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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김학순 할머니의 증어을 읽었다.
그러나 어떻게 내 원통한 심정을 풀 수 있겠는가. 이젠 더 이상 내 기억을 파헤치고 싶지도 않다.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나 죽어버리면 그만일 나 같은 여자의 비참한 일생에 무슨 관심이 있으랴는 생각이 든다. 증언中 할머니는 1924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셨다. 백일도 안되어 부친이 사망하여 모친과 평양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어머니가 재혼을 하시고 양부 밑에서 성장하다가 15세에 평양 기생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들을 배웠고 17세에 졸업하셨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 영업이 불가하였으므로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북경 도착 즉시 군부대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고 성노예 생활 도중 조선인을 만나 같이 위안소를 탈출하여 중국에서 생활하시다가 1946년 6월에 배를 타고 한국으로 나오셨다. 연극 ‘나비’를 보면서도 과거에 있었던 그런 참혹한 현실을 3자의 눈으로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힘들게 봤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지금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틀 안에서 평화를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읽다보며 정말 숨기고 싶고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이제라도 세상에 알려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할머니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싶다. 이 증언을 보고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했을때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기억해나가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해 봐야 할것 같다. 이 이야기와는 크게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제주도에 갔을 때 들었던 4.3항쟁이야기가 생각이 많이 났다. 4.3항쟁에 연루되어 피해를 봤던 유족과 그 유족들의 원수들이 함께 모여 사는 정말 아이러니한 마을. 이웃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시다는 어르신들 그분들은 그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개념적으로 알고있는 위안부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고 사용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글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에 대한 문제였다기 보다는 일본측에서 역사적이 타당성을 증명하기위해서 사용하는 단어라고 생각된다. 영어로도 그대로 해석된다. comfort 위안을 주는 여성.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이 단어에 대해서 다시 알 필요가 있고 그 앎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P/S : 찾아보니 매주 수요일 12:00부터 1:00까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이분들과 함께하는 시위가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 가서 함께 참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 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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