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생은 부산(인지 대구인지..)이지만 말 그대로 출생‘만‘ 이었다. 태어난 직후론 줄곧 서울에서 살았고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탓인지 사실 자연이나 친환경 이런 부류의 단어들과 무관하게 살았다. 관심도 그다지 크지 않았고. 다만 ’서울은 공기가 나빠. 매연이 많으니까!‘ 라던지 하는 이젠 살짝 지겹기만 한 말들 덕에 ’아 그렇구나‘ 라며 가벼이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living literacy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꾸리찌바=유토피아적 도시. 개인적으로 저렇게 이상적인 도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영상이었다. 그들은 보다 인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한편으론 저런 도시에도 분명 무언가 모순적인 면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과연 그런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재활용을 이용한 도시 디자인 및 실용적 시설이 유독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필요하지 않음을 필요함으로 바꾸는 꾸리찌바의 체계가 신기했고 좋았다. 건축디자인을 그런 방면과 접목시킨 아이디어도 시선을 끌었다. 최근 서울 디자인도시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글과 사진을 봤었는데 그것과 맞닿는 지점도 있어서 더 관심있게 본 것 같다. 전에 태백에 위치한 석탄 박물관에 갔을 때 석탄을 담아 나르던 열차를 전시했던게 생각났다. 그것은 관상용에서 그쳤지만 좀 더 나아가 꾸리찌바처럼 일상에서도 잘 접할 수 있는 재활용을 이용한 디자인 요소들이 서울에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음, 그리고 그런 재활용으로 인해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생산해내는 그들의 체계에 우아! 감탄했다. 단순하지만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엔 왜 이런 체계가 없지? 있다면 나는 훨씬 쓰레기 줄이고 뭐든 아끼고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사실 이건 지금까지의 내 행동에 대해 영상을 통해 찔리는 부분을 자각하게 되자 스스로 합리화 하려는 핑계거리에 불과했기에 곧 집어치웠다. 결국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시민 모두의 주도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꾸리찌바가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정책을 내놓은 들 시민 모두의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저 유토피아스런 영상이 만들어졌을지 궁금하다. 우리도 결국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것 같다. 나부터도 사실 저런 부분에 대해 막상 영상을 보거나 토론할 때를 제외하곤 별 감흥 없고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있는데 문제의 시발점은 이 부분일 것이다. 영상을 보는 내내 그동안의 내 만행들(ex 종이낭비)을 떠올리며 자책하곤 했지만 내일이면 또 다시 별 감흥 없는 내가 될 것 같다. 쉽게 고쳐지는 부분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씩 living literacy를 통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 더불어 다른 프로젝트들과 어떤 맥락으로 통합적이게 젖어들 수 있을지, 그런 시선을 키우는 과정에서 좀 더 살펴야 할 부분일테다.

지난 학기 컨테이너 어페어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또한 비슷한 맥락 안에 있기에 새삼 왜 그것의 연장선인지 오늘을 통해 알게 된 듯 싶다. 앞으로 한결 가벼운 맘으로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본 바로는 공책 한면이 아닌 양면사용, 물은 꼭 마실 만큼만 받고 마시는 것.

profile
펭귄 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