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렸던 글에 수정으로 밑에 달아서 올렸던 글인데, 모르셨을까봐 새글로 올려요.~

여행정리

->고정희와 해남?
 답답, 막막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투어 준비를 해남에 가면 조금이라도 풀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었다. 고정희와 김남주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장소 이동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적어도 이 시인들의 마을에서 그 시인들이 풀고있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나 감수성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이들에게 해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왠걸 내가 읽은 시들은 대부분 '밤과 자본주의'와 같은 민중운동의 감정이 막 풍겨 나오는 시들이었다. 천하태평하게 하늘의 파랑과 땅의 초록이 지나가고 그 중간에서 80년대 당시 광주와 그들의 시대운동이 다가왔다. 파랑과 초록의 공간과는 상관없이 그저 새벽녘 금남로를 돌며 확성기에 울부짖는 여자만 상상 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 고정희 시인에게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고, 알게 된 것도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다 한번 소개받은 사람.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사람. 그래서 이 사람은 매우 낯설다. 어렵기도 하고... 내가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힘은 그녀의 시다. 2009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광주의 뜨거움과 슬픔, 아시아의 여성들에 대한 노래가 슬픔, 분노, 따듯함... 내 감정을 건드린다. 거기다 난 그녀를 추모하는 여행의 안내자 역할도 맡았다. 그녀의 생가와 무덤. 그녀와도 그녀의 집과도 첫 만남이다. 왠지 그녀의 생가 앞에 내려 서있자니 차분해지고 싶어졌다. 생가 주변엔 대나무 밭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대나무 밭이 있는 작은 집을 구하지 못해 아직도 기러기 가족 신세로 살아가고 있는데, 문뜩 그 대나무 밭이 부러웠다. 디카에 대나무 밭을 담으려 그것에 눈길을 맞추자 바람이 막 불어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초 뒤 어디선가 새들도 날아올라 지적이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시인의 집이였기 때문일까, 왠지 나 혼자 이 장면을 보고 "안녕." 대나무와 새들의 인사에 대답을 했다. 나에게도 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건가. ㅋㅋㅋ
 그녀의 무덤. 숙연한 마음이 커지고 움직임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녀의 무덤은 뒤로는 소나무 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호수 넘어로는 (보리밭?) 평지가 펼쳐진다. 어렷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성묘와 벌초를 빠짐없이 다녔기 때문에 그녀의 무덤 위에 자라난 쑥을 뽑아주고 싶었다. 쑥과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으며 그녀에게 인사도 건네고 내 소개도 했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러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안부와 곧 다시 찾아 올 것을 일러주고는 절을 올렸다. 그녀의 무덤 주변에는 아주 작은 보라색의 예쁜 꽃들이 있었다. 다시 우리를 이동시켜줄 차로 돌아가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성묘를 올리는 일들에 더 진지해지고 마음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해남의 하늘 땅끝의 하늘
해 남은 땅과 하늘이 참 예쁘고 따듯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개 구름들, 온통 나무와 보리 같은 식물들로 초록빛인 땅. 서울에서 이곳으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 이 해남의 땅과 하늘 사이에서 고정희 시인이 묻혀있는 곳에서 우리의 룰 모델을 생각하고 축축한 사람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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