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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첨부파일은 여행 내내 읽었을 자료집, 고정희의 시들. 이번 추모여행은 최근 몇 년간 고정희의 기일, 고정희를 만나고, 고정희의 친구들을 만나고 또 고정희의 시를 읽으며, 고정희를 통해 엮인 우리의 친구들과 또 재회하는 날이었고 하자밖에서 느릿한 보리밭의 시간을 느끼며 포잇트리 행사도 하고 올해는 문학상 참가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고정희를 만나는데 우리 식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고글리들이 있었고 늦봄학교에는 인사 못했고 우리의 여행 친구들은 많이 초대하지 못했고 그나마 여전히 이 여행에 올해도 역시 동행해주었던 올리브와 왕양이 있었는데 함께 포잇트리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아무튼 죽돌들은 구체적으로 맡겨진 역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문학상참가자로서 혹은 프로그램의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면서 하자작업장학교 6월의 시인마을로의 여행을 마쳤네요 하자작업장학교의 일정 속에서 이런 문학상/추모여행을 관찰하고 돕고 또 음미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궁금하였고 언제든 학교의 일정 안에서 다른 그룹들을 만나게 될 때에는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에만 몰입하지 않고, 타인의 상태를 관찰하고 읽으면서, 타인에게 필요한 관계/도움의 형식을 찾아내보려고 하는 것 그렇게 구로코로서 움직이는 '감'을 갖는 것, 그때그때 할 일과 역할을 찾는 것 그런 연습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문학상 참가자들은 (예선이든, 본선이든) 시인의 언어에 대해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언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인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기대하기도 했구요... 이 마을에서 만나게 되었던 '단골'의 친구들 단번에 격정적으로 만나지는 않았어도 지난 십년의 여행이 있는 동안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해남의 지형, 길의 모양들, 산허리 밭둑 그런 이미지들 그리고 일일이 이름 알지 못해도 저절로 반갑게 인사하게 되는 마을 사람들 일 년에 한 번은 명단을 떠올려보고 그간의 동정을 물어보게 되는 동행친구들 꺼내보는 시집, 찾아보는 시편, 소리내어 읽어보는 한 두 편의 시들 그리고 노래들, 고정희. 졸업생들이나 담임들을 제외하면 죽돌들에게는 첫 여행, 첫 인연이 되었던 것 같은데 한 해 두 해 지날 때 여러분들도 이 여행의 동행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고정희를 빙자해 시와 죽음과 사랑과 우정과 역사와 마을을 만나는 여행. (개인적인 이유로... 매 해, 나는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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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05:32:48
벗아 처음가보는 고정희기행이였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던거같지만 뭔가 고정희시인이라는 타이틀에 중심이 많이 되지않았던거같아요.그래도 기행동안 재밌는일이 많이있었던거 같은데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만큼 다가서지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이남아요. 관계를 맺는거에서 이렇게 자신감이 없다는게 너무 소심하다고느끼고 먼저 참가자들과 많이 친해진 죽돌들이 부러웠어요. 기행동안 고정희 시인에게는 이런친구 들이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을까? 나는 그런친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관계하니까 첫날에 들었던 누가더 우월하고 그런게 아닌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사회를 원했다 하셨는데 나는 이정도면 많이좋아진게 아닌가 하면서 만족은 아니지만 생각을 많이 하지않고 있었는데 얘기를 듣고보니까 너무 무신경했던것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모로 생각해볼 점들이 많게 된것같아요.(간지들의 하루 다못본게 아쉬워요!) 시인이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든시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말을 함축적으로 쓰고 말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쓰고 그게 의미전달이 되는게 저한테는 신기하게 느껴져요. 스텝으로서의 역활이 저는 개인적으로 뭐를 해야할지를 몰랐는데 처음에는 역활이 주어지겠지 하면서 생각없이있다가 나중에는 아예생각을 못하고있었어요. 오고난후에 구로코로서의 죽돌이라고 했을때 다시 생각을 해보게된것 같은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구로코와 스텝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의 차이와 역활을 제대로 이해하고 찾지못하고해서 역활을 잘 수행하지못하고 생각이짧았던거같아요.
2012.06.13 05:43:15
신상
2012.06.13 05:48:30
푸른
2012.06.13 05:50:16
까르 이번 여행에서는 너무 멀기만 했던 시와 조금은 가까워졌고, ‘사람이 죽는다.’라는 것은 숨이 멈추고 죽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때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외로 이번 여행에서 공연워크숍, 스틱연습, 공연자에 대한 것들도 더 많이 생각 할 수 있었고, 하자사람들과 리뷰이야기들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을 하면서 평소에는 멀기만 했던 거리들이 가까워 진 것 같았고 각 다른 지방의 친구들을 사귀고 만날 수 있었다. 다 중요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행가서는 고정희에 대해 많고 깊은 생각은 하지 못 했던 것 같다.그나마 고정희의 친구 세분에게 재미있는 강의(?)를 들어서 고정희에 대해 흐름으로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있고 그 주위를 학생들이 둘러앉아서 듣고있는 모습이 좋았고, 매년 이 시간은 가져갔으면 좋겠다. 시는 자신의 언어가 확실하게 보이는 글 같다. 그래서 나는 시가 어렵고 힘들다. 시인 각각의 언어를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고, 그렇게 이해를 못 한 채 시를 읽으면 줄줄이 알 수 없는 말들만 쓰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도도, 의미도 모르겠는 글들을 읽는 것이 재미있을리가! 나와 비슷한 언어를 쓰시는 시인들도 가끔가다 있지만, 고정희는 낯선 단어나 용어들이 많았다. 저기서 의미하는 팬지꽃은? 패랭이꽃은? 곤륜산은? 왜 마지막엔 강물이 나오는 거지? 등등 보는 내내 파악할 수없는 구절들이 많았다. 고정희는 어떤 환경에서, 가정에서, 시대에서 살았길래 저런 단어들을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읽는 내내 들었다(식물이나 꽃에 관한 것은 지리산에서 배우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번 고정희를 준비하며, 하나도 모르던 고정희를 알기위해 시집을 꺼내어 읽기 시작하면서, ‘시’라는 것에 대한 생각은 살을 더 붙쳤다. 시가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 역시나 술술 읽히는 소설 같은 것도 아니라는 것, 이야기 같은 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시를 많이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덧붙여 나는 고정희 하면 바로 나오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번에 많이 모르고 간 것 같다. 가기 전엔 ‘광주민주화운동’이나 ‘고정희’‘시’같은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공부를 했으니, 이제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가기 전 궁금했던 것이 ‘그 곳에 오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올지(시나 고정희나 대학입시 등등), 매번 대안교육적인 사고로 보는 문학이 아닌 일반교육에 몸담고 있는 그들이 생각하는 문학의 길은 어떤 것일지, 우리와 그들과 고정희를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시인의 언어와 나의 언어.’ 라는 것 크게 4가지가 있었고 고정희 추모여행, 문학상의 시스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메모해놓은 것에는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이런 궁금증들을 풀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하고자 이번 여행을 갔었다. 그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아쉽게도 ‘고정희’보다는 ‘문학상’에 대한 생각으로 많이 왔었다. 내가 물어봤을 때 그들은 ‘이제 고3이고 불안해서’라고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대학을 위해, 미래를 위해 온 것 같았다. 아, 그중 한 명은 ‘고글리’라는 것에 흥미를 느껴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하자가 아닌 방법으로 이곳에 참여를 할 때, 고정희 보다는 ‘백일장’이라는 것과 ‘추모여행’이 신기하고 기대가 돼서 신청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은 두 번째 온 사람들이다. 다시 여기를 찾은 그 들은 고정희가 좋아서도 아니고, 문학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예전에 각자 조금씩 다른 이유로 왔다가 해보니 공연도 좋고, 고정희를 통해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노는 것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그렇게 인연과 추억들을 가져가는 것이 좋아서, 그래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초기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사람들이 의도한 것과는 조금 달라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참가자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시를 만나고, 문학을 만나고, 고정희를 만나고, 고정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는 시집을 다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보고, 누군가는 다음 6월이 되었을 때 그때의 생각이나 일반참가자든 스텝으로 또 참여를 하며, 그렇게 고정희와 문학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여행은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처럼 확실한 마음가짐으로 고정희!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그런 것을 바로 나누며 시작하지는 않지만, 계속 되는 여행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을 서서히 알려주고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고정희는 계속 기억되고... 고정희와 우리와 그 들을 첫 번째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문학상과 추모여행이라는 행사이고 두 번째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기억’에서 인 것 같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마지막날 한 리뷰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하자 사람들은 아무래도 고정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반면, 많은 대다수의 참가자들을 사람들을 만나서, 추억을 만들어서 좋았다고 했던 것들) 나의 언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 하지만 고정희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쓰는 언어가 있음을 확인했고 그 언어들은 글로비시에서 영어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여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져갈 또 하나의 주제가 ‘나의 언어’인 것 같다. 생가에 가서 고정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열어놓은 전시관과 그들의 사랑이 보이는 생가를 가고, 무덤 앞에서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그녀에게 절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매년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라는 것을 생각하다보니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한 계속 산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책이 만화 [원피스]였다. 초파이야기가 나오는 편에서 닥터 히루루크가 죽기 전 한 말이 딱 이 맥락에 일치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자세히 찾아보니 그는 죽기 전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때다...!!”이렇게 말을 했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그 뒤 그가 덧붙인 말 “내가 사라져도 내 꿈은 이루워진다. 이어받는 자가 있다면.” 보고 순간 “아....”. 그때는 그냥 ‘좋네..’하고 넘겼던 말들이 고정희추모여행을 통해서 이해가 되었다. 고정희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고정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뿐이지 죽은 것은 아니다. 이 여행이 계속되고, 사람들이 계속 기억하는 이상. 히옥스의 문자를 받고 구로코에 대해보단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별 다른 역할 없이 내 개인적인 궁금증들을 가지고, 해남과 고정희,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런 것들을 만나기 위해 해결(이 단어를 쓰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하기 위해 갔었고, 구지 따지자면 하자작업장학교의 학생으로서 다니고 공연하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차! 하고 드는 생각, ‘하자는 스텝으로 간 거였나?!’ 내 생각에 우리는 스텝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고정희와 참가자들 사이를 쫀득하게 붙여주고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구로코일까? 에세이를 읽으면서 구로코에 대해 접하긴 했지만 그 점에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자 사람들이 너무 하자 사람들끼리만 뭉쳐서 재미있게 놀던 모습들이 다른 참가자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해, 스텝이던 구로코이던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2012.06.13 05:52:33
나나 1. 나나에게 고정희 추모여행이란? 학교에서 고정희 추모여행을 기획을 했지만, 다른 죽돌과 달리 나는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의 본선 참가자였다. 그래서 스태프(구로코)로서의 역활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새로운 곳이자 시인의 고향인 해남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고정희 시인을 이해하고자 노력을 했다. 2. 시와 시인 현재에는 시인이 시를 읽는 독자보다 많다. 시에 대한 수요층이 많이 줄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시는 음율이 있는 노래로부터 시작되었다. 순수한 시는 뭍히고 있지만, 시처럼 아름다운 가사를 가지고 있는 노래들은 오히려 많이 기억되어 회자되고 있다. 문학기행에 갔다오고 나서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시를 쓰게 된게 사회와 가정에 대한 분노였다면, 이제는 시라는게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소망이다. 좋은 시는 아름다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다고 문예부 동아리 선생님이셨던 김용화 시인님의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고나서 좀더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잠시 시를 쓰는 것을 접었다. 워낙 내 상황이 힘들었기 때문에 어둠침침한 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선에는 이 주제, 저 주제를 들쑤시다가 성과주의 사회라는 주제에 대해 굵고 짧은 시를 썼다.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이 안남는다. 별로 정이 가지 않는 시지만 본선에 올라갔다. 본선의 주제는 짝사랑, 찌질이, 후쿠시마였다. 짝사랑과 찌질이에 대해서는 좋은 경험도 별로 없기 때문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작업장학교에 오면서 많이 듣고 배우게 된 탈핵을 후쿠시마라는 주제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저번 3월에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준비하며 들었던 후쿠시마 피해자들의 증언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거 같았다. 전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반성하며. 스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너의 시가 특이하고 인상깊다는 얘기를 자주들었다. 특이한 형식을 쓴 이유는 이상처럼 나 천재이다 처럼 블링블링하게 주목받고 싶다기 보다는 읽을 때 화자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시를 심사위원들이 내 시를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이번에 쓴 시는 정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시를 쓸 때 어떤 주제에 대해 1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를 생각을 하고 쓰기 시작한다. 시를 쓰면서 어떤거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지금 내 상황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관심 갖게된 철학에 대한 관심이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로 이어졌다. 작업장 학교에서도 세상을 바꾸는 시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것이 내가 다니는 학교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누군가가 그게 자랑스럽냐고 비난해도! 3. 구로코로서의 죽돌 작업장 학교의 학생으로서, 참가자로서의 나나로서 구로코로서의 죽돌을 평가한다면, 일반 스태프로서의 역활은 훌륭했다. 하지만 구로코의 역활로서는 아니였던거 같았다. 히옥스가 얘기했던 여수와 구로코 때문인지 죽돌들이 너무 경직되어서 다른 참가자들과 소통을 제대로 못했다. 둘째날, 셋째날 죽돌들 사이에서도 이야기했던 아쉬운 부분이였다. 좀 더 친근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도와주는 든든한 구로코가 되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2012.06.13 05:53:32
마루
2012.06.13 05:54:17
주님 두번째 고정희기행은 '고정희'라는 사람-그 사람과 그 사람의 시, 그리고 그 사람의 인연들-이 제 안에 첫 기행 때 보다 더 가깝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시는 어렵기도 했고, 가깝지 않기도 해서 그저 아름답게 말하고, 고상하게 말하고, 돌려 말해서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는 것이 시인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고정희 시인의 시는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거나 꾸미려하는 느낌이 없고 스윽스윽 써내려간 것 같아서 처음에 시인의 시를 접했을 땐 안그래도 가깝지 않은 시가 더욱 낯설게 느껴졌었어요. 사실 저에겐 페미니즘이란 것도 조금 낯설기도 했고요. 하지만 첫째날 세분 선생님의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의 권리와 기회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 새로운 사회를 위한 싸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제가 느꼈던 낯설음이 사라졌어요. 고정희 시인에게 시는 자기의 언어이자 매체이자 무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고정희 시인은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쓰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역시 시인의 가장 큰 힘은 시였겠죠. 아름답기만 한 감상의 시가 아니라 시로서 새로운 사회를 이야기 한 고정희 시인을 생각하면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로서의 저는 어떤 시를 품고, 어떤 언어로 이야기 해야 할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고청문 참가자들과의 만남은, 여수와 메솟 현장학습등을 거치며 이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 이상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마다 고정희시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고, 거기에 참가한 고정희시인과의 인연을 가진 분들을 생각해보면, 고정희시인이 다른 사람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시인과 인연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는 비록 2박3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했어요. 하지만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정희시인에 대해서도, 함께 하고싶은 이야기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던 참가자들과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시인을 추모하는 기행안에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지 못했어요. 제가 구로코로서 준비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 들어요. '동행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처음엔 작업자로서 협업하는 동료나 3만엔 비지니스의 친구같은 이미지들이 떠올랐지만, 그 뿐만 아니라 웃고 울고 싸우고 하며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정말 구체적이고 더 깊은 관계를 맺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관계는 한 사람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이 되는 것이고, 고정희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세 분은 시인에게 있어 그런 존재이겠죠. 시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시인을 추모하고, 또 시인을 사랑한사람을 사랑한 사람이 다시 시인을 사랑하게 되듯, 사람이 살면서 맺은 인연과 관계들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마주치게 될 여러 사람들과 여러 만남들이 저에게 있어 어떤 중요한 인연이 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 앞서 그 만남들마다 저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지, 그리고 좋은 인연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하는 질문이 듭니다.
2012.06.13 05:55:20
온 저도 풀이랑 비슷하게 이번 기행은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일정을 고청문 참가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고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고청문 참가자임과 동시에 작업장학교 소속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한 느낌? 그렇게 제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쿠로코로서 어떤 행동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쿠로코의 마음도 가지지 못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저는 고청문 참가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어요. 엄청난 사교성을 가진 경상권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도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말도 잘 안 하고 계속 하자 사람들이랑만 놀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또 그게 막 후회가 되거나.... 하지는 않네요.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고 그냥 일시적으로 잠깐 같이 있다가 헤어질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음.... 그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다는 건 후회가 되지 않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의 제 태도는 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하면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번 기행이 이렇게 붕 떠 있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기행이 있던 그 한 주 동안 평균 수면시간이 4~5시간밖에 되질 않아서 컨디션이 영 별로였다는 것만 빼면요(지금은 회복 중). 소히의 공연이나 혼자 생각하며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글쓰기가 빨리 끝나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혼자서 서늘하고 조용한 빈 방에 누워 있었을 때 같은 소소한 시간들 속에서 오랜만에 느긋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요. 또 저번 기행에는 고정희에 대해서 거의 모르기도 했고 왜 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참여했었는데, 그 동안 고정희의 시를 비롯해서 다른 시들을 읽다 보니 시만이 가진 언어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시가 좋아지기도 했고 미황사에서 세 분의 강의를 통해 고정희 시인이 꿈꾸었던 사회나 고정희만의 (시적)언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아직 완벽하게 다 아는 건 아니고요..) 제가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같은 쪽으로는 지식이 거의 전무해서 아직은 그런 것들이 많이 어려워요. 막 '남자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라는 말이나, '남자들을 몰아내고 여자들이 힘을 잡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시는 분도 보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꼭 저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나? 남자가 무조건 나쁜 존재인 건가? 여자는 무조건 선하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또 여성이 그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여성적인 것.... 포용이나 평화 막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공부해야 할 게 하나 더 늘어났네요. 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살면서 그런 것들을 느껴 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여성의 성 상품화나 성노동, 시댁살이.... 같은 게 제가 그나마 조금 느끼고 있는 여성 문제의 전부인 것 같기도 하고.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여성들의 이야기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아이고 어렵다 좀 찾아봐야겠어요.ㅠㅠ 시는 제가 별로 즐기는 장르는 아니었어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시가 가진 맛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자에 와서 고정희 기행에도 참여하고 포잇트리 시간도 여러 번 가지면서 시를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인터넷에서 좋고 흔한 시를 찾아서 읽다가 이제는 집에 있던 시집들도 찾아서 읽어 보고, 서점의 시 코너에 서성거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가 좋아지고 좋아하는 시인들도 생겼어요. 요즘은 가끔 공책에 시를 끄적이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시란 엑기스.... 인 것 같아요. 시만큼 한 사람의 문체가 확 드러나는 글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시' 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비폭력적으로 표현하기에(그것이 애틋하고 치열한 감정일수록)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언어가 아름다워서 좋아하는 시들도 있지만, 그 바닥에 말로는 표현 못할 어떤 강렬한 감정들이 깔려 있는 시들이 요즘은 마음에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송경동 시인이나 박노해 시인 같은 분들의 시.... 고정희 시인의 시들도 이제서야 좀 와닿기 시작하고요. 하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난해한 시들은 거부감이 좀 들어요. 시는 나름대로 해석하는 매력이 있지만 만약 제가 시를 쓴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러면서 작업장학교에서 말하는 시인들이라는 의미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만약에 시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진짜로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쿠로코로서는.... 아무리 생각하고 자문해도 쿠로코로서 뭔가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참가자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떠들 때나 분위기가 산만할 때 어떻게 좀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참가자였어서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그냥 사람들 시끄럽다고 짜증이나 내고.... 무척 어려웠네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매년 고정희를 추모하는 고정희의 친구들과, '고정희 시인을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한' 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2012.06.13 05:56:30
미난 1. 고정희 추모여행은 어땠습니까? 1-1 이번 여행은 나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여성운동가인 고정희시인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가 최진솔과 다시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말도 했고 옛날처럼 화가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굉장히 찌질에 보여도 나에겐 정말 큰 일이였다. 사실 최진솔을 이해를 못했던 건 아니다. 머리로는 개가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말했고 왜내가 무섭다고 했는지 이해 했지만, 화가난 감정이 방해를 했는데, 그 감정으로도 조금은 이해를 할수 있게 되었다. 써니에 대한 일도 마찬가지로... 1-2 한백이 누나를 만났다. 정말 오래 전에 알던 사이인데. 근데 이 누나를 알게 된 건 이시원이라는 옛 공동육아 친구를 통해서인데, 한백이 누나가 시원이 만나니? 라고 물었을때 15년정도 같이 지냈던 시원이를 요즘에도 만나고 있다고 말할수 없었다. 왜냐면 중학교때 소히말해 노는애들이랑 어울리며 지냈던 나를 시원이란 아이는 걱정했고, 난 자존심이 상했고, 그러면서 점 점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백이 누나한테 "요즘에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해달라고 했는데 뭔가 자존심도 상하고 그러지만... 진짜 보고싶고 만나고 싶고 인연의 끈을 이어나가고 싶은 친구는 축구부도 중학교때 같이 담배피던 친구도 아닌 날으는 어린이집 그리고 풀잎새 방과후에서 같이 지내고 배웠던 그 친구들이 아닌가 싶었다. 뭔가 요즘에 좀 몸과 마음이 매우 망가지고 있는데, 내가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일까, 그런 걸 좀 생각하며 지내야 될 것 같다. 1-3 카메라맨 이라는 이야기를 마지막 리뷰 시간에 들었는데 하참 거참 나참 기분이 묘했어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구로코가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뒤에서 그리고 앞에서 내 눈으로 직접 참여하며 본것이 아니라 참여하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이번 기행의 느낌은 무대 뒤에서 자신은 보이지 않고 배우들을 도와 공연을 하는 구로코가 됬었던 느낌과 비슷 했어요. 물론 편집까지 끝내야겠지요. 2. 시인, 시란 어떤 것일까요? 스크립트를 짜며 온통 그 생각 뿐인 날을 지내 왔었는데, 저는 아직은 알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하지만 제가 알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여기서 우리는 나와 나의 일반학교 친구들) 시는 매우 필요하다는 건데, 진지해지는데 어려움이 있고 말 하나하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시가 정말 필요할수도 있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시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 그 자체이고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있기에 꼭 필요하다고 느꼇어요. 3. 구로코로서 죽돌이란 ...모르겠습니다.
2012.06.13 05:59:22
별 1) 생각보다 고정희 시인에 대해 잘 모르고 왔던 사람이 많았다. 나도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글쓰기 상을 타려고 여기저기 돌다가 온 사람도 있었다는 것. 그 점이 막상 직접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오묘했다. 과연 그녀에 대해 알고 왔던 소녀들은 몇 명이었을까? 하지만 대입 때문에 힘들었고 또 소설가가 꿈이라고 말하면서, 이 곳에 오게 되어 정말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래도 아직은 만났다는 것으로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고정희 시인의 시 ‘어느 날의 창세기’ 가 어떻냐고 물어보니, 이 사람 시 는 나한테 안 맞는다고 말해서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고정희 시인이라는 그 사람을 계기로 우리가 모였고 그 모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정말 마음을 열 수 있는 동료같은 이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고정희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긴다. 2) 나는 시를 정말 잘 안읽는 편이었고, 시인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그 쪽은 그 쪽만의 문학적인 분위기가 두렵기도 해서 선을 그어 멀리두는 일이 많았다. 처음 학교에서 기행을 간다고 들었을 때도 . 정말 여러번 접한 이름이어서 잘 모르지만 반갑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고, 주위 어른들이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것. 여성운동을 하는 주위 이모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이름이었다는 것? 시가 매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살아가는 직업이 시인이라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무엇인가 문제라는 것을 시로 제기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고정희 생가에서 고정희가 친한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시로 보낸 것을 보았다. 요즘에도 저렇게 친구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시’라는 매체가 일상생활에서 접하기에는 초등학생 때에 자작시를 쓰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적이 많았고, 그랬기에 더 생소하게 느끼는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음, ‘시’라고 하면 서정적인 느낌이나 불타는 열사같은 느낌이 컸기 때문에.음. 이번에 고정희 시전집을 읽고 여러 느낌의 시가 한 사람에게서 이렇게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 다른 참가자 들과 어울리는 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느낌이 크다. 이번 여행도,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닌 스태프로서 참가도 하고 또 참가자 들과 함께 하는 시간표가 짜진다고 했을 때에도 두 번 째인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가는 것인가? 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컸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 그 사람들 중에는 고정희 시인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 하면 좋을까? 또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점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되는 걸까? 잠깐 동안 말동무를 사귈 수 있다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정말 없잖아 있었다. 바꿔서 생각해서 정말 고정희 시인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시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만난다면, 나는 잘 아는 부분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게 좋지? 하는 그런 참가자라는 대상에 대한 부담스러운 생각.. 전체적인 기행 도중에도 구로코같은 느낌이나 좀 더 주체적으로 나서보자 라는 생각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임하게 됬던게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나름 이야기를 나눠봐서 좋았다. 앞으로도 고정희 문학상으로 우리가 만나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2012.06.13 06:02:39
핑두 고정희의 고향 해남에 가다 해남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모이는 시간을 7시 40분으로 정했었는데 8시30분쯤이 다되어 출발했었다. 지각하는 자의 다급함이나 불안함을 나도 잘알고 있어서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여덟시에 모이지 않고 일곱시 40분으로 모이는 시간이 당겨진게 그나마 다행인가..’하는 생각은 들었다. 서울/경기지역 참가자들이 다모이자 버스가 급하게 해남으로 출발하였고 가는동안에는 음악을 듣고 ‘나비문명’을 읽으며 갔다. 버스에서 하늘을 보니 뭉실뭉실한 구름들 사이로 달이 보였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맡으며 가는데 어느순간 창문사이로 물방울이 들어와서 창틈에 얼굴을 대고 빗물을 맞으면서 가기도 했다. 해남에 가까워져 지역참가자들이 올라탔다. 내옆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 앉았는데 우리는 인사도 없이 조용히 갔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졸다가 본선여행자료집을 모두 읽었다. 해남으로 가는 버스에서, 조금은 시끌벅적한 버스에서 고정희의 시의 느낌은 무척 좋았다. 일주일 동안 지하철에서 읽을때보다- 고정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자료집에 있는시들은 다 한번씩 읽었던 시였고 연시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느낀것같다. 해남에 도착하고 미황사에 도착했다. 짐과 기타를 매고 올라가니 구름에 쌓인 바위산(달마산)이보였다. 조를 나누고 자하루에 들어갔고 온이랑 누워있는데 3조의 조장 ‘승현’이 들어와서 조끼리 하는것들이 많을테니 서로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했다.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꼭 어디서 본것같은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그아이와 옆의 앉은 친구 두명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온이 와서 앉고 나나가 와서 앉아서 서로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다시 조를 모았고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조끼리 모여 앉았다. 조끼리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어떤 친구가 ‘하자작업장학교는 어떤학교에요?’라고 물었다. 쇼와 무브와 써니, 다미가 있었지만 꼭 내가 ‘설명’해야할것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왜 부담스러운건지- 잘 설명 할 자신이 없는 건지- 내가 하자작업장학교 소개를 시작하였는데-에크, 가비가 집중해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점심을 먹고 나자 하자작업장학교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작업장에서 하는게 뭔지, 그동안 내가 작업장에서 지내온 시간들에 빗대어 이야기해주었다. 절에도 들어가보고 산책도하고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었고 나무,소히밴드의 공연과 간지들의 하루를 보고서 모두들 취침 준비를 하였다. 나도 씻고 참가자방에 들어갔는데 웬걸, 이불이 이곳저곳에 깔려있었다. 이렇게 자면 모든사람이 눕지 못한다는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 옆에서 계속 투덜투덜 불평 하는 사람들. 이러면 다같이 못자요- 라고 말하며 이불을 잘 정렬-한 후에야 모두 누울수 있는 자리가 나왔고 그래도 좁아보여 나와 나나, 온은 작업장학교 여자숙소에 가서 자기로 했다. 두 번째날, 일어나서 씻고 아침예불을 하러 들어갔더니 예불이 끝나는 무렵이었고 절만 세 번하고 나와서는 대흥보전(?)앞을 돌며 걸었다. 그러다보니 아침이 되었고 아침예불을 했던 다른 참가자 2명과 산책을 했다. 밥먹기전에 태양좌자세를 하며 몸을 푸는데- 옆에 있던 아이들이 학교에 몇시에 가서 몇시에 끝나냐고 물어보았고 열시에가서 열시에 끝난다고 이야기하자 아이들 옆에 있던 조한이 무슨학교를 다니는데 열시에 끝나느냐고 물으셔서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조한과 말하는도중 노리단에 일년있다가 작업장학교에 왔다고 이야기하였더니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셨다. ‘경험’이라는 말이 어딘가를 쑤셨는데, -좋은경험이라면 정말 좋은 경험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한이 노리단여자들은 멋지다고 하시길래- 강하고 유쾌한 여자들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조한이 작업장학교랑 노리단이랑은 뭐가 다른것 같아요?라고 물으시며 산책을 할까라고 말하셨다. 뒷산으로 나있는길을 걸으며 했던 이야기중에 조한은 우리가 서울에서 늦어진 버스에대해 이야기하셨고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고 일을 하려면 시간약속은 꼭 지켜야하는것이라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시간지키기 프로젝트같은걸 해볼수도 있다고 했다. 지각을 한다는것은 이미 습관이 된경우가 많지-라면서 습관이 왜 생겼는지-알아볼수도 있다고 하셨다. 늦으면 늦지 말자라고만 생각했었지- 왜 늦게 되었는지, 왜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생각해본적은없었다. 더더욱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습관이 어쩌다 생긴것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해본적은 별로 없었다.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것이 결국에는 ‘리더쉽’이라고 했다. (이 대목이 가장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하자를 만들때 조한이 했던 것, 나비문명이야기, 문자리뷰가 어려웠다는 말에 대한 조한의 말(생각나는 말을 바로바로 내뱉을것.)같은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대에 앉은 조한을 볼때에는 조금 딱딱해보였는데 산책을 하고 돌아와 “다음에 또 얘기하자”며 화장실로 가던 조한은 음..나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나는 백팔배를 하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다른참가자들과 본선에 참가했다. 주제는 첫사랑.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편하고 재미있게 썼다. 예선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찝찝한 마음으로 나왔는데 본선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가서 재미있게 글을 쓰고-(미황사의 영향이 컸다. 일찍일어나서 보냈던 ‘완벽한 아침’덕분이기도 할것이다.) 즐겁게 나와서 밥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고 고정희의 생가에 갔다. 이미 도착해 있는 죽돌들 때문이었는지 열려있는 문때문이었는지 그곳이 시인고정희가 살았던 공간- (시를 쓰고 밥을 먹고 잠을 잤던 공간)이라는 느낌은 더디게 들었다. 시인고정희선생님의 서재에 들어가서야 서재를 메꾸고 있는 책들에서, 사람들이 남기고간 흔적들에서도 그녀를 느낄수 있었다. 내가 있는곳에서 시인 고정희가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울고, 웃었던 곳이었겠구나-하는 상상을 했다. 어떤 시집을 펼쳤더니 시집을 쓴 시인이 ‘시인 고정희에게-’라며 선물한 시집도 있었고 어떤 책에는 간간히 갈색 싸인펜으로 밑줄도 그어져 있었다. 고정희시인- 그녀의 무덤에 가서 절을 했지만- 그녀의 집에 가서인지(꼭 주인이 살아있는것같은 느낌) 슬프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비의 글을 읽었을 때는 조금 마음이 감동했고 가비가 ‘페루와 하는일들을 잘 끝내고 돌아와 다음에 올땐 그이야기를 재미있게 해드릴게요‘하는 말에서 가비에게 고정희시인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 사람인지- 그녀에게 고정희시인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하였다. 고정희 시인의 무덤에서 기타를 치고 준비한 노래를 하고 지켜보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들과 그녀와 연관된 무엇들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전의 글을 써서 그랬던 것인지- 첫사랑에 대한 연시비슷한것- 어느새 시인고정희에게 많이 다가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생각은 특히 두 번째 날밤 조안에서 두명씩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고 서로에대해 물어보고 서로가 좋아하는 고정희 시인의 시를 고르면서 더 느낄수 있었는데, 서로가 제일 마음에 드는 시를 읽어주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시들이(그녀가) 우리에게 많이 다가와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고정희기행을 준비하면서 할수 있는게 그녀를 알기위해그녀의 시를 읽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의 시집을 들고다니면서 지하철이나 쉬는시간에 읽었었는데 고정희기행에서도 자료집에있는 그녀의 시를 틈틈이 읽어가며 그녀와 나의 거리가 좁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시를 고르고 낭독하는 시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고정희 기행에 온 모든 사람들이 기행을 통해 시인 고정희에게 보다 더 다가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이번 고정희 기행에서 사람을 만나서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나에게 조금 놀랐는데, 내가 이렇게 말을 잘 풀어놓다니- 왜냐면 한동안 무슨말을 할때 스스로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데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소개하고 내가 요즘 생각하는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편안했다. 편안하게 만날 수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내생각을 잘 정리하고 표현할수 있었다. 무거운 무언가가 조금씩 벗겨지며 새삼 나를 만나는것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 이게 나였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그래도 요즘 말을 잘하고 싶다고 여겼었다. 이번 고청문에서 고정희의 세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러한 생각을 했다. (진정성있고 말이 끊기지 않고- 편안해보이고) ‘가볍게 일을 시작하는사람’이고 싶다. 옛날부터 늘 생각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새삼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작업장학교 학생들과 참가자들과의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개인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참가자들이 작업장학교학생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만큼 작업장학교 학생들이 참가자들에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작업장학교학생들은 서로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작업장학교학생에 비해 더 궁금한게 많았을 수도 있다. 죽돌들중 몇 명은 (이것도 개인차가 있겠지만) 스텝에 대해- 아니, 자신의 역할을 만드는것에 혼란을 느끼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텝이라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는것같기도 했다. 나는 스텝이라는것이 전체적인 그림이 잘 돌아가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따로 스텝이 있었고,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찾아서 했다. 이만큼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일정을 잘 숙지하고 이야기해주고 뭐가 필요한지 알아놓고 챙겨주고.. 나는이번 여행에서 작업장학생들의 분위기가 무거워보였고 걱정스러웠다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정희 기행동안 했던 내 우려가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그저 개인 차니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참가자들과 죽돌들의 간격이 너무 눈에 띄었달까.. 버스에서 돌아오는길 한백과 이야기를 해보니 한백도 참가자들과 죽돌들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고 다음에는 죽돌들이 마음에 스텝이라는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줄여서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개인의 마음은 사람마다 다른것이지만 그렇기에 각자가 고청문기행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정해놓은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정해놓은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했던 고정희 시인생각도 났다. 이번여행에서는 고정희, 문학, 시를 사이에 두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었고 그들을 통해 새롭게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새삼 ‘가볍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다시한번 든다. 위의 글은 기록해두고 싶어서 쓴것이고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시 한 번 쓰겠습니다. 시인고정희를 이미 알고 있는사람, 시인 고정희가 친구였던 사람, 시인 고정희를 처음 만난 사람 모두가 그녀와의 연결을 다시한번 만드는시간이었던것같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길에 고정희에게 조금더 닿았구나-하고 생각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그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녀의 집에 가서 문득문득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다. 또한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람부터 처음보는 사람,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시인고정희를 통해 만났다는것에 대해 감격스러웠다. 자꾸만 인연의 끈이 짙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결되고 연결되고 조금씩 더 빽빽이- 그런생각도 들었다. 시인 고정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내마음속 질문에 약간의 대답을 해주었다. 시인으로서 시를 쓰며 자신의 말을- (그안에 들어간 많은 시어들.)자신이 만났던 것들의 이야기를 할수있었던 그녀의 삶이 재미있었을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떠오르는 느낌을 적고 적절하다고 여기는 단어를 찾아 고민하고- 그녀의 시를 읽는 사람들은 시를 받아들이고 상상하고 추측하고 새로운 의미를 붙이기도하고 (글은 쓰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니까). 그녀의 시를 읽으며, 그녀를 떠올리며 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녀의 시는 소통하고 공감하는것이었다. 글이라는것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삶에서, 문자라는것이 기록을 한다는것이 엄청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이나 자신의 기분과 생각에만 취해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시인고정희를 통해 본 시인은 새롭게 느껴졌다. 일단 시인고정희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문자로 표현하고 무엇보다 시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위해 썼다고 느꼈다. 문자로 기록해두어서 다음 세대의 사람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한순간의 느낌, 또 다른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묘사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놀란다. -작업장학교 학생들과 참가자들과의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는 다고 느꼈다. 개인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참가자들이 작업장학교학생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만큼 작업장학교 학생들이 참가자들에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작업장학교학생들은 서로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작업장학교학생에 비해 더 궁금한게 많았을 수도 있다. 죽돌들중 몇 명은 (이것도 개인차가 있겠지만) 스텝에 대해- 아니, 자신의 역할을 만드는것에 혼란을 느끼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텝이라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는것같기도 했다. 나는 스텝이라는것이 전체적인 그림이 잘 돌아가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따로 스텝이 있었고,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찾아서 했다. 이만큼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일정을 잘 숙지하고 이야기해주고 뭐가 필요한지 알아놓고 챙겨주고.. 나는이번 여행에서 작업장학생들의 분위기가 무거워보였고 걱정스러웠다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정희 기행동안 했던 내 우려가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그저 개인 차니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참가자들과 죽돌들의 간격이 너무 눈에 띄었달까.. 버스에서 돌아오는길 한백과 이야기를 해보니 한백도 참가자들과 죽돌들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고 다음에는 죽돌들이 마음에 스텝이라는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줄여서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개인의 마음은 사람마다 다른것이지만 그렇기에 각자가 고청문기행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정해놓은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정해놓은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했던 고정희 시인생각도 났다. 이번여행에서는 고정희, 문학, 시를 사이에 두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었고 그들을 통해 새롭게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새삼 ‘가볍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다시한번 든다.
2012.06.13 06:03:58
아이 첫 번째 여행에서는 느낌들을 많이 받고 돌아왔는데, 두 번째 고정희 추모 여행에서는 조금 더 깊이 느끼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돌아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정희를 더 알게되고, 더욱 고정희를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몸도 마음도 해남에 갔다 오니 한결 가벼워 진 느낌도 들어요. 첫 날 미황사에서 세분의 선생님들이 짧게 강의 했던 게 인상 깊었어요. 페미니스트에 큰 관심을 안 가지고 있었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 여성으로써 그렇게 차별을 많이 받지 않고 있다 생각을 해서 페미니즘에 공감을 많이 하진 못했어요. 그렇지만 여성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거부감이 들지않고 페미니즘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진것 같았어요. 그리고 여성적인 가치는 뭔 지, 우리가 내가 필요한 여성적인 가치가 뭔지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고정희가 말하려는 여성적인 가치를 뭔지 또 궁금해 지면서 그런 시들을 조금 더 혹은 다시 한번 읽어보고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표현에 대해 생각을 좀 하게되었는데요. 저번 히옥스가 이야기하셨던 요즘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 단어가 많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이어, 나도 내 이야기를 꾸며내고 표현 할 수있는 언어가 많이 적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고정희는 시대와 전쟁 여성주의 등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분노 슬픔 기쁨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세상과 연결이 되어 이야기를 하고, 누구에게 위로를 건내기도 힘을 주기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던 것 같은데, 그렇담 나는 어떻게 표현을 할 것인가 무엇을 표현할 것 인가하는 질문들이 다시 끔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를 통해 역사를 혹은 누군가를 계속 기억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조한이 시를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있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동의가 가면서 많이 슬펐어요. 포잇트리와 같이 시를 나누며 시를 좋아하는 모임과 자리가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저도 좀 시를 많이 찾아보고 언어의 표현력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하나의 미션이 ‘구로코의 역할’이 였는데, 그 부분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과 흐름의 진행을 잘 파악하고 참가자들이 잘 지낼수있게 집중할수있게 도움을 주었어야했는데 오히려 방해를 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뭔가를 하기에는 참가자들이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요, 그렇지만 구로코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도하고 이끌어 가야했었나,하는 생각도 이제야 들기도 하고,, 학교 생활에 이어 전반적으로 우리도 중심을 못 잡고 들 떠있는 분위기에 맞춰 따라간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 안에서 먼저 중심을 잡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생활 부분이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 부분이 좀 보안되어야할 것 같아요.
2012.06.13 06:14:35
초코
2012.06.13 06:18:23
다미 원래 살던 해남에 간다고 했었을땐 정말 설래었다 해남에사는 아는시인은 김남주시인밖에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고정희시인까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고정희청소년문학상의 스텝까지 하게되었다 아직 많은걸 알지못하면서 너무 얼렁뚱땅 넘어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들었었다 그래도 그곳에가서 사람들을 만나는것이 원랜 좀 꺼리게되었는데 거기선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것이 즐거움이 됫었다. 시인,시 아직까지는 나한테 좀 멀게느껴진다 평소에 시를 잘읽지도 않을뿐더러 예전엔 은유법이 너무 알아듣기 어려워서 꺼려했기까지 했다. 고정희시인을 알게되고 시를 자주읽어봤었는데 시는 시인이 무었인가를 시를 통해 말하는것이 아닐까 라는생각이들었다 화가도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말하고싶은것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쿠로코써로는 이번엔 내가 스텝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어떤일을 해야되는지도 몰랐었고 참가자들과 친해지느라 남몰라라 했던게아닌가 싶다. 다른 참가자들이 나한테 넌 여기 왜온거야? 라는 물음에 스텝이라고 선뜻답하기가 민망할정도였다 좀더 고정희시인 에 대해 알았어야했고 이번 기행에도 많은 관심을 갖었었어야했다
2012.06.13 06:20:02
선호 잘 놀았던 것 같다. 길학교랑 친해지기도 하고.. 문학소년소녀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들도 이젠 거의 다 내 또래들이다. 평소에 그런 글들을 훔쳐보면서 아 부럽다 싶었는데 이번 고청문 참가자들에게도 비슷한 의문과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양가 있는 대화,시간을 꾸민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머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교양이 생각보다 훨씬 처참한 수준이고, 감성은 다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것들 충전하는 여행이 됐음 좋았을텐데. 고정희 시인에 대해선 시 하나씩 고르기로 했을때 <이 시대의 아벨> 한 권 읽은 게 다였다. 시를 참 잘 쓰시는 것 같았다. 미황사에서 세분 이야기 들었을 때 `상대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마음의 사랑을 풀어낸 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재밌고 답같은 얘기였다. 참가자들은 첫사랑을 주제로 어떤 글들을 썼을까? 인상적인 사랑의 경험에 대해 얘기나누고 싶다던 (스탭의 애인) 남자분도 생각난다. 조금 의미심장이고 사랑은 내게 중요한건데... 고행 묵상 청빈엔 방해가 되는 세상이다. 마지막날 리뷰 때 고정희 시인처럼 인품 좋고싶다 했지만.. 사실 난 그분의 인품을 잘 모른다. 때문에 나는 어떻게 자라야할지 내 주변의 넘들은어떻게 자라게될지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해 기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쿠로코를 잘 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쿠로코의 역할 중엔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안보이는곳에서 움직이는 것도있다. 무대란게 보이는 곳이란 사실도 절묘하다. 그런데 고청문 참가자의 무대는 머였지 또 그들이 빛나야 하는 순간은 언제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둘쨋날저녁 조별활동 들어가기 직전에 임기응변 융통성을 요구받았다면 받은것이다. 그때 조금 정신없어서 잘 했는지 모르겠다. 참가자들이 분주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면 (그래서 제2 제3의 고글리를 도모하게 되면) 좋은데 우리가 그럴수 있도록 했나? 내 파트너에게 얼핏 얘기 들었을 땐 시간이 비는 때가 넘많아 자꾸 몸이 늘어지게 되고 뭘 해야될지 모르겠다며 그게 제일 불만이라 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그렇게 비는 시간을 잘 못 즐겼나 싶어 안타까움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뭘 할 수 있었을까? 경험과 교양이 더 쌓인 후에라면 모르겠다 어떻게 될 수 있을지.
2012.06.13 06:20:44
써니 이번에 처음가는 해남에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고정희시인생각을 하며 지냈던것같다. 장소 한곳 한곳 고정희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생가에 갔을때는 죽음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슬픈것, 끝.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고정희시인을 보니 돌아가신 후에도 고정희시인의 친구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마치 나에게는 고정희시인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에서나, 고청문책자에서나 고정희시인이 돌아가신 분이라 느껴지지안았었다. 이번 고정희기행을 떠나기 전, 스태프란 어떤걸까?고청문이나 고정희시인에 대해 잘 모르는데 스태프를 잘 할수있을까?하며 걱정했었는데 기행에서 머무르는 동안 굉장히 시간도 많고 한일도 없었던것같다.
2012.06.13 06:47:12
훈제
2012.06.14 03:08:11
이번 고정희 추모여행이 지난 여러해 동안의 추모여행들에 비하여 하자 죽돌들에게 어느정도 느슨한 감이 들게 진행되었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죽돌들이 이런 조금은 느슨한 감의 (좋게 바라보자면 여유있는) 여행을 임하면서 그런 비어있는 시간 속에서 불안을 느끼거나, 조급해 하거나, 방황하는 모습은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번 여행의 스태프로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타이핸 때의 '쿠로코'마인드에 대한 어느정도의 부담감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고글리들도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대체로 우리가 명확하게 역할을 맡은 부분이 적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할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부분들이 비어있는 시간으로, 붕~ 떠있는 시간으로 여겨져서 의미없게 흘러가는 것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스테프라는, 쿠로코라는 역할에 뭍히지 말고 그 역할들이 어떤 의미에서, 무엇을 의도하는 것들인지를 생각한다면 이번 여행에서 우리 죽돌들 스스로도 즐겁게 즐기며, 공부하며,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도 맺어가며 역할이 의도하는 바를 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리가 우리식으로 고정희를 다른 청소년들과 만나게 하는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자면 역할이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즐겁게 즐길수록, 고정희를 더 깊게 느낄수록, 다른 청소년들과 관계를 맺고 어울려 이야기를 할수록 더 잘 수행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죽돌들은 우리 밬의 다른 사람(고정희, 고정희의 친구들, 처음보는 다른 청소년 등)을 만날 때 어떦게 공유하고, 느끼고, 관계맺고, 이야기하는지 조금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는 여행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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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작년과는 달리 뭔가 왁자지껄하고 붕 떠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일년에 한 번 고정희를 만나러 가는 모임이라기보단 고정희가 주제인 여름캠프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라
구로코로서 어떤 판이 만들어지도록 도와야하나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너무 들떠있는 분위기가 좀 마음에 안들어서 고청문 학생들과 잘 못 어울렸는데, 그 점은 별로 잘한 것 같진 않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정희가 엄청나게 다작을 하던 시인이라는 점이 새로 보였는데,
정말 시를 무기로 삼았던 사람이라는 점,
치열하게 자기를 언어화해서 세상에 보였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고정희는 랩을 했어도 참 멋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