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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한 동안 나에게 평화로움이란 내 주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개인의 시간을 가질 때, 아픈 곳 없고 최상의 몸과 정신의 컨디션을 유지할 때 등등 내가 원하는 무언가들이 아무 탈 없을 때를 난 평화로운 시간이라 일컫어 왔다. 하지만 그런 협소한 단어의 경계를 넘어 다시 평화에 대해서 묻게 시작된 것은 버마 메솟 난민촌, 돈의동에 다녀오고, 어깨동무에 연결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메솟에서는 꿈과 직업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상황,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자신들의 고향들을 옆에서 봐야했으며 돈의동에서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표현은 일단 이렇게..) 동참한 프로젝트 이지만 정작 옆 사람에게도 손을 뻗지 못 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그런 나는, '평화'에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제시된 근거는 충분치 않으나 전쟁이 없음만이 더 이상 평화상태를 뜻 하지 않는다. 누가 더 나아지는 것인지 모를 입시경쟁과 개발, 범죄 사건들 등 뜨거운 이슈들이 되어버렸다. 최근들어선 청소년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둥 성범죄를 일으켰다는 둥 뉴스에 청소년이 자주 언급하는데 어찌 지금의 세상이 흉흉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엔 뉴스가 참신한 정보를 제공한다기 보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 하다. 적어도 내가 아침에 보는 7시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서는 그렇다. 작업장학교 시즌2를 시작할 때 '공익, (암묵적으론)공존'의 얘기를 했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까지 함께 간다'라는 그 말에서 그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디까지가 함께 갈 사람인가?를 생각하면 작업장학교는 계절이 바뀌는 때면 쪽방촌의 어르신들을 떠올린다.(비록 여름에 만나뵙고 지금서 겨울을 맞이하는 첫 번째 해이긴 하지만..) 버마의 사회적 활력화를 돕기 위해 따비에를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도움의 규모와 크기가 설령 협소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이슈들이 현실로 들이닥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큰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 민욱의 '손의 무게' 소개글에서 '미래에 잃은 것을 호모 투어리스트가 되는 것인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과정이 생략된 미래는 없다. 평화롭지 않은 세상에서 개인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앞서 말한 듯 누구는 헤쳐나가고 누구는 함께 가지 못 한다면 후에 들이닥칠 재앙은 앞서 간 사람들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서간 이들이 먼저 갔다고 그들을 미워하며 토라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도 함께 세상을 구하자는, 설득력있는 권유가 필요하다. 우리가 공익과 함께 살기, 크리킨디, 너구리들의 마을과 마음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니 만큼 평화워크숍의 과정은 곧 우리가 추구하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 세상을 구한다는 것에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 시간들은 곧 하자작업장학교 내에서 일'을 하는 명백한 근거들로 될 수 있는 질문들이 오가길 바란다. 물론, 그런 질문들을 가장 먼저 입에서 꺼내야 할 사람은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야하지 않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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