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릴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기억 안나고 이름도 모른다
원래 없던사람으로 느껴지고, 4학년때 같이 그림그리고 놀던 친구 가족이 추석 졸음운전으로 사고나서 하필 친구랑 그 아빠가 죽었다. 그땐 다른반으로 갈라졌을때였는데 걔 자리에 국화꽃이 많았다. 걔 동생이랑 엄마는 다행히 살아서
몇달뒤 걔네 엄마가 급식도우미로 나온걸 봤는데 많이 슬펐다. 왜냐면 난 걔의 샤프를 빌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내가 남이 죽어서 울었을 때는 가수 유니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고서였다. 유니의 싸이월드를 갔는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입에담기 힘든 욕을 써놓던 사람들이 죽고나니까 왜 죽었냐고 하고 예쁘다고 하고 너무 달라진 태도에 화가나서 울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계속 많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봤지만 충격만 받고 곧바로 잊혀졌다. 죽은사람이 잊혀지지 않는다는건 불가능한거같다. 겪어보면 알겠지 떠나는거랑 남겨지는것 둘중 뭐가 더 슬플까 생각해봤는데 오랜 생각끝에 내린 결론은 정말 둘이 똑같다는거다. 왜냐면 먼저가는사람은 남겨진사람들끼리 잘 있으니까 소외감느껴져서 아쉽고,  남겨지는사람은 말그대로 남겨지니까 슬픈 것 같다.
 인문학시간중 시 17편을 다같이 읽은 적이 있었는데 릴케의 '맺음시' 마지막구절
'죽음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마구 울기 시작한다'  이게 참 좋았다. 
 그리고 '내 생에 마지막 4.5초'에서는 그 짧은시간동안 그동안 살았던게 쫘라락 생각나면서 공포에 질리자 위액을 토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죽을뻔한적이 있지는 않았지만 뭔지 알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리면 순간 속이 뒤집어진다. 마지막에 엄마~이러면서
 죽는데 거기서도 공감이 갔다. 난 죽기직전에 멋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게 갑작스레 죽게된다면
나역시 입에서 나오는말은 엄마야~아니면 꺄악~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읽고 영화를 보고 시를읽을땐 죽음이 편하게 다가오지만 실제 현실에서 누가 죽은 기사가 나면
슬프다. 고통스럽게 죽는 경우가 많아서인것 같다.  내 주변사람들은 안좋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에는 죽어버릴꺼야 란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많이 했는데, 인문학시간에 이거 하고나서는 죽어버릴꺼야 라는말을 쉽게 할수없어졌다.
 그리고 이시간에 봤던 영화 내곁에 있어줘는 제목이 더 좋았는데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테레사 첸이 눈이 안보이는데도 밥을 꼬박꼬박 잘 챙겨드시는 모습이였다.

가족에대한건 난 가족이 싫은건아닌데 가족얘기하는게 별로다. 맨날
 엄마는 안편찮으시니 언니는 잘지내니 동생은 학교 잘다니니 이런거 물어보는데 안부라는걸 알지만
말하면서 그냥 깝깝한게 있다. 그렇다고 얼버무리면서 말하면 성의없는거같고
지난주에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지니인 것 을 읽었는데 소설속의 '창희년'이랑 나랑 조금 비슷한거같기도 했다.
난 푸석푸석한 엄마를 위해 소꼬리는 못샀지만 그런 마음씨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한테 대들때 하는 말투도 약간 비슷한거같다
가족끼리 똘똘뭉치는것도 좋지만 각자 밖에서도 잘했으면 좋겠다. 난 동생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옆집애가 동생 괴롭힌다던가 그러면 걔한테 소리지르거나 욕해준다.  이럴땐 자연스럽게 동생편을 드는걸보고
얘도 가족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싸워서 엄마가 일주일동안 말걸지 말라하고 잠들어도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수있는것은 나랑 18년살아온 정?믿음이 있기때문일것이다 그 정이 미운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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