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3일.
정미지.

1. 내가 죽으면 시신은 화장하여 아버지 옆에 묻어 주세요. 

2.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장에 있는 얼마 되지 않은 돈은 엄마와 동생에게 준다. 잘 사용할 것이라 믿는다.

3. 내가 가지고 있던 편지와 내가 종이에 작성한 글이 있다면 소멸해 달라. 그리고 컴퓨터도 포맷하여 주어라. 하드에 있는 파일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없애주어라.

4. 일찍 죽든 늦게 죽든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나의 선택 또는 어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던 간에 내가 해야 했던 일을 정리하지 못하고 죽는 것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했던 누군가에게 했던 약속들도 지키지 못하는 것에 죄송스럽다.

항상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살아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게 된다. 사람이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소멸할지라도 어느 누군가, 적어도 한 사람에게 만은 그의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죽고 나면 천국이 있을지, 지옥이 있을지, 어떤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 윤회할지, 아무 것도 없을지 잘 모르겠다. 조금의 공포가 있는 거 같기도 한데 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러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내 죽음에 허우적대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 소중히 하루하루를 살길 바란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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