점의 골목길 사이마다 각각 집의 식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그 풍경이 정감이 있다는. 지난 주부터 서촌에 왔을 때 보여지는 마을 주민들의 정서와 마을의 생김새. 다른 마을에 너무 안가봐서 제가 서촌만 이렇다고 생각하는지 약간 걱정도 들었습니다만,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개하는게 좋을지는 조금 이야기하고 싶네요... Grand person 그랜드 파더들도 만나보려 많이 애쓰고 있지만...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을 뿐더러 인터뷰도 수줍음에 거의 다 거부하시네요ㅠㅠㅠ그래서 그랜드마더들만 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기본 질문을 하나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서촌에 들어온 젊은이들에게 왜 서촌을 찾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것이 하나고 주민분들께 젊은이들이 서촌을 찾는 것 같은지를 물어보는, 마을의 매력이 무엇인지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제 탐사에서는 젊은 사람들은 못만나고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서촌에 들어와서 카페나 공방 같은 것 하면서 터를 잡는데 왜 여기로 오는 것 같으세요? 이 마을의 매력이 뭘까요?"라고 묻자 대부분 대답은 잘 모르겠다든가, 관심없다 혹은 한옥이나 옛날 동네의 모습 등 젊은 사람들 보기에 특이하게 보이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여기가 청와대 근처라 치안이 좋아 도둑도 없고 수준이 높은 동네라고 대답해주시더라고요. 막상 서촌에서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으신걸까...어떤 분은 여기 매력없어! 라고 하시기도(허허) 어떤 할머님을 만나고 한시간 가량을 이야기했었는데, 그분은 연세가 아흔살이신데 스무살에 여기오셔서 거의 70년을 서촌에서 살아오셨다고 하셨어요. 통인시장 들어가는 오거리에서 위로 올라가면 영광통닭이 있는 2층짜리 건물이 있고 그 옆에 주르르 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있는데, 예전에 그 건물들이 다 할머니 거였는데 선거운동과 사업의 실패로 한채만 남아서 통닭집에 세를 내주고 자신은 2층에 살고 계시다는 이야기해주셨고 매일 그 앞에 나와서 앉아계시는데 저랑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많은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나누시더라는. 중간에 한분이 더 오셔서 셋이 이야기 나누었는데 제 질문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또 다른 트렌디한 서촌을 만든 데에는 수십년간 삶을 이 자리에서 꾸려온, 보존과 동시에 변화를 지켜보신 분들이 크게 자리잡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패션도 제 취재 소재였으므로 사진찍어도 되냐 여쭸더니 아들과의 통화 후 곤란하다고 하시던ㅠㅠ그래서 제대로 많이 찍지는 못해서 아쉽네요. 사진은 사이즈 줄이고 올릴게요
2011.11.10 22:31:04
![]()
|
|||||||||||||||||||
주님+아이
마저 조사하지 못한 미니어처를 조사하고, 문들을 더 수집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출바알~
시작 전 가보기로 결정한 곳들(미니어처)
-대오서점
-경유소
-신문사-세계일보, 헤럴드경제
-드림포스(정기간행물직배소)
그러나, 대오서점은 사람이 없었고 경유소는 문이 닫혀있었다.
드림포스는 문 열기도 전에 퇴짜를 맞았다.
So 세계일보와 헤럴드경제, 그리고 통인시장 위쪽에 있는 '형제이발관'. 이 3곳을 다녀왔다.
세계일보 : 20년 전부터 해왔다. 본사에서 가져온 것을 돌리는 보급소.
헤럴드경제 : 마찬가지로 본사에서 작업한 것을 배달만 한다.
인쇄기같은 좀 큰 기계가 있고, 전에 거기서 아저씨들이 작업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여쭈어봤더니,
가끔 광고지를 신문과 하나로 합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신문을 직접 찍어내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40년 정도 됐다.
예전과 지금 달라진 것_옛날엔 걸어서 배달했고 그 다음엔 자전거를 이용, 요즘엔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_최근 인터넷사용이 많아지면서 받아보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줄었다는 것.
형제이발관 : 현재 운영하고 계신 분은 20년동안 하고 계시지만, 건물 자체는 일제시대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왜 이 가게로 오셨냐는 질문에, 이런 곳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 가게가 좋았다고 하셨다.
손님은 늘 오시던 손님. 주로 보수층, 나이 있으신 분들.
왜 젊은 작업자들이 서촌에 많이 오는 것 같냐고 여쭈어보았다. 서촌에서 카페하는 사람들을 예로 드시면서, 카 페는 주로 인사동에 많았는데, 인사동에 점점 술집들이 생기게 되어 원래의 분위기와 달라졌다. 그러다 서촌에 많은 한옥이나 벽돌집, 보존되어있는 것들이 만들어낸 서촌만의 분위기에 이끌려 사람들이 오게된다.
형제이발관은 우리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찍어가고, 인터뷰해갔다고 한다.
또 서촌과 세종마을이라는 이 마을의 명칭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하였다.
세종마을이라는 명칭은 올 봄에 세종대왕이 태어난 이곳을 세종마을 선포식을 하며 공식명칭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서촌이라고 알고있고, 또 그 이름이 오래전부터 불리던 이름이라, 세 종마을이라는 새 명칭은 오히려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의견이셨다.
_탐사 뒤
우리가 이때가지 '미니어처'라고 카테고리 지었던 것이 미니어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신문보급소는 서촌이 아닌 어디든 다 규모가 작고 보급만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유보급소도 마찬가지.
그러나 서촌은 높은 건물이 못 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이런 작은 규모의 보급소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미니어처 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분류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얘기해봅시다.
문 사진은 이때까지 찍어놓았던 것 총 합해서 정리해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