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詩인 조원규 -너의 시선이 바로 불빛이다>

 

  처음 시집을 가졌던 날, 나는 매우 설레고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 처음에는 간결한 문장이 좋았다. 쓸데없이 길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처음으로 시집 한 권을 샅샅이 읽고 나서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시에서 나타나는 단어들의 조합과 그 단어들이 만들어낸 문장과 그 문장이 만들어낸 순간을 좋아한다.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많은 설렘과 기쁨, 슬픔,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을 주는지 그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 했던 것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인은 어려워보였다. 글을 쓰는 사람 같기는 한데 어떤 글을 쓰는지, 그 글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 시 한편을 읽고, 마침내 한 권을 다 읽고 나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 왔길래 이런 단어가,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일까,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시인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그 중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시인은 연약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린 시인은 열 네살 무렵 처음 만났던 이원규 시인이었다. 커다란 오토바이와 가죽 옷, 길다란 부츠까지. 난생처음 만난 시인의 모습이 그러했어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여리디 여린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말 여리고, 어딘가 골방에 들어앉아 밤새 펜을 놀리며 글을 쓰는 사람의 모습에 제일 가까웠던 시인을 만났는데 바로 진은영 시인과 조원규 시인이었다.

 강의를 듣는 내내 조원규 시인은 정말 시인이다, 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늘 감탄을 하게 되는데 조원규 시인은 정말 ‘언어’ 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강의 내내 쭉 들었다. 그리고 그분의 시를 읽는 동안 정말 눈앞에서 물결치는 단어들을 보았다.


 그 동안 세계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크고 깊어서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곳이었고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들 내가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세계가 얕은지 흐린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나와 세계가 아무런 연결도 되지 않고 있고, 이어지는 부분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게는 내 주변이 세계다. 사실 지금은 내 주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늘 헐떡인다. 이 헐떡임이 조금 사그라들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다.

  “나의 사고와 감정이 세계의 한 조각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에 대해 치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