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사실 아직 잘 정리가 되진 않는다. 아직도 기무사의 잔상들이 내 안을 돌아다니고 있고, 나는 계속 그것들에 취해있는 듯 하다. 
(게다가 비까지 온다)전시가 시작된 5시부터 직원들이 날 쫓아낼 때까지 그 안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처럼 
다리의 아픔도 잊고 그 공간안을 떠돌아다녔다. 
게다가 내가 4시간동안 받아들이기에는 작품의 양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도 너무 컸다. 
다시한번 가고싶지만, 다시한번 가기에는 두렵기도 하다.

플랫폼 2009는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속 우리의 실제 생활과 연계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의 장을 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라는 구절을 보고 이 전시회는 꼭 가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매체가 단순히 매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의미를 가지길 바란다고 
학습계약서를 써내려간 지금, 꼭 보고싶었다.
예술에서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소통하려 하는 작가들은 과연 기무사라는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여 재 탄생시킬지, 
그 공간 안에 어떤 생기를 불어 넣을지,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과 연결되어질지 하는 두근거림을 붙잡고 기무사에 도착했다.

기무사라는 공간이 가진 힘이 분명히 있었다. 출입이 금해졌던 곳에 들어간다는 두근거림, 퀴퀴한 냄새, 
조각 조각 나뉘어진 공간과 어지러운 계단, 모두 묘한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에서 분명 많은 것들이 존재했었다. 
누군가가 시간을 보냈을 방 안, 요리를 했을 부엌, 혹은 고문과 압력의 시간- 이제 방들은 깨끗히 비워졌지만 
느낌과 흔적은 그 안에 있었고, 그 공간에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서니 또 다른 힘을 갖는 듯 했다.

가장 처음에 들어갔던 건  74;리킷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첫번째로 들어간 것은 잘한일이라고 생각된다. 
기무사의 첫 인상을 이어나가기에 좋았던 것 같다. 그가 전시한  흐트러진 이불보, 얼룩, 커피가 말라붙은 머그잔, 
담배재털이와 같은것은  누군가가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자꾸만 상상하게 만든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흔적은 그래서 무섭고, 이미 떠나 흔적만 남은  공간은 조금 쓸쓸하다.

72;모나하툼의 공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은 아무때나 쉽게 어울리는 말이 아닌데, 정말 아름다웠다. 
수십개의 전구가 원을 그려 불이 밝아지고 서서히 사그라드는 모습이 꼭 하나하나 생명인것만 같았다. 
태어나기 전의 아기들인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사그라지면 아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밝아지면 다시 태어난것 같고.

그렇게 1-2-3층을 돌아다니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환상적인 기분에 젖어있었다. 
눈이 돌아갈것 같이 정신이 없고, 양이 많지만 그래도 다 담고 싶어  애를썼다. 
벅찬 (벅차오르기도 하고, 벅차기도 한) 가슴을 안고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공기의 냄새, 습기에 굉장히 민감한 편인데 뭐랄까 예민해질 때는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바짝 세우게 되는 듯한 느낌이다. 
지하란 차가우면서도 엄숙하고, 묵직한 공기가 나를 훅 감싼다. 
멀리서부터 시계초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 소리에 이끌려 방안에 다가갔다. 
지하에서 가장 첫번째로 들어간 공간인데 도무지 떠날 수가 없었다.내가 너무 잘 아는 공간인것 같고, 
너무 익숙해서 명치가 울렁거렸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를 진동시키고 있었고 심장도 같은 리듬으로 뛰었다. 
소파가 너무 다정해보여서 가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태로 한참을 서있다가 결국 이 익숙함의 이유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어렸을 땐 아빠는 항상 출장만 가는 것 같았고 엄마는 밤늦게 회의가 있었다. 둘이서만 있는 집안에서 동생이랑 꼭 붙어 누워있으면
언제나 동생은 너무 쉽게 잠이 들어버렸고 혼자남은,남았다고 생각한 나는 숨을 죽이고 눈을 감는데 그럴때면 신기하게도 
시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초침소리가 왜 혼자있을 땐 그리도 크던지.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시계소리를 듣다보면 혼자라던가, 무섭다던가, 외로운 감정들은  더이상 들지 않고 
그 규칙적인 리듬에 나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었다. 

마치 그 공간안에 내 어린시절의 한 부분이 풀어진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자게 되어도 시계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서움에 삼켜죽을 것 같은 느낌도 안든다. 
잊고 있었던 그 소리를 다시 들으니 너무나 반갑고 다정해 눈물이 날것 같았다. 
넓은 공간안에 작은 소파위 시계하나. 그 안에 나의 한 조각을 풀어놓고 나왔다. 
그 공간에는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단상들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공기는 더 묵직해지고 그만큼 다정해진다. 
기억을 짚어준 그 공간과 소리에게 감사한다.

정석희의 man in NewYork을 보았을 때는 결국 울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 하나의 알이 되는 남자. 
잔뜩 웅크린 그 모습에서 전해지는 시림에 내 발이 또 시리고. 마침내 새가 되어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숨을 멈췄다. 
그림자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니 계속 그 남자를 봐주고라도 싶어 앉아서 몇번이나 보았다. 
그대로  쭉 날아갔으면 하고 바랬는데 남자는 또 다시 자기 방에서 시작하더라. 

지하실을 마지막때쯤 간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별관으로 이동했다. 
노란 불빛으로 가득 찬 곳.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고 텅빈 공간안에 혼자였다. 
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붉은 색이거나 푸른색, 다른 어떤 색이였다면 분명히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노란 불빛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온기를 띈 빛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악의 파장이 나를 감싼다. 그렇게 홀로 건물안을 돌아다니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분명 방이 있고, 화장실도 있고, 한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장판도, 계단도 있는 곳. 
마치 함께 살고 있었는데 모두 갑자기 떠나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장소에 홀로 있는 나. 
하지만 빛과 온기, 그리고 나를 누르는 소리 덕에 아주 안정적으로 방황했다. 
돌아다니다 잠시 의자위에 누워 음악을 들었는데 평화로웠다. 따스하지만 익숙하지 않는 노란빛에 하나의 그림과 함께 
또 다른 기억하나가 점차 또렸해지더라.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 그림,

5살때 (이 나이는 돌아와서 엄마에게 물어 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미아가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 안내카운터에 맡겨졌고, 백화점 언니들은 바빠서 나와 놀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화점안의 장난감이 있는 커다란 공간안에서 놀게했다. 울기도 엄청 많이 울었는데 장난감들을 가지고 노는게 
눈물을 흘린 만큼 즐거웠다.  언니한명이 나에게 물감을 주었는데 그때까지 한번도 본적 없는 글라스테코라는 거였다. 
스티커가 되는 그림에 깜짝 놀라며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 한명을 그려 가지고 놀았다. 그 공간 이곳 저곳에 붙였다 떼어가며.

그 여자아이가 이 노란 공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나와 함께.

그 공간안에서의 경험은 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느낌이라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두렵거나 소름끼치는 것이 아니라 묘하고  조금 그리운 그런 느낌.

가기전에 기대했던 건 예술이 사회와 어떻게 맺어 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낼까였는데 
기무사를 돌아다니다 보니 작품들과 그 공간에  맞닿은건 나의 기억들이었다. 
공간이 기억을 불러일으키니 또 다른 이야기가 생긴다. 
한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계념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여지가 있는 공간들이었기에 나의 기억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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