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작게 생각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잠을 자거나 혼자 조용히 있을 때 가장 평화로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넓은-국가적 차원에서 평화를 생각한다면, 전쟁을 평화를 유지한다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한쪽 편에서는 유지를 하게 도와주지만 반대편의 평화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할 것 인가?

 

평화하면 전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국가라는 단위는 국가 밖에서 국가 안을 보호하기 위해 비평화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었다. 국민들로 하여금 “애국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누군가를 적으로 삼는다. 우리가 받아왔던 역사교육이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준 것 이라면 그 이면에는 다른 국가의 배타성이 있었다. “정신대”의 문제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속한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겉으로는 전쟁이 있었고.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어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국가 안에 속해있는 그들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국민이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그 국민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는 것 일까? 국가를 넘어 평화를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갈래를 가지고 있을까?

 

마사키 선생님은 국가라는 단위는 대지 위에 깔려진 카펫과 같은 거라고 했다. 반드시 카펫을 걷을 필요는 없지만 낱낱이 흩어진 채로 있지 않고 세계가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했다.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있다. 그곳에는 소속감도 있고, 연대의식도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고 행해지는 여러 가지가 함께 있다. 물론 전쟁도 있다. 마사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전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의 것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더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조화를 말씀하셨다.

 

이번 부르노의 워크숍에서는 우리가 평화를 당연히 추구하거나 말로 되뇌기 전에 어떤 말로 사용하였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조금 단위를 두어 확인해보고 실제로 경험을 나눠보는 시간을 기대해본다. 평화라는 단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통용하고 사용하는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범위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념화된 평화를 조금 허물고 내 언어로 말 할 수 있게 말이다.

 

“디 벨레” 라는 영화를 보았다. 독재정부라는 한 정치적인 형태를 통해서 공동체의 힘과 권력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닫고 폭력성을 띌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공동체, 함께 하자고 하는 연대는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세계를 구하는”의 범위는 어디까지고, 어떻게 누구까지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까? 

(너무 큰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네. 수정보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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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