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으로부터의 실천 ,  용기와 헌신,  연대-연찬한다는 것?


오태양 씨 이야기를 하셔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중학교 때 잠시 병역거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학교의 강압,억압적이고 일방적인 분위기에 염증이 날 때로 났었을 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남자에게 주어지는 '병역의무', 군대도 혹시 이러지 않을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병역거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때 마침 입대를 앞둔 한 청년이 국군의 날 행사에서 퍼레이드 식순이 진행되던 도중 알몸으로 피켓을 들고 난입하며 병역거부에 대해 무언가 주장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개제되었다.
당시 아무래도 내 관심이 그 쪽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고민하고 있던 차였기에 기사에 대한 내 관점은 '옹호 혹은 이해' 였다. 그러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왔던 글들이 많다.

가장 많은 종류는 단연 '겁쟁이, 비국민' 이라는 식의 비난성의 글들이었다.
국민으로서 다해야할 의무를 피한다는 이유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말, '전쟁이 나도 넌 안 지켜줄거다' 라는 말들...
방식이 좋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 사람은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나름의 자기 주장이었을 것 같은데 이런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반응이 대다수라면 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소수자의 생각을 가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갈등에 빠졌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있는 '양심의 자유'와 국민의 4대 의무(국방, 교육, 납세, 근로) 중 어떤 것이 먼저인것일까, 국가와 국민은 어떤 조건을 지켜야만이 성립되는 그런 계약적인 관계인건가?
징병제가 이미 오래전 일제시대 때부터 당연히 자리잡고 있는 사회에서 일개 개인의 양심에 의한 주장은 비난받아야할 소수파일 뿐인걸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한다, 병역거부자들이 개인의 양심에 따라서 병역복무를 거치지 않고 대체복무제를 원하지만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교도소에 수감되어 빨간 줄을 긋겠다는 의사표시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자유의 크기는 의무를 수행하고, 혹은 그에 따른 (국가가 정한 기준에 근거한)책임을 짐에도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비난받기까지 해야하는 정도밖에 안되는 걸까.

그런 집단 간의 유리, 소수에 대한 배제가 있고서 이루어지는 연대, 연찬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고, 그 안에서 개인이 인정받을 수 있는 흐름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계속 고민하고 사회선생님께 질문하고 논쟁하다가 싸우고 일방적으로 공부나 하라며 묵살당하기에 이르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진학할 때가 되었고, 작업장 학교에 오기 전까지 대안학교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느라고 어느새 병역의무에 대한 내 고민은 '엄밀히 따져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시 상황이고 지금은 휴전 상태일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라는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묻혀지고 말았다.   

오태양 씨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간에, 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다수자들이 그것을 같은 사회구성원의 소리로 듣기자체를 거부한다면 아무 소리 없는 외침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승창 선생님께서도 명박 산성 이야기를 하셨을 것이다.

지난 해, 그 현장에서 실제로 명박산성을 목격하고, 그것때문에 길이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지금도 MB정부는 국민 여론에는 전혀 상관없이 In my world 해서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사가 나오고, 그 댓글들을 읽으면 정부따로 국민따로 라는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국민들은 정부를 처단하고 끌어내려야 할 대상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것 같고, 이에 마찬가지로 정부도 폭도들은 때려잡아야 한다면서 트랜스포머까지 가지고 와서 막아내기만 급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내가 있는 사회, 세계를 어떤 인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까.
집단화하여 배제, 척결을 외치기보다 입장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아직은 좀 이른 것 같다. 여전히 적개심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왜 그런 걸까....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지만, 같은 센터에 있는 노리단이라던지, 브라스통 등 여러 사회적기업이나 로드스꼴라만 하더라도 평소에 별 관심이 없으며 노리단이 합주실을 온통 쓰고 있다든지 할 때는 조금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커다란 사회 안에서, 집단과 집단만의 이야기로만 느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흐름 안에 개인의 자리는 너무나 보잘 것 없어보인다.

개인으로서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역할을 다해서 참여한다는 것,
엽이 쓴 리뷰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아티스트, 뮤지션으로서 어떤 식으로의 참여를 고민할것인가.
요즘 계속 그 주제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다, 눈에 띄는 진전은 없지만....
밥딜런에 대한 개인연구도 그렇고, 방금 TV로 존레논이 닉슨 정부 시대에 뮤지션으로서 동료 급진파 뮤지션들과 어떤 맥락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살았는지를 다룬 프로그램을 운좋게 시청하기도 했고. 
밥딜런을 연구주제로 삼은 이유는 그의 노래와 사회적 참여가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공부해보고 일종의 롤모델로 삼고자함이었다. 
한때, 이른바 60'~70' LOVE & PEACE 뮤지션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동경하면서 수박겉햝기 식으로 그들이 외쳤던 '평화'나 그들의 메세지를 나도 똑같이 재현하는 걸로 충분할거라 생각했는데, 반전이니 인권이니 하는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공부도 안되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게 황당하다.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들의 움직임이 '개인'의 단위로 보기에는 좀 스케일이 크다는 생각이 들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대를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자신을 시작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m not there에도 나오는 그 명대사 말이다. "너의 시대를 살고 너의 시대를 표현하거라".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시대를 살피는 것부터 무언가가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요즈음, 주니어로서 학기를 시작할 때 다짐했던 포부가 어디갔나 싶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어떤 무브먼트를 일으킨다는 것은 나, 개인의 제안이나 실천에서 동조를 얻거나 하는 방식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것인데 내가 그런 일에 흥미 따위를 가지기나 했냐는 거다. 실제로 종이컵 없애려고 했던 것도 어영부영....

히옥스께서 좀 더 밖을 내다보는 시선은 없냐, 공기가 갑갑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이지 한 구석이 쿡쿡 찔리는 듯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부터 생각하고 시작해야할지, 막연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참에 종이컵 없애기를 조금 다른 방법으로 실천해보려 한다.
곧 제안글이 올라갈테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팀 안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할거면 자기도 같이 동업하자고 엽이 말해주는 걸 보고 기분이 참 좋았다.
서로 이야기를 듣고 동조해주고, 격려해주고, 참여의사를 밝혀준다는 것에서 어떤 연찬이 시작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작업장 학교 안에서부터 죽돌 개개인에게 관심가지고 공통된 코드에 맞춰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활발해질 때 밖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