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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김만리: 이번에 우에노 치즈코 씨의 소개로 조한혜정 선생님, 그리고 하자센터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학생들이 구로코(黒子)를 맡아주었습니다. 저희들로서는 정말 혜성처럼 하자가 나타나주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구로코를 모집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참가자가 나타날까 하는 불안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하자의 무대 지원 참가로 큰 도움을 얻었고, 그 덕분에 한국의 장애인 출연도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 싹이 움틀 것을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담에서 테마로 삼고 싶은 것 중 하나는, 특수성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극단 타이헨은 인간의 가치관 그 자체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을 지향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곤란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방식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헨이 하고 있는 예술은 굉장히 특수한 존재로서 위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타이헨의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세워왔던 것입니다. 한편, 하자는 프리 스쿨로서 한국 사회에 특수한 존재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특수한 것으로 보여지기 쉬운 극단 타이헨과 하자. 이 둘이 공동 기획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파트너십으로 공연을 실현했습니다만, 그것을 세상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특수한 집단이 뭔가 하고 있다’는 레테르가 붙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한혜정: 저는 우선 28년간 이러한 극단이 존재해왔다는 데에 놀랐습니다. ‘장애자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에 저항감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러한 점이 감동을 줍니다. 일본에 가면 장애인들이 거리에 많이 나다니고 버스도 타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길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서 변화가 생기고 있긴 하지만요. 한국과 비교해 일본의 장애인 권리는 상당히 신장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을 함께 가까이 보면서 다시 한 번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성형수술 천국이라고 불립니다. 최근들어서 더욱 모든 것을 표준에 맞춰 교정해버리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고도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공연을 보고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다양성과 가능성을 생각했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로 좋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해서는, 저도 연극을 보러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만, 이번 작품과 같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애인 극단 Nalaga'at 팀이 훌륭한 공연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만, 이번 공연이 주는 느낌을 좀 달랐습니다. 우에노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우리 건장자(健常者)는 오히려 몸이 굳어져 있고 ‘표준화’되어 있어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같은 감각과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진 것이지요. 공연을 보고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서 한국의 대학투어 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획일화되고 앞만 보고 사는, 아름다움을 같은 척도로 정의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모두 이 공연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번 공연의 소재나 테마에 대해서는 한 가지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민족주의적 운동이라는 소재가 부각될 때 사람들이 잘 안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간 민족주의 논의가 너무 식상하고 최근에는 보수주의자들의 전용품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이번 <황웅도 잠복기>는 민족주의적인 제재로 보여져,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만리: 저도 원래는 민족주의적인 것, 국가주의적인 것을 부정하고, 다른 방식의 삶, 자신의 미의식을 만들어가는 것을 기본 자세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황웅도라는 실재의 인물을 제재로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던 점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황웅도라는 개인을 언급함으로써 보편성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조한혜정: 저는 이번 작품이 예술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부분을 많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누에고치를 굴리는 장면이라든가, 노동에 대한 표현을 아주 탁월합니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다우면서도 훌륭했던 만큼, 좀 다른 테마였다면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지요. ‘장애인이 만든 예술로서’가 아닌 ‘보편적인 예술’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에서 보더라도, 공연 시간을 조금 줄이면서 현재 한국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테마, 예를 들면 신화나 우화적 이야기를 빌어 인간삶의 다양성과 공존에 대해 표현했다면 폭발적 인기를 누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만리: 예술이 청소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이번 하자의 학생들이 타이헨의 예술 창조 현장에 참가한 것을 돌이켜보는 것입니다만, 하자의 학생들은 역시 특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리 스쿨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있습니다만 도쿄나 세계 각지에 있는 프리 스쿨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구나 하고. 그 특수성이라는 것은 세계 속에서 한국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 남북분단의 현실로부터 오는 중압감과 그 속에서 또한 일원적인 시각으로 속주하기 쉬운 사회, 그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 그러한 가운데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세계를 자기 속에 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 하자의 젊은이들은 독특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강인함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이번에 참가해준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조한혜정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한혜정: 기본적으로 저는, 자칫 ‘민족성’ ‘국민성’ 같은 개념으로 이해될 사유는 피합니다. 모든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사실 우리는 소통을 위해 두 사회간의 차이를 이야기 하지만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사실상 근대화의 속도 차이에 기인한 차이가 더 크지요. 개인화의 정도라거나 사회의 참여도 같은 것도 민족성과는 무관한 근대화가 진행된 방식과 단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스빈다. 저는 한일 교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고 특히 우에노 선생과 만나 작업을 하면서, 2006년 피스 보트를 타거나 2009년부터 만나고 있는 나무늘보 클럽 (나마께모노 클럽)과 만나면서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피스 보트를 타면서 쓸 글을 따로 보내드릴께요.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우에노 교수의 말대로 일본 여성운동이 거국적 운동을 벌인 때가 있고 한국이 그럴 때가 있고요 청년들이 매우 정치적일 때가 있고 아주 조용할 때가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좀 긴 시간성 안에서 살펴야 할 특징이고요. 일본의 경우 청년들의 에너지는 버블이 꺼진 이후 점점 사그라드는 경향을 보여주었지요. 이 경향도 나는 일본 지진 사태 이후 좀 달라지리라 보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강조하는 점은 두 나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비슷한 청년존재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하자 작업장학교는 초기부터 동경의 도꾜 슈레와 긴밀한 협력을 해왔고 서로를 참조해왔습니다. 서로의 에너지 레벨이 좀 다를 수도 있고 속도도 다르지만 그것은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도 일본에서도 젊은이를 선발함과 동시에 배제해가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화이지요. 이런 상태에 청년들이 아주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유부하는 청년들은 강도 높은 훈련과 노동이 지쳐버리기도 하고 아예 포기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삶을 원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하자 센터입니다. 일류대 입학만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학교를 거부한 학생들이지요. 적극적으로 거부를 한 이들도 있고 그냥 몸이 그런 체제에 맞지 않아 온 이들도 있습니다만 이들을 모두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맹목적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한 점에서 좀 ‘성찰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우리 학생들이 장애배우들에게 밥을 먹여드리고 친구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참 훌륭한 친구들이더군요. 이런 하자 작업장 학교 같은 곳은 한국만이 아니라 모스코 필름 스쿨이라는 곳도 있는데 장담하건데 그 친구들이라면 하자 작업장 학교 학생들 못지 않게 훌륭한 쿠로코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모스코에 꼭 한번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스코 필름 학교와 연결을 해드리겠습니다. 작업장 학교 학생들은 일단 자신들도 한번 힘든 결심을 했고 힘든 일을 겪었지요. 주류에 들지 않아도 좋다는 결심을 할 것이지요. 그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자신의 것은 일단 내려놓고 뭔가 같이 해보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희 학생들이지만 저 자신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들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국가 중심이라는 시대가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하지요. 그리고 글로벌, 글로벌 하는데 그때의 글로벌은 시장이 중심이지요. 그래서 여러가지로 새롭게 시도들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럴 때는 오히려 국가단위에 매이지 않은 시민들이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로, 자신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화된 한국과 일본의 대표가 만나는 것, 한국의 역사를 짊어지고 만나는 것, 이런 것 말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같이 어려움을 나누면서 예술을 만들어 가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작은 것과 작은 것이 제대로 만나는 일, 그것이 작지만 실은 아주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만리: 구체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으로 무엇이 생겨나거나 바뀌거나 하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저도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개인이 어떤 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분석하는가라고 할 때, 커다란 것에 비추어 상대화하는 작업이 일정하게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일본 사회의 경제지상주의에 휩쓸려 버린 젊은이들에게서는 가치관이랄까, 결정적으로 큰 것이 보이지 않아요.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자신의 행복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일순간의 행복. 지금이 좋으면 된다는 감각. 이렇게 큰 것을 붙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만의 시점만이 무언가를 해결해줄 듯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오늘날 일본의 상황입니다. 조한혜정: 개인주의가 매우 심해졌고 한 순간의 행복만을 소중히 한다는 흐름은 한국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도 심해지고 있어요.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잃어버려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물론 한국의 청년들은 일본에 비해 좀 더 역동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고 그런 이야기 속에서 지나고 있는 편입니다만 지금처럼 간다면 한국도 십년 지나지 않아 청년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보면 ‘시차(시간 차이)’와 역사적 차이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 있는 것이고 한일간에 제대로 만나면 서로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이런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서로 감동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웃음). 양국 모두에서 큰 것,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만났고 그들이 새로운 관계를 탄생시키고 숙성시켜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공동작업 속에서도 각자 서로 무언가 일상적인 불편을 느꼈을지도 모르고요. 그것은 극복했고 또 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 큰 성과일 테지요. 역사를 바꾸고 싶어하는 우리는 아주 든든한 일꾼들을 얻은 셈이고요. 좀 더 말씀 드리자면,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새로운 상징으로서 새로운 세포,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야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이 공동작업을 하자와 함께 계속해왔다면, 선생님이 한국의 관객에게 더욱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한국의 관객을 위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만남이 한일 프로젝트로서 새로운 세포를 낳는 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문제도 그렇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안에서 그 언어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이들이 백번 만나봐야 합의가 될 교과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패라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이 만날 때, 한일 양국의 고질적 증오와 부채의 감정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인류 공통의 감각으로 만나서 역사를 쓰기 시작할 할 때 자신의 조상들의 역사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요. 이런 작업을 그냥 바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번 하자 작업장 학교와 타이헨이 만났듯 이런 깊은 만남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쌓이면서 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이지요.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자그많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 2월에 제가 교수로 있는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학생 15명과 함께 요꼬하마의 쪽방촌 코초부기초를 열흘간 다녀왔습니다. 역사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은 때문인지 한일 양국 청년들과 고토부기초 노인들은 금방 친해졌고, 특히 청년들은 실업문제라는 공통의 사안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했었지요. 역사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라고 하면 그런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서로가 가진 정보와 시각의 차이가 너무 크니까요. 제대로 된 만남이 쌓여야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이지요. 김만리: 만남이 있고 난 뒤 어떻게 심화해갈 것인가. 오늘의 일본 젊은이는 역사를 전혀 모릅니다. 한국의 젊은이는 그 나름대로 배우고 있는지요? 이번에 타이헨의 젊은 스텝과 하자의 학생들은 무대 뒤의 일을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하나씩 해결해갔습니다. 구로코로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이를 통해서 인간과 인간이라는 만남의 방식이 연결되는 것까지는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서로 한걸음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단계에 있을 때, 서로 살아온 백그라운드, 배경에 있는 역사라는 것 말이죠, 그 차이를 제대로 자각하지 않고서 과연 서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이해라는 것은 깊어질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깊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인지요? 역사적인 인식이 전혀 없이 한국의 젊은이와 일본의 젊은이가 가볍게 만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는? 조한혜정: 인간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그러한 단계를 거쳐야 만 하고, 교과서 문제 등등도 중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김만리: 저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조한혜정: 한국의 젊은이가, 역사라는 것은 알고 있어도 현실 감각으로서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면에서 무심한 일본 젊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김만리 선생님이 한국에 대한 기대를 깨뜨려 미안합니다만 나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의 비교로 말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요즘 1983년데 피스 보트를 창업한 일본의 Tatsuya Yoshioka씨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주 이야기 합니다. 이제는 장년이 되었지만 아주 훌륭한 청년이지요! 일본의 1995년 대한신 지진에 이어 이번 후쿠시마 지진 상황에서 봐도 청년들은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고 아주 열성적으로 사회에 관여를 하고자 합니다. 역사에 무심한 존재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현 사회의 구조이지요. 그 구조를 바꾸어가려는 것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고 그 일중에 이런 만남이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김만리: 그 부분의 차이가 역연히 있으면서도, 인간으로서 지금 만난다는 듯한 느낌은 들어요. 그렇지만 여기서 심화해간다면 서로의 백그라운드, 서로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세대까지 서로 문제로 삼는 관계 말입니다. 언젠가는 하고 싶다고. 아주 재미있어요, 저는. 백그라운드와 관련해 말씀 드리자면, 한 가지 한국에서 묻고 싶었던 이야기로서 징병제가 있어요. 일본에서는 전쟁포기, 군대포기의 헌법이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징병제 같은 것에는 상상력이 미치지 않죠.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저 또한 하자의 학생들과 어울리면서도, 아, 이 아이들도 몇 년 있으면 징병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징병제는 젊은이들에게 어두운 그늘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조한혜정: 깊은 그늘을 남겼었지요.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화적인 청년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증거를 남기거나 스스로 일부러 팔을 다치게 하는 등) 기피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최근 2004년 이래 통계가 나왔는데 군대에서 장병이 3일에 한명 꼴로 사고로 죽고 그 중 자살이 60%라고 합니다.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통제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마침 내가 지도하는 학생이 최근 군대의 신자유주의화 현상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서 군대개혁은 갈피를 못 잡고 있고 한편에서는 미국의 군대처럼 취업 등 자격시험 공부를 할 수 있게 장려를 하는 쪽으로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아예 취직 준비도 하고 신체훈련도 한다면서 그 기회를 아주 영리하게 이용하는 ‘열리한 남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십대는 대학입시에 정말로 전념해버리기 때문에 몸을 많이 해치게 됩니다. 머리밖에 남지 않죠. 그 점에서 군대에가서 몸 훈련하고 한눈 팔지 않고 영어공부와 자격증 시험, 고시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청년들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편에서는 자살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옳다구나 좋은 기회구나” 라면서 군대를 한껏 이용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양극화의 시대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혼자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고교 졸업 후 남녀 모두에게 군대 대신 2년간 사회와 관련된 활동을 마음 껏 하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시간을 청년들에게 주라는 것이지요. 물론 국가에서 그들에게 먹고 자고 살아갈 기본적 경비를 대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청년들에게는 군대도 징병도 아닌 사회에 참여하는 시민청년으로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만들어갈 활동을 시작하라고 말하지요. 우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그간 입시공부에 매여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박탈당한 데 대한 보상을 당당하게 받아내라고 부추기는 중입니다. 권력 남용 인가요? 하하 사실 개인의 신념이나 종교에 의해 군대에 가지 않기로 한 사람도 있어서, 이런 경우에 현재는 형무소 살이를 합니다. 만일 징병제가 아닌 이런 사회복무제를 정착시킬 수 있다면 신념이나 종교로 징병거부를 하는 사람도 형무소가 아닌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곳에 가서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게 되겠지요. 냉전시대에 필요한 군대와 지금의 ‘군대’는 아주 다른 성격일 터이고 그런 면에서 징병제를 국민사회복부제로 바꾸자는 제안을 내심 혼자 생각해보고 좋아하고 있는데 아직 많은 호응을 받지는 못하고 있네요.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이런 말이 잘 먹혀들기 힘든 것이지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가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것에 대단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무거움을 그렇게 느끼지 않는 세대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기에 이런 변화는 불가피한데 자꾸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믿지 않고 그 언어를 고집한다면 청년세대는 계속 무관심한 척 하면서 더 역사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일정하게 기성세대가 포기할 줄 알게 될 때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쪽입니다. 전쟁통에 살아남았고 경제기적을 이룬 기성세대의 편집증은 한일 양나라 모두에 걸쳐 공통적으로 참 무섭거든요. 저도 그 세대에 속하긴 합니다만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인데다 청소년들과 놀다보니 좀 다른 문법으로 말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도 더욱 새로운 만남이 중요합니다. 국경을 넘어서만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선 만남도 아주 중요하지요. 좀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젊은이가 한국의 대학에 유학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한국의 아버지 세대로부터 ‘자네의 할아버지 세대가 나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나쁜 짓을 했다’ 정도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일본인 대학생은 여기서는 사과해두자,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거슬러 올라가서 부딪히는 정도까지 가지 않는, 만일 부딪힌다 하더라도 가벼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는 건강한 민족주의와 건강하지 않은 민족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열렬하게 대한 독립 운동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해방 이후 일본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어머니는 일본의 인형에 대해 일정하게 거부감이 드시다면서 이상하다고 말씀 하시긴 했습니다. 오빠가 중학생때 한일 교류 학생 프로그램으로 가정 방문할 일본 학생들 데리고 왔는데 그 때 이런 저런 생각을 이야기 하다가 그런 말씀을 얼핏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나 정말 일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 하셨지요. 제가 걱정하는 민족주의는 자신의 울분을 어딘가에 쏟아내려고 하는 억하 감정에서 나오는 민족주의입니다. 물론 아직 역사 문제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감정의 표출로 풀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울분을 토하고 싶은 데 일본이 자동적으로 표적이 되는 것을 나는 건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감정 표출의 대상으로 일본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있어야 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을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런 위치를 바꾸어야 우리가 문제해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위치를 바꾸어보기.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요. 우에노 선생과 깊이 나눈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 였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가지고 운동하는 훌륭한 민족주의자들이 한국에는 계십니다. 예를 들면, 위안부의 사람들을 지원하는 청년들과 아주머니들이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할머니들과 일본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합니다만, 그러한 젊은이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자의 젊은이들은 그곳에 가끔 가지고 하지요. 자신의 국가 하나를 짊어지는 것은 동시에 세계의 시민으로서 지구의 주민으로서 시야를 갖는 것을 아는 청년들이지요. 김만리: 저는 재일코리안2세라는 입장으로서,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부유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어딘가에 자신이 속하는 것으로 안심하는 것이 없지요. 불안정한 가운데서 발버둥쳐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시점은, 세계 속에서 단 하나의 응축된 시점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라든가 그런 것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서 개개의 개별성을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을수록 세계도 이어져 갑니다.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어져야만 합니다. 그 이어짐이 진정한 응축이며 특수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한혜정: 아. 지금 시대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특히 경제 발전을 이룬 이른바 선진국 국민들은 모두 표류하고 있는 존재 아닐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교포로서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커서, 바로 그 인식의 차이 때문에 오늘 우리의 토론이 좀 겉돌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군군요.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도 제가 피하는 논의의 구도이거든요. 저는 일본도, 한국도 특수에 속하고 근대의 전범이 되어온 서구 사회도 특수에 속한다고 봅니다. 모든 나라가 특수한 진화를 거쳐온 것이지요. 그 특수를 잘 보면 그 속에 보편성이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부분의 합 +’가 전체라는 데카르트적 명제를 넘어서서 작은 부분 안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프렉탈의 원리’가 이 시대를 읽기에는 보다 적합한 명제라고 시대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이것은 우리가 가진 사유의 틀을 말하는 것이고 또 다른 토론의 필요한 주제일 테지요. 어쨌든 국민국가가 건재한 상황에서는 교포들이 표류하는 소수였지만, 포스트 모던한 상황, 지구가 언제 망해버릴 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모두가 그런 노마드로서, 다이아스포라로서, ‘교포적 감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서 ‘해외 교포’들의 위치나 정체성도 아주 달라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달라져야 하고요. 저는 국가가 없어질 것 같지도 않고 없어질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그냥 우리가 지구인이자 국가의 국민이고 또한 도시의 시민이고 장애인이고 페미니스트이고 엄마이고 딸이고 할머니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사회를 보면 정 싫으면 부족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부족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지요. 국가를 좀 쉽게 떠날 수 있게 되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그러나 국가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매우 소중하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난다고 능사가 아닐 것이라는 것, 애국심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어떤 것에 대한 맹목적 감정이어서는 위험하다는 것, 애국심은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 그들이 가진 문화, 그들에 대한 기억과 존경심과 관련되는 것이라는 것, 자신을 만든 것이기에 자신의 일부이며 무엇보다 제대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서, 자본에 대해서 냉철하게 알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인으로서 언제나 국가의 문을 열어두어야 하고 손님들을 환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이것은 근대의 정신, 칸트의 명제를 극복해야 하는 이야기 이기도 한데 그런 철학적 논의 없이도 나나 선생님이나 하자 작업장 학교 아이들은 이미 어떤 시대로 가야 함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만리: 그런데 하자의 구로코와 이야기한 것인데요, ‘간바루(頑張る, 열심히 하다)’라는 말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가 봐.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한테 곧잘 ‘간바루’라든가 ‘간바리마스’라든가 말하는구나, 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봤었어요 (이리로 옮겼습니다.) ‘열심히’라는 개념이랄까, 가치관이 있어요. 그 점에서 본다면 타이헨이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일까나, 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하자의 학생들은 열심히 하는 것은 싫어요 라고 확실히 말하는 거예요.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이 점만큼은 타이헨과 하자의 학생이 아주 잘 통하는 부분이구나. 저는 이 아이들과 만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타이헨의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나이브한(@@@@유연하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좀 이해가 안 되어서요. 나이브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 몸의 상태. 그 좋은 면을 잘 드러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도 그것을 확실히 캐치할 수 있도록 나이브한 스텝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상냥함이나 휴머니즘이 아니고요. 인간으로서의 부드러움으로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극단 타이헨에서는 예술표현으로서 굉장히 예민하게 추구하는, 어떤 의미에서 세포의 막을 찢는 듯하면서 또한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또 찢는, 그러한 작업으로서 전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구 규모의 시야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느 쪽을 선택할까 하는 조금 전의 질문에는 완전히 지구 규모의 쪽이네요. 민족주의가 아닌. 조한혜정: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개발독재 정권시대가 생각하고, 또 입시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던 기존 학교가 생각이 나겠지요. 그래서 하자 작업장 학교 학생들은 보셨듯이 아주 열심히 뭔가를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표현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맹목적인 부지런함, 이런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 대신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하고 새 길을 내고 싶어하지요, 신선한 새로운 길을 가다. 좀 천진하게 가다. 유연하게 가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하자 작업장 학교의 모토와 딱 맞습니다. 그 부분이 타이헨과 하자가 만난 지점이겠네요. 김만리: 앞으로의 젊은이들에게 한가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살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묻을 때 필요한 것은 표현이라고 것입니다. 저는 신체표현을 추구해 가는 이유는 우생사상(優生思想)이라는 것에 저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우생사상과는 다른 대답을 찾는 동기라고 할까요, 우생사상 아래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인간 가치의 창조 말입니다. 우생사상이란, 강한 자가 살아남고 열등한 자는 멸망한다는 적자생존의 윤리를 인간사회로 확대해, 열등한 인간을 멸살해도 좋다는 사상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장애자라고 하는 것은 죽어도 마땅한 존재가 됩니다. 이 죽임을 의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상정해보게 된 것입니다. 가치관이 바뀐다면 어떨까 하고. 일방적으로 죽임 당하는 쪽이라는 절대적인 규정은 일단 해소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자생존의 방법 면에서 말하는 강한 힘으로 약한 상대를 죽이는 개념이 없어지는 것뿐으로, 다른 개념으로 타자를 죽이는 것은 여전히 가능한 것 아닌지요. 그래서 단순히 자신들은 죽임 당하는 쪽이다, 라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인간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에고를 문제 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극단 타이헨으로 신체예술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이유로서, 우생사상만이 아닌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을, 인간의 근원까지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류 유사 이래의 우생사상이 이 시대의 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증폭되어 인간을 폄하하는 원흉이 되었습니다. 이 우생사상이란 180도 다른 구체적인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저는 우생사상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조한혜정: 우리는 파시즘의 항복 이후 우생학을 넘어섰다고 착각했지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어요. 이제 우리는 얼굴없는 자본과 그 자본의 시녀 역을 하는 국가와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와 ‘아닌 존재’로 양분하는 체제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지요. 인류는 애초부터 약자를 보살피는 돌봄의 행위, 지혜와 공존의 행위로 인해 지구상에 존속해왔습니다. 강자만 살게 하는 사회는 인류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원치 않는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고 모두에게 확인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타이헨은 아주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겁니다. 하자센터의 청년들은 경제지상주의 속에서 자신은, 실은 모두가 도태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헨과의 만남을 통해 공감대 형성이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로코를 하면서 배운 것이 아주 많고 아주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입장이란, 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신 역시 언제 도태될 지 모를 세상을 어렴풋이나마 느낀 이들이기에, 초조함에 쫓겨본 이들이기에, 선생님의 ‘싸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마음 깊이 무언가를 느꼈을 것입니다. ‘승자 독식 winner take it all’ 사회에 대해 하자 작업장 학교에서는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승자독식사회에서는 승자는 없다는 것을, 인류는 협력을 통해서만이 지금껏 지구상에 살아왔다는 진실을 가르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학생들은 장애인가 되었든 건장자가 되었든 다를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르고 또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극단 타이헨의 작품은 이 세상에 반향을 일으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누구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공감대가 넓게 퍼져가야 할 때입니다. 김만리: 전 세계가 인간의 앞날에 대해 전망을 그릴 수 없는, 인류는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가로지르는 이 시대, 그 속에서 몸부림치며 미래를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진 보편성이라는 것은, 역시 특수한 곳으로부터 발생한 과제를 제대로 집어 올리는 활동을 축적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닌가 하는, 그러한 느낌이 듭니다. 이 대담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공통개념으로서의 미래상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하자의 학생들에게 구로코를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조한혜정: 영광입니다만 그것은 히옥스 교장과 학생들이 알아서 할 일일것이고, 귀한 만남을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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