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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용산'에서 확인하는 지독하게 불편한 진실 원고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산4구역과 같은 철거민의 처지에 처해있고, 그런 고통 속에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가들이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면서, 그리고 이 작업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눈물 바람이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이 구술집을 통해서 용산 문제가 용산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술집에는 날 것의, 가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가 그득하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니 집이 부서져 있더라는 얘기며, 젊은 용역 깡패들에게 행패와 견디기 힘든 모욕을 당하는 얘기며, 인간적인 수모를 당하다 결국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던 얘기까지 이들의 집진한 삶들이 가감 없이 그려져 있다. 왜 이런 얘기들을 우리는 외면하며 살아왔을까? 철거민이 처음부터 철거민이 아니라 바로 내 이웃이었고, 언제고 나도 단박에 철거민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이처럼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글은 찾기 드물 것이다. 완벽한 폭력의 체계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 죽어 내려온 날이었다. 옥상 망루는 불에 타 가뭇없이 무너져 내리고, 망루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농성 철거민이 건물 벽에 매달렸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새벽 6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이 나라의 경찰은 30여 명의 철거민들이 벌이는 망루 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을 포위한 채 물포 공격을 해댔고, 특공대를 투입했고, 기중기로 컨테이너박스를 올려 공격했고, 철거 용역과 합동작전을 벌였고, 그리고 '완벽하게' 진압했던 날이다. 거기 올랐던 철거민들은 이 나라의 궁민이 아니었으며, 단지 진압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적군'이었다. 적군 앞에서는 어떤 구호 조치도 필요치 않았다. '정당한 공무집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누군가가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망루가 세워졌고, 철거민들이 그곳에 방어용으로 세녹스를 재어 놓았고, 화염병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망루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화약고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특공대를 투입하는 고강도 진압을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 경찰은 1월 19일 상황을 한껏 과장해서 보고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진압하지 않으면 서울 시내가 불바다가 되는 참혹한 테러라도 일어날 첫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용산4구역 인근의 주민들은 경찰에서 말하는 그런 위험한 상황을 보지 못했다. 특히 오후에는 망루에 올랐던 이들이 망루에서 나와 밖에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망루의 '테러분자'들은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고 머리 위에 하트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이후 열 몇 시간 뒤의 상황은 생각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밤은 깊었고, 망루 안의 철거민들은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런 중에 정부는 끔찍한 진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새벽 6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일어난 비극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저안에 사람이 있어요!" 울부짖음도 외면한 채 살인 진압을 강행했다. 1차 화재 이후 특공대를 망루에서 철수시켰지만 진압은 계속되었다. 만약에 1차 화재 이후 진압 작전을 중단하고, 구호 조치를 취하던지 아니면 안전 조치를 취한 뒤에 작전을 재개했다면 철거민들이 죽어 내려왔을까? 그런 뒤에 정권은 27명의 검찰을 배치하여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검찰은 처음부터 '철거민 유죄, 경찰 유죄'라는 결론에 맞추어 수사해갔다. 그 결론대로 2월 9일에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특공대 1명이 죽은 원인은 철거민들의 화염병에 의한 화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철거민 사망자 5명은? 그리고 부상당한 철거민들은? 철거민들이 죽을 줄 알면서 화염병에 불을 붙여 던졌다는 이런 결론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런 뒤에도 고강도의 폭력은 이어졌다. 경찰, 검찰만이 아니라 각 부처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들까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모독하는 폭력은 이어졌다. 그리고 용산 참사 문제를 덮기 위해 연쇄살인범 사건을 키우라고 했던 청와대의 '신보도지침' 사건 등으로 가난한 이들은 죽음에 대한 사과조차 할 가치도 없는 버림받은 '인종'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그래서다. 용산 철거민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는 투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생명조차 차별하는 폭력 구조를 부정하고 해체하여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지독한 '계급전쟁' 용산에서 사람이 6명이나 죽는 비극이 있은 지 두 달여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5명의 농성 철거민 유가족과 국민들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매일 촛불문화제를 열었고, 주말마다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했고, 가두시위도 벌였다. 사람이 6명이나 생으로 타 죽은 대참사 이후에 오로지 마녀사냥에 여념이 없는 정부에 대한 항의는 계속되어왔다. 그렇지만 용산 참사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그날, 용산'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곳곳에서' 이런 폭력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에서 그 몸통이 조금은 드러났다. '삼성과 대림과 포스코라는 건설 자본이 그 배후에 버티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저들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날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 의해 재개발 조합이 구성되고, 그들에 의해서 정비 업체가 선정되고, 철거용역 업체가 손발을 맞춘다. 그리고 구청과 시청이 유착하고, 경찰조차도 수족처럼 철저하게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드러나 보이는 것은 겨우 경찰과 용역 깡패들이지만, 자본과 정치권력의 커넥션이 사실은 핵심이다. 용산 참사는 철저하게 계급적인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 권력과 법과 정치는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한다. 철저하게. 그러므로 우리가 이 책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용산에서만이 아니라 구로 천왕동에서도, 중구 순화동에서도, 동작구 흑석동에서도, 수원 권선동에서도, 고양 풍동에서도, 광명에서도, 욘인에서도, 성남 단대지구에서도,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수많은 지역들에서도 건설 자본은 여전히 횡포를 부리고 있고, 철거민들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에 쫓기고, 경찰과 검찰은 폭력에 항의하던 철거민들을 입건하여 전과자로 만들고, 법원은 법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권력은 여전히 이런 부당한 법 집행을 옹호하면서 버젓이 투표할 권리도 있고, 세금도 꼬박꼬박내는 시민들을 강제로 삶의 벼랑 끝에서조차 몰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지독한 계급전쟁이다. 마치 자본주의 초기에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위해서 자본의 악랄한 착취가 있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고는 그 위에 소수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과 빌딩을 올린다. 그곳에 철저하게 접근금지 울타리를 친다. 이것이 법인가? 이것이 정치인가? 이것이 민주공화국인가? 우리는 이 지독한 계급전쟁의 희생자인 철거민들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난다. 어느 지역에서든 용역 깡패들의 폭력이 자행될 때 경찰은 오지 않는다. 칠순 노인이 젊은 깡패들에게 욕먹고 얻어맞을 때에도, 나이든 여성이 건장한 남성들에게 머리채를 휘둘리고 죽도록 맞아도 오히려 이들 철거민들만이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될 뿐이다. 여기서 전철연과 철거민들은 애초부터 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국민이기를 거부당한, 시민권을 박탈당한 국외자일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저항은 이처럼 국가로부터 철저하게 폭력의 대상이 될 뿐이다. 상가 세입자들이 평생을 벌어 자신들의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투자한 돈도 무시되었고, 폭력을 앞세운 깡패들에게 인간적인 모독을 당해야 했던 그때 공권력은 자본과 깡패들의 편에 서 있었다. 철거민들이 혹독한 깡패들의 폭력 앞에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방어적인 폭력을 휘두른 철거민들은 쉽게 구속되거나 수배되었으며 벌금형을 받아야 했다. 이런 불평등한 법 집행 앞에서 법치는 이미 공허한, 힘 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일 뿐이다. 정부 없이는, 국회 없이는, 법원이 없이는, 검찰의 보호 없이는, 경찰의 철저한 공권력 행사 없이는 건설 자본은 작동할 수 없다. 이런 지독한 계급전쟁의 한복판에서 용산 철거민들은 죽어갔다. 이 지독한 계급전쟁에서 진압의 대상에서 비켜갈 수 있다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어엿한 권리 주체인 국민일 수 있다. 끝을 보아야 하는 투쟁 용산4구역에서 재개발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6명이 죽은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하다. 중산층이라고 해도 잘못된 재개발에 걸려들면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되고, 가옥주가 세입자로 전락하고, 상가 세입자는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날 것인데도 아직도 재개발 이익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란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라. 원래 철거민이 따로 있지 않았고, 철거민이 되고자 하지 않았음에도 철거민이 되고 결국 망루에 올랐다는 지독한 우리 사회의 비참을 들어보라고. 지독한 계급지배의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들이 세력을 이루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갖추지 않으려는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철거민이고, 철거민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들이 실업자이고, 민중이고, 시민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의 인식은 존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존재는 철거민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굳이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 허위의식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저들 지배세력이 심어놓은 허구다. 그 허구를 깨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 용산 투쟁이다.(이 부분 왠지 정말 진실인 것처럼 들려지는데, 이 지배세력들은 어떻게 언제부터 얼마나 더 많은 허위의식들을 심어놓은 것일까?) 그러기 때문에 정부는 용산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부르르 떨며 불법의 영역으로 내몰려 한다. 그래야 자신은 온건하다고 착각하는 시민들에게까지 확대되지 않을 것이므로. 소중한 생명이 6명이나 죽어간 용산4구역에서 폭력 없는 재개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재개발,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재개발, 세입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재개발, 그래서 주거권이 보장되는 재개발의 모델을 만들어낼 때까지 용산 4구역에서 철거와 재개발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광란적으로 진행되는 뉴타운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대운하사업으로 연결될 4대강 정비사업에까지 자본의 욕망 앞에 인간과 자연을 제물로 바치는 이런 어리석은 짓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 힘없는 자들,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인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그러기에 두 달여가지나도 장례를 못 치루는 이 상황에서도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이나,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 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 이 투장에서만큼은 반드시 끝을 보아야 한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연대를 강화하면서. 이 책은 철거민들의 삶과 투쟁의 기록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진실은 불편하지만 우리는 한편 이미 알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부디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기를...... 더 이상 사람이 살기 위해 망루를 짓지 않고, 더 이상 살기 위해 그곳에 오르지 않고, 더 이상 '저기 사람이 있다'며 울부짖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여기 '사람'으로 만났으면 한다. - A - 철거민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지들만 잘 살려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양보할 줄도 알아야지... 에힝.... 나쁜놈들.. 철거민들은 우리 이야기를 누구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자신들 이익만 챙긴다고 오해받는 부분 때문에 많이 부끄러워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주거권은 인간의 기본권이거든요. 당연한 그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싸우지 않으면 이 현실은 영원히 되풀이되죠. 싸워서 말도 안되는 이 고리를 끊어야 해요. 철거민들 싸움은 사회를 좀 더 공평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에요. 없는 사람도 행복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용산4구역에서 재개발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6명이 죽은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하다. 중산층이라고 해도 잘못된 재개발에 걸려들면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되고, 가옥주가 세입자로 전락하고, 상가 세입자는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날 것인데도 아직도 재개발 이익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란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라. 원래 철거민이 따로 있지 않았고, 철거민이 되고자 하지 않았음에도 철거민이 되고 결국 망루에 올랐다는 지독한 우리 사회의 비참을 들어보라고. 지독한 계급지배의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들이 세력을 이루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갖추지 않으려는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철거민이고, 철거민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들이 실업자이고, 민중이고, 시민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의 인식은 존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존재는 철거민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굳이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 허위의식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저들 지배세력이 심어놓은 허구다. 그 허구를 깨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 용산 투쟁이다.(이 부분 왠지 정말 진실인 것처럼 들려지는데, 이 지배세력들은 어떻게 언제부터 얼마나 더 많은 허위의식들을 심어놓은 것일까?) 그러기 때문에 정부는 용산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부르르 떨며 불법의 영역으로 내몰려 한다. 그래야 자신은 온건하다고 착각하는 시민들에게까지 확대되지 않을 것이므로.) 과연 철거민들이 싸우지 않으면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갈까? 위 글에서 말한 허위의식으로 인해 전 국민 가운데 7% 밖에 안되는 부동산 부자들에게 다수의 이익을 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다수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이야 말로 자기 집 값 자기 동네 땅값 좀 올라서 이득 좀 봐보자는 심산은 아닐까? 당장에 집이 부서져 최소한 살아갈 집이라도 보상해달라는 이들, 좀 더 편하고 좀 더 번화한 동네에 살고자 하는 이들 중에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막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경찰이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죄가 없고, 철거민 20명은 죄를 물어 기소하겠다는 내용이다. 발표를 보면서 이번에 돌아가신 분들 모습에 나와 우리들이 스르륵 겹친다. 전 국민 가운데 7퍼센트밖에 안되는 부동산 부자가 지배하는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는 '누구든, 언제든' 철거민이 될 수 있기에.' - 재개발로 인해 부서지고 사라져버린 공간들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상을 만들자.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 공간. 그 공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공간을 지켰던 이 전에 건물과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흔적인 부서지고 버려진 이전에 사람들이 머물고 사용했던 것들을 수집해 책상으로 만든다. 이것은 부서져 없어져버릴 공간들과 이와 같은 철거민이 되기 이전에 그들이 살던 공간에 대한 기억의 작업물이 됐으면 한다. (용산을 돌아다니며 수집을 하려 계획 중이다.) 지금 용산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은 원주민들은 또 다시 어디로 살길을 옮겼을까? 어떻게 살아갈까? 메트로 폴리스화되어 거의 모든 수도권지역의 땅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이 시대에서 얼마나 더 낙후된 얼마나 더 변두리로 옮겨갔을까? 왜 그들은 빈털털이로 옮겨가 힘겨운 자리 잡기를 시작해야만 할까?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하며 열이나는 나는 뭐고,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철거민'으로 만들고 이렇게도 냉혹하게 잔인하게 정말 '테러분자'처럼 내쫓는 이들은 뭘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그들에게 즐거워 미소가 번지는 일이란 무엇일까?.... 음 또 쓰려던 내용과는 멀리 산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내가 철거지역에서 수집한 '기억의 근거'?들을 책상으로 만들고, 거대해지고 더욱 더 비싸진 땅값의 수도권지역에서 얼마나 낙후되어 싼 곳으로 아니면 수도권보다 더 변두리로 얼마나 흩어져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책상 위에 서울의 지도를 만들고 가능한 최대한 그들의 이동정착 상황들을 표시하고 그들의 싸인을 받는다. 그들의 싸인은 이 작업물을 구성하는 수집품들의 주인들의 증표로 의미될 것이다. ![]()
2009.05.20 23:23:50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목소리를 보태는 일 등의 '공감능력'이 점점 상실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생각들을 하고있는 것 같은데, 끊지 말고 지속하길 바란다. 대신 좀 더 너의 상황에서, 너의 마음에서, 너가 무겁거나 힘겹게 '누군가를 위해!'라는 당위성을 넘어서 너가 움직이는 곳, 너의 손길이 닿는 곳, 너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의자를 만든다. 나무들의 기억과 흔적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잠시라도 그 의자에 앉아서 타인의, 주변의, 세상의 슬픔과 고통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인가? 어떤 것이어도 좋다. 너는 그 의자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예전에 카프카가 자신의 책상과 의자에 대해 썼던 글이 어렴풋 기억난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책상과 의자 앞에서 글을 쓰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을 그 책상과 의자. 산이 만들고 싶어하는, 의자는 무엇일까?
2009.05.23 06:27:11
'좀 더 너의 상황에서, 너의 마음에서, 너가 무겁거나 힘겹게 '누군가를 위해!'라는 당위성을 넘어서
너가 움직이는 곳, 너의 손길이 닿는 곳, 너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이 부분은 제가 이런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 항상 생각하고 움직일 때에 내가 더 즐겁고 힘들지 않게 생각들을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인거 같아요. 일단 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내가 너무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됬어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만든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저는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공간과 그 공간을 채웠던 것들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이 책상에 앉아 용산에서 밀려난 그들이 흩어진 지도들을 보며, 마음을 아파하던. 이 책상을 구성하는 것들(눈에 보이는 데로 닥치는 데로 수집해 모양을 만들 계획)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추측을 해보던 그건 각자의 생각들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알아서 생각하게 내버려 두고싶기도 해요. 근데 한편으로는 이런 지금은 부서저 버렸지만 그 이전에는 공간을 구성했던 것들을 보며, 지금 자신들의 공간과 이렇게 부서지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구요. 이건 생태적 맥락이기도하고 현재 한국의 개발의 맥락이기도 해요. "마트는 쓰레기를 파는 곳이다." 쓰레기 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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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워터프론트 타운 조성 사업은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라고 해.
워터프론트 [Water front]
‘도시’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도시가 큰 강이나 바다, 호수 등과 접하고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인적이 없고 한적한 해안이나 수변을 워터프론트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는 도시의 일부로 존재하는 도시 속의 자연을 말한다. 또한 넓은 면적의 개방적 공간으로서, 과밀하고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도시민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장소이다. 인공섬이나 도시산업의 구조 변화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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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가 2007년부터 2030년까지 한강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자연성 회복’, ‘동서남북의 소통’, ‘역사성 회복’, ‘도시공간 재편’, ‘이용성 증진’, ‘고품격 시민문화 창조’라는 6대 목표 아래 한강을 중심으로 모든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고자 하는 ‘문화부흥 프로젝트’다. 우선 2010년까지 1단계 사업으로 한강공원 특화사업, 생태공원 조성, 플로팅 아일랜드, 무지개분수 조성 등 33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6년 9월 26일, 한강에 대한 접근성 개선, 문화·관광시설 조성, 수상 이용 극대화, 한강 생태 정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획을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2] 처음에는 2010년까지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2007년 7월에 주요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간은 2030년까지로 조정되었다.[3]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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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르네상스도 결국은, 운하 건설을 위한 전초적 작업이 아닐까 싶어,
운하가 만들어질 토지 주위엔 또 투기가 난무할 것이고, 빈익빈부익부로 자연스레 연결되겠지.
우리 시골 집은 남한의 정 가운데 동네에 위치해있어.
만약 운하가 만들어져야 한다면, 우리 집은 수몰되고 말아.
슬프네