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에 소개되었던 '힐러리에게 암소를: 자급관점'이라는 책이 조만간 출판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거기서 소개된 힐러리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요

아무튼 우리가 종종 언급하고 있는 '자급'의 범위를 찾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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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방글라데시에서 온 배우이자 사회활동가인 패리다 액터 Farida Akhter는 독일 뮌헨 여성학 여름학교에서 개최한“여성의 힘을 전 세계로Women Power Worldwide”국제회의에 모인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5년 4월, 북경 유엔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되기 몇 달 전에 당시 미국의 영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그녀는 익히 들어왔던 대로,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Grameen Bank프로젝트 성공신화의 현장을 몸소 목격하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소액대출사업은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상황을 눈에 띄게 향상시켜왔다고 전해졌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들이 정말 이 소액대출로 힘을 얻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그라민 은행과 개발 지원 기관들에 따르면‘여성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여성 자신이 소득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방글라데시 농촌마을인 마이샤하티를 방문하여 그 곳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들은 대답하기를,“ 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의 수입이 있어요. 소, 닭, 오리 같은‘자산’도 가지고 있답니다.”그리고 그들은 아이들이 학교에도 다닌다고 말했다. 클린턴 부인도 만족스러워했다. 마이샤하티의 여성은 분명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 그들이 힐러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힐러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패리다 액터는 마이샤하티의 여성들과 힐러리 사이에 오고 간 질문과 대답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나요?”

“아니오, 나는 암소가 없어요.”

“아파, 당신은 자신의 소득이 있나요?”

“네, 전에는 제 소득이 있었어요. 하지만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이사 오고 난 후에 나는 일을 그만뒀어요.”

“당신은 아이가 몇 명 있나요?”

“딸 한 명이요.”

“아이를 더 낳고 싶은가요?”

“네, 나는 한두 명 정도 더 낳고 싶지만, 우리 딸 챌시와도 지금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마이샤하티의 여성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힐러리! 그녀는 소도 없고, 자신의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마이샤하티 여성들의 눈에 비친 힐러리 클린턴은 결코 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겼다. 독자들은 우리가 자급 관점subsistence perspective에 대한 책의 첫 장을 왜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자나라인 미국의 영부인이 대체 암소를 키우며 사는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자급 이야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소와 닭,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힘이 있다고 느끼는 마이샤하티 마을의 여성들과 그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가난한’여성들은 왜 힐러리 클린턴을 불쌍하게 여길까? 힐러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사람이 아닌가? 이 여성들이 단지 순진하거나 무지한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클린턴 부인이‘부자’나라에서 왔고, 그녀가 많은 돈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힘이 있는 상태라고 보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는 힐러리 클린턴과 마이샤하티 마을 여성들 사이의 관점 차이를 아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의 대화내용을 보면, 마이샤하티의 여성들은 미국의 영부인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들의 관점은‘아래로부터의 관점’, 즉 필요에서부터 세계를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이 바로 자급 관점이다. 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사물과 관계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에서 차이가 난다. 클린턴 부인이나 선진국의 대다수 여성들은‘좋은 삶’이란 더 많은 돈과 상품, 사치품을 요구한다고 보며, 소위 말하는‘좋은 삶’을 북반구의 부자 나라와 부자 계급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여긴다.


아마도 클린턴 부인에게 마이샤하티 여성들과의 만남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을 여성들이 자신에게 작은 사업을 위해 돈을 요청할 것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에서 온 가장 강한 남자의 아내인 자신을 부러워할 거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성들은 힐러리처럼‘위로부터의’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화에서 보듯이 그들은 부와 빈곤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수입품으로 가득 찬 슈퍼마켓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빈곤과 부와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어쩌면 클린턴 부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는 나라가 축적한 온갖 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근본적으로 어떤 것을 잃고 있다. 그것은 마이샤하티 여성들이 아직까지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부심, 위엄, 자기 확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능력일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부르던 간에, 이 능력은 자급 관점, 즉 스스로 삶을 생산하고 재생시키며, 자기 힘으로 서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데에서 나온다.


이 책에서 우리 역시 자급 관점을 채택했다. 우리는 힐러리 클린턴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부의 모델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델은 나머지 세계로까지 일반화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좋은 삶’을 추구할 때 그 뒤에 남겨지게 되는 여러 가지 파괴들, 자연에 대한 파괴, 이민족에 대한 파괴, 자립과 위엄의 파괴, 아이들 미래의 파괴, 인간성의 파괴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부의 모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상품, 서비스, 재화의 끊임없는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위로부터의’관점으로는 이 체제가 만들어내는 막다른 골목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지배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균열을 내고 새로운 관점과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마이샤하티 여성들, 그리고 다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자급 관점의 윤곽을 그리는 데 좋은 스승이 되어 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나눈 대화는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중요한 사실은 독립적인 자급을 지키는 일이다.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서 우리가 얻은 다섯 가지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래로부터의 관점이다. 이 관점은 우리가 현실을 볼 때, 그리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얻고자 할 때, 여성의 관점, 특히 남반구 농촌 여성과 가난한 도시 여성들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우리는 여성들이 삶을 유지하는 전략인 일상생활의 정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아래로부터의 관점은‘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창조한 삶과 삶의 방식이 최상의 것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미래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탈신비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이른바 좋은 삶이 특정한 소수에게만 가능했다는 사실, 나아가 자연, 타인, 여성, 아이들과 같은 타자의 희생 위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번째,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자급 관점이 단지 돈과 교육, 지위, 특권이 아니라 한 마리의 암소, 몇 마리의 닭, 아이들, 땅, 약간의 독립적인 현금수입과 같은 실질적인 생계수단을 확보함으로써 현실화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외부의 힘이나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의 역량이 필요하다.


세 번째, 마이샤하티 여성들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식을 가짐으로써 미국의 영부인을‘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자신감과 위엄, 용기, 평등 의식을 얻게 된다. 이들은 남에게 구걸하는 비굴한 거지가 아니라, 스스로 두 발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배운 네 번째 교훈은, 이 여성들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마지막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이 그 지배계급이 속한 사회전체에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Engels, 1976, p. 333). 오히려 마이샤하티 여성들의 질문은 정반대의 사실, 즉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에게 좋은 것이 전체 사회에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사회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지 않고 비식민주의적이고 생태적인 유토피아이다. 좋은 사회는 모든 사람이 빌라와 고급 승용차를 소유해야 한다고 믿는 지배계급의 생활양식을 모델로 삼을 수 없다.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의 자립적인 삶을 재생, 유지하는 데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동안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엥겔스의 유토피아를 현실화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기획들이 결국 붕괴로 끝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섯 번째, 이 책에서 우리는 세계를 ‘제1세계’와 ‘제3세계’로 나누는 정신분열증을 버리고자 한다. 방글라데시 여성들도 물론 이 구분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과 미국 영부인 사이의 간극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이러한 구분과 그에 따른 차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힐러리 클린턴은 무엇보다도 ‘자매’이자 같은 여성이며, 기본적으로 자신과 같은 욕망을 가진 여성이다. 말하자면 ‘암소’와 같은 자급적인 삶의 수단과 남편으로부터 독립된 자기 소득과 아이들이 있는 여성이다. 그들은 이러한 삶에 대한 지향이 자신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스스로 자급을 하는 삶의 관점이 소위 개발도상국이나 낮은 계급 사람들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선진국과 지배계급 사람들도 계급-이원론적이며 위계적 구분 위에 짜여 진 경제 체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도전한다. ‘ 경제’를 끊임없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 자본축적, 산업의 확장에 목표를 둔 체제로 정의한다면, 그러한‘경제’는 자급 관점과는 양립할 수 없다.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래로 현재의 이 체제가 경제를 살리는데 유일한 생존 모델로 장려되어왔다. 우리는 종종“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TINA)”고 이야기한다. 이런 ‘대안부재’ 신드롬에 감염되는 대신, 이 책에서는 다른‘경제’개념이 존재하며 그것이 여성과 타자,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식민화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경제체제보다 더 오래되고 더 새로운 경제체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다른’ 경제는 우리의 사회 경제 활동의 중심을 죽은 돈을 끝없이 축적하는 데 두지 않고, 그 대신에 삶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중심을 둔다.


‘살림’ 혹은 ‘자급’이란 개념은 흔히 빈곤이나 낙후된 삶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자급’은 단지 생존의 가장자리에서 고된 노동으로 살아가는삶을의미하지않는다.‘ 자급’은 삶의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풍요로움과 연결된다. ‘자급’을 이렇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일과 문화,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나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좋은 삶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과소평가는 그동안 우리에게 강요되었던 식민성과 천박성의 결과이다. 이는 여성만이 아니라 식민화된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내면화되어 있다. 이 과소평가로 인해 우리는 ‘따라잡기 식 개발’과 ‘따라잡기 식 소비주의’라는 또 다른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 환상은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맨 위쪽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약속에 의해 유지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비단 마이샤하티 여성들만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따라잡기 식’ 경제 모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맨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이야기(9장의 나야크리쉬 안돌론 이야기)는 방글라데시 농민들도 이 개발 모델을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따라잡기 식 모델은 더 이상 바람직한 목표가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은 혹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좋은 삶을 원할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힘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패리다 액터는‘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임파워먼트’담론이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이샤하티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방글라데시와 남반구의 다른 국가에 있는 농촌 여성들은 백악관이나 다른 부유한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강한 여성들이며, 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억압하는 여러 세력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 나라의 가부장적인 남성, 다국적 기업, 세계은행과 IMF의 구조조

정 프로그램, 그리고 이러한 국제자본의 보호질서를 따르는 국가기구들이 포함된다. 진정한 힘이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연과의 협력에서 발견된다. 이 힘은 돈이라는 죽은 물질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상호성에 있지 경쟁에 있지 않다. 스스로 행동하는 것에 있지 수동적인 소비생활에 있지 않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관대함에 있지 개인주의적인 이해관계나 시기심에 있지 않다. 이 힘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우리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독자들에게 현재 지배 경제 체제가 어떤 불변하는 자연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수세기 전에 인간(남성)이 만든 체제이며, 따라서 변화가능한 체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 한다. ‘ 대안부재’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대안이 결코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급야말로 대안(Subsistence Is The Alternative: SITA)”이라고 믿는다. 특히 오늘날 지구화되는 경제 현상이 완전히 새롭고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애초부터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일부였던‘원시축적’과 식민화의 불가피한 연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지속적인 식민화와 그에 따른 결과는 소위 선진국의 산업 국가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제1세계가 제3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에서 증가하는 빈부 격차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산업화된 사회를 강타하

고 있는 재정, 경제 위기에서도 나타난다.


북반구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자신들이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여전히 물리적인 격차가 큰 것은 사실이나, 구조적으로 북반구의 가난한 사람과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의 상황은 더 이상 다르지 않다. 이러한 통찰에 직면하면, 대부분은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공포를 느낀다. 경제학자와 정치가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항상 주장해왔다. 선진국과 부자들뿐 아니라 후진국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궁극적으로는 따라잡기 식 개발이 ‘지속가능한’ 부를 성취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개발이 하나의 신화일 뿐이며, 한 쪽의 부와 진보가 다른 쪽의 빈곤과 퇴보와 관계되며, 이 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사실을 한 번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배적인 경제 체제의 안정에 대한 확신이 너무 지나치게 과장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소수에게 돌아가는 부의 축적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선진국 사람들의 빈곤과 실업 증가를 수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경제 위기를 통해 사람들은 돈과 자본이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바라는 데 있어서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태국처럼, 이 기반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심지어 은행가까지도 일시에 거지로 만들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세계 대도시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 자신의 일생을 현금소득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들에게 경제 붕괴는 세상의 끝이자 물질적 안정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이샤하티의 여성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먹고살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암소 한 마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들의 관점으로 세계를 본다면, 이러한 종말론적 절망의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상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들의 관점은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관점을 대표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종말론적인 절망은 선진국의 소수 응석받이들의 사치에 불과하다. 이 절망감으로 인해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다. 이들의 특권이 타자에 대한 약탈에 근거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은 이러한 특권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도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급 관점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밖이나 위에서 작동하는 외부 기관에 의해 커다란 사회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힘을 알고 있고,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자급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이 새로운 가치관이 이미 세계 각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관점은 생태적이고, 경제적이고, 페미니즘적이고, 반反식민주의적인 시각에서부터 나오며, 여기에서 모든 기본적인 사회관계들의 변화, 즉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 세대 간 관계, 도시와 농촌의 관계, 계급 사이의 관계, 민족들 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의 주요 관심사가 죽은 돈을 축적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상의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데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는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급 관점은 단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우리는‘진짜 삶’에 대한 자급 이야기로 이 책의 각 장을 시작할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자급 관점이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삶의 방식이 바람직하고 필요하며 또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내용은 단순히 통계와 이론적 정교함을 넘어서 개념적 깊이와 풍부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준비가 된 사람들은 아주 오래되었거나 혹은 아주 새로운 자급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급 관점은 단지 하나의 경제 모델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 세계관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힐러리에게 암소를: 자급관점" 중에서 서문 옮김

저자: 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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