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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지난 주 금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해남으로 고정희 추모 여행 (=고정희 문학기행, =고정희 청소년 백일장)을 갔다. 조한혜정 교수와 또 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 (2박 3일 동안 같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 으으)들과 같은 한국 전쟁 이후의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여성 인권 운동을 치열하게 한 시인이다. 1991년에 지리산에서 실족사를 한 후에 故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시작한 여행이 벌써 10년도 넘었다. 첫째날의 강의에서 선생님께서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한 말씀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내 심장에 박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가부장적이고 남성주의의 사회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본 사회는 새로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것이다.", "고대 그리스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남자가 모이면 전쟁이 일어나지만, 여자가 모이면 평화가 된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평화로운 여성만이 있는게 아닌 폭력적인 여성도 있고, 평화로운 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하셨다. 그 후에 나온 설명이 가장 중요했는데, 집중이 흐려져서 제대로 못들었다... 으으 (누가 들었으면 알려주세요! ㅠㅠㅠ ) 불과 2년 전만해도 여성주의 하면 YWCA이나 여성부의 가요, 애니메이션 검열 같은 부정적인것만 생각이 났는데. 뭐 앞에 언급했던 단체들의 정체성은 비뚤어진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여성 기득권 꼰대들이라고 정의하면 되겠다! 여행을 갔다온 3일 후에 고정희 추모여행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1900년 초에 미국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내부 사회에서 일어난 여성의 인권 탄압에 대해 이야기를 한 앨리스 워커의 소설 원작으로 만든 영화 "The Color purple"를 저녁에 시청 했다. 흑인 인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기에, 흑인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괴로운 삶을 꾸리는 샐리의 일대기를 그렸다. 가해자이자 가부장적인 사고에 찌든 남편이 샐리를 폭행했었을 때 너무나 공감이 가서 불쾌했다. 지금 사회는 여성들의 인권이 여권 신장 운동을 시작했을 때 비해서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이 영화와 지금의 현실을 대치해보면서 아직 한국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고 느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성립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시청하고 나서 집에 갈 때 애들이 "소름끼쳤다", "하자에서 본 영화 중 제일 최고였다", 라고 감탄을 하면서 느낀 점을 술술술 대화로 풀어냈다. 애들이 느꼈던 감정들 중 공감가는게 많았다. 잘 만들어진 영화란 이런 걸까 생각을 하며... "The color purple"의 여운을 이어가기 위해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가 쓴 또 다른 에세이를 바탕으로 만든 55분짜리 다큐 영화인 "전사의 징표"를 봤다. 몇 년만에 비디오로 영상을 보는건가! 하면서 그저께 봤던 영화에 비해 음질과 화질이 확연히 나빴지만 밀려오는 아침 잠을 꾹꾹 참아가면서 봤다. 55분동안 영화를 시청하고 리뷰를 하기 위해 모였지만, 한동안 침묵에 쌓였다. 할례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나서 쉬는 시간인 10분 동안 생각하고 대답하기엔 어렵고 민감했을 것이다. 예전에 신문이나 TV같은데에서 "아프리카 문화에는 여성의 성기를 봉합하는 할례라는 관습이 있다."정도로만 인식되었다. 머리가 크고 난 후 본 영화에서의 할례는 여성들은 성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미성숙하고 순결해야하는 존재라고 강요를 하는 가부장적인 사고가 잘 나타난 끔찍한 제도였다. 놀랍게도 이를 시행하는 주체가 "어른" 여성이였다.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무력으로 손끝 하나도 안대고 조선인들이 조선인들을 괴롭히게 시킨거와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 히옥스가 얘기할 때는 당연히 여성의 몸은 남성이 대면 안되는거 아닌가하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예시를 듣고 곱씹어 보니 소름끼쳤다.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폭력을 가하고 당하다니.. 인간의 잔인함을 생각하며 씁쓸함을 느꼈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손을 번영하는데 남성과 더불어 없으면 안 될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자세히 묘사를 못하겠다.) 남성과 더불어 여성 또한 소중하고 당연히 권리를 존중 받아야할 존재이다. 여성이 없으면 남성은 없는거고, 여성이 불행하면 세상의 반 이상이 불행한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꼼짝 할 수 밖에 없는 물리적인 힘의 차이 등등으로 인해(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여성들은 힘의 논리에 대해 저항을 하고 싶어도 곧 저지당하고 공포 속에서 불행한 하루를 보냈어야했다. 이 문제는 노동자와 고용주의 불평등한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자, 성소수자, 청소년 등의 약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여성도 아프리칸 아메리카들처럼 예전보다 인권이 신장했지만 아직도 약자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소수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 즐겁고 유쾌한 투쟁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히옥스가 3년 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가부장적인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해 유명한 철학자들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미스테리라고 언급을 했다. 그 미스테리를 푸는데 "이슬람 여성의 이해: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라는 책이 실마리가 되어줄 것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3년 전에 공부다운 공부(?)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접했던 책이다.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 인권이 가장 탄압받고 있는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책에서는 처음에 문명이 시작할 때는 이슬람 문화권에의 여성은 오히려 남성보다 더 존중받고 중요한 존재였다고 말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터라 기억이 남지 않지만, 그 후로 어떻게 이 상황이 역전되어가는지, 다시 책을 읽으면서 곱씹어봐야 겠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인 할례를 보고 불결하고 미개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가부장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지 않은 문화권은 손에 꼽을 것이다. 할례는 다른 가부장적인 전통 보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부담과 고통이 심하다. 악습과 문화를 구분하는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문화에 대한 나의 이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를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이라면 이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과 행하는 사람들간의 평등 여부와 행복도의 정도이다. 보편적인 가치로 판단한 것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도 들어갔다. 이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렵다. 이 논쟁을 해결할 좋은 힌트는 이 문화를 누리는 당사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할례를 받으면 교육을 더이상 받지 못한다. 교육 수준이 높을 수록 할례를 거부하게 된단다. "The Purple Color" 영화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어린 여자애가 얼굴에 상징을 새기는 부분과 샐리가 미스터를 면도하는데 칼로 목을 찔러 죽이고 싶은 살인 충동을 느끼는 장면이 오버랩이 된다. 이 장면이 전사의 징표에서도 언급이 된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할례를 한 것을 전사의 징표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었을까? 그리고 할례에 대해 인터뷰를 당한 사람은 모두 여자들이였다. 그 시대에는 남성에게도 여자의 할례에 대해 모두 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였을까? 벌써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넘었고 아직도 할례는 사회에서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여성 할례 철폐의 날이 지정되어 해가 넘어 갈 수록 많은 여성들이 할례 철폐 운동을 지지하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 할례를 하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위해서 오늘도 직접 여성들은 수많은 사회와 할례 찬성론자들의 위협 속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움직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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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08:00:29
'으헉'은 무슨... :) "마음이 반응해서" 글을 썼다니까 참 좋았는 걸. 그런데 "기득권 꼰대"라는 표현은 다른 식으로는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 한 번 표현을 달리 생각해보면. 무당할머니의 역할을 생각하면 확실히 소름끼치기도 하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말이 있지만 동시에 여성들의 '자매애'란 것도 존재하지. 적으로서의 여성은 충실하게 '기능'으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니? 그 무당할머니도, 혹은 시어머니-며느리-시누이와 같은 그런 이름들도 그것은 여성이 아니라, 무당이거나 시어머니거나 시누이거나 그런 거지. 그리고 그런 때에 '여성'은 그런 기능이름들을 가지게 될 후보들일 뿐 인간 존재로서는 아무 다른 의미는 없을 것이고. (인간이 아니라, '여자'.) (예를 들어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찌기 정의를 해두었던 적이 있지만 그 옆에 조그맣게 붙여놓는 글이란 '그런데 여자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신체적인(비합리 혹은 몰합리하다는 의미로) 존재다'라고 한다는 것. 여성의 영혼에는 불순한 요소가 들어있고(플라톤), 그래서 생리하고 아기 낳는 일에 적합하지 철학하고 정치하고 과학하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둥... 그런 얘기들을 별 근거도 없이 마구 퍼뜨려 놓기도 했다니까...) 그런데 자매애를 거론할 때의 여성은 훨씬 존재 자체를 지칭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기능이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너' 혹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그리고 그들의 우정. 셕 에이벌리가 씰리에게 '넌 그러면 처녀로구나'하는 장면 있잖아. 씰리는 아기를 두 번이나 낳았고, 아버지와 미스터라는 두 남자와 성교를 해야했지만 셕은 씰리에게 '너는 처녀'라고 말해 주는 것. 어째서? 씰리는 그때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고 웃고 거울에 그 얼굴을 비춰보지 셕은 '거봐 예쁘잖아'라고 말해주고 (이 장면은 나중에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영화에도 잠시 나와. 이를 드러내고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 남자들 품평의 대상이거나, 볼 일 보는 데가 아니라...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는 김여진이 거울 위에 서서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네...) 여성할례는 여성은 성적인 즐거움, 쾌감을 느껴서는 안 되는 존재로 통제하게 되는 수단이지. 그래서 질을 잘라버리는 것이고 또 중세의 서양여자들은 남편이 전쟁에라도 나가면 정조대를 차기도 했다는 군. 오줌이나 생리혈이 통과하는 작은 구멍만 뚫려있는 강철속옷. 여성의 성기가 성적인 즐거움의 장소가 아니라 남자의 성기가 삽입되고 남자의 성적 쾌감에 봉사하거나 아니면 그 남자의 아기가 나오는 통로로만 있어야 한다는 여성의 몸에 대한 강력한 통제의식이 전통가부장중심사회에서 많이 발견 된다고 해. 그래서 래디컬한 여성주의자들 중에는 "모든 삽입은 강간"(every penetration is a rape)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성교는 삽입이 아니라 성적인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너무 삽입에만 집중하다보면, (온과 마루랑 잠깐 얘기했었는데) 도대체가 '처녀막'이라는 이상한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여성의 신체부위까지 등장한다는 것. 아무튼 가장 경쾌한 장면은 씰리의 몸빼바지 아니니? 여성도 남성도 마른 사람도 덩치 큰 사람도 흑인도 백인도 누가 입어도 어울리는 요상한 바지. 당시의 페미니스트들이 가지고 싶었던 건 그런 바지였을 거야. 그런 건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물론 지금은 그런 공평무사한 평등 바지보다는 (그런 건 참 얻어입기 불가능할 거라는 자각과 더불어) (혹은 그런 건 너무 '개성'에 대한 폭력이 아닐까 하는 배려심과 세심함으로) 누구나 각자 생긴대로 살자 하나님 아버지에게 벌 받고 천둥치고 그래서 정신이 퍼뜩! 들자마자 잎사귀라도 주워서 자신의 성기를 가려야 했던 아담과 이브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 바지든 치마든 그런 옷으로 자신을 가리지 않고 생긴대로 살아도 거리낌 없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지만서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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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